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별에 새겨진 공녀, 얼음 공작의 손을 잡다

12화

아직도 막사 밖에서 횃불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에레디아는 그 소리를 등 뒤에 둔 채 손가락을 폈다. 검은 반지가 촛불을 받았다. 칼릭스가 그녀의 손을 보았다.

“놓지 마.”

“놓지 않습니다.”

그가 천막 끈을 단단히 당겨 묶었다. 에드릭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테온이 병력 배치도 모서리를 곧게 폈다. 탁자 위에는 반격 증거 사본 묶음이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잘못 벌어진 진술 순서와 새로 고친 흐름이 적힌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칼릭스는 병력 배치도를 반으로 접어 허리띠 안에 넣었다. 에레디아가 탁자 옆으로 한 발 옮겼다. 그녀의 손끝이 사본 묶음의 첫 장을 짚었다.

“에드릭 전하가 기소문을 들고 왔다는 건, 내일 아침 공개 재판장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이미 열려 있다.”

칼릭스가 지휘 막사 뒤편의 포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별도 재판장을 세웠다. 아침이 아니라 지금 저들이 모이고 있다.”

에레디아는 탁자 가장자리를 감싸 쥔 손을 내렸다. 그녀의 왼쪽 눈밑이 따끔거렸다. 손등으로 문지르지 않았다. 대신 등을 곧게 폈다.

“그렇다면 저도 지금 갑니다.”

“먼저 갈 이유가 없다.”

칼릭스가 막사 입구 쪽으로 걸으며 덧붙였다.

“네가 가는 순간, 그쪽은 기소문을 펴고 선고를 강행한다.”

“그걸 막아야 하니 갑니다.”

“내가 막는다.”

에레디아는 대답 대신 그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구두 소리가 막사 바닥을 짧게 울렸다. 테온이 사본 묶음을 가슴에 안았다. 칼릭스가 천막을 열자, 새벽의 찬 공기가 불어 들어왔다. 아직 어둠 속이었지만, 진지 서쪽 하늘가가 푸르스름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포위 진지 중앙의 공개 재판장은 급하게 세워져 있었다. 관찰단의 좌석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고, 그 앞으로 황제의 자리와 별도의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에드릭은 이미 기소문을 손에 든 채 상석 아래 서 있었다. 델마르 황제는 병풍 앞에 앉아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밀고 있었다.

에레디아가 진입하자, 장내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녀의 왼쪽 눈밑은 붉게 부어 올라 있었지만, 눈빛은 곧았다. 칼릭스가 그녀보다 반 발 앞서 걸었다. 그의 제복 어깨가 횃불 아래에서 검게 빛났다.

“공녀 벨리언.”

에드릭이 그녀를 불렀다.

“황제 폐하의 기소문이 이미 이 자리에 있습니다. 로엔 공작은 반역죄로 기소되었습니다. 공녀께서는 그 기소에 응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순서라면 황태자 전하께 묻겠습니다.”

에레디아가 장내에 또렷하게 말했다.

“기소문의 근거가 된 황제 폐하의 서신에는, 로엔 공작가가 황실의 피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서신의 인장은 어느 기관이 대조했습니까.”

에드릭의 입가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황제 폐하의 친인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조 기록부터 관찰단에 제출해 주십시오.”

“공녀께서 재판장을 지휘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니 변론권을 요구합니다.”

에레디아가 앞으로 나섰다.

“황실의 기소에 대해 북부는 반론할 권리가 있습니다. 재판장이 열렸다면 그 권리를 막지 마십시오.”

그녀의 시선이 황제에게로 옮겨졌다. 델마르는 그 시선을 받자 팔걸이에 얹은 손을 멈췄다. 그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가, 결국 에드릭을 향해 손끝을 움직였다. 그것은 허락도 거부도 아닌, 판단을 넘기는 신호처럼 보였다.

에드릭이 기소문을 단상 위에 내려놓았다.

“좋습니다. 변론권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 변론이 황실의 체면과 이 재판장의 권위를 훼손한다면, 그 즉시 증거 부적격 처리와 함께 공녀 본인을 구금하겠습니다.”

칼릭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위협 한 번 더 하면 그 권위가 시험될 거다.”

에드릭이 그를 보았다.

“공작께서는 기소된 처지십니다. 이 자리에서 위협할 권리도 없으십니다.”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고 에레디아 쪽에 섰다. 그 부동의 자세가 장내의 북부 장교들 사이로 번져 갔다. 누군가의 가죽 장갑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델마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변론을 들으라. 대사제는 어디 있느냐.”

그 목소리는 제법 차분했지만, 끝이 약하게 떨렸다. 황제의 말에 장내가 움직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 에레디아가 손을 들었다.

“기다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증거는 이미 이 자리에 있습니다.”

테온이 사본 묶음을 단상 앞에 내려놓았다. 에레디아는 첫 장을 폈다. 그것은 백야초 테러와 사절단 물자 경로가 겹친다는 문서의 사본이었다. 그녀가 장내 앞으로 한 발 더 내디뎠다.

“이 문서는 이미 장교단과 상단 대표들이 검토한 사본입니다. 원본은 신전 검증서와 함께 관찰단 봉인 아래 있습니다. 이 문서가 보여주는 것은, 백야초가 실린 물자가 지나간 경로와 그 물자를 운송한 사절단 수행단장 명의의 인수 기록이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에드릭이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이 어떻게 반역 기소를 무너뜨리는지 알겠습니다. 어디에도 반역 기소를 무너뜨리는 말은 없습니다만.”

“지금부터 하면 됩니다.”

에레디아가 다음 증거를 폈다. 벨리언 저택에서 나온 흰 리본 초커 조각과 옛 하녀 진술서, 이주 비용 장부의 사본이 각각 천 위에 놓였다. 그녀는 그것을 단상 위에 올렸다.

“세라핀 공녀의 친모 사망 기록에 대한 은폐 정황입니다. 그 기록의 위조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황태자 전하께서는 아실 것 같습니다만.”

장내가 웅성거렸다. 세라핀이 관찰대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초록색 눈이 에레디아를 향했다.

“언니, 그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요. 그 하녀가 벨리언을 떠나면서 허위 진술을 꾸민 것뿐이잖아요.”

세라핀의 목소리는 높고 빨랐지만, 끝을 흐릿하게 갈무리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에레디아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 왜 하녀의 이주 비용이 장부에 두 번 찍혔는지, 세라핀 공녀가 먼저 설명하시지요.”

그녀의 존댓말이 날이 섰다. 세라핀이 움찔하며 에드릭을 돌아보았다. 에드릭이 기소문 위에 손을 얹은 채 에레디아를 바라보았다.

이어 에레디아가 세 번째 증거를 꺼냈다. 백야초 독살 지시와 관련된 기록의 일부로, 붉은 실로 묶인 얇은 문서 뭉치였다. 그 속에는 첫 독배의 최초 지시에 황태자 인장이 있었다는 전생의 기억이 아니라, 사절단 수행단장 명의의 인수 기록과 대접견실 근무 일지 시각을 맞춘 문서가 들어 있었다.

“백야초는 무미무취라 물에 타면 맛이나 냄새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 탓에 증명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 독을 공작성 급수대에 풀었는지, 그 시각과 물자의 흐름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절단 소속 시종이 공작성 물을 다룬 일지와, 그 시종이 소지하던 독병의 인수 기록이 함께 있습니다.”

에레디아가 문서를 내려놓았다.

“그 사절단과 황실의 개입을 부정하려면, 황태자 전하께서는 그 시종과 자신의 관계부터 소명하셔야 합니다.”

“공녀. 지금 이 재판장의 피고는 로엔 공작입니다.”

에드릭이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의 손에서 종이가 비비는 소리가 났다.

“피고를 바꾸려는 억지라면 그 변론권을 거둘 수 있습니다.”

“반역의 명분이 조작됐다면, 그 조작을 지시한 사람이야말로 이 재판장에서 검증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에레디아가 또박또박 말했다.

“반역죄 선고에 필요한 근거가 황제의 친인과 검은 왕관 탁본뿐이라면, 그 근거의 출처와 성립 과정부터 밝히는 것이 재판의 본래 순서입니다.”

장내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북부 장교들 사이에서 누군가 “원본부터 검증하라”고 외쳤다. 델마르가 뒤로 몸을 붙이며 신하를 찾았다.

그때 칼릭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장교들에게만 통하는 신호였다. 재판장 뒤편에서 횃불 하나가 꺼졌다.

잠시 후, 진지 서쪽에서 푸르른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봉화였다.

진지 외곽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옮기는 낮은 진동이 일었다. 그 진동은 재판장의 발판까지 이어졌다. 에드릭이 뒤를 돌아보았다.

진지 서쪽 통로에 쌓아 두었던 광석 들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떠올랐다. 그 빛이 통로를 막아서며 한 줄의 벽을 이루었다. 친위대 선봉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로엔 공작, 이게 무슨 짓입니까.”

에드릭이 외쳤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저들은 황실의 친위대가 아니라 증거도 없이 북부를 포위한 무장 집단이다.”

칼릭스가 조용히 말했다.

“북부 공작은 영지의 무장 침입에 대해 자위권을 가진다. 그 권리는 황실 서열보다 먼저다.”

“그 권리를 인정할 사람은 재판장에 없습니다.”

“그 재판장을 지금 네가 만들고 있다.”

칼릭스는 뒤에 선 테온에게 눈짓했다. 테온이 재판장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손에 쥔 병력 재배치 명령 초안이 장교단 앞에서 펼쳐졌다. 장교 몇이 그 앞에 모여들었다. 두 갈래로 갈라졌던 병사들 중 상당수가 뒤로 물러나며 친위대 쪽을 향하던 길을 놓아 주지 않았다.

에드릭이 탁본지를 흔들며 칼릭스를 향해 다가갔다.

“이것은 서고가 보여준 미래다. 황제께서 열람하신 기록이다. 감히 그 신탁을 광석으로 뒤집겠다는 게냐.”

“신탁은 기록이다. 기록은 검증할 수 있다.”

에레디아가 에드릭 앞으로 끼어들었다.

“검은 왕관 인장의 가운데 홈이 최근 광석 운송 구간 표기와 겹친다는 사실을, 황태자 전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까?”

“그건 우연이고, 억측이다.”

“그 억측이 사실인지 가리는 데 필요한 증거는 달의 눈물 광석입니다. 그게 두려우신 거라면, 검증 자체를 거부하지 마십시오.”

에드릭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때 마차 길 건너에서 신전의 검은 겉옷이 나타났다. 리벨트 대사제였다. 그는 흰 관찰단 배지를 가슴에 단 채, 두 보좌를 데리고 재판장 안으로 들어섰다.

“폐하. 반역죄 선고에는 신전 관찰단의 기문 확인이 필요합니다. 황태자께서 제출하신 탁본에 별의 서고의 봉인이 없다면, 그 기록은 증거로 채택될 수 없습니다.”

리벨트가 황제 앞에 서서 말했다.

델마르가 한참 그를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봉인이 없다는 것인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 탁본의 성립 경위에 대한 검증과 관련 증거의 공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미 이 재판장에서 그 요구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받았느냐.”

“북부 장교단과 상단 대표들입니다. 그들 중 일부가 신전 관찰단에 공식 청원을 냈습니다.”

리벨트가 허리춤에서 짧은 봉인 통을 꺼내 보였다. 청원서의 밀랍이 깨지지 않은 채 황제 앞에 놓였다. 델마르는 그것을 열지도 않고 에드릭을 돌아보았다.

“에드릭, 네가 제출한 그 탁본은 어디서 났느냐.”

에드릭의 얼굴이 횃불 아래에서 핼쓱해졌다.

“폐하께서도 아십니다. 별의 서고에서 열람하신 두 번째 미래 단편의 인장을 제가 탁본한 것입니다.”

“그 탁본에 서고의 봉인이 없다는 게 사실이냐.”

“탁본 절차에는 봉인을 함께 배어내는 규정이 없습니다. 절차는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그 절차를 지켰다면, 왜 검증을 두려워하느냐.”

황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에드릭은 대답하지 못했다. 델마르가 손을 들어 리벨트를 가리켰다.

“대사제, 저 기록을 비롯한 모든 증거를 신전에서 검증하도록 하라.”

“폐하, 그 전에 황태자께서 제출하신 독살 기록과 그 지시에 관한 부분을 먼저 열람해야 합니다. 공녀가 제시한 문서에 사절단 수행단장의 인수 기록과 황태자의 관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대로 재판을 진행하면 기소된 쪽이 아니라 기소한 쪽이 먼저 소명해야 할 상황입니다.”

리벨트가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재판장의 흐름을 읽은 듯했다. 칼릭스가 그의 옆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전했다. 리벨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황제를 정면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특별히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그가 손을 펴자, 에레디아가 끼고 있던 칼릭스의 반지가 그 앞에 놓였다. 리벨트가 반지를 높이 들어 촛불에 비추었다.

“이 반지는 로엔 공작가의 인장 반지입니다. 공작은 이것을 혼약 공증 전까지 공작가 인장을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담보로 공녀에게 맡겼습니다. 기록이 있습니다.”

리벨트의 목소리가 재판장에 울렸다.

“그러나 신전의 검증 결과, 이 반지는 신전에서 보관하던 피의 서약용 반지와 짝을 이루는 물건입니다. 즉, 신전이 개입할 수 있는 서약의 증표가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오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 에드릭이 기소문을 다시 집으려다 놓쳤다. 종이가 단상 아래로 흘렀다.

에레디아는 손끝을 가슴께로 올렸다. 반지는 이미 리벨트의 손에 있었지만, 그 자리가 남긴 온기만은 그녀의 손가락에 여전했다. 칼릭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끝낸다.”

그가 짧게 말했다. 에레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장의 기운이 완전히 바뀐 것은 그때부터였다. 친위대는 광석 벽 앞에서 물러서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지만, 검증 요구를 거스를 명분도 잃었다. 델마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태자를 체포하라.”

그 말이 떨어지자, 북부 장교 몇이 에드릭의 양 옆으로 붙었다. 에드릭이 팔을 뿌리쳤다.

“폐하, 지금 저들이 폐하의 재판장을 장악했습니다. 이건 재판이 아니라 쿠데타입니다.”

“네가 만든 것이다.”

황제의 목소리는 낮고, 끝이 갈라져 있었다.

“네가 그 기소문을 들고 온 순간, 이 재판장은 네가 끌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에 서고의 봉인이 없다면, 그것을 나에게 가져온 네가 먼저 검증받아야 한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황태자입니다.”

“그 자리가 널 구하지 못한다.”

델마르가 뒤돌아서며 신하에게 손을 휘저었다.

“데려가라.”

에드릭이 더 말하려 했지만, 두 장교의 손에 팔이 잡혔다. 그는 기소문을 줍지 못했다. 곧바로 단상 아래로 끌려 나갔다.

세라핀이 관찰대 뒤에서 비명을 삼켰다. 그녀의 손이 흰 리본 초커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더 이상 재판장을 움직일 재주는 없었다. 몇 명의 신전 관찰원이 그녀의 뒤에 섰다.

“세라핀 벨리언은 친모 살인 은폐와 독살 지시의 종속적 가담 혐의로 신전 조사에 응할 것이며, 관찰단은 유배를 요구할 것입니다.”

리벨트가 그렇게 정리하고는 에레디아와 칼릭스를 보았다. 델마르가 다시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리벨트를 돌아보았다.

“대사제. 지금 그 반지는 누구 것이냐.”

“로엔 공작의 인장 반지이며, 공녀에게 담보로 맡겨진 것이면서 동시에 신전의 피의 서약용 반지입니다. 신전은 이 두 사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지 오래 전부터 기록을 조회해 왔습니다. 답은 나왔습니다. 이 반지는 서약의 증표입니다.”

리벨트가 에레디아에게 반지를 돌려주며 말했다.

“공녀. 이 반지는 이제 신전의 서약실에서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에레디아가 반지를 받았다. 손바닥에 올리자, 반지의 무게가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는 칼릭스를 올려다보았다.

“끝이 아니라 시작인 모양입니다.”

“가자.”

칼릭스가 그녀의 손목 너머로 재판장 밖을 향했다. 테온은 남은 사본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긴 내가 맡는다. 서약실로 먼저 가.”

테온이 짧게 말했다.

동이 터 오를 무렵, 두 사람은 신전 서약실 앞에 섰다. 리벨트가 먼저 들어가 서약대를 준비했다. 서약실 안은 차고 어두웠지만, 바닥에 낮은 촛불이 두 줄로 켜지고 있었다. 리벨트가 문 앞에서 두 사람을 맞았다.

“피의 서약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절차가 끝나면 두 분은 신전과 별 앞에서 한 몸의 혼인이 됩니다.”

“압니다.”

칼릭스가 대답했다. 에레디아는 대답 대신 반지를 리벨트에게 건넸다. 리벨트가 서약대 중앙에 반지를 올렸다. 검은 반지가 제단 위에서 마지막으로 빛났다. 곧 리벨트가 두 사람의 손등에 바를 성수를 준비했다.

“각자의 피를 반지에 한 방울씩 묻혀야 합니다. 그 피가 마르기 전에 서로의 이름을 말하고, 별의 자리에 기록이 임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됩니다. 저는 그 기록을 밖으로 공표합니다.”

리벨트는 작은 칼을 촛불에 소독해 건넸다. 칼릭스가 칼을 받아 검지를 눌렀다. 피 한 방울이 반지 위로 떨어졌다.

에레디아가 그 칼을 받아 같은 자리를 눌렀다. 그녀의 피가 칼릭스의 피 곁으로 번졌다. 반지가 파르르 떨리며 은은한 푸른 선을 내뿜었다. 그 선이 두 사람의 손등 위로 뻗어 하나로 이어졌다.

“이제 이름을 말하십시오.”

리벨트가 뒤로 물러섰다. 칼릭스가 에레디아의 손을 끌어당겨 들어 올렸다. 그의 목소리가 서약실에 낮게 퍼졌다.

“칼릭스 로엔.”

에레디아의 입술이 열렸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끝만은 가늘게 떨었다.

“에레디아 벨리언.”

그 순간 서약대 위의 촛불이 한꺼번에 밝아졌다. 피의 서약이 별과 신전에 기록되었다. 리벨트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향했다.

“피의 서약이 별과 신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로써 두 분은 신전이 인정한 혼인 관계입니다.”

칼릭스가 검은 반지를 집어 에레디아의 손에 꽂았다. 반지는 그녀의 손가락에 정확히 맞았다. 에레디아는 손을 오므렸다. 반지가 무겁지 않게 감겨왔다. 칼릭스가 그녀의 손을 그대로 들어 올려 이마에 닿을 만큼 가까이 두었다.

“이제 이 손은 안 놓친다.”

에레디아가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왼쪽 눈밑은 아직도 붉게 남아 있었지만, 더는 아프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약대 아래로 내려섰다. 리벨트가 먼저 서약실 문을 열었다. 새벽의 찬 빛이 바닥에 길게 깔렸다.

밖에는 북부의 아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빛 속으로 에레디아가 먼저 나갔다. 칼릭스가 그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어둠 속으로만 난 길은 아니었다. 그 길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

별에 새겨진 공녀, 얼음 공작의 손을 잡다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