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유품 정리사인데 죽은 A급의 마지막 기억이 읽힌다

5화

저 문자는 아직 정지가 아니다.

예고다.

예고는 보통 그 사이에 하지 말라는 목록을 첨부한다.

나는 폰을 뒤집어 세우고 메시지 전문을 열었다. 대기실 의자 등받이가 내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심의회장 복도 저쪽에서 누군가 한 번 기침하는 소리가 났다.

“감정인 자격 정지 예고래요.”

윤가온이 먼저 말했다. 이하린은 내 폰을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절차가 시작된 거네요.”

“예. 그리고 이 회의가 끝나면 이 문자가 어느 쪽으로 접히는지 정해집니다.”

폰을 스크랩에 넣고 캘린더에 박았다.

오전 09:20.

심의회 소집 통지는 어젯밤 늦게 도착했다. 백승민이 위증서를 냈다면…… 이 개회 시간은, 그가 벌어 놓은 순서다.

정지 예고가 개회 네 시간 전에 찍혔다.

시간 계산이 참 정확하시네.

그 정확함이 오늘 누굴 조이는지 두고 보자.

윤가온이 서류 봉투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이거 세 장. 번복 진술서야.”

“서명은 본인이 하셨습니까?”

“여기.”

윤가온이 마지막 장을 폈다. 서명란에 검은 볼펜이 번진 자국이 하나. 이름 윤가온. 그 옆에 날짜가 손으로 눌러 써져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받기 전에 손가락으로 표지만 세었다.

세 장.

진술 요지, 시각, 서명 순서.

이걸 첫 번째로 내야 한다.

“순서 확정합니다. 윤가온 증언 번복서, 다음이 혈서 판독 숫자, 그다음 USB 장부 사본, 그다음 음성메모, 마지막이 07:14 관제 로그입니다.”

“왜 로그가 마지막이야. 그게 제일 센 거 아니야.”

“감사장에서 먼저 나온 증거가 기준이 됩니다. 혈서 숫자를 먼저 박고 나서 로그를 얹어야 시각 일치로 보입니다. 반대면 지난 진술 번복을 다시 조사부터 하겠다고 나옵니다.”

이하린이 팔짱을 풀며 내 쪽을 봤다.

“숫자가 먼저다. 그건 알겠어요. 그런데 백승민 사장님이 이 방 안에 있으면요?”

“그 자리가 오늘 제일 좋은 자립니다. 결재선에 자기 이름이 있는 사람이니까.”

결재선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자기 결재를 부정하는 자리에 앉는다.

꼴이 우습겠지만…… 오늘은 그 꼴을 증거로 쓴다.

우스운 꼴도 서류로 붙이면 증거다.

09:55.

복도 안내판이 심의회장 본회의석으로 우리를 밀었다. 문이 열리고, 흰 테이블 중앙에 감사 패널 명패 세 개가 놓여 있었다. 곽도현이 간사석에서 서류 묶음을 가지런히 세우고 있었다.

내가 먼저 그의 명패를 봤다.

곽도현.

길드 연합 감사 패널 간사. 검은 정장에 감사위원회 배지.

테이블 반대편엔 백승민이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가 상체를 살짝 세웠다가 폰을 들여다보는 척했다.

폰 화면이 꺼져 있었는데.

숨길수록 자세만 앞으로 쏠렸다.

본인도 아는 모양이다. 그 자세가 오늘 제일 불리한 증거라는 걸.

“본회의를 개시한다. 오늘 안건은 강태오 사망 사고의 1차 감정서 신뢰성 및 유품 감정인 한기준의 징계 사유 검토다.”

곽도현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안 써도 방 끝에 닿았다.

성량부터가 압박이다.

이하린이 내 옆자리로 앉으며 영수증 봉투를 무릎 위에 올렸다. 윤가온은 벽 쪽 의자에 붙어 앉았다.

내가 봉투에서 진술서 세 장을 꺼내 곽도현에게 밀었다.

“윤가온 씨 증언 번복서부터 제출합니다. 1차 조사에서 몰랐다던 진술을 이제 번복한 겁니다.”

곽도현이 서류를 펼쳤다. 표지가 반쯤 접혀 있던 자리가 테이블 조명에 비쳤다.

“본인이 서명했습니까.”

윤가온이 일어나지 않고 대답했다.

“네.”

“USB를 강태오가 가온 씨 배낭에 넣었다는 진술입니까.”

“네.”

백승민이 끼어들었다.

“그건 사후에 알았다는 거지. 1차 조사 땐 몰랐다고 해 놓고.”

곽도현이 손바닥을 세웠다.

“백승민 씨. 발언 요청부터 하십시오. 지금은 채택된 진술서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제지당한 백승민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오, 저 붉은 기운.

오늘 쓸 수 있겠다.

발언 요청도 없이 끼어든 목소리. 그 목덜미가 곧 위증서 표지다.

나는 진술서 사본을 내 앞에 남기고 다음 봉투를 열었다. 강태오 혈서 숫자, 그것을 읽은 내 판독 기록. 접촉 부위 흉터의 지속 열감까지 날짜와 함께 붙여 뒀다.

“혈서 숫자와 판독 수치입니다. 212, 14,000, 차이 52. 이건 제가 유품 접촉 당시 판독한 값입니다.”

곽도현이 기록지를 들어 올렸다.

“수치는 정확히 이겁니까.”

“예. 그래서 지금도 흉터가 뜨겁습니다.”

내가 오른손으로 왼쪽 손바닥을 짚었다.

열감이…… 아직.

이건 계산이 끝나지 않은 몸의 기록이다.

백승민이 이번엔 손을 들었다.

“발언 요청합니다. 그 판독은 한기준 혼자 한 거 아닙니까. 장치 기록도 아니고.”

곽도현이 내 쪽을 보며 턱을 움직였다.

“한기준 씨. 그 점은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따로 확인할 수 있게 USB 장부 사본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그 말에 맞춰 폰 화면을 테이블 가운데로 돌렸다.

USB 안에 있던 중복 장부 사진.

212박스, 14,000원.

160박스로 잡힌 1차 감정가와 다른 실측치.

곽도현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이건 원본이 아니라 사본입니까.”

“원본은 조사팀이 압수했습니다.”

백승민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

“사본은 증거 능력 없다고. 이 자리에서 무슨.”

“그러니까 새로 채택 여부를 심사해 달라고 내는 겁니다. 혈서 숫자와 교차만 됩니다. 그게 어느 쪽이냐는 패널 몫입니다.”

곽도현이 사진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기록지에 두 줄을 그었다.

그가 내 USB 장부 표를 두 번 확대해서는 숫자 212와 160 사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두 수치가 같은 시점 장부에 같이 남아 있다는 거군요.”

“네. 이게 없으면 1차 감정서의 160은 그냥 실측이고, 혈서는 그냥 낙서로 치부됩니다.”

“음성메모는 별도입니까.”

이하린이 호주머니에서 검은 이어폰 줄 같은 케이스를 꺼냈다.

그녀는 그것을 패널 앞에 밀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 원본은 없어요. 백승민 사장님이 아닌 조사팀이 가져갔으니까. 대신 헌터넷에 올라간 전문 캡처와 제 원본 재생 기록이에요.”

곽도현이 고개를 돌려 백승민을 봤다.

백승민은 양복 소매를 만졌다.

“원본은 길드 조사팀이 적법하게 압수했습니다.”

“이 자리에 없습니까.”

“따로 봉인됐습니다.”

“그 봉인이 풀리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 한 마디에 백승민이 입을 다물었다.

잠깐.

봉인이 안 풀렸어야 한다고?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하는데.

될 대로 되라.

나는 그 얼굴로 폰의 07:14 관제 로그 파일을 열었다.

3지구 게이트 원격 잠금 코드 조회 결과.

시간과 코드가 찍혀 있었다.

이걸 첫 번째로 내지 않은 게 맞다.

윤가온도 이제야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음성메모에 남은 07:14와 이 관제 로그가 같은 코드입니다. 강태오 님이 게이트가 잠기는 순간 그 숫자를 남겼다면, 이건 단순 사고가 아닙니다.”

“잠깐.”

백승민이 다시 손을 들었다.

곽도현이 허락하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원격 잠금 코드 정도는 현장 헌터들도 압니다. 그 정도 연결로 사고사 뒤집으면 길드 조사는 뭐가 됩니까.”

“조사팀이 그걸 어제 압수해 갔습니다. 이제 그 팀이 이 로그의 사용 권한 이력을 봐야죠.”

곽도현이 기록을 밀며 내 쪽을 정면으로 봤다.

“한기준 씨.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 숫자들이 진짜라면 1차 감정서가 왜 160박스로 잡혔습니까. 실수입니까.”

이제다.

폰에서 계산기 화면을 불러냈다.

“이유는 수수료 식에 있습니다. 유품 감정 수수료는 원 감정가의 3퍼센트에 유족 사례금 7만원을 더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원 감정가를 낮출수록 누군가는 실제 물건을 빼돌려도 장부상 손실이 줄어듭니다.”

내가 숫자를 눌렀다.

212 곱하기 14,000.

2,968,000.

이어서 160 곱하기 14,000.

2,240,000.

“차이는 728,000원. 박수로는 52박스입니다.”

내가 그 표를 회의 테이블 쪽으로 밀었다.

미리 정리해 둔 역산표였다.

“열세 달 월세 하고도 8만원이 남습니다. 제 사무실 기준으로요.”

그리고 8만원.

52박스가 사라져도 장부가 조용한 이유였다.

백승민이 1차 감정서 사본에서 손을 멈췄다.

자신의 결재 라인.

그 위에 찍힌 160이라는 숫자.

곽도현이 그 손끝을 따라 내려갔다.

“백승민 씨. 이 서류에 결재한 본인입니까.”

“그건…… 제가 결재는 했는데.”

“수량 160이 본인 결재로 확정됐느냐고 물었습니다.”

백승민의 어깨가 뒤로 조금 밀렸다.

“결재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제가 세어 본 숫자가 아니라.”

“숫자를 안 보고 결재했다는 말입니까.”

그 말에 백승민이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숫자를 안 보고 결재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곽도현에게 마지막 한 장을 내밀었다.

“제가 만든 건 역산표고, 이미 채택된 장부·판독 기록과 대조해 보시면 160이 위조로 보입니다. 칼로 긁힌 흔적까지 같이 넣었습니다.”

이건 청구 근거가 아니다.

조작 동기다.

그리고 그 동기는 결재선에 떠올라야 한다.

곽도현이 증거 목록에 네 항목을 적는 동안, 백승민은 1차 감정서 사본을 반으로 접으려다 다시 폈다.

접으면 눈에 들어오는 160이라는 숫자.

그러지 않으면 보이는 자기 서명.

아, 이거…… 꽤 오래 남겠는데.

10:35.

곽도현이 감사 패널 두 명과 낮은 목소리로 상의한 뒤 재분류 안건을 상정했다.

“패널은 강태오 사고를 단순 사고사로 볼 증거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보급 비리 은폐를 위한 인재로 재분류하고, 1차 감정서의 수량 160을 212로 정정합니다.”

이하린이 숨을 길게 토했다.

윤가온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바닥을 편 채 그대로 있었다.

나는 1차 감정서가 접히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까지 왔구나.

“유품 원 감정가는 2,968,000원으로 확정하고, 감정인 수수료와 유족 사례금을 여기에 맞춰 재정산합니다.”

곽도현이 내 쪽으로 서류 한 장을 밀었다.

“한기준 씨, 감정인 자격 정지 예고는 기각됐습니다. 대신 여기 공인 감정사 특례 등록 통보서입니다. 감사 결과에 따른 겁니다.”

내가 통보서를 폈다.

면허 번호 자리가 처음으로 비지 않았다.

……이제야 한 칸이.

11:10. 회의가 끝났다.

로비까지 백승민이 나를 따라붙다가, 다른 사람들 시선에 가로막혀 걸음을 늦췄다.

이하린이 내 쪽으로 한 걸음 와서 유족 사례금 영수증을 두 번 접었다.

“이게 오빠가 남긴 거예요?”

“그중 절반은 당신이 지킨 몫입니다.”

이하린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내 내 얼굴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가온은 통보서를 보지 않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서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한빛은행 입금 2,968,000원 / 적요: 최종 수수료]`

내 손바닥이 여전히 뜨거웠다.

감정이 아니라 금액이 들어온 손바닥.

2,968,000원.

비싼 회의였다.

수수료 한 건에 사람 하나가 재분류됐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정산인가.

나는 그 통장 화면을 백승민에게 보이지 않게, 그러나 그가 쳐다보도록 그대로 두었다.

백승민이 하청 계약서를 반으로 접으며 중얼거렸다.

“160박스로 낸 내 결재 라인이 수수료 역산식에 그대로 박혔잖아.”

그는 재심 청구 문구를 손으로 가리고 내 쪽을 힐끗 봤다.

“한기준 씨, 이해해요. 나도 밑에서 시키는 대로.”

“사장님.”

내가 말을 잘랐다.

“저는 하청이 아니라 감정인으로 정산받았습니다.”

백승민이 접힌 계약서를 한 번 더 접었다.

반으로, 다시 반으로.

주머니에 넣으려다 떨어뜨렸다.

나는 지갑을 꺼내 공인 감정사 등록증을 넣었다.

지갑 한 칸이 그제야 완전히 차는 느낌이 들었다.

52박스의 무게가 이제는 감정서 숫자로, 통장 잔고로, 등록증 한 장으로 정리됐다.

백승민이 떨어뜨린 계약서를 줍지 않았다.

나는 그냥 지나갔다.

휴대폰을 뒤집어 로비 탁자 위에 올렸다. 흉터가 식을 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유품 정리사인데 죽은 A급의 마지막 기억이 읽힌다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