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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녀 독초 도감 - 12화 완결

12화

조정 간담회장에 김상선의 외침이 밀려들자 대신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강윤이 손을 들어 무관청 경비를 향해 짧게 명했다.

“간담회 개회 전 무단 난입자는 모두 격리하라.”

경비 둘이 김상선의 팔을 붙잡자 그가 청원서를 흔들며 버둥거렸지만, 강윤의 시선은 이미 중종을 향해 있었다.

“전하. 이것은 사흘째 이어지는 동일한 방해 공작입니다. 오늘 간담회의 증인과 증거는 이미 무관청 정식 절차를 거쳤사옵니다.”

중종이 손을 들었다.

“물러가라. 청원은 간담회 종료 후 접수하라.”

김상선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경비가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는 동안 대왕대비의 지팡이가 바닥을 한 번 두드렸다. 신하들의 숨소리가 멎었다.

“전하. 노신의 충언을 그리 물리치시면 아니 되옵니다.”

중종이 어좌에서 몸을 바로 세웠다.

“대왕대비 마마. 오늘 간담회는 이미 어명으로 소집된 자리입니다. 의견은 절차에 따라 주시옵소서.”

대왕대비의 눈꺼풀이 반쯤 내려갔다. 지팡이를 짚은 손가락 사이로 옥가락지가 촛불을 받아 번뜩였다. 더는 말하지 않았다. 강윤이 중앙으로 나서며 문서를 폈다.

“형조 참의 강윤, 오늘 간담회의 증거 제출을 개시하겠사옵니다.”

탁자 위에 월영의 은비녀가 놓였다. 일곱 꽃잎이 촛불 아래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옆에 독초 도감 사본이 펼쳐졌고, 37 배합표의 약재명과 투여 순서가 붉은 줄로 그어져 있었다.

서연이 탁자 앞으로 나서서 대응표 정본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이 은비녀의 일곱 꽃잎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옵니다. 각 꽃잎에 새겨진 잎맥의 굴절 방향과 횟수를 순서대로 배열하면, 독초 도감 37 배합표의 약재 번호와 정확히 일치하옵니다.”

서연이 대응표를 펼쳐 탁자 위에 고정했다. 왼쪽에는 은비녀 꽃잎의 세부 문양을 확대 모사한 그림, 오른쪽에는 독초 도감 배합표의 번호와 약재명, 그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먹으로 그어져 있었다.

“첫째 꽃잎. 잎맥이 좌측으로 세 번 꺾입니다. 독초 도감 배합표의 세 번째 약재, 백화 근피와 같사옵니다. 둘째 꽃잎. 우측 두 번 굴절. 두 번째 약재, 적화 씨앗기름이옵니다.”

서연의 손가락이 순서대로 짚어 내려갔다. 대신들 사이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일곱 꽃잎 전부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배합표의 약재 투여 순서를 암호화하고 있사옵니다. 이것은 장신구가 아니라, 백화독에서 적화독으로 전환되는 독약 배합의 살인 지침서이옵니다.”

형조 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응표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이 은비녀를 제작한 자를 추적하면……”

“이미 추적했사옵니다.”

강윤이 장신구 법제 편람을 꺼냈다.

“대왕대비전 예장 편에 기록된 바로, 일곱 꽃잎 모란 당초문 은비녀는 대왕대비 마마의 허락 없이는 제작할 수 없는 규격이옵니다. 이 은비녀의 원본은 25년 전 폐비께서 월영 상궁에게 맡기신 물건이옵니다.”

회장 안이 술렁였다. 영의정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다시 주저앉았고, 병조 판서는 대왕대비 쪽을 슬쩍 살폈다가 고개를 숙였다. 대왕대비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으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은비녀 문양과 독초 도감 배합표, 그리고 폐비께서 남기신 서한의 인장. 이 세 가지는 동일한 암호 체계로 연결되어 있사옵니다. 폐비께서는 이미 25년 전 이 암호를 인지하고 계셨사옵니다.”

서연이 폐비 서한의 인장 부분을 펼쳐 대응표 아래에 나란히 놓았다.

“인장에 찍힌 문양 또한 은비녀 꽃잎의 굴절 패턴과 일치하옵니다. 폐비께서는 생전에 이 은비녀를 살인의 설계도로 의심하셨사옵니다.”

좌의정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 은비녀가 대왕대비전 예장품이라는 점은…… 이미 대왕대비 마마께서도 인지하고 계셨다는 뜻이 아니오?”

강윤이 고개를 돌려 좌의정을 마주 보았다.

“대왕대비 마마께서는 이 사실을 25년간 알고 계셨사옵니다. 그리고 월영 상궁에게 침묵을 명하셨사옵니다. 왕실의 안정을 내세워, 세자 전하를 독살한 범인의 실체를 덮으셨사옵니다.”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

대왕대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회장에 울렸다. 높지 않고 지나치게 고요한 그 음성이 대신들의 웅성거림을 칼로 베듯 멈추게 했다.

“네가 들춰낸 것은 궁중의 은밀한 예법에 불과하구나. 증거라는 것도 노신이 모르는 사이 조작된 것들. 그 의녀의 검시 기록조차……”

“그 의녀가 아닙니다.”

서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손끝이 떨렸으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저는 서연. 검시관 서윤의 누이이옵니다. 오라버니의 이름으로 검시를 대리하였사옵니다. 대왕대비 마마께서 십 년 전 한장현을 시켜 오라버니께 독을 먹이신 그날부터, 저는 매일 아침 오라버니의 붓을 대신 잡았사옵니다.”

대왕대비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팡이를 짚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네 오라비가 독을 마신 것은…… 아마도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을 터. 노신이 알 바가 아니구나.”

“그 독차 잔에 남은 독성분을 오라버니가 직접 기록한 혈서가 여기 있사옵니다.”

서연이 품에서 서윤의 유지 사본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붉은 글씨가 번져 있었지만 획 하나하나가 정확했다. 마지막 구절이 촛불에 비쳤다.

‘이 독은 백화독이다. 한장현이 내게 건넨 것이다. 대왕대비의 명을 받았다 전한다.’

강윤이 독차 잔을 탁자 위에 올렸다. 도자기 바닥에 말라붙은 어두운 잔여물이 보였다.

“이 잔은 서윤 참하가 사망 직전까지 보관하고 있던 물증이옵니다. 함께 제출된 혈서의 필적은 이미 형조 감정을 거쳤사옵니다. 서윤 참하의 친필이 맞사옵니다.”

형조 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하였소.”

대왕대비의 지팡이가 바닥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무겁고 느렸다.

“월영.”

부름에 월영이 증인석에서 몸을 돌렸다. 은비녀가 흔들리며 촛불을 받았다.

“네가 노신을 속였구나. 너 또한 이 아이들과 한패가 되어……”

“마마.”

월영이 무릎 꿇었다. 손이 제 은비녀를 짚었다 떼었다.

부인하지 않겠사옵니다. 다만 전하께서 아직 모르시는 바가 있사옵니다.

대왕대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팡이 없이 두 발로 섰다. 구부정했던 등이 천천히 펴졌다.

그녀는 회장을 한 번 돌아보았으나 아무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무관청 경비가 다가서자 스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팡이 없는 걸음은 오히려 더 고요했다.

문이 닫히자 중종이 다시 어좌에 앉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월영 상궁. 네 죄는 무겁다. 그러나 오늘 증언으로 진실을 밝혔으니, 사형은 면한다. 대신 평생 회현궁에서 속죄하며 살아라. 네 기록을 정리하고, 25년간 묻혔던 진실을 문서로 남겨라.”

월영이 엎드렸다. 어깨가 떨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소인……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중종의 시선이 서연에게 닿았다. 회장의 모든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서연은 여전히 대응표를 움켜쥔 채 서 있었다.

“서연 낭자. 네 오라비 서윤은 검시관으로서 진실을 기록하다 죽었다. 그 기록을 대신 이어온 너 또한 검시에 뜻이 있다면, 이제 네 이름으로 하라.”

중종이 손을 들자 승지가 붓을 들었다.

“오늘부로 민원검안청 특별 기록관을 신설한다. 의녀의 신분을 넘어, 궁중과 민간의 검시 기록을 공식적으로 작성할 수 있는 관직이다. 그 첫 임명자로 서연을 명한다.”

회장 안이 다시 술렁였다. 좌의정이 일어서려다 멈칫했다.

“전하…… 이는 유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법전에 없는 관직을 신설하시는 것은……”

“법전은 산 자를 위해 있는 것이오. 25년간 죽은 자의 진실을 덮는 데 쓰인 법이라면, 이제 산 자를 위해 고쳐야 하오.”

좌의정이 고개를 숙였다. 대신들 사이에서 더는 반대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승지가 붓을 내려놓고 검은 비단에 금박으로 관직명이 내려쓰인 임명장을 두 손으로 받들어 서연 앞으로 걸어왔다.

서연은 두 손으로 임명장을 받아 들었다. 비단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손끝이 떨렸다.

“이제 네 이름으로 검시하라.”

서연이 무릎 꿇고 임명장을 가슴에 안았다. 눈가가 붉어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이 모든 기록…… 제 이름으로 남기겠사옵니다.”

강윤이 그 모습을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았다. 그의 손이 품 안의 빈 봉투를 짚었다. 서윤이 남긴 인장 자국이 손끝에 닿았다.

회장 밖에서 낙빈이 무관청 경비를 정리하며 문을 굳게 닫았다. 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한 손에 임명장을, 다른 한 손에 대응표를 쥐었다. 촛불이 그녀의 손 위에서 일곱 번,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다음 날 아침, 형조 문서고 특별 봉인 구역.

서연이 민원검안청 특별 기록관 임명장을 품에 넣은 채 문서고 입구에 섰다. 강윤이 그 옆에서 무관청 경비에게 증거물 목록을 건넸다. 경비가 목록을 확인하고 봉인 구역 철문을 열었다.

서연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품에서 대응표 정본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이어 월영의 은비녀를 그 옆에 가지런히 두었다. 일곱 꽃잎이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났다.

강윤이 독초 도감을 마지막으로 올렸다. 서연의 손이 도감 표지 위에서 잠시 멈췄다.

“오라버니가 평생 지키려 했던 책이오.”

강윤이 그 손을 덮었다.

“이제 그 책은 당신의 이름으로 보존될 것이오.”

서연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함께 확인하오.”

두 사람이 증거물 하나하나에 봉인지를 붙였다. 대응표에는 ‘을유년 세자 독살 사건 은비녀 암호 대응표. 작성자 서연’이라 적혀 있었다.

월영의 은비녀에는 ‘증거 제1호. 증인 월영 제공’. 독초 도감에는 ‘25년 간 금서로 보존되었으나 이제 공개 기록으로 전환됨’이라 쓰였다.

마지막 봉인지를 붙이자, 문서고 서기가 증거 등록부를 펼쳤다. 서연이 붓을 들어 직접 서명했다. 강윤도 그 아래 이름을 적었다.

“영구 보존. 열람은 형조 판서와 민원검안청 기록관의 공동 승인으로.”

서기가 등록부를 닫으며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문서고를 나섰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길게 울렸다.

형조 청사 계단.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서연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이 유난히 맑았다.

“이십오 년 만에…… 모든 조각이 기록이 되었소.”

강윤이 그 손을 잡았다.

“당신의 손으로 쓴 모든 글자가 이제 법의 일부요.”

서연이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법과 진실을 위하여.”

“평생 함께하오. 동지로서.”

별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계단 위로 길게 드리웠다.

같은 날 밤, 중종의 집무실.

중종이 생모의 문서를 다시 펼쳤다. 간담회 내내 품에 지녔던 낡은 종이에는 생모의 친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전하께서 훗날 이 글을 보신다면…… 신하들의 말이 아닌, 진실을 따르소서.’

중종이 종이를 접어 등잔 가까이 두었다. 문밖에서 월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소신 월영이옵니다.”

“들라.”

월영이 무릎 꿇고 들어왔다. 일곱 꽃잎 은비녀는 더 이상 머리에 없었다. 그녀는 바닥에 이마가 닿을 듯 깊이 절했다.

“소신은 이십오 년 동안 침묵하겠다는 죄를 지었사옵니다. 전하께서 사면을 내리셨으나…… 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옵니다.”

중종이 손을 들었다.

“고개를 드시오.”

월영이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소신의 남은 목숨…… 오로지 전하와 왕실의 쇄신을 위하여 바치겠사옵니다.”

“외척에 기대지 않는 왕권을 세우는 일이오. 상궁이 보필하겠소?”

월영의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고였다.

“죽음으로써 받들겠사옵니다.”

중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받겠소.”

등잔불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한데 모아 벽에 비추었다. 집무실 밖 복도에는 무관청 병사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손끝이 떨렸으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저는 서연. 검시관 서윤의 누이이옵니다. 오라버니의 이름으로 검시를 대리하였사옵니다. 대왕대비 마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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