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

5화

향. 제습기 냄새. 감사실인지 창고인지 구분이 안 가는 골판지 냄새가 목에 붙었다.

다음 날 오전. 협회 중앙청 지하 감사실.

흰 천장등이 검체 테이블 위를 내리눌렀다.

등빛이 테이블 모서리에 닿는 곳마다 먼지가 얇게 떠 있었다. 형광등 안정기 소리가 형광등 불빛보다 먼저 귀에 들어왔다. 나는 계약서 뭉치를 한 번 고쳐 쥐었다.

종이 모서리가 손바닥에 눌리며 땀에 붙었다. 옆자리 김민준의 숨소리가 저장칩 위로 가볍게 흔들렸다. 내가 손에 계약서 뭉치를 들고 섰고, 옆자리엔 김민준이 저장칩 하나를 두 손으로 감싼 채 서 있었다.

마주 앉은 오태석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빼고 팔짱을 꼈다. 아론테크 상무는 머리카락이 반듯하게 눌렸는데 얼굴만 갯바위 같았다.

“증거 제출은 개시 전 서면 등재가 원칙입니다. 지금 들고 온 저장칩은 형식 미비로 반려해야 합니다.”

“서면이면 등재가 되고, 칩이면 반려다, 이건 공임이 아니라 태업이네요.”

내가 테이블 앞으로 저장칩을 밀었다. 김민준의 손이 칩 끝을 못 놓고 따라왔다.

“감사인 시간이 시간당 얼마로 잡혀요? 제가 오늘 여기 서 있는 것도 현금이거든요. 시급으로 하면 소송 노가다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오태석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면허 주제에 절차를 가르치려 드나.”

“그러니까 뭐가 미비한지 말씀하시면 되는 거고요. 보관 체인은 협회에서 어제 봉인까지 걸었고, 칩은 생존자가 직접 제출하는 겁니다. 절차 트집 시급, 그거 언제까지 시간 끌 셈이세요.”

정인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민준 앞으로 갔다.

손을 내밀었다.

“등재하겠습니다.”

김민준이 그제야 칩을 놓았다.

칩이 정인혁 손바닥으로 넘어가는 순간, 김민준의 손끝이 허공에 반 박자 남았다. 정인혁은 칩을 서류 옆 트레이에 내려놓고 장갑을 벗었다. 감사 기록 화면이 열리기 전까지 방 안은 짧게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김민준의 숨소리보다 먼저 접수 창구 쪽으로 밀려갔다.

손등에 뼈가 섰다.

정인혁이 서류에 도장을 찍고 감사 기록 화면에 ‘생존자 은닉 저장 기록’이라 띄웠다. 공식 증거 번호가 옆에 붙었다.

내셔널 등재다.

이제 이 칩은 협회가 책임진다.

오태석이 성명서 문건을 들췄다.

“판독 조작 의혹에 대한 아론테크 입장부터 반영해야——”

“그건 제가 지금 증거로 풀면 되잖습니까.”

내가 보관함 열쇠를 꺼냈다. 검체 담당 직원이 원본 검을 들고 검증 테이블로 갔다. 검집 보전 봉인이 절단 부위 위에서 포장지처럼 벗겨졌다.

당신 30년 경력, 이제 청구서 받으실 시간이다.

검체 테이블 위 단자가 검손잡이 안쪽에 밀려 들어갔다.

전광판에 전투 기록 1,842회 로그가 행으로 뽑혔다.

검 몸체가 테이블 고정대에 닿자 작은 금속음이 두 번 났다. 검손잡이 안쪽 단자에 밀려 들어간 접점이 푸르게 점등됐다. 신호 분석기 냉각 팬이 돌기 시작했고, 검 위쪽으로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직원이 손등을 한 번 닦고 로그 추출 버튼을 눌렀다. 통신 모듈 추출 포트가 따로 열렸고, 신호 분석기가 팔뚝만 한 곡선을 그렸다.

“[판독 로그]”

“[전투 기록 계수 1,842회 / 삭제 구간 4.0초 복원]”

“[아군 공격 에너지 18.4% / 외부 명령 코드 3줄 검출]”

“[통신 모듈 백도어 수신 시각 — 사고 당일 21:19:22]”

오태석의 의자가 뒤로 밀렸다.

“판독기를 조작했다.”

그래, 이제야 반응이 오네.

“신호 분석기 로그는 이 방 협회 장비로 뜨는 건데요. 제가 손댄 건 검체 고정 나사 두 개하고 이 로그 보는 눈입니다.”

내가 전광판 옆 모니터를 한 손으로 돌렸다.

전투 기록 중 4.0초 구간이 위에, 김민준의 저장칩 기록이 아래에 나란히 떴다.

“생존자 기록에는 사고 당일 21:19, 돔 안쪽에서 단말기가 일제히 덮는 단계까지 있죠. 검체 로그에는 21:19:22, 백도어에서 ‘중계 우회 셧다운’ 명령이 들어가요. 출처 소켓은 싹 오질라테크 서버 계정——”

“아론테크라고 부르시죠.”

“오질라테크 지점이 해외 계열사 이름이라 공문엔 그게 먼저 뜨네요. 고객님이 불편하면 제가 이 소켓을 지워드릴까요?”

오태석의 턱이 올라갔다.

내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다다다.

기록 양쪽의 타임 시그니처가 전광판 중앙에서 한 줄로 겹쳤다.

4.0초.

그동안 단말기는 이미 죽어 있었다.

정인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말했다.

“명령 추적을 계속하십시오.”

최광수가 벽 쪽에서 숨을 들이켰다.

“내 로비 접수 시점이랑······ 겹치네.”

마성호가 전원 패널 쪽으로 돌아섰다.

강하윤이 코트 자락도 펄럭이지 않게 그 앞을 막았다.

“됐다.”

마성호의 손이 패널 스위치에 닿지도 못했다. 강하윤이 그 손목을 젖히자 마성호의 어깨가 감사실 유리벽에 붙었다.

“전투팀, 재기동해.”

복도가 울렸다.

쿵, 쿵, 쿵, 쿵.

검은 방어구에 헬멧까지 쓴 인원 넷이 감사실 복도를 밀고 들어왔다. 셋은 강하윤을 겨눴고, 하나는 내 쪽으로 돌파하려 몸을 낮췄다.

아, 이거…… 이제 공임으로 안 끝나겠는데.

나는 검체 테이블 뒤로 반 걸음 물러서며 노트북을 몸 앞에 세웠다. 백서진이 이미 노트북을 바닥에 펴 놓고 헌터넷 라이브를 켠 상태였다.

“생중계 82만, 아 잠깐 말하고 싶은 사람 좀 명단이나 뽑을게.”

강하윤이 먼저 움직였다. 첫 번째 인원의 방어구 목덜미를 잡아 옆 팀원에게 던졌다. 셋이 한 무더기로 밀리며 출입문 제어 버튼을 등으로 눌렀다. 그걸로 빛 한 줄이 감사실 바닥에 길게 깔렸다.

……어라. 저 빛, 경광등이잖아.

나는 그게 전투 팀이 발사한 수갑형 제압구가 아니라 유리벽에 쏠린 경광등 빛이란 걸 뒤늦게 봤다. 협회 보안대가 복도 끝을 막고 있었다.

내 쪽에 붙던 두 명이 바닥을 뒹굴었다. 강하윤의 발끝이 그 무릎을 툭, 툭 찍었다. 소리가 검집에 맨 손으로 때린 것처럼 낮게 났다. S급이 전투팀 상대한다고 다칠 건 없네. 공임만 깨질 뿐.

보안대가 전투팀 팔과 다리를 차례로 묶어 끌어냈다. 마성호가 검을 향해 한 걸음 밀착하려다 강하윤의 시선을 받고 복도 쪽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 허가된 접근은 되레 그 반발뿐이었다. 보안대가 마성호를 창 쪽으로 인계했고, 오태석에게 보조 요원 두 명이 다가섰다.

백서진의 노트북 화면이 전광판 위로 송출됐다.

“기사맞아, 이제 조회수 1,200만이야. 댓글은 3만 개 넘었고······ 근데 여기 회의론자B가 ‘이것도 특종용 쇼 아니냐’고 하네. 귀엽게.”

게시글 라이브 창이 감사실 위쪽 화면에 떴다.

`ㄴ회의론자B: 수리공이 판독 로그 실시간으로 띄우는 건 이제 확인된 건? 근데 왜 등급이 무면허지?`

`ㄴㄴ정보충A: 등급보다 로그 보는 눈이 문제인데. 4.0초 복원 수치가 저장칩 타임 시그니처랑 일치하면 이건 절차 문제가 아니게 됨.`

`ㄴㄴ뉴비D: 아까 강하게 밀려난 아저씨 상무 아니지? 왜 팔짱 풀었냐 ㅋㅋ`

오태석이 화면에서 나온 자기 모습을 보고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저걸 팔짱 풀었다고 저격할 만큼 한가한가.

최광수가 감사인 쪽으로 한 걸음 갔다.

“내가 알던 접수 번호는······ 갱신 로비로 준 것 맞아. 세 번. 날짜는 작년 연말 시험 끝나고.”

“접수 번호 뒷자리 기억나?”

백서진이 노트북을 들고 최광수 옆에 앉았다.

“공문 사본 첫 줄에 적어 두셨잖아요. 보여 드릴까요, 대표님.”

백서진이 태블릿에 공문 사본을 띄웠다. 부상 보고서 접수 번호와 최광수의 로비 장부가 나란히 떴다.

최광수의 이마에 기름이 올랐다.

“딱까리보고 날 시켰다고······ 아니야.”

“부상 보고가 빠진 시점이 시험 기간이랑 겹친다. 니 등록이 최신이라 그런 거지 무면허가 아니라.”

백서진이 공문 사본을 검색창에 대고 날짜를 뒤집었다. 백서진의 말이 빠르게 감사 기록에 들어갔다. 저 속도면 감사인도 따라가기 벅차겠네.

나는 판정지 사본을 꺼냈다. 각성 실패 판정 때 나온 비대칭 검증 코드. 그걸 신호 분석기 이번 로그에 대조했다. 파형이 겹치자 시스템 창이 똑 하고 떠올랐다.

“[역각성 백도어 신호 파형과 일치율 96.7%]”

“[판독 기원 추적 — 각성 실패 판정지 비대칭 코드 → 아론테크 수신 포트 동일]”

정인혁이 화면 앞으로 걸어왔다.

“역각성 유도 시험 기록으로 보입니다.”

내가 공식 감사에서 이걸 띄운 데는 이유가 있는데, 하필 이걸 왜 이번에 꺼냈는지 김민준이 몸으로 물었다. 칩 접수 때 손을 떨던 사람이 감사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저 4초, 저만 지운 줄 알았어요. 기록을 빼준 게 아니라······ 저희한테 심은 거였네요.”

너만 지워질 수 있다는 게 착각이 아니다. 지워진 시간이 우리한테 심어졌고, 기록은 그걸 증명한다. 공임이 아니라 이건 몸값이었네. 그럼 이제 정산할 시간인가. 목소리로는 못 하고 나는 검체 테이블에 손을 짚었다.

오태석이 손을 들어 감사 중단을 요청했다.

“안전 시험 결과를 부풀려서 뭐가 남냐. 무면허 수리공 하나가——”

“지금 이건 시험 결과가 아니라 생존자와 검의 기록이 교차된 화면입니다. 남는 건 시말서가 아니라 구속 영장이겠네요.”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계산했다. 공임 외 소송 노가다 시급, 지금 이 시간부턴 아론테크 쪽에 붙일 수 있다. 심문 시간까지 시급으로 쳐도 오늘 연장 야근은 확정이다.

정인혁이 뒷짐을 풀었다.

“사고 원인을 ‘장비 결함’에서 ‘외부 원격 제어에 의한 인재’로 재결론합니다.”

……와, 진짜 박아버리네. 감사 서류 결론란에 그대로 찍혔다. 이걸 이 자리에서?

정인혁이 협회 수사팀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태석의 양쪽 팔에 수사팀이 붙었다. 마성호도 복도 옆으로 밀려 걸어갔다.

“이건······ 결국 시장 문제야. 우리가 백도어 시험한 거, 다 신뢰성 확보 목적이었다고.”

오태석이 목을 비틀었다. 우드득. 그 소리가 내 귀보다 감사실 마이크에 더 크게 들어갔다.

오태석이 셔츠 깃에 손가락을 넣어 한 번 당겼다. 깃 안쪽으로 뜨거운 목덜미가 드러났다. 마이크가 그 마찰음까지 줍고 있었다. 수사팀이 오태석의 팔을 다시 잡자, 의자 다리가 타일 바닥을 긁으며 옆으로 밀렸다. 오태석은 그 소리에 잠깐 몸을 굳혔다.

백서진이 노트북을 접지 않고 중얼거렸다.

“이제 이건 확정이다.”

확정이라. 그럼 오늘 야근은 더 길어지겠네. 이거, 시급 더 붙여야 하는 거 아닌가.

오후의 공방. 보관함 손잡이에서 봉인지를 뗐다. 강하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협회 직원이 검을 강하윤에게 전달하고 검증 기록 사본을 건넸다.

“[의뢰 완료 알림]”

“[수리 등급 S / 복원 공임 2,400만 원]”

“[보관료 2일 800만 원 + 아론테크 무단출입 대응 37만 원]”

“[공인 판독 수리공 특별 인정 수당 2,850만 원 적용]”

댓글 하나에 2천 4백만 원. 비싼 댓글이네. ……공임 인상분까지 합치면, 오늘 하루 치고는 나쁘지 않은데.

“영업 외 시간 대응 비용까지 들어갔네요. 이거 깎아드릴 수가 없어서 그냥 받겠습니다.”

강하윤이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도 않은 채 나를 오래 봤다.

“기억 검증 사본 받았어.”

“그렇군요.”

“공임 올려도 됐다.”

그 말이면 오늘 벌이, 충분하다. 아니다, 그래도 다음 건은 올려야지.

“그 말 한마디에 돈 더 청구 안 하는 제가 바보지만, 오늘은 공인 인정서가 먼저 들어와서 괜찮습니다.”

내가 입구로 나가면서 못 박았다.

“생존 정산 완료. 다음 의뢰는 늦지 않게 찾아오시죠.”

문밖은 오후 두 시였고, 간판 옆에 협회 공인 판독 명판이 반쯤 못질돼 있었다. 강하윤이 검집을 한 번 쥐고 공방 안쪽 작업등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남은 못 두 개만 마저 받았다. 이것도 공임에 넣을까.

헌터협회 중앙청 공식 감사실.

오태석은 그대로 남았다. 검은 수갑이 채워진 손이 화면을 향해 올라가다 떨어졌다.

아론테크 비밀 서버실 문이 부서져 열리고 압수수색 인원이 뜨는 영상이 감사실 모니터에 반복해서 내보내졌다. 조회수 1,200만. 과징금 480억.

와.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오태석은 의자에 주저앉은 채, 벌어진 셔츠 소매 사이로 손금을 내려다봤다.

판독 로그에 떠 있던 백도어 소켓. 그다음엔 화면 속 아론테크 간판이 로비에서 먼저 내려지는 장면이 잡혔다.

간판 내리는 데도 공임이 얼마였을까.

수사팀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오태석이 마지막으로 읊조렸다.

“······끝났다고.”

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