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참음검가(斬音劍歌)

8화

문 밖 일곱 보. 은방울이 멎은 자리에서 서문혁의 숨이 들렸다. 한 번 쉬고, 다음 숨이 오기까지 길었다. 가슴께가 아니라 갈비뼈 안쪽 깊은 곳에서 한 박자 늦게 뛰는 맥이 있었다.

하진운은 법당 안 북쪽 벽에 등을 붙이고 섰다. 검집을 왼손에 쥐었다. 오른손 검지가 손잡이 끝에 닿았다.

서문혁의 발소리가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일곱 보 밖에서 멈춘 채, 옷깃이 바람에 한 번 뒤집히는 소리가 났다.

“하진운.”

목소리는 낮고 반듯했다. 사당 안의 돌기둥에 부딪혀 조금 울렸다.

“네 사부가 이 사당에 잠들어 있다지.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린 게 그 뜻이냐.”

하진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약 눌린 심박이 서문혁의 왼쪽 가슴 아래, 목소리가 나올 때만 한 톤 얕아지는 지점에서 들렸다. 평범한 무인의 맥이라면 숨을 들이쉴 때 한 번 더 뛰어야 하는데, 서문혁은 그 마지막 한 번을 약제로 지우고 있었다. 그래도 세 번에 한 번은 원래 박자가 남았다.

청음검경 상편에 있던 그대로였다. 하진운은 그 한 번을 기다렸다.

서문혁이 한 걸음 문 쪽으로 옮겼다. 은방울이 울지 않도록 허리춤을 손바닥으로 눌렀는지, 천에 감싼 방울이 옆구리에 눌리는 소리만 났다.

“검이 보이지 않는 문 안으로 걸어가라는 건가.”

“그래.”

하진운이 입을 열었다.

“네가 듣고 싶은 방울이 여기 있다.”

서문혁이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의 끝에 상대의 어깨가 문밖 공기 속에서 반 칸 돌아가는 소리가 실렸다.

“무슨 방울인지 짐작은 간다. 내게 없는 반쪽짜리 말이냐.”

“네 품에 있는 것보다 오래된 소리다.”

서문혁의 발이 문지방을 넘었다. 첫 발은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두 번째 발이 사당 돌바닥에 닿자, 하진운은 그 뒤꿈치가 내려앉기 전에 상대의 목 왼쪽에서 세 번째 맥박을 들었다.

둘.

하진운이 낮게 읊조렸다.

“위공탄.”

후문 쪽 복도 저편에서 나무 술통이 돌바닥을 미는 소리가 났다. 위공탄이 회랑 바깥문을 닫고 빗장을 넣었다. 쇠가 돌에 걸리는 소리가 사당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밖은 막았다. 어린 놈.”

위공탄의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렸다.

“서문혁 수하 셋이 샛길 아래서 올라온다. 사당 앞까지 오려면 차 한잔 마실 시간은 되겠다.”

“그 시간이면 된다.”

하진운은 검집에서 검을 한 치 뽑았다. 쇠 소리가 작게 칼집을 타고 났다.

서문혁이 걸음을 멈췄다. 법당 안의 거리는 하진운과 서문혁 사이가 열두 보쯤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사부의 위패가 돌기둥 위에 놓여 있었다.

서문혁이 허리춤에서 은방울을 떼었다. 풀린 끈이 공기를 스쳤고, 방울이 흔들렸다. 온전한 은. 반이 깨진 소리가 아니었다. 하진운은 이미 알고 있는 소리를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이게 네가 찾는 것이냐.”

서문혁이 방울을 한 번 더 흔들었다. 맑은 쇠소리가 법당을 돌며 오래 남았다.

“가짜다.”

하진운이 말했다.

“네가 듣게 해주고 싶은 방울이지. 사부를 죽인 밤의 반쪽 방울은 그렇게 울리지 않는다.”

서문혁의 손목이 멈췄다. 방울을 잡은 힘이 천천히 풀렸다.

“그래. 이것도 이제 필요 없다.”

쇳조각이 돌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서문혁이 방울을 버린 자리에서 방울이 한 번 더 구르며 풀린 끈이 바닥을 쓸었다.

하진운은 왼손 검집을 쥔 힘을 반 칸 올렸다. 서문혁이 오른발을 반 보 뒤로 옮겼다. 왼손이 허리춤으로 가는 소리가 났다. 검집을 짚는 왼손 엄지가 은으로 된 장식에 닿았다. 그 손끝이 칼집을 따라 내려가며 잡아쥐는 소리는 마치 작년 제례 검무 때와 같았다.

왼손 검집. 하진운은 그 소리가 벽에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길을 쫓았다. 서문혁의 왼손이 검을 뽑기 직전, 손목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검술은 오른손으로 배웠지만, 남이 보는 앞에서는 오른손을 썼지.”

서문혁이 검을 뽑았다.

“네 사부는 죽는 순간까지 내 왼손을 못 봤다.”

검날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하진운은 그 소리의 끝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들어야 할 소리는 검날이 아니라 그 앞에 있었다.

서문혁이 숨을 한 번 짧게 들이쉬었다. 오른손에 쥔 검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 검집은 가슴 높이로 올렸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류 고수답게 발끝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하지만 약 눌린 심박은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하진운은 그 심박이 세 번째로 뛰는 자리를 찾았다. 서문혁의 왼쪽 갈비 아래 깊숙한 곳. 목소리도, 방울 소리도, 검집 소리도, 그 심박은 결국 같은 몸에서 났다.

사당 밖 회랑 쪽에서 위공탄이 무슨 소리를 질렀다. 서문혁의 수하들이 사당 앞 돌계단에 닿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하진운은 위공탄이 벽에 등을 기대며 술통을 내려놓는 소리를 들었다.

서문혁이 웃었다.

“네 귀가 열렸다고 들은 지 오래다. 하나 더 가르쳐 주지. 심박은 약으로 늦추면 약점이 아니라 방패가 된다.”

그가 검을 바꿔 쥐었다. 검집을 버리는 소리가 났다. 가죽이 돌에 부딪혔다.

“네 참음검이 소리의 끝점을 벤다면, 소리를 지우면 그 끝점은 사라진다.”

서문혁이 사당 안쪽으로 들어왔다. 다섯 걸음. 하진운은 그 걸음 사이에서 서문혁의 발이 바닥을 떠나기 전에 돌가루가 미세하게 밀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네게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하진운이 처음으로 긴 문장을 말했다.

“네 심박을 약으로 지운 문, 그리고 그 약이 이르지 못한 문. 네 갈비 아래 세 번에 한 번 뛰는 맥을 숨기지 못했다.”

서문혁이 멈췄다. 거리는 일곱 보.

하진운이 검집을 오른손으로 넘겨 잡았다. 검을 완전히 뽑았다. 칼집 없는 검이 밖으로 나왔다.

“네가 들고 온 방울은 가짜다. 하지만 이 사당에는 진짜 반쪽 방울이 세 개 있었던 밤의 소리가 남아 있다.”

하진운이 사당 중앙으로 반 걸음 옮겼다. 사부의 위패 앞에 걸어 둔 복수표가 바람에 한 번 떨렸다.

“사당 종소리를 들어라.”

서문혁이 처음으로 몸을 낮추며 반응했다. 그 순간 사당 뒤편 절벽 위에서, 밤바람에 늦게 도착한 종소리가 한 번 울렸다. 폐쇄된 사당 앞마당에 매달린 옛 종은 위공탄이 전갈 표식을 남기며 건드리고 간 바람몰이 장치에 부딪혀 있었다. 쇳소리가 절벽을 타고 법당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그 종소리가 서문혁의 품속에 있는 진짜 반쪽 은방울을 흔들었다. 반쯤 깨진 은조각이 천 속에서 가늘게 울렸다. 온전한 소리로는 들리지 않을 그 잔향을 하진운은 놓치지 않았다.

둘.

세 번째 종소리가 이어졌다. 반쪽 방울은 품속에서 한 번 더 떨었고, 그 여음이 사당 바닥의 돌기둥 사이로 번졌다. 하진운은 그 소리가 복수표 원본에 새긴 첫 번째 소리와 같다는 것을 들었다.

“진짜는 아직도 네 품에 있다.”

하진운이 검끝을 서문혁의 왼쪽 갈비 아래로 겨누었다.

“왼손 검집 소리, 약을 눌러도 남는 심박, 그리고 반쪽 방울. 세 소리가 지금 네 몸에서 겹친다.”

서문혁이 검을 왼손으로 바꿔 쥐었다. 오른손은 허리 뒤로 숨겼다. 그가 한 걸음 크게 내디디며 검을 뻗어 왔다. 하진운은 발소리로 시작을 듣고 검날의 울음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문혁의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왼쪽 어깨 쪽에서 났다.

하진운은 오른발을 반 보 뒤로 옮기며 상체를 숙였다. 서문혁의 검끝이 오른쪽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느리다.”

서문혁이 검을 뒤로 젖혔다. 그가 발을 미끄러뜨리며 왼손 검을 허리 높이로 찔러 왔다.

하진운은 그 검소리의 끝점에 자기 검을 갖다 댔다. 두 쇠가 부딪혔다. 짧은 금속음이 사당을 울렸다. 손목에 전해지는 무게가 서문혁의 팔뚝 힘을 알려 줬다. 억지로 밀면 밀린다.

하진운은 밀지 않았다. 검을 뽑아내는 대신 칼날을 서문혁의 검 위로 미끄러뜨렸다. 쇠가 쇠를 타는 소리가 길게 났다. 서문혁이 그 소리에 방향을 읽히지 않으려 손목을 꺾었다. 하진운은 상대의 손목 관절이 꺾이는 소리를 들으며 반 보 옆으로 돌았다.

서문혁이 다시 검을 뽑아 쳤다. 세 번 연속. 하진운은 첫 번째를 칼등으로 받아 흘리고, 두 번째를 몸을 비틀어 피하고, 세 번째를 검집으로 쳐서 밀었다. 서문혁의 공격이 거칠어졌다. 발소리가 돌바닥에 찍혔다.

“네가 소리를 벤다면, 소리의 끝점은 아직 남아 있지 않다.”

서문혁이 검을 낮게 쓸었다. 하진운은 그 자세에서 상대의 왼쪽 어깨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서문혁의 다음 공격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서 올 것이었다.

하진운은 한 걸음 앞으로 들이밀었다.

서문혁의 왼손 검집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가짜 은방울을 차며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겹쳐 그의 심박이 세 번째로 뛰는 소리가 났다. 약 눌린 맥 아래에서, 늑간 아래 깊은 곳에서.

하진운은 검을 뒤집어 쥐었다. 참음검. 소리의 끝점을 벤다.

서문혁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진운은 그 얼굴을 보지 않았다. 대신 서문혁의 몸이 뒤로 물러나며 내지르는 숨소리, 그 끝점에서 상대의 급소가 공명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진운은 검을 찔렀다.

검끝이 서문혁의 왼쪽 갈비 아래로 들어갔다. 약 눌린 심박이 마지막으로 한 번 뛰었다. 하진운은 그 박동이 검을 타고 손에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문혁이 검을 떨어뜨렸다. 돌바닥에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길게 떠돌았다.

“네가...”

서문혁의 목소리가 반말로 무너졌다. 하진운은 검을 뒤로 빼며 물러섰다. 서문혁의 몸이 돌바닥에 무릎부터 닿는 소리가 났다.

그가 품속을 더듬었다. 진짜 반쪽 은방울이 천에서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반이 깨진 은색 방울이 돌 위에서 한 번 울리고 멎었다.

하진운은 그 소리의 끝을 듣고서야 검에 묻은 피를 바람 아래로 털었다. 서문혁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숨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하진운은 눈가리개를 눌러 올렸다. 시야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사당 안 공기의 온도만 조금 내려갔다.

“끝났군.”

백무군의 목소리가 사당 문밖에서 들렸다.

하진운은 검을 집에 꽂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백무군이 문지방을 넘으며 장갑을 낀 손으로 벽을 짚는 소리가 났다.

“복수표에 새긴 소리, 반쪽 은방울과 왼손 검집, 약 눌린 심박. 세 가지를 대조했다.”

백무군이 서문혁의 몸 곁에 앉았다. 옷깃을 여미는 소리, 검집을 들고 칼집 안쪽을 확인하는 소리, 품속을 뒤져 남은 약 찌꺼기를 확인하는 소리가 차례로 났다.

“복수표대로 단죄다. 법에 따라 사부의 원수 갚기는 합법으로 성립했다.”

하진운은 사부의 위패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사부. 방울 소리가 이제야 끝났습니다.”

백무군이 기록을 펼쳤다. 붓이 종이를 지나가는 소리가 사당 안을 채웠다.

“소가 약방의 처방 기록, 그 약재가 반량만 남은 까닭은 부친이 열을 다스리려 반수를 먼저 걷은 뒤에 남긴 것이었다. 직접 사인은 독이 아니라 왼손 검상이다.”

하진운은 듣고 있었다. 소류화의 아버지에게 씌운 누명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소류화와 함께 있지 않은 것이 못내 마땅치 않았다.

“그 여자는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

백무군이 말했다.

“내가 직접 데려오라 해 두었다. 진술은 들을 필요 없지만, 이 기록을 보여 주는 절차가 남았다.”

하진운은 대답 대신 검을 닦았다. 검날에 묻은 피가 천에 번졌다.

잠시 뒤 사당 문밖에서 소류화의 발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잰걸음이었다. 문지방 앞에 와서 멈췄다. 하진운은 소류화가 침을 한 번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

“나다.”

하진운이 말했다.

소류화가 사당 안으로 들어왔다. 서문혁의 몸을 지나 하진운 곁으로 왔다. 그녀는 사부의 위패 앞에 서서 한참을 그냥 있었다.

“아버지의 약재 기록 말이야.”

소류화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열이 오르면 반수를 먼저 달이고, 남은 반은 걸어 두라는 구절이 있었어. 그 종이를 무림맹에서 대조했대.”

“누명이 벗겨졌느냐.”

“응.”

소류화가 하진운을 돌아보았다. 옷깃이 바람에 움직였다.

“네가 세 가지 소리를 끝까지 겹쳐 들었구나.”

“검은 그렇게 벤다.”

하진운이 검을 검집에 꽂았다. 쇠가 가죽에 닿는 소리가 났다.

“이제 복수표를 태운다.”

하진운이 사당 벽에 걸린 등불을 찾았다.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심지가 타는 소리와 열이 퍼지는 방향으로 위치를 알았다. 복수표 원본을 들어 등불 위로 가져갔다. 마른 목판이 불에 닿자 소리가 났다. 돌가루로 새긴 문양이 열기를 따라 갈라지며 타 들어갔다.

복수표가 재가 되었다. 하진운은 재를 손에 모아 문턱으로 걸어갔다.

소류화가 하진운의 팔을 붙들었다. 하진운은 남은 재를 사당 문턱에 뿌렸다. 잿가루가 밤바람에 섞여 날아갔다.

“다시 산길까지 나가자.”

하진운이 말했다.

소류화가 하진운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뒤는 안 볼게.”

소류화의 말이 짧았다.

하진운은 왼손에 쥔 검을 허리에 붙였다. 오른손으로 소류화의 손을 잡았다. 소류화가 하진운의 팔을 붙들고 문턱을 넘었다.

위공탄이 회랑 모퉁이에서 술통을 들고 나타나는 소리가 났다.

“어린 놈. 술 한 잔은 하고 가야지.”

“밖에서.”

하진운이 걷기 시작했다. 소류화가 반 보 뒤를 따라왔다. 사당 문밖은 어두웠다. 바람이 절벽 쪽에서 불어 내려왔다. 은방울이 울리는 일은 다시 없었다.

복수표의 재가 사당 문턱에 남아, 바람에 쓸려 계단으로 흩어졌다.

참음검가(斬音劍歌)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