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검독(梅花劍毒)
5화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별관의 경계는 얇아졌다.
강유신은 회랑 기둥 뒤에서 숨을 죽였다. 남궁세가 별관의 무사들은 교대 시간 무렵이면 긴장이 풀렸다. 동쪽 감시탑의 횃불이 한 번 깜빡였다. 교대 신호였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은 검자루에 닿지 않았다. 대신 왼손으로 품속의 작은 청동 병을 꺼냈다. 당소란에게서 받은 부패 촉진 독의 흔적을 농축한 것이다. 병마개를 열자 썩은 풀 냄새가 번졌다.
먼저 서고를 향했다. 복도 끝의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에는 문서 더미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위조 서찰 한 통을 꺼내 가장 오래된 문서 사이에 끼워 넣었다.
서찰의 내용은 단순했다. 곽문주께: 별관의 독기 처리 비용이 과도합니다. 차후 거래에서는 당문 방계가 아닌 직계를 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궁세가 가주의 도장 비슷하게 위조한 각인도 찍혀 있었다.
강유신은 청동 병의 독기를 서고 바닥에 조금 흘렸다. 짙은 초록빛 연기가 종이 더미 속으로 스며들었다. 불을 붙이지 않아도 서고 전체가 서서히 부패하는 냄새로 가득 찰 것이다. 남궁세가의 무인이라면 이 냄새를 곽영주가 보낸 독공의 흔적으로 받아들일 터였다.
창문 너머로 발소리가 들렸다. 순찰이었다. 강유신은 서고를 빠져나와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 구금실의 입구는 부엌 뒤편에 숨겨져 있었다. 부엌 바닥의 합판을 들어 올리자 돌계단이 드러났다. 공기가 차갑고 눅눅했다.
계단을 열 걸음쯤 내려갔을 때 위층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서고에 독기가!”
“당문 놈들이 침투했다!”
발소리가 급해졌다. 강유신은 멈추지 않았다. 통로 끝 철창 사이로 희미한 등불이 새어나왔다. 철창 앞에는 자객복 차림의 무사 두 명이 서 있었다.
“서고 쪽이 위험하다는데 우리만 여기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한 명이 불안한 듯 말했다. 다른 한 명이 고개를 저었다.
“곽 장문인의 지시다. 저 여자는 절대 놓치지 말라고……”
말을 마치지 못했다.
강유신의 검이 어둠 속에서 한 번 뻗어나갔다. 첫 번째 무사의 목을 스치자 두 번째 무사가 검을 뽑으며 돌아섰다. 강유신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왼손으로 무사의 손목을 비틀어 검을 떨어뜨린 뒤, 검자루로 관자놀이를 내리쳤다. 신음도 없이 두 사람이 쓰러졌다.
철창 안쪽,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던 당소란이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창백했고 손목에는 철사가 감겨 있었다. 신경독의 여파로 손끝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늦었네.”
당소란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길이 좀 막혀서.”
강유신은 철창의 자물쇠를 검끝으로 비틀어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 당소란의 손목을 감은 철사를 끊었다. 그녀의 손이 풀리자마자 주저앉으려는 것을 팔로 받쳐 세웠다.
“걸을 수 있나.”
“조금.”
당소란은 강유신의 어깨를 짚고 일어섰다. 몸이 기울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위층에서 사이렌 같은 나팔 소리가 울렸다. 이제 별관 전체가 깨어날 것이다.
계단을 오르려던 당소란이 갑자기 멈췄다.
“잠깐.”
그녀가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지만 놓치지 않으려는 듯 천천히 무언가를 꺼냈다. 작고 접힌 비단 조각이었다.
“어머니 유품 속에서 이걸 따로 찾았어. 비급과는 다른 글이야.”
비단을 펼치자 열두 글자의 짧은 시구가 드러났다.
매화 떨어진 자리, 검은 피가 핀다. 뿌리는 아래로, 꽃은 위로.
강유신의 눈이 가늘어졌다. 글자 하나하나를 읽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
매화검법의 마지막 세 초식 중 하나, ‘낙매’의 구결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낙매는 검을 거꾸로 쥐고 떨어지는 꽃잎을 베는 초식이다. 피가 아래로 흐르고 검이 위로 솟는 구조였다. 시구의 ‘뿌리는 아래로, 꽃은 위로’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게 왜 여기……”
“어머니가 매화검법을 알았던 걸까. 아니면.”
당소란의 말이 끊겼다.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강유신은 비단을 접어 당소란의 손에 다시 쥐여주었다.
“나중에.”
그들이 부엌을 빠져나왔을 때 별관의 마당은 혼란 그 자체였다. 무사들이 서고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고, 어떤 이는 독기에 오염된 문서를 꺼내며 기침을 했다. 강유신은 그 틈을 타 당소란을 이끌고 회랑의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별관 뒤편, 쓰지 않는 마구간을 지나 담장 아래에 이르렀을 때 당소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묻고 싶은 게 있어.”
숨을 고르며 강유신을 돌아보았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네 기억 속 비급 페이지에 해독제 처방이 있었다고 했지.”
“그래.”
“말해 봐.”
강유신은 잠시 멈췄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 불에 탄 은거처, 마지막으로 본 비급의 뒷면. 거기 적혀 있던 약재의 이름들.
“오미자, 천마, 당귀…… 그리고 인삼 대신 무엇인가가 들어 있었다. 당문의 약재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독을 중화하는 성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소란의 손가락이 떨렸다. 독의 후유증이 아니라 무언가를 깨달은 반응이었다.
“사독초.”
“……뭐.”
“당문에서만 쓰는 약재야. 독을 풀지 않고 다른 독과 엮어서 몸 밖으로 배출하는 방식이지. 인삼처럼 기를 보충하는 게 아니라, 독이 독을 밀어내게 만드는 거야.”
당소란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흥분을 숨기지 못한 말투였다.
“네가 말한 처방과 내가 아는 사독초의 조합은, 독기를 없애는 게 아니라 길을 바꾸는 거야. 단전으로 가던 독기를 검 끝으로 뽑아내는 구조지. 매화검독을 쓰고도 죽지 않을 방법이야.”
강유신은 말없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팔뚝까지 번졌던 검은 실핏줄이 아직 남아 있었다.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저림은 있지만, 이전처럼 통제를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해 볼 만하네.”
당소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담장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남궁세가의 추격대였다.
“가야 해.”
강유신은 당소란의 팔을 다시 잡았다.
별관의 담을 넘자 귀곡으로 이어지는 숲길이 어둠 속에 펼쳐졌다. 뒤에서 횃불이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발걸음은 이미 나무들 사이로 사라진 뒤였다.
걸음을 옮기며 당소란이 낮게 말했다.
“사독초는 귀곡에서 구할 수 있어. 내일 밤까지면 만들 수 있다.”
강유신은 대답 대신 당소란의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오른손의 저림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길이었다.
진시의 해가 비무대 중앙을 덮었다. 돌바닥에 깔린 검은 그림자가 짧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곽영주가 백색 도포 자락을 매만지며 입구를 바라보았다. 청성파 문도들이 좌우로 정렬한 가운데, 구파일방 대표단이 비무대 객석에 자리잡았다. 화산파의 노장이 검을 가슴에 안고 앉았고, 점창파의 중년 무인이 부채를 접었다. 남궁세가 대표는 최상석에서 차를 홀짝였다.
“오늘 비무대회는 청성파와 구파일방의 오랜 우의를 기리는 자리입니다.”
곽영주의 목소리가 온화하게 퍼졌다.
“많이들 오셨습니다. 이 연례 대회는 젊은 문도들이 서로의 검을 배우고, 정파 무림의——”
말이 끊겼다. 비무대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였다. 느리고 균일한 보폭으로 석계단을 밟아 올라왔다.
청성파 문도 두엇이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사내가 멈춰 섰다. 낡은 낭인복 차림이었다. 얼굴 절반은 헝겊으로 가려져 있었고, 왼손에는 청성파 제자 패가 들려 있었다. 오른손은 허리의 검을 쥐지도 않았다.
“초청장은.”
문지기 문도가 앞을 막았다. 검은 낭인복의 사내는 대답 없이 헝겊을 풀었다.
얼굴이 드러났다. 왼쪽 눈 밑 칼자국. 짙은 갈색 눈동자가 곽영주를 겨누었다.
객석 곳곳에서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청성파 장로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유신……! 파문당한 자가 어찌——”
“증거를 가져왔다.”
강유신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품에서 접힌 문서를 꺼내 비무대 중앙에 던졌다. 종이가 돌바닥에 미끄러지며 펼쳐졌다. 남궁세가의 인장이 찍힌 밀약서였다.
곽영주의 얼굴에서 온화함이 걷혔다.
침묵이 비무대를 덮었다. 강유신이 검을 뽑았다. 칼집을 떠난 칼날 가장자리에 검은 실핏줄 같은 독기가 흘렀다. 내공 대신 독기로 벼린 매화검독의 기운이 아침 햇살 아래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받아라, 사형.”
곽영주는 잠시 강유신을 바라보았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검을 뽑았다. 청성파 장문인의 검이었다. 푸른 검날이 빛을 반사했다.
“네가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곽영주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그 상처로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강유신이 한 걸음 내디뎠다. 시작이었다.
곽영주가 먼저 움직였다. 매화검법 초식 다섯 번째, 낙매였다. 검끝이 허공에 매화 다섯 송이를 그리고 아래로 쏟아졌다.
강유신은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검을 옆으로 비껴 들었다. 매화검법에는 없는 자세였다. 독기가 칼날을 타고 올라 검 끝에서 한 송이 검은 매화 형상으로 피어났다.
낙매의 셋째 송이가 독기에 닿았다. 푸른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곽영주의 오른손이었다. 검을 쥔 손이, 상처 자국 위에서 경련하듯 수축했다.
강유신이 그 틈을 찔렀다. 평자루가 아닌, 검날을 옆으로 눕혀 곽영주의 팔꿈치 안쪽을 베었다. 천을 뚫지 않고 살갗만 긁었다. 독기가 상처로 스며들었다.
곽영주가 뒷걸음질쳤다. 그가 오른손 검상 자국에 왼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희게 변할 정도로 눌렀다. 검지가 낡은 흉터 가장자리를 알 수 없는 리듬으로 문질렀다.
참관석의 화산파 노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곽영주가 다시 검을 들었다. 여덟째 초식 만매였다. 허공을 수놓는 수십 송이 매화. 청성파 장로들이 무대 밖에서 칭찬을 삼켰다.
허나 그 수십 송이 중 한 송이만 비틀렸다. 오른손의 떨림 탓이었다. 강유신은 그 한 송이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독기로 벼린 매화 한 점이 곽영주의 매화 사이를 지나 그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도포가 찢어졌다. 그 아래서 검은 혈관이 드러났다. 전신에 퍼진 독공 부작용의 흔적이었다. 목에서 얼굴로 기어오르는 검은 줄기가 구파일방 대표들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곽영주가 비틀거렸다.
강유신이 검을 거두었다. 곽영주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팔뚝을 독기가 감쌌다. 매화검독이 무력화시킨 상지였다.
“무슨…….”
곽영주가 무릎을 꿇었다. 떨리는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었으나 팔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검상 자국은 아직도 손가락이 닿지 못해 떨고 있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청성파 장로 하나가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설명하시오. 저 문서는 무엇이며, 장문인의 몸 상태는——”
강유신은 검을 칼집에 꽂았다. 바닥에 떨어진 밀약서를 집어 들고 곽영주 앞에 섰다.
“이건 네가 남궁세가에 보낸 서찰의 답신이다. 거래 대금은 청성파 비전 세 초식과 독 해독법. 받은 편지에 ‘귀중한 증표로 삼을 것’이라 적혀 있다.” 문서를 넘겼다. “그리고 이건 네가 빼돌린 비전 무공 목록. 오독문 잔당을 풀어 당문의 방계를 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곽영주가 고개를 들었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엔 두려움이 박혀 있었다.
“너희가 독공 경지에 닿은 비급을 내게 흘렸고, 나는 그걸 익혔다. 매화검독의 시작은 네가 만든 셈이다.”
강유신이 한 걸음 물러섰다. 곽영주의 검은 혈관이 목을 넘어 턱까지 번지고 있었다.
“네 몸이 증거다.”
비무대 뒤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철위령이었다. 손에 든 문서 꾸러미를 청성파 태상장문에게 건넸다.
“이것이 철혈문 멸문의 전모입니다. 남궁세가가 사주한 학살 명령서와 주문서입니다.”
태상장문이 문서를 읽었다. 이마의 주름이 깊어졌다. 구파일방 대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궁세가 대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비무대를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게 올렸다.
태상장문이 검을 뽑아 땅에 꽂았다.
“곽영주. 파문이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단호했다.
“단전을 파하고 지하 감금실에 가둔다. 영구히.”
곽영주가 남은 왼손으로 돌바닥을 짚었다. 손톱이 깨졌다. 그의 목구멍에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런 얼굴로 강유신을 올려다보았다.
“네가…… 네가 감히……”
온화했던 말투는 흔적도 없었다. 떨리는 반말이 무대 위로 번졌다.
“……내 앞에 설 자격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느냐.”
“자격이 아니라 결과다.”
강유신은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저녁 바람이 청성파 외곽의 언덕을 쓸었다.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눕고, 달빛이 언덕 정상의 돌무더기를 비추었다. 비무대의 당소란은 저 아래에서 정리되고 있었다.
당소란이 강유신의 오른손을 들어 손등을 살폈다. 부었던 마디는 가라앉았지만 검은 핏줄은 사라지지 않았다.
“팔은.”
“감각이 조금 죽었다.”
“돌아올 겁니다. 해독 처방대로 조제를 계속하면 독은 무공의 일부가 돼요.”
강유신은 아무 말 없이 품에서 청성파 제자 패를 꺼냈다. 나무 패에 새겨진 소나무 문양이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그걸 땅에 내려놓았다.
돌 위에 놓인 패가 바람에 살짝 기울었다.
당소란이 바라보았다. 그녀도 제 옷깃 안쪽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머니의 시구였다. 독은 맥을 타고 기를 멈춘다. 기가 멈춘 곳에 꽃이 핀다. 그 아랫부분에 이어지는 구절을 강유신이 채워주었던 종이였다.
당소란은 종이를 반듯하게 접었다. 네 번 접어 손바닥만 하게 만든 뒤, 품 안쪽 가장 깊은 곳에 넣었다. 손을 천천히 떼며 말했다.
“죽이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강유신은 잠시 언덕 아래의 그림자들을 내려다보았다. 감금실로 이송되는 등불 몇 개가 비무대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죽음이라면 복수가 아니었다.”
“그럼.”
“폐인이 되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사는 것. 그게 더 무겁다.”
바람 한 줄기가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당소란은 강유신의 옆모습을 보았다. 눈 밑 칼자국이 달빛 아래 짙게 드리워 있었다. 그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도, 복수의 만족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일인 듯 고요했다.
“당문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당소란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당문도, 청성파도 아닌 곳. 내 독문을 세울 겁니다.”
강유신이 고개를 돌렸다.
“그 독문에 네 검이 필요해요.”
강유신은 말없이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달빛 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돌 위로 가늘게 겹쳐졌다. 한참 만에 그가 턱을 한 번 끄덕였다.
당소란은 더 묻지 않았다. 그가 돌아서자 따라 걸었다.
언덕 아래 길은 북쪽으로 이어졌다. 변방을 향하는 어둑한 비탈길에는 인적이 없었다. 강유신이 검집을 허리에 고쳐 찼다. 당소란은 비취 비녀를 다시 꽂으며 그의 발걸음에 맞췄다.
두 발자국, 다섯 발자국. 소나무 숲이 등 뒤로 밀려났다.
돌 위에 놓인 청성파 제자 패는 바람에 굴러 풀숲으로 떨어졌다. 종이 한 장이 달빛을 스치며 접힌 채 당소란의 품 안에서 스쳤다.
복수는 끝났다. 무학의 길은 지금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