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은비녀 아래 진실

50화

의금부 정청의 동쪽 창으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서화연은 검율 집무실 책상 앞에 섰다. 낡은 목제 책상 위에는 검시 기록지 세 묶음, 검시관 인장, 그리고 업서화의 신분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은비녀는 품속에 그대로 두었다.

문이 열리고 하급 서리가 황색 비단으로 싼 두루마리를 들고 들어왔다.

“국왕 전하의 복권 교서가 도착했습니다.”

서화연이 무릎을 꿇었다. 서리가 교서를 펼쳐 읽었다. 폐비 서씨의 명예를 회복하고 묘소를 복원하며, 서씨 가문의 마지막 혈손 서화연에게 면천을 허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느리게 정청에 울렸다.

서화연은 이마를 바닥에 닿지 않게 숙였다.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들어올릴 때는 이미 표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서리가 두루마리를 검은 칠기 상자에 올리며 말했다.

“예조에서 묘소 복원 일정을 사흘 뒤로 통보해 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서화연은 책상 위의 물건들을 하나씩 집었다. 검시 기록지 세 묶음은 끈으로 묶어 하급 서리에게 건넸다.

“의금부 검시 기록 보관소로. 모두 대비전 사건과 폐비 마마 재심 관련 기록입니다.”

이어서 검시관 인장을 인주에 찍고 공란의 인계 확인서 위에 눌렀다. 붉은 인영이 반듯하게 박혔다.

마지막으로 신분증을 들었다. 업서화. 세 글자가 은빛으로 새겨진 작은 나무패였다. 서화연은 패를 뒤집어 앞면을 손바닥으로 닦은 뒤 공문서 위에 올렸다.

“의금부 검율 대리 업서화. 본직을 반납하고 신분증을 이관합니다.”

정청 한쪽에 서 있던 기록 담당 하급 관원이 나와 물건을 접수했다. 서류에 서명하고 신분증을 봉인용 주머니에 넣어 들고 나갔다.

서화연은 빈 책상을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의금부 서고는 정청에서 복도를 하나 지난 곳이었다.

천장까지 닿는 청원지 문서철들 사이로 촛불 몇 개가 켜져 있었다. 공기가 차갑고 건조했다. 검시 기록보관소 서가는 서쪽 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현은 서고 중앙의 긴 탁자 앞에 서 있었다. 한쪽 소매를 걷어붙인 채로 손목의 붉은 자국이 아직 선명했다. 탁자 위에는 산대청 별감 목격 기록, 청원지 대조 기록, 심수련의 진술서가 펼쳐져 있었다.

서화연이 들어서자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회색 기운 도는 눈이 촛불을 받아 잠시 밝아졌다.

“신분증은.”

“반납했습니다.”

이현이 고개를 한 번 끄덙였다. 더 묻지 않았다.

“기록 정리부터 시작하시오.”

서화연이 탁자 건너편에 섰다. 촛불 하나가 둘 사이에서 흔들렸다.

이현이 목격 기록을 집어 탁자 왼편에 놓았다.

“산대청 별감.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해시. 폐비 처소 방향으로 향하는 인영. 찢긴 나머지 부분은 원본 대조로 보완했다.”

서화연이 받아서 검시 기록 옆에 나란히 놓으며 말했다.

“인영의 정체는 심수련. 그가 증인석에서 확인했습니다.”

이현이 청원지 대조 기록을 중앙으로 밀었다.

“삼중 기록. 의금부, 규장각, 내명부. 묵 반응 흔적은——”

“푸른 기름기. 각도에 따라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원본은 은엽초 탕약, 위조본은 사약.”

이현의 오른손 검지가 탁자 위에서 한 번 접혔다.

“위조자.”

“최상궁. 필체에서 마지막 획을 안으로 꺾는 습관, 을자 첫 획을 길게 빼는 버릇이 확인됐습니다.”

탁자 위의 기록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갔다. 목격 기록은 왼편, 청원지 대조는 중앙, 진술서는 오른편. 세 묶음의 문서가 촛불 아래에서 그림자를 드리웠다.

서화연이 붓을 들었다. 붓대를 세 번 손가락 사이로 굴린 뒤 첫 장에 먹을 찍었다.

“최종 보고서 초안. 제목은——”

멈칫했다. 붓끝이 종이 위로 내려왔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폐비 서씨 독살 사건 재심 기록」.”

이현이 진술서 뭉치에서 심수련의 증언 기록을 뽑았다.

“첫 증거는.”

“은비녀 속 금속편 각인. ‘은엽초’, ‘진실은 반드시’. 폐비 마마의 필적으로 확인됐습니다.”

서화연이 첫 줄을 썼다. 붓이 빠르게 움직였다. 획 하나하나가 꼿꼿했다.

이현이 탁자 위에 도자기 조각 탁본을 올렸다.

“협박 서신 탁본. 날짜는 을미년 구월 스무날 무렵.”

“은엽초 사용을 지시한 증거입니다. 사약 명령보다 열흘 앞섭니다.”

서화연의 붓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기록의 순서는 증거 제출 순서와 정확히 일치했다. 은비녀, 도자기 서신, 청원지 위조 대조, 목격 기록.

이현이 마지막으로 심수련의 진술서 원본을 집었다.

“증인 진술. 대비의 명으로 은엽초 탕약 조제. 해시 이각경 폐비 처소 전달. 사망 확인 후 은비녀 수취.”

붓이 느려졌다. 서화연이 진술서의 한 구절을 응시했다.

「마마께서 은비녀를 뽑으셨습니다. 손끝 힘이 남아 있는 동안 속 금속편에 새기셨소이다.」

붓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다시 붓을 잡고 마지막 줄을 썼다.

“증인 심수련,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밤 폐비 마마의 최후를 목격하고 은비녀를 스무 해 동안 보관함. 이상의 증거와 증언을 통해 폐비 서씨의 사인은 사약이 아닌 은엽초 독살이며, 기록 위조의 주체는 대비전임을 확정함.”

서화연이 붓을 놓았다.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보고서 초안이 촛불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이현이 보고서를 들어 내용을 훑었다. 눈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한 군데 더.”

서화연이 그를 보았다. 이현이 목격 기록의 찢긴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

“검시 기록 원본 사이의 숨은 글자. 그 기록이 없으면 내 상처와 폐비 마마 검시 기록의 연결이 증명되지 않는다.”

“맞습니다.”

서화연이 검시 기록 원본 뭉치를 펼쳤다. 두 장의 청원지 사이, 풀로 붙여진 부분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은비녀 금속편의 글자와 같은 필체가 거기에 숨어 있었다. 폐비가 죽기 전, 검시 기록을 몰래 보고 자신의 상처를 기록해 둔 흔적이었다.

“「왼쪽 늑골 아래 자상. 칼날 폭 두 치. 각도——」”

서화연은 숨을 들이쉬고 이어 썼다.

“이 상처는 산대청 별감의 목격 증언에 나오는 제삼자——당시 열한 살이던 이현의 상처와 일치함을 의금부 검시관이 직접 확인함.”

이현이 소매를 걷어 올린 왼팔을 탁자 위에 올렸다. 손목의 붉은 자국 너머로 늑골 아래 낡은 검흔이 드러났다.

“검시관으로서 확인했소.”

서화연이 붓을 내려놓고 그를 마주 보았다.

“의금부 경력 이현. 폐비 마마께서 지혈해주신 그 상처가 검시 기록과 연결되었습니다.”

이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른손 검지가 탁자에서 접혔다 펴졌다.

“보고서 마지막에 한 줄 더.”

탁자 위 초안의 마지막 장을 끌어당겼다. 붓을 들지 않고 손가락으로 써 내려가듯 짚었다.

“「이상의 기록은 의금부 경력 이현과 검시관 서화연이 공동 집필하였음.」”

서화연이 붓을 다시 잡았다. 정확한 필체로 그 한 줄을 마지막에 적었다. 검시관 업서화가 아니라, 서화연.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보고서 초안이 탁자 위에 놓였다.

촛불 하나가 심지를 태우며 가늘게 소리를 냈다.

이현이 탁자 건너편으로 손을 내밀었다. 보고서 초안 위로 손이 지나가 서화연의 붓을 잡았다. 붓대를 사이에 두고 손가락이 겹쳐졌다.

“검시관 서화연.”

“예.”

“내 검흔을 기록에 올렸으니——”

이현의 목소리가 반 박자 낮아졌다.

“이제 당신 차례요.”

서화연이 붓을 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붓대 너머로 그의 손등에 닿았다.

“무엇을 기록합니까.”

이현의 회색 눈이 촛불을 건너뛰어 그녀를 향했다.

“내 아버지가 남긴 기록. 전 왕세자 관련 문서. 당신이 읽고 싶어 하던——”

말을 멈추고 서화연의 눈을 보았다.

“그 기록의 마지막 페이지에 당신 이름을 함께 올리시오.”

서화연의 눈꺼풀이 한 번 천천히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건 이미 저 혼자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렇소.”

이현이 붓을 놓았다. 대신 서화연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하오.”

서고의 촛불이 바람 없이 흔들렸다.

서화연은 대답 대신 붓을 먹에 찍었다. 새 종이를 한 장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첫 줄을 쓰기 전에 이현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밤. 산대청 별관 마당. 열한 살짜리 아이가 본 것부터.”

이현이 손을 풀었다. 손가락이 서화연의 손등을 스치고 내려왔다.

서화연이 붓을 내렸다. 먹물이 청원지 위로 번져 첫 글자가 되었다.

을미년 초겨울의 서고에서 시작된 기록이 한 달을 넘겼다. 낮에는 서화연이 사건 관련 문건을 교차 대조했고, 밤이면 이현이 가져온 전 왕세자 관련 문서를 함께 읽으며 빠진 부분을 메웠다. 붓을 나누어 쥔 두 사람의 작업은 동짓달 중순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페이지의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서화연은 합쳐진 기록 뭉치를 들고 이현과 함께 먼저 폐비의 묘로 향했다.

묘역의 흙은 새로 다져져 있었다. 봉분 아래 흰 돌이 반듯하게 둘러져 있고, 비석의 글자는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듯 선명했다. 서화연은 묘역 입구에 서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오후 햇살이 묘비의 글자를 비추고 있었다. 〈폐비 서씨 지묘〉,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이라 새겨져 있었다. 서화연이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손에 든 보고서 뭉치가 바람에 살짝 펄럭였다. 이현이 한 걸음 뒤에서 따랐다. 의금부 검율의 검은 관복이 묘역의 흰 돌과 대비되었다.

봉분 앞에는 이미 누군가 와 있었다. 심수련이었다. 민무늬 회색 치마저고리에 머리에는 아무 비녀도 꽂지 않았다.

변색된 손가락 두 개가 무명 보자기 위에 얹혀 있었다. 서화연이 걸음을 멈추었다. 심수련은 등을 보인 채 묘비 앞에 꿇어앉아 입술만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뒤, 심수련이 일어나 보자기를 풀었다. 폐비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은비녀가 드러났다. 돌 위에 은빛이 가만히 가라앉았다. 심수련이 무릎을 털고 돌아서며 서화연과 눈이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인사드렸소이다.”

서화연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가늘게 나왔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남쪽. 전라도 바닷가에 작은 암자가 하나 있사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지키며 살겠소이다.”

“오늘 떠나시오.” 이현이 물었다.

“수레가 기다리옵니다.” 심수련이 옅은 호박색 눈으로 서화연을 보았다. 웃지 않는 눈이 그대로였으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낮았다. “마마께서 생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누군가의 손에 닿을 것이라고. 그 손이 되셨소이다, 서화연 낭자.”

서화연의 눈이 붉어졌다. 심수련이 그 앞에 무릎을 굽혔다. 폐비의 지밀상궁이 마지막으로 올리는 예였다.

“일어나십시오.” 서화연이 얼른 손을 내밀어 심수련의 손목을 잡았다. 변색된 손가락이 그녀의 손등에 닿았다. “당신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심수련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은비녀를 스무 해 품고서, 저는 한 번도 스스로 문을 열지 못했소이다. 문을 연 것은 낭자셨습니다.”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치마자락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내명부 시절 그대로의 걸음걸이였다. 서화연이 그 뒷모습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으나 더는 따르지 않았다. 묘역 아래 좁은 길에서 심수련의 회색 실루엣이 점점 작아져 산자락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서화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현이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바람이 잦아들자 묘역은 다시 고요해졌다. 은비녀가 돌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두 사람만 남았다.

서화연이 묘비 앞으로 걸어가 꿇어앉지 않고 서서 비석을 내려다보았다. 검지가 비석의 글자를 따라 허공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을미년 시월 초사흗날. 스무 해 전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서화연이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심수련이 남긴 폐비의 편지 원본과 삼중 청원지 대조 기록, 심리청에서 찢긴 기록지 조각들이었다. 비석 앞 돌 위에 차례대로 펼쳐 놓고, 마지막으로 '은비녀 아래 진실'이라 쓰인 보고서를 그 위에 얹었다. 손으로 바람에 날리지 않게 눌렀다.

“어머니. 모든 기록이 바로잡혔습니다.”

이현이 서화연의 왼편에 섰다. 관복 소매를 걷어 올린 손목에는 수갑 자국이 아직 선명했다. 그는 묘를 향해 깊이 허리를 굽혔다.

몸을 일으킨 뒤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화연이 그 옆얼굴을 보았다. 어두운 회색 눈이 묘비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현이 입을 열었다. “열한 살 때였소. 마마께서 내 상처를 지혈해주셨소.

폐위되신 지 한 달도 안 된 때였는데.“ 오른손 검지를 접었다 폈다. 생각이 깊어질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날 밤 나는 문을 열지 못했소.

폐비의 처소에서 비명이 들렸소.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가—“ 왼쪽 새끼손가락이 첫 마디에서 안쪽으로 살짝 휘어 있었다. 어릴 적 골절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흔적.

그 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이 scar는 그때.”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서화연이 말을 가로챘다. “검시 기록 숨은 글자에서 상처 위치와 각도, 칼날 폭이 당신 것과 일치한다는 걸 확인했어요. 심리청에서 당신이 증언할 때— 열한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현이 오래 침묵했다. 고개를 돌려 묘비를 향했다. “이제 기록이 바로잡혔으니, 나는 의금부에 남아 마저 할 일을 하겠소. 윤공이 은폐한 기록이 더 있을 것이오. 폐비 사건뿐 아니라 다른 사건들에서도.”

“검율직 그대로입니까.”

“그렇소.” 이현이 처음으로 서화연에게 몸을 완전히 돌렸다. “그대는.”

서화연은 대답 대신 묘비 앞 보고서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저는 더 이상 의금부에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으로서 검율직을 맡을 수도 없고요. 하지만 검시를 그만둘 생각은 없습니다. 의금부 밖에서, 민간 검시관으로—”

“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법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생각도 없소.” 이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서화연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대가 검시한 기록은 의금부에 증거로 남았소. 민간 검시관의 기록도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방도를 찾겠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대와 함께라면.” 이현이 말을 끊었다. 관자놀이의 흰머리 몇 올이 바람에 흩어졌다. “나는 그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소. 산대청 별감 사건 때, 그대가 대필했다는 걸. 그리고 폐비의 조카딸이라는 것도.”

서화연의 눈이 커졌다. “언제부터.”

“앞선 사건 때. 그대가 검시한 첫 사건. 필체가 완벽했지만 검시 기록의 서술 방식이 여성의 관점이라는 걸 간파했소. 이후 그대에 관한 기록을 조사하며 확신했소.”

“그런데도 나를—”

“보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형식으로. 틀린 판단이었소.” 이현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서화연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보호받고 싶지 않았어요. 진실을 함께 찾아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이현이 한 걸음 다가섰다. 어깨 너비만 한 거리였다. “함께 찾아도 되겠소.”

바람이 보고서의 모서리를 들추었다. 서화연이 손으로 눌렀고, 그 손등 위로 이현의 손이 포개졌다. 차갑고 굳은 손이었다.

손목의 수갑 자국이 소매 아래로 살짝 드러났다. 왼손 새끼손가락이 휘어 있었다. 어릴 적 폐비가 지혈해준 아이의 손.

“이현.”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사이로 서화연의 손가락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서화연.” 그도 그녀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처음으로 존대가 아닌, 그저 이름만. “살아줘서—”

말을 마치지 못했다. 이현이 서화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관복 소매가 그녀의 등을 덮었다.

이마가 그의 어깨에 닿았다. 검흔이 있는 왼쪽 늑골 위였다. 직물 너머로 옅은 체온이 전해졌다. 서화연이 눈을 감았다.

감았던 눈을 떠 이현의 품에서 물러서지 않고 얼굴을 들어 그를 보았다. “이제는 서화연으로 살겠습니다.”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검지가 그녀의 손등 위에서 가만히 멈췄다.

묘역의 향나무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묘를 향해 마지막 예를 올렸다. 이현이 허리를 굽히고, 서화연이 그 곁에서 같은 깊이로 머리 숙였다. 돌 위의 은비녀가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서화연이 허리를 펴고 은비녀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대로 돌 위에 두었다. 이제 은비녀는 폐비의 곁에 있어야 했다.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은비녀 아래 진실'이라는 여섯 글자가 마지막 햇살 속에서 또렷했다. 이현이 묘역 입구 쪽으로 먼저 걸었다.

서화연이 그 옆으로 따라붙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같은 속도로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그림자가 하나로 이어져 묘역의 흰 돌 위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은비녀 아래 진실5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