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급식의 신

12화

조리실 안이 조용해졌다.

경찰들이 차만식을 데리고 나간 뒤, 유다희가 액션캠 배터리를 확인했다. 생중계 화면의 시청자 수가 5만 8천을 넘어서고 있었다.

“채팅창 난리 났어요. 교육청 감사 온대요.”

유다희가 휴대폰을 기울여 보여줬다. 채팅창이 초당 수십 개씩 올라갔다.

강시은이 노트북을 열었다. 교육청 비리 퇴찰 시스템 대시보드에 ‘현장 감사 진행 중’이라고 떠 있었다. 감사 번호와 담당 팀장 이름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김 팀장이 아니라, 부팀장이 왔어요. 퇴찰 시스템은 상급자가 직접 배정한 감사관이라서요.”

서준혁이 휴대폰을 꺼냈다. 한주원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QC 보고서 사본 찾았다. 스캔본 전송 완료.’

첨부 파일을 열었다. QC-2022-0451. 4년 전 은성초 위생 점검 당시 본사에 제출했던 보고서 원본이었다. 하단에 ‘검토 완료 후 폐기: 문서 보존 기간 2년’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본을 어떻게.”

“전산실 백업 서버에 남아 있었대. 폐기 승인 전에 백업된 파일.”

서준혁이 파일을 강시은에게 보여줬다. 그녀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로트 번호를 확인했다. LOT-0418-05. 냉동고에서 찾은 위조 스티커와 같은 활자 폭, 같은 공장 코드였다.

“이걸로 연결 고리 완성이네요.”

교육청 감사관들이 조리실로 들어왔다. 세 명이었다. 검은 정장 차림에 가슴에는 감사관 패찰을 달고 있었다. 맨 앞의 40대 남성이 서류 가방에서 감사 명령서를 꺼냈다.

“비리 퇴찰 시스템 긴급 감사 나왔습니다. 냉동고, 냉장고 전부 개방해 주십시오.”

강시은이 냉동고 문을 열었다. 위조 스티커가 붙은 닭볶음탕 용기들이 그대로 있었다. 감사관들이 사진을 찍고 로트 번호를 기록했다. 한 명이 냉동고 안쪽 온도계를 확인했다.

“실제 온도 영하 11도. 기록지는 영하 18도로 조작. HACCP 기록 위조 확인했습니다.”

또 다른 감사관이 바닥에 흩어진 기록지 원본을 수거하며 말했다.

“프린터 출력 시간 새벽 5시 23분. 교체 흔적 명확합니다.”

서준혁이 휴대폰에서 지하 공장 사진을 열어 감사관에게 보여줬다. 위조 스티커 원판, 장부, 활자 금형 사진 47장이었다.

“인천 남동공단 4블록 지하 창고. 거기서 찍은 거다.”

감사관이 사진을 넘겨보다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 자료를 교육청 서버에 제출해 주십시오.”

강시은이 노트북에서 파일을 업로드했다. 전송 바가 차오르는 동안 유다희가 카메라로 감사 현장을 계속 비췄다.

한 감사관이 휴대폰을 받았다. 짧게 대답하고 끊었다.

“경찰이 지하 공장에서 장부와 스티커 원판 압수했습니다. 차만식은 조리실 현장 체포 직후 구속 절차 들어갔고, 박종태는 정문 앞에서 별도 체포됐습니다.”

오후 2시. 경찰서 브리핑룸.

형광등 불빛이 책상 위 증거물들을 비추고 있었다. 냉동실 위조 라벨 원본, QC 보고서 사본, 강시은의 녹음 파일이 담긴 USB, 지하 공장에서 압수한 장부와 스티커 원판.

경찰서 대변인이 마이크 앞에 섰다.

“오늘 오전, 교육청 합동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차만식, 박종태 두 피의자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오후 1시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핵심 증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피의자 차만식이 운영하는 지하 공장에서 압수된 유통기한 위조 스티커 원판과 장부. 둘째, 4년 전 은성초등학교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유통기한을 조작했다는 QC 보고서 사본. 셋째, 피의자 차만식이 조리실에서 사고 은폐를 지시한 녹음 파일입니다.”

대변인이 USB를 들어 보였다.

“이 녹음 파일에는 4년 전 은성초 식중독 사고를 조리실 과실로 덮었다는 자백이 포함돼 있습니다. 해당 사고로 사망한 피해 아동의 부친이 직접 확보한 증거입니다.”

서준혁은 브리핑룸 뒤쪽에 서서 듣고 있었다. 강시은이 옆에 섰다. 유다는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았다.

대변인이 서류 한 장을 더 꺼냈다.

“이 증거들을 종합한 결과, 2년 전 은성초 식중독 사망 사고는 위조된 유통기한의 식자재 납품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해당 사건에 대한 공식 재조사를 오늘부로 개시합니다.”

서준혁이 눈을 감았다.

왼손 손등의 흉터를 엄지로 한 번 문질렀다. 그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강시은이 조용히 말했다.

“재조사 결정 났네요.”

“그래.”

“녹음기, 처음엔 저를 보호하려고 산 거였어요.”

강시은이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펜던트형, 작고 낡은 기종이었다.

“차만식 사장님이 언젠가 저를 자를 거라는 생각에…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4년 동안요.”

서른일곱 개의 파일이 폴더에 저장돼 있었다. ‘4월증거01’부터 ‘4월증거07’까지. 가장 오래된 파일 생성일은 4년 전이었다.

“처음엔 두려웠어요. 이걸 꺼내는 순간 저도 끝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강시은이 녹음기를 내려다봤다.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요. 더 이상 숨지 않을 거예요.”

경찰서 복도에서 차만식이 이송되고 있었다. 양쪽에 경찰 두 명이 붙은 채로. 올백머리가 흐트러져 있었고, 금시계도 사라졌다. 수갑 찬 손을 들 수 없어 고개만 숙인 채 걸었다.

박종태가 그 뒤를 따랐다. 뿔테 안경이 기울어져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송차 뒷문이 닫혔다.

유다희가 카메라를 내렸다. 배터리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생중계는 이미 8만 명을 넘어선 상태로 종료됐고, 채널 구독자 수는 15만을 돌파했다.

“내일 아침 뉴스에 나올 것 같아요. 제보 영상이랑, 경찰 브리핑이랑.”

서준혁이 학교 쪽을 바라봤다. 급식실 불이 꺼져 있었다. 냉동고도, 조리대도, 씽크대도 조용했다.

“끝난 거예요?”

유다희가 물었다.

서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가 모든 걸 말한다. 더 이상 덮을 수 없을 거다.”

강시은이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다. 손톱을 뜯지 않았다.

사흘 뒤 오전, 교육청 3층 심의실.

강시은이 손톱을 뜯지 않고 문고리를 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열쇠가 아니었다. 문은 안쪽에서 열렸다.

“강시은 씨, 들어오세요.”

심의관 세 명이 마주 앉은 탁자. 가운데 앉은 여성 심의관이 서류를 넘겼다.

“차만식 건 녹취 파일과 4년간의 위생 점검표 사본, 그리고 클라우드에 보관된 증거 사진 전부를 검토했습니다.”

탁자 위에 문서 한 장이 밀려왔다.

“교육청 내부고발자 보호 심의 결과입니다. 정식 보호 대상자로 인정합니다.”

강시은이 문서를 집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끝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뿔테 안경 너머 눈이 깜빡였다. 한 번뿐이었다.

심의관이 덧붙였다.

“한 가지 더. 유다희 씨 채널에 관한 건인데요.”

강시은이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에서 유다희가 뛰어왔다. 액션캠을 손목에 찬 채였다.

“강 선생님! 저 이제 교육청 공식 제보 협력 채널 됐어요! 진짜로 된다고 했는데 진짜로 됐어요!”

강시은이 심의실 문을 등지고 섰다. 유다희의 손목을 잡아 가볍게 내렸다.

“복도에선 조용히. 그래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잘됐네요.”

같은 날 오전 10시, 학교 교장실.

서준혁이 교장 책상 앞에 섰다. 조리복이 아닌 옅은 회색 셔츠 차림이었다. 왼손 손등의 흉터가 소매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교장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서 선생님. 이번 일로 학교가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교육청, 경찰, 언론까지… 그래도.”

봉투 안에서 문서 한 장이 빠져나왔다.

“학교 급식 안전 관리관 임명장입니다. 교육청과 협의해 만든 새 직책이에요. 이 학교뿐 아니라 관내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합니다.”

서준혁이 임명장을 받았다.

“급식 식자재 검수와 위생 점검에 관한 전권을 드립니다. 조리실 출입 제한도 없고, 사전 예고도 필요 없습니다.”

서준혁이 문서를 접어 셔츠 안주머니에 넣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교장이 눈썹을 올렸다.

“HACCP 기록지 조작 시도가 발견되면 즉시 교육청에 직보한다. 중간 보고 라인은 두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하게 돼 있습니다.”

“원래 그렇게 돼 있었고, 원래 안 지켜졌다. 나는 다르게 한다.”

교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서준혁이 교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 창문으로 오전 햇살이 길게 깔렸다.

그날 밤, 서준혁의 집.

식탁 위에 작은 놋쇠 접시가 놓여 있었다. 접시 주변으로 사진 47장을 인쇄한 종이 뭉치. 메모지. USB 메모리 두 개.

서준혁이 식탁 앞에 앉았다. 벽에는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가 급식 식판 앞에서 숟가락을 든 사진이었다.

첫 장의 종이를 접시 위에 올렸다. 라이터를 켰다. 불이 종이 모서리를 타고 올라갔다.

“찾았다.”

두 번째 장. 냉동고 온도 조작 기록지 사본.

“박종태는 구속됐다.”

세 번째 장. 위조 스티커 ‘LOT-0418-05’ 확대 사진.

“차만식도.”

불이 종이를 한 장씩 먹어갔다. 연기가 얇게 올라 창가로 흩어졌다. 서준혁은 사진 속 아이의 눈을 보며 종이를 한 장 한 장 접시에 얹었다.

USB 메모리를 마지막으로 손에 쥐었다. 손등의 흉터가 불빛에 붉게 비쳤다.

“급식 안전 관리관이 됐다. 앞으로 네가 먹었어야 할 밥을, 다른 아이들이 먹는다.”

마지막 종이가 재가 되었다. 접시 안의 잿더미가 바람 한 점 없는 방 안에서 가라앉았다.

서준혁이 라이터를 내려놓았다.

오래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준혁이 조리실 앞 복도에 섰다. 흰색 조리복. 왼쪽 가슴에는 ‘급식 안전 관리관 서준혁’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한 손에는 오늘자 급식 메뉴 검수표가 들려 있었다.

메뉴 검수표 상단. ‘닭볶음탕’ 옆에 적힌 납품 로트 번호. 유통기한. 보관 온도. 모든 칸이 채워져 있었다.

조리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쪽에서 물 끓는 소리와 도마 소리가 들렸다. 조리사들의 낮은 대화가 간간이 섞여 나왔다.

서준혁이 검수표를 접어 앞주머니에 넣었다. 문고리를 잡았다. 손등의 흉터가 차가운 금속에 닿았다.

문이 열렸다.

서른일곱 개의 파일이 폴더에 저장돼 있었다. ‘4월_증거_01’부터 ‘4월_증거_07’까지. 가장 오래된 파일 생성일은 4년 전이었다.

“처음엔 두려웠어요. 이걸 꺼내는 순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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