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시간 사이
5화
서점 문 앞에 김영선이 도착한 건 오전 열 시가 막 지나서였다.
어제와 같은 베이지 트렌치코트에, 손에는 두꺼운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유정은이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긁혔다.
“어서 오세요.”
이서연은 카운터를 돌아나오며 안경을 살짝 올렸다. 손끝이 차가웠다.
“아침 일찍 실사 나오신다고 하셨는데, 혼자세요?”
“실사팀은 잠시 후에 옵니다. 그전에 이걸 먼저 전해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김영선이 서류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두꺼운 공문서가 들어 있었다. 첫 장 상단에 ‘등록문화재 등록 예정 통지서’라는 제목이 찍혀 있었다. 1960년대 초기 상가주택 건축 원형 보존, 지역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 문화공간이라는 문구가 줄줄이 이어졌다.
“심사 통과하셨습니다. 현장 실사는 형식적인 확인 절차예요. 사실상 확정입니다.”
이서연의 손이 종이를 움켜쥐었다. 살짝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정은이 옆에서 들여다보다가 숨을 들이켰다.
“……진짜로.”
“연계 금융 지원도 가능합니다. 문화재 등록이 되면 지자체에서 상속세 체납분을 저리로 전환해주는 대출 상품이 있어요. 조건만 맞으면 경매 절차도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김영선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분명했다.
“통지서 하단에 관련 기관 연락처가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연락해보시죠.”
유정은이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검지 옆으로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언니, 우리—”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가 들썩였다.
이서연은 공문서를 내려다보았다. 외삼촌의 메모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1960년대 시 낭독회 사진 속 문인들, 외삼촌이 직접 분류해둔 원고 뭉치. 그 모든 게 이 종이 한 장으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평소보다 한 톤 낮은 목소리였다.
“서점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사라지지 않게.”
김영선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서점 전화가 울렸다.
이서연과 유정은이 동시에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김영선이 한 걸음 물러서며 손짓했다.
“받으세요.”
이서연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종이와 시간 사이입니다.”
— 지성은행 대출심사과입니다. 이서연 씨 맞으십니까.
“……예.”
— 어제 접수된 내부 감사 결과를 안내드립니다. 귀 서점에 대한 부정적 경영 정보는 제3자, 부동산 관리인 최명호가 허위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이어졌다.
— 은행 규정에 따라 해당 정보는 담보 평가에서 전면 배제되었습니다. 별도로 경매 진행을 보류하는 공문을 오늘 중 발송할 예정입니다.
이서연은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살짝 감싸듯 쥐었다.
“그럼 경매 절차가……”
— 중단됩니다. 추후 전환 대출 심사는 정상적으로 가능합니다. 유정은 씨께서 제출하신 녹취 파일과 문자 기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이서연이 전화기를 내려놓자 유정은이 다가섰다.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래? 뭐래?”
“최명호가 흘린 자료가 전부 가짜로 판명됐대. 경매 보류 공문 오늘 나온대.”
“……미쳤다.”
유정은이 주먹을 쥐고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눈가에 물기가 번졌지만 웃고 있었다.
“내가 녹음한 거, 그 녹취 파일—— 진짜로 통한 거야!”
“통했어.”
이서연이 잠시 유정은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유정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김영선이 조용히 통지서를 가리켰다.
“이제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겁니다. 문화재 등록 절차와 전환 대출 심사. 어느 한쪽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두 쪽이 동시에 확보됐네요.”
이서연이 서류를 접어 봉투에 넣으려던 동작을 멈추었다. 창밖으로 누군가 성큼성큼 건너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게 무슨—— 문화재라고?”
최명호였다.
평소의 능글맞은 미소는 사라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서연 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나 몰래 문화재단에다—— 나는 들어본 적 없는데요, 이런 건 임대인 동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유정은이 앞으로 나섰다.
“임대인 동의는 문화재 등록 요건이 아닙니다. 건축물 소유자 동의만 있으면 됩니다.”
“뭐요?”
“찾아보고 말씀하시죠.”
최명호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려다 손을 빼지 못했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짙은 남색 정장 차림의 남성 두 명이 들어섰다. 가슴에는 지성은행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뒤쪽에 선 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명호 씨 맞으십니까.”
“……누굽니까.”
“지성은행 내부 감사팀입니다. 어제 오후 접수된 사안으로 조사차 왔습니다.”
최명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내가 무슨……”
“은행 내부에 허위 경영 정보를 유포하고, 감정 절차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혐의입니다. 녹취 파일과 문자 기록이 확보돼 있습니다.”
김영선이 조용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시선을 고정했다.
“저는 지역문화재단 김영선입니다. 이분이 저에게 보낸 음성 메시지도 보관 중입니다. 문화재 등록 예정 공간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로 추가 고발도 가능합니다.”
최명호가 한 걸음 물러섰다. 등이 책장에 부딪혀 시집 한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건…… 이건 다 오해야. 내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고——”
“아까는 확실하게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유정은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이서연 씨와는 협의도 없었다면서요. 그리고 ‘은행에 부정적 자료를 보내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요.”
유정은이 에코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녹음 파일 목록을 보여주었다. 날짜와 시간이 찍힌 파일이 여러 개였다.
“전부 녹음했습니다.”
최명호의 시선이 화면에 멈췄다.
감사팀 직원이 한 걸음 다가섰다.
“같이 가시죠. 사무실에서 확인할 자료가 많습니다.”
“……잠깐만.”
최명호가 이서연을 돌아보았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이서연 씨, 우리 그동안——”
“가시죠.”
이서연은 짧게 잘랐다. 그 말 한마디에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았다.
감사팀이 최명호를 데리고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벨이 마지막으로 짧게 한 번 울렸다.
서점 안이 조용해졌다.
유정은이 천천히 주저앉았다. 바닥에 닿은 무릎이 작게 소리를 냈다.
“……끝난 거지?”
“끝난 것 같아.”
이서연도 카운터 앞에 쪼그려 앉았다. 통지서를 든 손이 무릎 위에 얹혔다.
유정은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울먹였다.
“정말…… 정말 다행이다, 언니.”
이서연이 유정은의 어깨를 잠시 감쌌다. 옷감 너머로 체온이 전해졌다.
“네가 기획한 이벤트가 여기까지 왔어. 네 아이디어가 이걸 살린 거야.”
유정은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콧등도 빨갰다.
“내 아이디어가요?”
“응.”
유정은이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울음 반 웃음 반이었다.
김영선이 조용히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실사팀 도착할 시간입니다. 밖에서 기다릴게요.”
문이 가볍게 닫혔다.
서점 안에는 이서연과 유정은만 남았다. 책장 사이로 오전 햇살이 길게 뻗어 들어왔다. 바닥에 떨어진 시집 한 권이 빛을 받아 표지가 반짝였다.
유정은이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 진짜 오늘…… 평생 안 잊을 것 같아.”
“나도.”
이서연은 통지서를 들어 올렸다. 창밖 햇살이 종이를 관통해 글씨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 종이를 접어 가슴 가까이 안았다. 손끝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한여름 오후의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초가을이었다. 서점 유리문을 밀고 나서자, 오전 내내 책장 사이에 갇혀 있던 몸으로 바깥공기를 처음 들이켰다.
이미 작업실 창가로는 해가 기울기 시작해 책상 위 편지 상자 한쪽 귀퉁이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서점 밖이 잠잠해진 지 십여 분쯤 지났다. 유리창 너머로 김영선이 감사팀과 함께 골목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보였고, 유정은이 “나 커피 사올게, 진짜 오래 걸릴 거야”라며 느낌표 섞인 목소리로 문을 닫고 나갔다.
강지오는 작업실 문간에 서서 이서연을 바라봤다. 탁자 위에는 외삼촌의 편지 상자와 원고 묶음이 쌓여 있었고, 이서연은 의자에 앉은 채 안경 너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앉아도 돼.”
그 말에 강지오는 반대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두꺼운 서류 봉투가 아니라 얇은 마분지 조각이었다. 가장자리가 닳은 수제 책갈피였다. 그는 그것을 탁자 중앙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이서연의 시선이 빛바랜 꽃잎 무늬에 멎었다. 숨을 한 번 짧게 들이쉬었다.
“열 살 전에 뭘 만들었더라.”
강지오의 목소리는 반말이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기억 안 나는 것도 많은데, 이건 선명하게 남더라.”
이서연이 손을 내밀었다 멈칫했다. 닳은 모서리 위로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떠 있었다.
“생일 선물로 만들었어.”
강지오의 오른손이 허공에 짧게 멎었다가 내려앉았다. 생각을 글로 옮기던 습관이 무의식중에 나온 것이다.
“열일곱 살 때, 너한테 주려고. 그런데 못 줬다.”
이서연이 그제야 책갈피를 집어 들고 뒷면을 뒤집었다. 작은 글씨로 ‘이서연’이라는 이름과 함께 10년 전 오늘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검지가 이니셜을 조용히 더듬었다.
“이걸 10년 동안 가지고 계셨어요.”
확인하는 어조는 아니었다. 강지오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서랍에서 여섯 번은 꺼내 봤다. 매번 다시 넣었고.”
이서연이 책갈피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안경 아래로 눈가가 붉어졌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또렷했다.
“저는 편지를 받은 적이 없어요. 그 편지가 원래 누구한테 가는 건지도…… 지금은 확실히 알아요.”
강지오가 고개를 들었다. 이서연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외삼촌이 전해주지 않으셨다는 것도 알게 됐고, 몇 달 전에야. 선생님께서 저 때문에 10년을 억울하게 사셨다는 것도.”
작업실의 공기가 한 겹 가라앉았다. 강지오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서연은 뒷말을 삼키지 않았다.
“제가 바보였어요. 의심도 못 하고, 묻지도 못 했다는 게…… 지금도 화가 나요. 아직 정리가 안 돼서.”
끝이 살짝 떨렸다.
강지오가 천천히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살짝 밀렸다. 그가 손을 내밀자 이서연은 쥐고 있던 책갈피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네 탓이 아니야.”
짧고 무뚝뚝한 한마디에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이서연이 그를 올려다보자, 강지오는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미간에 생긴 얕은 주름이 펴졌다.
“오래 걸렸다. 이제야 말해서.”
그가 한 걸음 다가가려 하자, 이서연이 먼저 일어났다. 두 사람 사이로 탁자 모서리 하나만 남았다. 이서연이 책갈피를 집어 강지오 앞에 내밀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받겠다고 해야 받는 거래요. 맞죠.”
강지오가 멈칫하자 이서연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올라갔다.
“저 받겠습니다.”
강지오가 10년 만에 책갈피를 건넸다. 이서연이 그것을 감싸 쥐는 순간까지 그의 손끝은 건네는 쪽에 머물러 있었다. 닿을 듯 말 듯 한 온도가 포개어지고, 강지오가 팔을 벌리기 전에 이서연이 먼저 그의 어깨 너머로 손을 올렸다.
작업실 유리창으로 오후 두 시의 빛이 들어와 책장 위 먼지를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다. 강지오의 손바닥이 이서연의 등에 닿으며 가만히 멈췄다.
“이번에 안 놓칠 거야.”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낮은 음성이 이서연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이서연은 대답 대신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 이서연이 먼저 물러났다. 안경을 검지로 올리며 작게 심호흡했다.
“이제 서점 얘기해요.”
이서연이 작업실 문을 열고 서점 안쪽으로 나왔다. 강지오는 책장의 빈 공간을 훑으며 뒤를 따랐다.
“감정인 자리에서는 손 뗐어. 규정상 더 관여할 수 없고.”
그가 카운터 앞에 멈춰 서서 말을 이었다.
“대신 문화재단에서 제안이 왔어. 등록 절차 자문을 은행 쪽에 요청했더라. 그쪽 연계 사업은 내 자격으로도 접근이 가능하고.”
이서연은 잠시 말없이 서점 전체를 둘러보았다. 외삼촌이 남긴 원고와 사진이 놓인 탁자, 문화재단에 보낼 자료를 정리하던 노트북, 벽면을 가득 채운 헌책들.
“저는 이 공간을 그냥 서점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고요.”
강지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역 문인들이 모이던 곳이잖아요. 작은 낭독회도 하고, 헌책 전시도 하고. 외삼촌이 기록해둔 그대로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거예요.”
그때 서점 문이 열리고 유정은이 커피 트레이를 든 채 버벅거리며 들어왔다.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언니, 복합문화공간이라니, 방금 들었어!”
강지오가 트레이를 받아 탁자에 내려놓는 사이, 유정은은 에코백에서 태블릿을 꺼내며 말을 쏟아냈다.
“리모델링 계획 이미 짜뒀어, 나. 괜찮지? 낭독 무대 위치까지 정해놨어.”
이서연이 피식 웃었다.
“정말 못 말리는구나.”
하지만 책갈피를 쥔 손은 여전히 가슴께에 있었다.
저녁 무렵, 유정은이 태블릿에 띄운 리모델링 계획을 두 사람 앞에 놓고 나갔다. 강지오와 이서연은 나란히 서서 서점의 아침 햇살이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시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서연이 손에 쥔 책갈피를 들어 올렸다.
“이번엔 내가 선택한 거야.”
강지오가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감싸 쥐었다. 그의 입가에 처음으로 긴장이 풀린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