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진동의 지배자

5화

윤재하의 손이 주머니 속에서 굳었다. 공명핵 조각이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아니, 주변의 진동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오전 열 시, 번화가 횡단보도 앞. 먼저 왼발바닥으로 지하철의 둔중한 떨림이 꽂혔다. 버스 엔진의 진동, 행인들의 불규칙한 진폭이 한꺼번에 증폭되어 덩어리로 밀려들었다.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 시야 가장자리가 하얗게 얼룩졌다. 신호등 기둥을 짚자 철제 프레임의 진동까지 덮쳐왔다.

주머니 속 조각이 화상 직전까지 뜨거워졌다. 사람들이 스칠 때마다 심장 박동이 튀어 들어왔다. 분당 칠십, 구십, 부정맥. 원하지 않는 구분이었다. 숨이 막혔다.

누군가 팔을 붙잡았다. 손가락의 압력이 낯익었다. 강서윤이었다.

그녀가 인파를 뚫고 골목으로 끌었다. 간판 뒤 분리수거함 옆. 도시 소음이 한 꺼풀 벗겨진 공간이었다.

강서윤이 윤재하의 어깨를 벽에 기대게 하고 두 손을 들었다. '숨. 들이쉬고.

내쉬고.' 윤재하가 조각을 꺼내려다 손이 떨리자, 강서윤이 대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빼냈다. 그녀의 손도 미세하게 떨렸다. 손바닥 위에서 조각이 푸른빛 진동을 손금 따라 번뜨였다. '조각이 반응하고 있어.' 평소보다 큰 수화였다.

조각이 강서윤의 손에 닿자 진동 증폭 범위가 좁아졌다. 관자놀이 통증이 물러났다. 윤재하는 벽에서 등을 떼며 숨을 들이쉬었다.

'던전 밖에서는 안 돼요. 조각이 주변 진동을 전부 빨아들여.' 수화가 끝나기도 전에 강서윤이 고개를 저으며 말과 수화를 섞었다. “내가 연구실에 연락할게.” 그녀는 한 손으로 태블릿을 꺼내 최영우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른 손에는 조각을 쥔 채였다. 윤재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이 평소보다 빨랐다. 이 진동은 읽히는데, 감정은 읽히지 않았다.

강서윤이 손을 빼지 않고 조각을 윤재하의 손바닥에 올렸다. '좀 진정됐어.' 거짓이었다. 조각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증폭은 가라앉고 있었다.

윤재하는 조각을 손에 쥔 채 벽에 기댔다. 강서윤이 어깨가 닿을 듯 옆에 섰다. '최 박사님이 기다리실 거야.

갈 수 있겠어?' 윤재하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던전이 이걸 다시 부르고 있어.'

한 시간 뒤, 최영우의 연구실. 분석대 위 공명핵 조각이 올려놓기만 해도 유리판을 떨게 했다. 최영우가 미세 탐침을 표면에 접촉시키자 모니터에 수십 개의 피크가 불규칙하게 출렁였다.

“이전엔 없던 고조파입니다.” 그가 안경 디스플레이의 데이터를 밀어 올렸다. “3.4헤르츠 기반은 동일한데, 상위 대역에 스무 개가 넘는 배음이 새로 생겼어요.”

강서윤이 다가섰다. “아침에 번화가에서 갑자기 주변 진동을 전부 빨아들였어요.”

최영우의 손가락이 분석대 가장자리를 두 번 두드렸다. “이 조각은 현실 공간과 다른 영역 사이의 경계 주파수에 공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쪽과 저쪽의 진동을 동시에 증폭시키는 공진기예요.”

윤재하가 조각을 손바닥에 올리자 따끔거림이 팔목까지 올라왔다. “던전 안에 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잠깐 동안.”

강서윤이 전달하자 최영우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더 심각합니다. 조각이 윤재하 헌터님의 신경계에 직접 공진을 유도하는 거예요.

진동 감지 능력과 같은 주파수로 동기화되면 신경계가 견디지 못합니다.” 그는 잠시 말을 골랐다. “내부 결정 격자가 점점 뒤틀리고 있어요. 계속 소지하면…….”

“계속 가지고 있겠습니다.”

윤재하의 짧은 수화에 최영우가 눈을 깜빡였다. “위험을 충분히 설명드렸습니다만.”

“더 깊은 곳에서 같은 신호가 잡혔습니다. 조각이 그 신호에 반응한 거라면 포기할 수 없어요.” 윤재하는 조각을 쥔 손을 허벅지 옆에 두고 이었다. “던전 안에서만 각성되는 제 능력으로는 부족합니다. 조각이 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강서윤이 물었다. “통제할 수 있는 거예요?”

윤재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고 손을 움직였다. '조절을 배워야 합니다.'

최영우가 안경을 벗어 닦으며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을 달겠습니다. 조각의 진동 변화를 시간당 기록하는 겁니다.

이 조각은 더 이상 고립된 표본이 아닙니다. 저쪽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가 새 창을 띄웠다. 진폭이 커진 파형이 떠 있었다.

“거리에서 과부하가 일어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는 피크입니다. 조각이 혼자 폭주한 게 아니라 깊은 곳의 신호와 동기화됐어요.”

윤재하는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기록하겠습니다.'

강서윤이 최영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윤재하를 봤다. 그녀의 오른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고, 검지의 진동 신호 반지가 미세하게 빛났다. “내가 기록할게요. 조각이 반응할 때마다.” 담담한 말투와 달리 손가락 관절이 하얬다. 윤재하는 그 손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영우가 데이터를 저장하며 덧붙였다. “차원 균열 이론은 아직 학회 검증을 받지 못한 가설입니다. 다만 지금 데이터로 충분히 말할 수 있어요. 이 조각은 문 같은 겁니다. 그리고 열리고 있어요.”

모니터 위 파형이 출렁이며 진폭을 더 넓혔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화면에 박혔다.

오후 2시, 협회 비표준 속성 측정실. 측정관 한지수가 콘솔을 조작하자 원형 패드 위 윤재하를 스캔하던 모니터 다섯 대가 동시에 오류를 뿜었다. `[ERROR: Unregistered Resonance Frequency - Measurement Failed]`

한지수가 주파수 대역을 확장하고 A등급 측정기로 재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책임자 김민수가 커피 잔을 든 채 들어와 모니터를 살폈다.

“F등급 헌터지?” “네, 그런데 이 파형은……” “측정 장비 오류일 거야. 상부엔 보고해. F등급 유지, '관찰 필요'는 그대로.”

김민수는 윤재하를 힐끗 보곤 돌아섰다. 한지수는 잠시 화면을 노려보다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려 시스템 로그를 개인 저장소에 복사했다. 강서윤이 다가오자 그녀가 말했다.

“등급 변동 없습니다. 다만 이 데이터는 제가 개인적으로 보관하겠습니다. 누군가는 알아야 하니까요.”

윤재하는 패드에서 내려와 왼손으로 '감사합니다' 수화를 했다.

오후 3시, 협회 로비. 천장 스피커에서 긴급 공지가 울렸다. 도심 외곽에 중위 등급 사일런트 게이트 '침묵의 회랑'이 개방되었다는 속보였다. 로비가 술렁이는 가운데 박태진이 파란색 유니폼 차림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마나 소드를 찬 허리가 곧았다.

“침묵의 회랑, 내가 간다. 첫 클리어 기록은 내 파티가 가져간다. 들리는 게 없으면, 보이는 것만 믿고 밀어붙이면 된다.”

그는 엄지로 가슴을 톡 쳤다. 시선이 로비 한쪽에 멎었다. 윤재하와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잠시 굳었다. 박태진이 윤재하 앞으로 걸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게. 이번엔 진짜니까.”

그가 돌아서며 파티원들을 이끌고 정문 밖으로 나갔다. 강서윤이 입술을 꽉 물고 일어섰다. 윤재하는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오른손 주먹을 왼손 손바닥에 올렸다 천천히 내렸다.

'진짜다.'

오후 4시, 협회 건물 앞 벤치. 늦가을 햇살 아래 윤재하와 강서윤, 최영우가 나란히 앉았다. 최영우가 지도를 띄우며 말했다.

“침묵의 회랑 위치는 여깁니다. 일반적인 중위 사일런트 게이트라면 내부 구조는……”

강서윤이 손을 들어 말렸다. 윤재하를 향해 수화로 물었다. '박태진보다 먼저 들어가는 게 좋겠다.'

윤재하는 주머니에서 공명핵 조각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회색 결정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때 강서윤이 손을 뻗어 그의 등을 짧게 두드렸다.

가볍고 빠른 접촉. 손가락 끝이 닿은 순간 그녀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입가가 굳고 눈꺼풀이 반 박자 처졌다.

손을 거둘 때 손가락이 살짝 떨렸고, 호흡이 한 번 얕아졌다. 이내 표정을 수습했지만 말은 없었다.

윤재하는 조각을 단단히 쥐었다. 손바닥 안에서 진동이 느려졌다. 그는 왼손을 들어 수화했다.

'내 방식으로 간다.'

강서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열었다 다물었다. 최영우가 소형 진동 측정기 두 개를 꺼내며 말했다.

“하나는 제가, 하나는 윤재하 씨가 휴대하시죠. 던전 안에서 이 조각의 진동 변화를 기록해야 합니다. 다만 이 데이터는 공식 경로가 아닙니다. 심층 관측망에서 포착된 신호도 협회 공식 채널로는 접근 불가능한 데이터예요.”

강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최영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학계에는 여러 경로가 있습니다.”

윤재하는 측정기를 받아 가방에 넣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조각을 오른손으로 옮겨 쥐고 게이트 쪽을 바라봤다. 저 멀리 바리케이드 너머로 푸른빛이 어른거렸다. 파티는 게이트로 출발 준비를 마쳤다.

침묵의 회랑 게이트 앞.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진입 대기 구역에 세 파티가 집결해 있었다. 박태진이 가장 앞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 파티원들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푸른빛이 그들을 삼켰다.

윤재하는 벤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오른손을 펴 조각을 내려다봤다. 그 순간, 조각이 약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타고 미세한 맥동이 전해졌다.

그는 조각을 단단히 쥐었다. 진동이 손금을 따라 팔목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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