마법 우편배달부: 단절된 세계를 잇는 자
10화
루나가 문 옆에 섰다. 나가지도, 앉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진료실 구석을 바라봤다. 에드거는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둘 사이에 깔린 침묵이 붕대보다 두꺼웠다.
바스코가 비상 치료 키트를 열었다. 왼팔이 골절된 상태라 오른손만 썼다. 손가락이 붕대를 풀고 상처를 소독하는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출혈은 멎었는데 내부가 문제야.”
그리프가 강한울의 옆구리에 손을 댔다. 측정기 없이 마나 결을 더듬는 손끝이었다.
“갈비뼈 세 개 금. 오른쪽 폐에 천공 가능성. 마나 고갈은… 측정 불가 수준이에요.”
올리비아가 물수건을 쥐고 다가왔다. 손이 떨려 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제가, 뭐라도…”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의 손바닥에서 빛이 샜다. 처음에는 희미한 푸른 점멸이었다. 이내 팔 전체로 퍼지며 수건을 감쌌다. 물방울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프의 눈이 가늘어졌다.
“올리비아, 그 마나.”
“어? 저, 멈추려고 하는데 안…”
빛이 강한울의 상처 위로 흘러내렸다. 열린 살점 가장자리에서 실처럼 가는 금빛 실이 솟아나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바느질하듯 한 땀 한 땀. 생명의 결이 눈에 보였다.
바스코가 숨을 들이켰다. “이건…”
강한울의 찢긴 옆구리가 봉합됐다. 금빛 실은 이내 희미해졌지만, 상처는 번들거리는 새 살로 덮여 있었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얼어붙었다.
그리프가 측정기를 빼들었다. 팔목의 진동판을 올리비아의 손목에 갖다대지 않고, 공기 중에 남은 마나 잔향에 직접 가져다댔다. 바늘이 요동쳤다.
“…궁정 고유 파장.”
조용한 선고였다.
“올리비아 크로스. 당신 전직 궁정 마법사예요.”
올리비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럴 리 없어요. 저는 마법 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파장은 거짓말 안 해요.” 그리프가 측정기를 내렸다. “대전쟁 이전 왕립 마법단 소속만 발현할 수 있는 순수 생명 속성 마법진. 앞선 사건 협곡에서도, 지금도. 두 번 확인했어요.”
바스코가 올리비아를 돌아봤다. 그 거대한 덩치가 작아 보일 만큼 조심스러운 시선이었다.
“…네가 그랬구나. 협곡에서도.”
올리비아가 한 걸음 물러섰다. 등이 벽에 닿았다.
“기억이 안 나요. 정말이에요. 협곡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흐릿하고… 가끔, 꿈에서 이상한 문양들이 보이고, 손이 저절로…”
말이 끊겼다.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뒤집어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는 단지 조제 보조였는데, 몇 달 전부터 갑자기 마나가 폭주해서…”
루나가 벽에서 몸을 뗐다. 팔짱을 풀고 올리비아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기억 상실이면 재능 부족이 아니라 연습 부족도 아냐. 네가 못한 게 아니라고.”
건조한 말투였지만 평소의 비아냥은 없었다.
“그 마법, 내 몸에 흡수된 마나 독소도 같이 정화했어. 한 명분이 아니라 두 명분. 네 덕에 살았네.”
올리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루나 씨…”
바스코가 치료 키트를 닫으며 작게 말했다. “늘 묵묵히 제일 많이 연습했잖아. 남들보다 두 배로. 그게 재능 없는 사람 몫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방식이었던 거야.”
올리비아의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소리는 없었다. 루나가 손수건을 건넸다.
“네 정체는 길드에 공식 보고할게요.” 그리프가 측정기를 접으며 말했다. “하지만 기록은 봉인 처리하겠습니다. 궁정 마법사 출신이 현역이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위험할 테니까. 대신 조건이 있어요.”
올리비아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며 물었다. “조건이요?”
“훈련을 재개할 것. 이번에는 제대로. 길드 차원에서 보호와 교육을 지원하겠습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그리프가 덧붙였다.
“당신은 이 팀에 필요해요. 이미 두 번이나 증명했어요.”
올리비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손수건을 꼭 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바스코가 그녀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줬다.
밖에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창문을 두드리는 몇 방울이었다. 점점 굵어졌다. 진료실 마나 등불이 깜빡이고, 축축한 흙 냄새가 틈새로 스며들었다.
강한울의 손목에서 시계 진동이 다시 느껴졌다. 미세하게, 그리고 한 번만.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흐릿한 천장 아래서 젖은 골판지 냄새가 났다.
좁은 복도. 형광등 불빛이 깜빡인다. 컨베이어 벨트 소리.
또야.
익숙한 환청의 시작점이었다. 전생의 마지막 날, 택배 상자들 사이에서 더는 일어나지 못했던 순간. 귀에 박힌 소리들이 다시 밀려왔다.
‘아직 미처리 건이…’
*‘오늘 야간도 칼퇴는 글렀네.’
누군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누구였지.
환청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질까요.”
올리비아의 목소리였다. 울먹임이 채 가시지 않은 톤.
“안정 단계예요. 올리비아의 치유가 결정적이었어요.”
그리프의 대답. 차분하고 정확했다.
“깨어나면.” 바스코의 목소리. 낮고 짧았다. “혼자 움직이겠다고 할까 봐.”
“그러면 또 잡으러 가면 되지.” 루나의 건조한 말투. 창문 쪽에서 들렸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했는데 뭐 세 번이라고 못 할 것도 없고.”
바스코가 작게 웃었다. 무거운 바위가 굴러가듯 낮은 울림이었다.
“장비 만들게. 다 같이 쓸 수 있는 걸로.”
“무슨.”
“마나 링크. 한 사람이 아니고 네 명이 마나를 공유해서 주소 마법을 보강하는 방식.”
“또 밤 새겠네.”
“루나는 재료 조달해.”
“거래인가.”
“반반.”
강한울은 그 대화를 들으며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골판지 냄새가 옅어졌다. 형광등은 마나 등불의 따뜻한 빛으로 바뀌었다. 컨베이어 벨트 대신 빗소리가 채워졌다.
전생에서 듣지 못한 건 ‘고맙습니다’가 아니었다. 그 말은 배달 건수만큼 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다들 물건을 받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도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달랐다.
저들은 이미 두 번이나 따라왔다. 목숨 걸고. 세 번째도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거래라는 말로 포장한 루나의 말투 속에도 같은 뜻이 담겨 있었다. 장비를 만드는 바스코의 손에도. 기록을 봉인해주는 그리프의 규정 속에도.
눈이 떠졌다. 천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눈가가 뜨거웠다.
“깼다.”
바스코가 먼저 알아챘다. 침상 옆으로 무릎을 옮겼다.
올리비아가 허둥지둥 다가왔다. “우편 선배님, 움직이면 안 돼요. 지금 막 봉합이 끝나서…”
루나는 창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등을 기댄 자세. “한마디 하려고 기다렸는데, 기절에서 깨어난 얼굴이 그거라면 할 말 없다.”
강한울이 입을 열었다. 목이 잠겼다. 한 번 헛기침.
“잠깐.” 그리프가 물잔을 내밀었다. “갈비뼈 금 갔으니 천천히.”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뉘었다.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숨이 예전 같지 않았다. 폐가 아니라 다른 데서 공기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마치 빈자리가 채워진 듯한.
“나.”
모두가 기다렸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항상 혼자였어. 혼자 배달하고, 혼자 일하고, 혼자 쓰러졌고.”
빗소리만 가득한 방. 아무도 말을 끊지 않았다.
“여기 와서도 혼자 가려고 했지. 그게 당연한 줄 알았으니까. 근데… 너희가 안 놔줬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물을 한 번 더 들이켰다.
“그거. 그게.”
말이 목에 걸렸다. 평소 같으면 삼켰을 텐데, 이번엔 그냥 내버려뒀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사실은 기다린 것 같아. 누가 와달라고. 같이 가자고. 그 말을.”
바스코가 강한울의 손을 잡았다. 굵은 손가락이 붕대처럼 감겼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컸다.
루나가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창밖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대신 턱짓으로 그리프를 가리켰다. 뭐라도 말하라는 신호였다.
그리프가 안경을 고쳐 썼다. 측정기를 내려놓고 팔짱을 풀었다.
“그 말.” 평소 답지 않게 느린 속도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올리비아가 작게 코를 훌쩍였다. 바스코가 강한울의 손을 놓지 않고 중얼거렸다.
“…함께 가자.”
강한울은 천장을 바라봤다. 마나 등불이 빗소리에 맞춰 깜빡였다.
“그래.”
지금은 대답할 수 있었다. 이 말이 전생에서 듣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었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자리처럼 이문이 나았다. 이건 ‘고맙습니다’의 반대말이 아니라 그 연장이었다. 연결된 사람이 끝내 도달하는 곳.
시계가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는 방향이 아니라 안쪽으로 울렸다. 마치 누군가 시계를 건너편에서 두드리는 것처럼.
강한울은 눈을 감았다. 더는 환청이 들리지 않았다. 대신 빗소리와, 네 사람의 숨소리가 방 안에 고르게 깔렸다.
공용 거실의 큰 창으로 아침 햇살이 길게 깔렸다.
밤새 진료소를 지킨 탓에 의자에 걸친 담요가 구겨져 있었고, 바닥엔 식은 찻잔들이 흩어져 있었다. 에드거가 동쪽 창가에 서 있었다. 한쪽 눈을 감은 얼굴이 역광에 실루엣으로 떠올랐다.
루나는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그를 보고 있었다. 어젯밤 진료소에서 울고 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시선이었다. 그녀의 발끝이 바닥을 한 번 톡 쳤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에드거가 창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녀석한테 편지 한 통을 전하지 못한 게… 내 첫 실패였어.”
루나의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 와서.”
“네 어미의 편지였어.” 그의 손이 창틀을 짚었다.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진즉에 줬어야 했다.”
루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벽에서 등을 떼고 두 걸음 다가섰다.
에드거가 주머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접힌 자국이 닳아 가장자리가 보풀어 있었다. 봉투엔 둥글고 정갈한 필체로 ‘루나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편지를 반쯤 내밀었다가 멈칫했다.
“왼쪽 눈을 걸었던 건, 지도 때문이 아니었어.”
루나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너를 찾으려고.” 그의 목소리가 떨리지도 않고, 대신 너무 평온해졌다. “길 없는 지도 중심부가 보여줄 수 있다더군. 내가 잃어버린 게 있는 곳을.”
루나가 편지를 낚아챘다. 그리고 읽지 않고 허리에 꽂았다. 손이 두 번 왔다 갔다 하더니, 주먹을 쥐었다.
“그 눈으로 딸을 보지도 못하게 됐잖아.”
“보고 있어.” 에드거가 몸을 돌렸다. 한쪽 눈이 그녀를 향해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쪽도 정확히 루나를 마주한 듯했다. “여기 있는 너를.”
루나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무심한 척 굳은 표정 아래로, 턱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가 한 걸음 더 다가가 이마를 에드거의 어깨에 갖다 댔다. 손은 여전히 주먹을 쥐고 있었다.
“…개인 교습비는 비싸게 받을 거야.”
에드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다음 짧게 웃었다. “네 녀석 실력이 그깟 값을 하나.”
문이 열렸다. 바스코가 붕대 감긴 팔을 지팡이처럼 앞으로 내밀며 들어왔고, 그 뒤로 올리비아가 쟁반을 들고 섰다. 강한울이 맨 뒤였다. 아직 걸음이 느렸지만 등은 곧았다.
네 사람의 시선이 거실 구석의 부녀를 스쳤다. 그리프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며 지팡이로 문을 닫았다.
강한울이 테이블 앞에 섰다. 손을 한 번 폈다가 쥐었다.
“다들 고맙다. 살려줘서.”
그리프가 입을 열려다 말고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바스코의 금빛 눈이 강한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 혼자 짊어지려고 한 게 잘못이었다.” 강한울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시선이 올리비아의 쟁반 위 찻잔에, 바스코의 붕대에, 루나의 빨갛게 충혈된 눈가에 닿았다. “내 강박이 팀을 죽일 뻔했다.”
목소리가 조금 잦아들었지만 끊기지 않았다.
“이제는 함께 하겠다. 길 없는 지도를.”
그리프가 측정기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최심부 재돌파를 위한 주소 마법 계산은 끝났습니다. 준비된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지난 실패와 달리, 이번에는 모두가 가진 정보를 합쳤어요.”
손가락이 움직이며 탁자에 투사된 마나 경로도를 가리켰다.
“내일 새벽. 마지막 균열을 여는 주소가 준비됐습니다.”
바스코가 투박한 기계 팔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한 손으로 충분히 작동하는 새 방어 장비도 곧 조립 끝난다.”
루나는 에드거에게서 몸을 떼며 코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늙은이가 길 안내는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네 녀석이 내 눈 대신 똑바로 봐.”
올리비아가 조용히 찻잔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프의 지도 위로 김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강한울이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봤다. 액정은 깜빡이지 않고, 그저 현재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자.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