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진동의 지배자

11화

공조기 소리가 낮게 깔린 연구실. 최영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춘 지 십 초쯤 지났다.

윤재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관측망 바깥이라는 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게이트라는 뜻입니다.” 최영우가 단말기를 내려놓고 모니터의 좌표를 확인했다. “협회 서버에 등록되지 않은 지점.

민간 관측 위성 커버리지에서도 벗어나 있습니다. 이런 좌표를 보낼 수 있는 주체는….” “발신자는.” “추적이 안 됩니다. 여러 국가 중계기를 거쳤고 종단 서버는 폐쇄됐습니다.

5분 만에 말이죠.” 윤재하는 단말기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았다. 북위 37도 32분 14초. 동경 126도 58분 41초.

72시간. “올 사람이 아니다. 가야 하는 곳이군.” 최영우가 안경을 벗어 닦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윤재하 씨. 이건 단순한 정보 유출이 아닙니다.” 그가 차원 균열 주파수 데이터를 띄웠다.

“누군가 우리가 이 모델을 완성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완성된 모델이 쥐여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 지금 좌표를 보냈다.” “네.” 윤재하는 일어나 벽에 기대었다. 왼쪽 어깨뼈 아래가 욱신거렸다.

“이 좌표, 협회에는 언제 알릴 생각이지.” “즉시 보고해야 합니다. 다만….” 최영우가 발신 기록 란을 가리켰다. “출처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협회가 우리 모델을 믿어줄지 모르겠습니다.” “믿게 만들면 된다.” 윤재하는 벽에서 등을 뗐다.

“최 박사님. 72시간 안에 실전 검증을 마칩니다. S급 게이트 진입 전에 내 몸에 공명 제어가 자리 잡아야 한다.” 최영우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훈련하실 생각이십니까.” “협회 훈련장에 사일런트 게이트 시뮬레이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소리 차단 챔버와 진동 발생 장치가 갖춰져 있죠. 하지만 B등급 이상만 출입이— 아.” 최영우가 말을 멈췄다.

윤재하는 팔짱을 풀었다. “강서윤에게 부탁한다.”

이틀째 오후. 협회 지하 3층 특수 훈련장.

차음 문이 닫히자 모든 소리가 죽었다. 눈을 감았다. 0.4Hz 간격의 인공 진동이 밀려왔다.

던전 내부의 핵 맥동 패턴이었다. 통증은 없었다. 심장 박동을 진동 리듬에 맞췄다.

넷째 박자에서 인공 진동이 진폭을 바꿨다. 진동이 허벅지와 척추를 타고 두개골까지 전달됐다. 두통이 시작됐다.

견뎠다. 주파수가 3.4Hz로 전환됐다. 공명핵 조각과 동일한 대역이었다.

주머니 속 조각이 체온에 반응해 떨렸다. 윤재하는 양팔을 옆으로 벌렸다. 왼쪽 벽, 천장, 바닥 중앙.

그때 패턴이 급변했다. 세 신호가 동시에 진폭을 키웠다. 던전 방어 기제 작동 재현이었다.

그는 오른손에서 장갑을 벗겼다. 맨손바닥을 금속 패널 위에 올렸다. 입술을 열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진동이 목젖을 떨게 할 뿐이었다. 역위상. 진폭이 꺾였다.

3.4Hz 인공 진동이 약해졌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억제였다.

윤재하는 이를 악물고 힘을 더 실었다. 차음 문이 열렸다. 강서윤이었다.

무리야. 그만해. 윤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손바닥을 떼지 않았다.

진동 발생 장치가 출력을 올려 세 신호가 합쳐진 거대한 저주파로 바뀌었다. 최대 출력이었다. 강서윤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심장 진동이었다. 빠르고 불규칙했다.

자신의 맥박을 그녀의 심장 박동에 포갰다. 인공 진동이 멈췄다. 챔버가 완전한 무음으로 돌아갔다.

강서윤이 수화로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내 진동만으로는 부족했어. 내가 거울이 된 거야? 거울이 아니라 받침대. 윤재하는 일어나려다 비틀거렸다.

강서윤이 옆구리를 잡아 일으켰다. 반지가 다시 깜빡였다. 심장 박동이 더 빨라졌다.

개방 예측 6시간 전. 새벽 2시.

최영우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최종 브리핑입니다.” 최영우가 실시간 관측 데이터를 띄웠다. 진동 그래프가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게이트 개방이 예측보다 2시간 정도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진폭이 가파르게 증가 중입니다.” “균열핵 크기는.” 윤재하가 물었다. “추정 지름 15미터.

각각 진동 주파수가 달라서 역위상 펄스를 세 군데 동시 겹쳐야 합니다.” 박태진이 팔짱을 풀었다. “한 번에 하나씩밖에 못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지금까지의 한계였습니다.” 최영우가 훈련 데이터를 띄웠다. “윤재하 씨가 오늘 오후 다중 역위상을 성공했습니다.

이론상 세 번째 보조 균열은….” “내가 맡지.” 박태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나는 진동 감지가 서툴다. 하지만 진동을 만들어내는 건 다르다.

내 진동을 받침대로 써라.” 강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태진 씨. 진동 감지 훈련 며칠 했어. 이틀. 충분해.

“네 진동을 믿기로 했다, 윤재하. 내 진동도 써라.”

“좋다.”

“진입 즉시 윤재하 씨는 주 균열핵과 공명. 윤재하 씨가 세 진동을 동시에 읽고 역위상 펄스를 생성합니다.” “시간 제한은.” “공명 시작 후 4분. 그 이상은 신경계가 견디지 못합니다. 임계점 도달 시 경고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경고 신호는.” 강서윤이 반지를 가리켰다. 최영우가 끄덕였다. “반지 진동 패턴을 바꾸겠습니다. 3회 점멸 후 연속 진동이면 즉시 철수. 균열 안정화 시 1회 길게 점등.” 미세한 온기가 닿았다. “4분 안에 끝낸다.”

오전 5시 38분. S급 사일런트 게이트 전방 200미터.

새벽 안개 속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저주파 진동이 지면을 타고 밀려왔다. 윤재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두 개의 주파수가 섞여 있었다.

“이거….”

패턴이 다르다. 일반 게이트가 아니다.

최영우가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데이터가 갱신되고 있었다.

“차원 균열의 간섭 패턴입니다. 지금까지 관측된 어떤 게이트보다 불안정합니다.”

강서윤이 옆에 섰다. 진동 신호 반지가 깜빡였다.

들어갈까.

그래.

박태진이 청각 보조 장비를 바라봤다.

세 사람이 나란히 구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음이 세 사람을 집어삼켰다.

윤재하의 진동 감지가 각성했다.

균열핵. 추정 지름 15미터. 네 겹의 주파수가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공기마저 진동했다. 균열핵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차원 균열의 시각적 증거였다.

강서윤이 수화를 들었다.

갈라진다. 공간이.

보인다. 균열핵이 현실을 구부리고 있어.

박태진이 앞으로 나갔다. 발걸음에서 불규칙한 진동이 전해졌다. 두려움이 담긴 파형이었다.

윤재하가 박태진의 어깨를 잡고 두드렸다.

내 진동을 따라와. 네 진동은 내가 읽는다.

박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 박동이 조금 느려졌다.

균열핵이 반응했다. 저주파가 지면을 타고 밀려왔다. 균열핵 주변에서 세 개의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광석과 살덩이가 뒤섞인 형체, 머리라 부를 만한 부위에 불규칙하게 박동하는 핵이 박혀 있었다. 셋 모두 윤재하를 향해 돌아섰다.

강서윤이 앞으로 뛰어들며 진동 단검을 휘둘렀다. 가장 가까운 그림자의 측면을 베었다. 광석이 깨져나가며 진동이 퍼졌다. 그림자가 방향을 틀었다.

1번 맡을게!

그녀가 그림자를 균열핵 반대 방향으로 유인했다. 진동 신호 반지가 끊임없이 깜빡였다.

박태진이 두 번째 그림자에 돌진했다. 맨주먹으로 달려들어 다리를 걷어찼다. 그림자가 바닥에 부딪히며 진동을 일으켰다. 박태진은 그 진동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2번은 내 거다!

윤재하가 균열핵을 향해 걸었다. 발걸음마다 심장 박동을 주파수에 맞췄다. 공명핵 조각이 타오르며 푸른빛이 옷섶 사이로 새어 나왔다.

공간 왜곡이 심해졌다.

견뎠다. 양팔을 벌려 장갑 낀 손바닥을 균열핵으로 향하고 발바닥을 바닥에 밀착시켰다.

세 개의 진동이 동시에 들어왔다. 강서윤의 심장 박동은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신뢰가 파형의 떨림을 억제하고 있었다.

박태진의 충격파는 난폭하고 규칙적이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두려움을 극복한 파형. 세 번째 보조 균열의 3.5Hz 저주파.

윤재하는 세 개의 진동을 동시에 읽었다. 파형이 겹쳐졌다. 심장이 크게 뛰고 어깨뼈 아래 균열이 뜨거워졌다.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입술을 열었다. 소리 없는 외침이 진동이 됐다.

역위상.

공명핵 조각에서 푸른 섬광이 터져나왔다. 세 진동이 양팔을 타고 하나로 합쳐져 균열핵을 향해 발사됐다. 주파수가 정확히 반전되며 맥동과 충돌했다.

공간 왜곡이 멈췄다. 균열핵이 12미터로 줄었다.

[등급 상승 확정: F → A]

[비표준 속성 '진동 공명' 최초 공식 측정 완료]

윤재하는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역위상 펄스가 여전히 균열핵을 억압했다.

강서윤이 1번 그림자 핵을 단검으로 찔렀다. 광석이 허물어졌다. 그녀는 즉시 윤재하 옆으로 달려왔다.

버텨! 얼마 안 남았어!

박태진이 2번 그림자를 바닥에 내리꽂아 핵을 깨뜨렸다. 숨을 몰아쉬며 윤재하 등 뒤에 섰다.

네 번째 보조 균열의 진동이 약해지고 있었다. 윤재하의 시야가 하얘지고 신경계가 한계에 달했지만 팔을 내리지 않았다. 역위상 펄스가 마지막 진동을 쏘아보냈다.

공간 왜곡이 완전히 사라졌다. 균열핵이 지름 5미터까지 축소됐다. 차원 균열이 안정화됐다.

게이트 출구 쪽 벽면이 갈라지며 새벽 빛이 스며들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박태진이 선두에서 바닥 떨림으로 경로를 읽었다. 윤재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윤이 후방을 맡았다. 뒤에서 걸으며 잔여 몬스터의 진동을 감지했다. 단검이 손끝에서 떨렸다. 아직 살아 있는 하나를 멈추지 않고 찔렀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통로 중간에서 강서윤이 수화를 보냈다.

이제 망설이지 않아.

더 이상 죄책감의 불규칙한 파형이 아니었다. 신뢰와 결의의 진동이 반지에 실려 전해졌다.

윤재하는 미소로 답하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장갑을 낀 손바닥에 역위상의 잔여 진동이 남아 있었다.

알고 있다.

게이트 출구가 50미터 앞까지 다가왔다. 새벽 공기와 함께 소리가 되살아났다. 바람 소리, 먼 발걸음 소리, 최영우가 뛰쳐나오는 소리.

그때 윤재하가 멈춰 섰다. 발바닥에 미세한 진동이 닿았다.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균열 너머에서 전해지는 마지막 파형. 3.4Hz도, 0.4Hz도 아닌 제3의 주파수. 인공적이고 규칙적인 진동이 송신되고 있었다.

이어플러그를 뺄 생각도 하지 않고 바닥에 손바닥을 짚었다. 진동이 반복되고 있었다. 기계적이고 의도적인 패턴.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멈췄다.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시야 얼룩이 좁아지고 두통이 관자놀이를 압박했다.

“뭔가가 저쪽에서….”

강서윤이 어깨를 잡았다.

“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임시 지휘 텐트.

최영우가 모니터를 클릭하며 균열핵 붕괴 데이터를 분석했다. 진동 그래프가 급격히 하강하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말미에, 진동이 소멸하기 직전 미약한 피크가 남아 있었다.

3.4Hz도, 0.4Hz도 아니었다. 제3의 주파수. 균열 너머에서 송신된 규칙적인 반복 신호.

안경을 벗고 피크 부분을 확대했다. 패턴은 분명했다. 무작위 노이즈가 아니었다.

“이건….”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이 데이터의 출처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신호도….”

확대된 파형이 깜빡였다. 표정이 굳었다.

연구자로서의 환희 대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그의 눈에 스며들었다.

진동의 지배자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