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된 공녀는 집행관과 계약 결혼한다
5화
벨리시아는 이 체포 영장이 절차의 시작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황립 증거 보관소 지하 은고 출입구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르시노가 든 봉투의 황제 인장이 통로 벽등 아래에서 윤곽만 번들거렸다.
“집행 전에 한 가지 묻겠습니다.” 벨리시아가 반 걸음 섰다. “배신 혐의의 기초 서류는 지금 누가 보관합니까.”
“황제 직속 심판원이 압수한 자료입니다. 공개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심판관님 신병도 의회 확인 없이 이관된다는 뜻이군요.”
“친서에 근거한 집행입니다. 의회 동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벨리시아는 소매 안쪽 밀명 부본의 모서리를 짚었다. “저는 지금 황립 증거 보관소에서 흑연꽃이 묻은 조작 서류와 황제 직속 감시 밀명의 부본을 확보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심판관님이 단독 기소한 반역 사건의 증거와 연결됩니다.”
“그 주장은 절차 바깥입니다. 영장 집행이 먼저입니다.”
카르엘이 그 앞으로 들어섰다. “집행관 자격을 밝혀라.”
“황궁 근위 사절 오르시노입니다. 영장은 인장과 대조하시면 됩니다.”
카르엘이 봉투를 받지 않았다. “기소권 회수 소환장은 접수 절차를 마쳤다. 이 영장은 같은 날 두 번째 강제 처분이다.”
“그래서 문제입니까.”
“한 사람에게 하루 안에 소환과 체포를 겹쳐 집행하면 의회 비상 심의 청구권이 발생한다.” 카르엘의 목소리가 낮았다. “심판관은 신병 이관 전에 그 절차를 열 수 있다.”
벨리시아가 곧바로 받았다. “의회 비상 소집을 청구합니다. 흑연꽃 서류와 밀명 부본을 첨부하겠습니다.”
오르시노의 구두가 바닥 돌을 한 번 긁었다. “첨부 자료는 봉인하지 않은 상태입니까.”
“관찰 기록과 부본만 제출합니다. 원본은 심판관실 금고에 있습니다.”
오르시노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절차가 시작되면 체포 영장의 집행 정지는 인정됩니다. 다만 심판관은 집무실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카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다.”
오르시노는 체포 영장을 안쪽 주머니에 넣고 손바닥을 폈다. “비상 심의 청구서를 직접 작성해 주십시오. 증거 목록은 제가 접수합니다.”
벨리시아는 그 손을 보지 않았다. “집무실에서 작성하겠습니다. 이동 중에는 서류를 열지 않습니다.”
“심판관 집무실로 가시지요. 인장이 찍힌 청구서가 접수되는 시점부터 이관 명령은 정지됩니다.”
벨리시아는 먼저 돌아섰다. 귀가 얼얼했다. 오르시노는 몇 걸음 뒤에서 따랐다.
밖으로 나오자 오후의 바람이 옆구리를 때렸다. 마차에 오르는 동안에도 오르시노가 입을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압박처럼 남았다.
집무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예전보다 무겁게 났다. 오르시노가 탁자 앞에 서서 기다렸다. 벨리시아는 밀명 부본과 흑연꽃 반응 관찰 기록을 펼쳤다. 카르엘이 먹을 갈았다. 갈리는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증거 목록은 두 개입니다. 은고에서 확보한 조작 서류의 흑연꽃 반응, 그리고 황제 직속 밀명 부본의 보고 번호입니다.”
“보고 번호는 테오도르 브룬의 진술과 일치합니다.”
“진술 봉인은 제출하지 않습니다. 부본만으로 절차를 열 수 있습니까.”
카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의 소집 근거로는 충분하다.”
벨리시아는 청구서 하단에 이름을 썼다. 오르시노가 그 위에 접수 시각을 기입한 뒤 종이를 반으로 접어 가죽 서류집에 넣었다.
“의회 비상 소집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심판관님은 집무실에서 대기하십시오.”
카르엘이 목례로 답했다. 오르시노가 나가자 복도 쪽 구두 소리가 몇 번 이어지다 끊어졌다. 벨리시아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시계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이제 여기는 우리뿐입니다.”
카르엘이 창가로 가 커튼을 반쯤 닫았다. 방 안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까 하지 못한 말을 하겠습니다.” 벨리시아가 탁자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
“한다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저는 첫 생에서 처형당했습니다. 반역으로요.” 카르엘의 어깨가 멎었다. “집행한 사람은 심판관님이었습니다. 정확히 그날, 저는 처형대에서 심판관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카르엘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회색 눈이 벨리시아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회귀한 것이냐.”
“네. 사형 집행 순간에 열 살 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카르엘의 오른손이 왼손 손등의 집행관 직인 문신 자리를 눌렀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보였다.
“그날의 목소리가 당신이냐.”
“네. 저는 처음부터 알고 당신에게 계약을 제안했습니다.”
카르엘이 손등을 쥔 채 한 걸음 다가왔다. “그 목소리 때문에 왼손이 시렸다. 이유를 몰랐다. 지금은 알겠다.”
“저는 당신이 미워서 이 계약을 한 게 아닙니다.”
카르엘이 멈췄다. 시계 초침만 움직이는 소리가 지나갔다.
“처형은 판결의 끝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도구였다.” 목소리가 낮게 갈렸다. “그래도 네 목을 벤 것은 나다.”
벨리시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조금 들었다. 목선이 길게 드러났다.
“의회 제출 순서를 정합시다. 감각 기록은 넣지 않습니다. 흑연꽃 서류 부본을 먼저, 밀명 부본을 그다음에.”
카르엘이 손을 내렸다. “추가 진술이 필요한가.”
“테오도르의 보고 번호는 제가 읽겠습니다. 심판관님은 절차 신청자로 남고.”
창밖에서 바람이 유리창을 스치고 지나갔다.
“좋다. 오늘 밤까지 청구서 사본을 한 부 더 만든다.” 그가 탁자 쪽으로 돌아섰다.
벨리시아는 그가 손등을 더 이상 쥐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대신 손끝이 청구서 모서리를 짧게 눌렀다.
“더는 숨긴 말이 있느냐.”
벨리시아는 황태자 친서의 문구가 떠올랐지만 지금 답할 것이 아니었다.
“남아 있습니다. 다만 오늘 밤 의회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기에 두겠습니다.”
“듣지 않은 것으로 하지 않겠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회 제출 서류의 순서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조정했다. 마지막 장 표지에 인장을 찍기 전, 카르엘이 서류 위에 마른 붓을 가만히 올려두었다.
“꼬마가 충성을 팔아 자리를 얻으시려는 모양이군요.”
“이 편지는 제게 온 것입니다.” 루이제가 사본을 제출대 위에 올렸다. “황태자 문장이 찍혀 있고, 도주를 권하는 내용입니다.”
벨리시아가 사본 옆에 손을 얹었다. “첫 생에서 제 동생이 이 편지를 받은 것은 제가 처형되기 전날이었습니다. 같은 편지가 이번에는 더 일찍 도착했습니다.”
의장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것을 지금 어떻게 증명합니까? 첫 생의 편지는 제출할 수 없지 않습니까.”
“구절이 같습니다.” 벨리시아가 입술을 다문 뒤 말을 이었다. “제 기억 속의 문장과 이 사본의 세 번째 줄, 마지막 다섯 문장이 일치합니다.”
황제가 짧게 웃었다. “기억이 증거냐. 예쁜 자매구나. 아버지가 반역자니까 딸들도 반역자처럼 말하는군.”
루이제가 벨리시아의 소매를 잡으려다 멈췄다. 벨리시아는 동생 쪽을 보지 않은 채 황제를 똑바로 바라봤다. 손가락 사이로 편지 사본의 모서리가 눌리는 감각이 남았다.
“이 편지와 조작 서류는 같은 사람이 움직였습니다. 흑연꽃 반응은 같았습니다.”
테오도르가 보고 흔적 사본을 한 번 더 제출대 앞으로 밀었다. “사본은 제가 보존한 접수 기록입니다. 원본 금고와 대조할 수 있습니다.”
의장이 의원석을 한 번 둘러봤다. “표결합니다. 아르덴 가문 반역 판결 번복과 황제 권한 제한을 묶어 회기 규정대로 진행합니다.”
황제가 직인을 감싸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희어졌다.
“이 노회한 의원들이 어린 증언에 귀를 기울이다니 세상이 순해졌구나. 좋아, 마음껏 해보아라.”
의장이 목침을 다시 두드렸다. “반대 의원, 기립하십시오.”
한 사람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일어선 수가 의석의 삼분의 일을 넘지 않았다. 의장이 종이를 밀어 황제 앞 수행원에게 건넸다.
“아르덴 가문 반역 판결은 공식 번복되며, 황제 직속 밀명은 조작으로 확정합니다. 폐하께는 권한 제한 명령을 통보합니다.”
황제가 수행원이 내민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롱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종이 모서리가 금실 자수에 걸려 올라간 것을 손바닥으로 눌러 내렸다.
“기록은 남겠구나.” 황제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 정성이 어느 겨울까지 갈지 나는 천천히 지켜보마.”
벨리시아는 황제의 뒷모습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가 본회의장을 나간 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가볍게 났다. 바람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사람들이 적어지자 새어 나온 한숨 소리가 벽에 부딪혔다.
카르엘이 제출대 옆에서 서류를 정리했다. 그런 뒤 심판관직 사임서를 꺼내 의장 앞에 놓았다. 종이가 접히지 않도록 손끝으로 모서리를 짚었다.
“심판관직을 사임하겠습니다. 이제 집행관 반역 수사를 의회가 맡으십시오.”
의장이 좌중을 둘러보다가 접수 확인증을 써서 카르엘에게 내밀었다. “수리합니다.”
카르엘이 종이를 받아 안주머니에 넣었다.
벨리시아는 루이제에게 황태자 편지 사본을 건네며 낮게 말했다. “네가 제출한 거야. 끝까지 가져가.”
루이제가 사본을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언니, 이제...”
“끝난 게 아니야.” 벨리시아가 귀밑머리를 한 가닥 넘겼다. “우리가 남는 걸 골랐을 뿐이야.”
루이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원석 쪽으로 물러났다. 테오도르도 사본을 안에 넣고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저는 기록 정리를 위해 남겠습니다. 이 보고 번호가 의회 절차로도 남도록요.”
벨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단에는 카르엘과 벨리시아만 남았다. 카르엘이 안주머니에서 혼인 계약서 원본을 꺼냈다. 종이는 네 귀가 단단히 눌린 채로 반듯했다. 그가 제출대 위 빈 은받침에 계약서를 얹었다.
“불태운다.” 카르엘이 말했다. “계약으로 남는 게 아니라, 선택으로 남겠다는 뜻이다.”
벨리시아가 그 곁으로 다가갔다. “제가 같이 붙일게요.”
촛불이 있는 쪽으로 종이를 가져가자 불꽃이 가장자리부터 번졌다. 불탄 계약서는 종이 위로 재가 되어 은받침에 가라앉았다. 카르엘이 타다 남은 재를 조심스레 종이 위에 모았다. 벨리시아가 그 손등 위로 손가락을 피고 재를 한 줌 얹었다. 따뜻한 입자가 손등의 붉은 자리를 덮지 못한 채 흩어졌다.
“이번 생은 내가 선택해서 남는 거야.”
카르엘이 벨리시아의 손목을 아주 느리게 끌어당겨 두 사람의 어깨가 나란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몸을 기울였다. 벨리시아는 눈을 감지 않았다. 다만 숨이 끝에서 멎는 동안 재 냄새가 서로의 새끼손가락에 내려앉았다.
입술이 닿는 순간 시계가 없어 시간을 세지 못했다. 카르엘의 오른손이 벨리시아의 손 위에 포개졌다. 그가 먼저 물러난 뒤에도 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벨리시아는 자신의 손등을 카르엘의 왼손등 위에 남겨 둔 채 의회의 밝은 창 쪽을 바라봤다.
“이제 계약이 아니에요.” 벨리시아가 말했다. 재를 쥔 두 손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계약이 아니어도 여기 서 있겠다.” 카르엘이 나지막이 답했다. “아르덴 영애.”
벨리시아는 부드럽게 손을 움직여 마지막 남은 재를 카르엘의 손바닥에 남겨 두었다. 옅은 회색 자국이 두 사람의 붉은 자리와 나란히 남았다. 의원석에 남은 사람들은 환호하지도 박수하지도 않았다. 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록을 덮는 소리가 한 번 났다.
그 소리가 의회 본회의장에 많지 않은 결말처럼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