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게이트: 리셋

12화

사흘 뒤 오전 10시.

아르고 길드 본사 로비.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회색 방탄 조끼를 입은 각성자 관리청 수사관들이 두 줄로 진입했다. 가슴에는 관리청 휘장, 손에는 검은색 증거 수집 가방. 선두에 선 여성 수사관이 접수대에 압수수색 영장을 내밀었다.

“서울중앙지법 발부 영장입니다. 강민준, 박성렬, 그리고 길드장 개인 집무실이 대상입니다.”

로비에 있던 길드 직원들이 벽 쪽으로 물러섰다. 누군가 휴대폰을 들었다. 수사관 한 명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열 걸음. 로비 대기석에 앉아 있던 취재진 일곱 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접수대 위 TV 모니터에 속보가 떴다.

『아르고 길드장, 불법 인체실험 후원 혐의로 소환 — S급 각성자 강민준, 게이트 내 마나 역류로 생사 불명』

화면이 전환됐다. 박성렬의 얼굴 사진. 그 아래로 작은 글씨가 흘렀다. 12년 전 게이트 1호점 대숙청 작전 승인자, 피해 각성자 14명의 기록 조작 혐의.

로비 구석. 정도윤이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검은색 조끼, 회색 셔츠.

오른손이 바지 주머니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TV 화면 하단의 주가 그래프를 스쳤다. 아르고 길드, 전일 대비 31% 하락.

김하사가 옆으로 다가왔다. 관리청 호송복 대신 낡은 전술 재킷 차림이었다.

“강민준은 아직 게이트 안이다. 마나 소멸 단계면 구조는 글렀고.”

정도윤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쪽은 신경 안 써도 된다.”

“길드장은 오늘 아침 소환 조사 들어갔어. 개인 금고에서 나온 실험 로그가 결정타였고.”

김하사가 담배를 꺼내려다 멈췄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네놈이 꺼낸 그 로그. 길드장 금고에 있던 거 맞냐.”

정도윤이 돌아봤다.

“확인은 했지.”

“처음부터 알았나.”

“아니. 전생에서도 이건 몰랐다.”

김하사의 손가락이 멈췄다.

“전생.”

“그 얘긴 나중에.”

정도윤이 벽에서 몸을 뗐다. 접수대 너머로 수사관 한 명이 박성렬 집무실에서 나온 서류 박스를 들고 지나갔다. 상자 겉면에 증거물 봉인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한세아 쪽은 정리됐나.”

“오후 2시. 비상 이사회실. 네놈 자리도 있다.”

김하사가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방청석 맨 끝. 들어갈 때 얼굴 들이밀지 마라. 언론은 아직 널 모르지만, 관리청 쪽에서 몇 명 눈치챘다.”

정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2시.

아르고 길드 비상 이사회실.

스물일곱 좌석이 모두 차 있었다. 홀로그램 원격 참석자 다섯을 포함해 전원 참석. 방청석에는 길드 직원들 열 명이 앉아 있었다. 맨 끝 자리, 벽 쪽에 정도윤이 있었다.

한세아가 중앙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색 재킷, 흰 블라우스. 왼쪽 가슴에는 아르고의 황금빛 배지가 그대로였다. 만년필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뚜껑은 닫힌 채.

“임시 지휘권자로서 보고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강민준 길드장은 현재 관리청에 소환 조사 중이며, 게이트 나락 내부에서 구조된 선발대원 여섯 명은 마나 역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게이트는 오늘 오전 4시 12분에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잠시 정적.

“박성렬 전략국장은 게이트 1호점 대숙청 작전의 명령 승인자 및 피해 각성자 기록 조작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증거는 관리청에 제출된 원본 보고서와 생존자 증언입니다.”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방청석에서 길드 직원 한 명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한세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르고 길드는 현재 권력 공백 상태입니다. 길드장 선출 전까지 이사회의 결정으로 임시 체제를 운영해야 합니다.”

전략부 차석이 손을 들었다.

“후보를 상정합니다.”

“한세아 전략팀장.”

작전부 국장이었다.

“찬성.”

“찬성합니다.”

“찬성.”

손이 올라갔다. 열한 개. 열다섯. 스물셋. 만장일치.

한세아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오른손이 테이블 가장자리에 닿았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만년필을 집지는 않았다.

“수락합니다.”

그녀가 중앙에 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취임사는 길지 않을 겁니다.”

한세아가 방청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정도윤에게 닿았다. 반 박자. 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르고 길드는 지난 10년간 하위 각성자를 소모품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E급, D급 각성자들은 정보 부재와 불평등한 계약 속에서 희생됐고, 그들의 기록은 삭제됐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 시스템은 오늘부로 폐지합니다.”

누군가 박수를 쳤다. 방청석이었다. 박수는 곧 회의실 전체로 번졌다. 한세아가 손을 들었다. 박수가 멈췄다.

“대신, 게이트 정보의 투명한 공유를 원칙으로 삼습니다. 전략팀을 확대 개편해 하위 각성자에게도 작전 브리핑을 제공하고, 모든 등급의 각성자가 게이트 규칙을 숙지한 상태로 진입하게 할 것입니다.”

그녀가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첫 번째 결재 사항입니다. 박성렬의 교범 — 좌측 고정 진입 원칙을 공식 폐기합니다. 대체 교범은 과거 게이트 클리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3개월 내 재편성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었다.

한세아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두 번째. 강민준의 불법 인체 실험에 연루된 북부 비공인 연구소와의 모든 계약을 해지하고, 관련 문서를 관리청에 전면 공개합니다.”

전략부 차석이 손을 들었다.

“길드의 대외 이미지 타격이 우려됩니다.”

“이미 타격은 끝났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투명성입니다. 숨길수록 더 깊이 가라앉습니다.”

차석이 손을 내렸다.

한세아가 잠시 말을 멈췄다. 회의실 공기가 한 겹 가벼워졌다. 그녀가 천천히 시계를 바라봤다.

“마지막입니다.”

그녀가 방청석을 다시 바라봤다. 이번에는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다. 정도윤의 자리.

“이번 사태에서 핵심 정보를 제공한 외부 협력자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는 공식 직책을 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정도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만 변했다 — 날카롭게, 한순간.

“하지만 그 정보가 없었다면 아르고는 오늘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입회 진행관이 들어와 서류를 한세아에게 건넸다. 길드장 공식 인준서.

한세아가 만년필을 집었다. 뚜껑을 열었다 — 딸깍. 서류 아래에 서명했다. 붓 끝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서명이 끝났다.

만년필 뚜껑을 닫지 않았다.

방청석 맨 끝. 정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이 손목시계를 한 번 만졌다. G1-Λ-7. 낡은 가죽 줄이 손끝에 닿았다.

그가 회의실 문을 향해 걸었다. 발소리는 없었다.

한세아가 그 뒷모습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다음 서류를 펼치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취임식은 짧았다. 14층 강당. 간부 열두 명 앞에서 한세아가 길드 규정 제31조에 따른 임시 지휘권을 정식 길드장 직위로 전환하는 선서를 했다.

박수는 없었다. 대신 테이블을 두드리는 짧은 손가락 소리. 전쟁 중의 취임식을 아는 사람들의 동의 방식이었다.

정도윤은 맨 뒷줄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가려는 그를 전략부 차석이 불러 세웠다.

“길드장님께서 면담을 요청하십니다.”

개인 집무실은 이사회실 바로 옆이었다. 전임 길드장이 쓰던 방. 책장에는 아직 강민준의 개인 훈련 기록 바인더가 꽂혀 있었다.

한세아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테일러드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친 차림이었다. 어깨선이 직선으로 굳어 있었다.

“앉지.”

정도윤은 앉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전략 자문관 자리다. 길드 직속.”

책상 위에는 한 장짜리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연봉과 직위는 비워져 있었다. 한세아가 만년필을 들었다. 뚜껑을 분리했다. 그대로 멈췄다.

“네 정보 능력은 증명됐다. 등급과 무관하게.”

“압니다.”

“아르고는 지금 개혁이 필요하다. 강민준과 박성렬이 썩인 구조를 갈아엎어야 한다. 너는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서울 시내가 보였다. 나락 게이트가 닫힌 지 열네 시간이 지났다. 방송국 헬기가 먼 상공을 떠 있었다.

“내가 합류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말을 끊었다.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손목시계를 만졌다가 멈췄다. 시계는 이미 증거물로 넘겼다. 빈 손목이었다.

“말해.”

“1호점 대숙청에서 사망 처리된 E급 각성자는 열네 명이었습니다.”

한세아의 눈이 좁아졌다.

“그중 셋은 보고서에서 삭제됐습니다. KR-E-2239, 2240, 2241. 나중엔 실험 피험자로 넘어갔죠. 나머지는 람다 구역에서 전멸했습니다. 교범대로 좌측 고정 진입을 따랐기 때문에.”

한세아의 손이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뚜껑은 결합되지 않았다.

“너는 살아남았다.”

“E급이라서요. 마나가 약해서 게이트 규칙의 역제압 임계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정보가 없으면 E급은 무조건 먼저 죽는다. 몇 분 후에 벽 색이 바뀐다는 걸 알기만 했어도. 열네 명 중 여덟은 살 수 있었다.”

침묵. 모니터 전원이 저절로 절전 모드로 전환되며 화면이 검게 변했다.

“자문관 자리는 안전합니다. 길드의 보호를 받는다.”

“그 보호가 정보를 통제하는 구조 아닙니까.”

한세아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손끝이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쌓아온 걸 하위 각성자 커뮤니티에 공개할 생각이다. 규칙, 전조 증상, 변이 패턴. 길드가 독점하는 걸 바깥으로 푼다.”

“그건——”

“네 결국 이 길드가 아니라 바깥의 E급을 택하겠다는 거군.”

“길드 안에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르고의 규정과 충돌한다.”

정도윤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허리까지 굽히지는 않았다. 짧은 목례였다.

“취임 축하드립니다, 길드장님.”

한세아가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천천히 뚜껑을 결합했다. 찰칵.

“문은 열어둔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계약서를 접어 서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가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집무실이 조용해졌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울 외곽.

추모 공원은 언덕 위에 있었다. 12년 전 게이트 1호점이 열렸던 자리에서 동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곳. 관리청이 조성한 공식 시설이 아니라 유족들이 직접 돌을 쌓고 이름을 새겼다. 중앙의 검은 화강암 비석에는 사망자 열네 명의 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대숙청 희생자에게 길드는 실명을 돌려주지 않았다.

정도윤이 비석 앞에 멈춰 섰다. 아침 안개가 무릎 높이로 깔려 있었다. 그 옆에 김하사가 섰다.

전술 재킷 대신 낡은 야상 점퍼 차림이었다. 허리에는 더 이상 열쇠와 USB가 달린 카라비너가 없었다. 증거물과 조사 서류는 어젯밤 모두 관리청에 인계했다.

“철야하고 왔나. 눈 밑이 시커멓네.”

김하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정도윤은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작은 USB 하나를 꺼냈다. 암호화 모듈이 내장된 군용 등급. 김하사가 나흘 전 안전가옥에서 건넨 것이었다.

“그거 포맷했나.”

“내용은 채웠다.”

“전부?”

“게이트 1호점 람다 구역에서 관측한 벽면 문양 변화 패턴. 잠식된 회랑 변이 전조 4분 17초 규칙. 나락의 고출력 역제압 메커니즘. 미궁형 게이트 마나 순환계 구조. 과거 데이터로 검증 완료된 것만.”

김하사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길드 하나 통째로 털 정보네.”

“E급이 이걸 알았으면 죽지 않았을 각성자가 얼마인지 세어 봤다.”

“몇이야.”

“최근 3년간 공개된 기록만으로도 스물둘이다. 은폐된 것까지 합치면 더 많다.”

김하사가 입을 다물었다. 안개 너머로 서울 시내 고층 빌딩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전광판 하나가 막 점등하고 있었다.

아르고의 새 로고. 노란색 방패 안에 세 개의 직선. 개혁의 상징이라고 어젯밤 뉴스가 보도했다.

정도윤이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만졌다. 빈 피부. 시계는 이미 추모비 앞에 올려져 있었다. 증거물 인계 전 날 밤, 김하사가 마지막으로 한 번 만져도 좋다고 했을 때 그가 직접 내려놓은 자리였다.

비석 하단. G1-Λ-7 코드와 같은 높이에 낡은 아날로그 시계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유리판에 아침 햇살이 반사되었다.

“선배들한테 돌려준 셈 치자.”

김하사가 비석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턱 근육이 움직였다. 말은 없었다.

“은퇴 서류는 냈나.”

“어제. 관리청에서 마지막 증언 조서에 서명하면서 같이. 22년 복무로 처리된다. 불명예 제대 기록은 박성렬 사건 조사 결과 나오면 자동으로 말소된대.”

“연금은.”

“최하 등급이지만 굶진 않겠더라.”

정도윤이 USB를 천천히 손바닥 위에서 굴렸다. 금속 케이스가 차가웠다.

“이걸 익명 포럼에 배포한다. 하위 각성자들이 주로 보는 커뮤니티가 있다. 관리청 감시가 닿지 않는 사설 서버. 일주일 안에 번역돼서 국내외로 퍼질 거다.”

김하사가 코웃음을 쳤다. “길드에서 평생 독점하던 걸 그냥 뿌린다고?”

“정보는 퍼뜨리는 쪽이 더 오래 산다. 그걸 12년 동안 아무도 안 했을 뿐이다.”

김하사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물었다. 연기는 내뿜지 않았다. 추모 공원 안이었다.

“너 앞으로 뭐 할 건데.”

“데이터 수집을 계속한다. 신규 게이트 정보는 갱신해야 하니까.”

“깡으로 혼자? E급 주제에.”

“조사는 현장에 안 들어가도 할 수 있다.”

김하사가 한참 그를 바라봤다. 탁한 눈이 가늘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망하면 연락해라. 도망치는 루트 정도는 만들어 줄 테니까.”

“당신 은퇴했잖아.”

“은퇴가 연줄까지 없애는 건 아니지.”

정도윤이 USB를 주머니에 넣었다. 비석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시계의 초침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유리 아래로 희미한 기계 소리가 났다. 12년 전 멈추지 않았던 바늘처럼.

그가 등을 돌렸다. 발걸음이 언덕 아래로 향했다. 서울 시내 전광판에서 아르고의 새 로고가 완전히 떠올랐다.

김하사가 입을 열었다. “그 포럼 주소는 나도 아는 데냐.”

“일주일 뒤에 알게 된다.”

김하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자담배를 접어 주머니에 밀어 넣고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정도윤의 오른손이 빈 손목에 닿았다가 주머니 속 USB로 내려갔다. 길드는 등 뒤로 멀어지고 있었다. 도시의 아침 소음이 언덕까지 밀려왔다.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게이트: 리셋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