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연재비록

15화

의금부 심문실은 북향이었다. 아침인데도 촛불을 켜야 했다.

채연은 중앙에 무릎 꿇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 손목의 포승 자국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 품 안에는 어머니의 수기가 여전히 닿아 있었다.

의금부 도사가 상석에서 목침을 내리쳤다.

“의녀 채연. 사약 오투의 죄를 추궁한다.”

채연이 고개를 들었다. 동공이 촛불에 흔들리지 않았다.

“네가 조제한 탕약을 복용한 송 상궁이 급사했고, 탕약 찌꺼기에서 천오두가 검출되었다. 이에 대한 진술을 들을 것이다.”

“탕약은 제가 조제하지 않았사옵니다.”

도사의 눈썹이 올라갔다. 옆에 앉은 서기가 붓을 든 손을 멈췄다.

“무슨 소리냐.”

“의녀는 진단만 할 뿐, 탕약 조제 권한은 없사옵니다. 동궁 약방의 조제는 당직 어의가 관장하도록 규정되어 있사옵니다.”

채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약성(藥性)을 설명하는 어조와 다르지 않았다.

도사가 서류를 한 장 넘겼다.

“당직 어의는 탕약이 출고되기 전 정식 검사를 마쳤다고 증언했다.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약재 출고부터 검사까지의 절차 기록을 확인해야 하옵니다.”

“의녀 주제에 증언을 가르치려 드느냐.”

채연이 잠시 말을 멈췄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이 절차이옵니다.”

도사가 목침을 다시 내리쳤다. 이번에는 더 무겁게.

“증거는 충분하다. 네 약감별 일지에도 천오두에 관한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지난밤 네 처소를 수색한 결과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으나, 일지만으로도 혐의를 세우기에 부족하지 않다.”

채연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살짝 움직였다. 오른손 엄지가 왼쪽 손목을 쥐었다 놓았다.

“약감별 일지는 의녀로서의 연구 기록이옵니다. 천오두의 독성과 감별법은 모든 의관이 숙지해야 할 기본—”

“네가 의관이냐.”

도사의 말에 서기가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심문실 왼편 방청석에서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채연은 거기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시선을 도사에게 고정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송 상궁의 사망 원인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탕약 조제에 사용된 약재의 원산지와—”

“약재는 내의원에서 공식 출고된 것이 확인되었다. 네가 할 말은 그것이 아니다.”

채연이 잠시 침묵했다. 촛농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벽에 걸린 심문 시각 기록판에는 진시(辰時)가 막 지났다고 적혀 있었다.

도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네 죄를 인정하는 것이 형량을 줄이는 길이다. 의금부는 이미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증거가 절차를 생략할 수는 없사옵니다.”

채연의 목소리가 심문실 바닥을 따라 낮게 깔렸다. 도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절차를 들먹이다니. 그것을 왜 의금부에서 네 입으로 들어야 하지.”

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대답보다 무거웠다.

서기가 붓을 놓고 도사를 쳐다보았다. 도사가 손을 들어 기록을 멈추게 했다.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다. 탕약을 조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조제하지 않았사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탕약 찌꺼기에서 천오두가 나왔느냐.”

“그것은 조제 과정의 개입 가능성을 의미하옵니다.”

도사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양손으로 탁자를 짚은 채 채연을 내려다보았다.

“네 말은 내의원 누군가가 탕약에 독을 탔다는 뜻이냐.”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채연이 입술을 다물었다. 등 뒤의 촛불이 한 차례 흔들렸다. 바람은 없었다.

서기가 다시 붓을 들었다. 도사가 자리에 앉으며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진술 범위를 지정한다. 탕약 조제 여부, 송 상궁과의 사적 접촉 여부, 약감별 일지에 기재된 독초 연구 경위. 이상 세 가지로 제한한다. 그 외의 발언은 기록에서 배제한다.”

채연의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숨을 들이쉬는 동작이었으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서기가 물었다.

“사적 접촉은 없었사옵니까.”

“없었사옵니다. 진단은 공식 절차를 따랐습니다.”

도사가 팔짱을 끼었다. 손가락이 상박을 두드렸다. 탁, 탁, 탁. 세 번이 지나자 시선이 채연의 손목으로 내려갔다.

“네 손목 멍은 무엇이냐.”

“체포 당시 생긴 자국이옵니다.”

도사가 고개를 돌려 방청석을 한 번 응시했다. 어두운 쪽이었다. 시야에 드는 인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네가 조제한 약재 중에 천오두가 포함된 적은 없느냐.”

“어의원 외부에서 반입된—.”

“없느냐.”

채연이 눈을 내리깔았다. 다시 들었을 때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위쪽, 조금 오른쪽.

“독초 감별 연구를 위해 별도 보관한 천오두 표본이 있사옵니다. 허나 그것은 약연에 담아 봉인한 상태로, 조제실과 완전히 분리된 함에 보관했사옵니다.”

서기가 빠르게 기록했다. 도사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손을 저었다.

“표본의 존재 자체가 네 부주의를 증명한다. 독초를 궁중에 들인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느냐.”

“표본은 공식 승인을 거친 교육용 약재였사옵니다.”

“승인 문서를 제출할 수 있느냐.”

채연이 대답을 멈췄다. 승인 문서는 상급 의관실에 비치되어 있었다. 피의자 신분으로서는 접근할 수 없는 서류였다.

도사가 목침을 마지막으로 내리쳤다. 길게 울리지 않고 짧게 끊겼다.

“진술 종료다. 기록을 정리하라.”

채연이 급히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지정된 범위를 벗어난다면 기록하지 않겠다.”

“중전 마마의 사례와 관련된 사항이옵니다.”

심문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서기의 붓이 종이에 닿지 않은 채 멈췄다.

도사가 서기를 한 번 쳐다보고는 채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입가가 굳어졌다.

“중전 마마를 들먹이다니. 네 신분을 다시 생각해라.”

“의학적 소견일 뿐이옵니다.”

“말해 보아라.”

채연이 숨을 들이마셨다. 품 안의 수기가 가슴을 눌렀다. 그 압력을 의식하며 입을 열었다.

“중전 마마의 양 완관절에는 다발성 흑자반이 분포되어 있사옵니다. 이는 약침 과용 때 나타나는 특징적 소견으로—”

“감히.”

도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의녀가 중전의 신체를 입에 올리는 것부터가 월권이다. 네가 진단한 기록은 없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느냐.”

“약침 자국의 유형은 특정 약재의 지속적 투여와 관련될 가능성이—”

“기록 중지하라.”

서기가 붓을 내려놓았다. 먹물이 종이에 번졌다.

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네 입으로 중전 마마를 거론한 것은 이 심문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행위다. 해당 발언은 공식 기록에서 배제하며, 추후 네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참작할 것이다.”

채연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 대신, 닫혔다.

“이만 퇴정한다.”

의금부 하급 병사 둘이 다가와 채연의 양팔을 잡았다. 손목 멍 위로 손가락이 닿자 채연의 어깨가 아주 잠깐 굳었다. 병사들은 그대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서기가 심문록을 덮으며 도사에게 속삭였다.

“중전 관련 부분은 어떻게 할까요.”

“적지 않았다. 네가 들은 것도 아니고.”

도사가 심문실을 나서며 방청석 쪽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감색 당의의 옷자락이 촛불 사이로 스쳤다.

인혜는 말이 없었다. 백옥 가락지를 만지작거리는 동작마저 멈춘 채, 빈 심문석을 몇 호흡 동안 내려다보았다.

서기가 심문록을 품에 넣고 인혜에게 다가왔다.

“주상궁 마마. 기록을 보시겠사옵니까.”

“이미 다 들었소.”

인혜의 손이 허리춤의 인장 주머니로 내려갔다. 문틀 너머로 병사들에게 이끌려 가는 채연의 뒷모습이 촛불 그림자 속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중전 마마의 건은.”

서기가 말을 줄였다.

인혜가 돌아섰다. 감색 당의가 한 바퀴 휘돌며 공기를 밀었다.

“내명부의 별도 기록으로 남기겠소.”

“하오나 심문록에는 없어야—”

“알고 있소.”

인혜의 발걸음이 심문실을 떠났다. 복도로 나서면서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왼손 엄지가 가락지에 닿았다 떨어졌다.

채연을 호송하는 병사들의 발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점점 작아졌다. 인혜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걸음걸이는 이미 무언가를 적고 있는 사람의 속도였다.

동궁 서재는 오전의 햇살이 창호지 너머로 얇게 번지고 있었다. 이현은 어의원에서 올린 사약 성분 분석서를 책상 위에 펼쳐 두고,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짚어 내려가다 멈췄다.

“천오두, 2돈 5푼.”

숫자가 지나치게 정확했다.

독초가 탕약에 섞일 때는 열탕 속에서 일부가 분해되어 중량 추정에 오차가 생긴다. 그런데 이 기록은 마치 처음부터 정확한 양을 알고 있었다는 듯 소수점까지 맞아떨어졌다.

이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관.”

문 밖에서 대기하던 내관이 허리를 굽혔다.

“의금부에 압수된 탕약 찌꺼기 중 약봉지는 어디 있느냐.”

“어의원 약재고에 봉인 중이옵니다.”

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가 놓았다.

“내가 직접 가겠다.”

“전하, 아직 몸이….”

“몸이 어떻든 지금 봉인을 풀지 않으면 저 기록만으로 증거가 된다.”

이현이 분석서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눈가의 그늘이 짙었으나 걸음은 똑바로 서재 문을 향했다. 문턱을 넘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약봉지에서 나던 비린내의 기억은 아직 생생했다. 천오두는 생것일 때 비린내가 나고, 달이면 쓴맛으로 변한다. 약봉지에 남은 냄새가 생것의 것이었다면, 누군가 탕약을 달인 후에 독초 가루를 추가로 섞었다는 뜻이었다.

“어의원에 사람을 보내 약재고 봉인 해제 절차를 미리 밟게 하라.”

“전하께서 친히….”

“내가 가지 않으면 누구도 열지 못할 것이다.”

이현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으나, 소매를 만지는 손가락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천오두의 정확한 중량과 비린내, 두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범인이 있었다.

그 지점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약봉지 원본뿐이었다.

해가 중천을 넘어 서쪽으로 기울 무렵, 내명부 주상궁 집무실에는 찻잔이 식어 있었다. 인혜는 의금부에서 올린 중간 보고서를 펼쳐 든 채 첫 장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피의자 채연의 진술 요지가 간략히 기록되어 있었다. 사약에 사용된 천오두의 포제 방식이 내의원 정식 법제와 다르며, 약찌꺼기의 감별 결과 독초의 절단면에 불규칙한 분지형 유관속이 관찰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도 물러서지 않았군.”

인혜의 입술이 말 없이 다물렸다가 열렸다. 왼손 엄지에 낀 백옥 가락지가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심문장에서 여자 의녀 혼자, 어의원 전체 앞에서 약재의 단면과 유관속을 논하고 있었다. 증거 효력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록에 남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가락지가 두 번째 바퀴를 돌았다. 손가락 마디에 힘이 들어가 관절이 하얗게 질렸다.

십 년 전에도 이런 얼굴이 있었다고, 인혜는 생각했다. 침묵 속에서 기록을 남기고, 증거를 모으고,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간 얼굴.

그녀는 보고서를 접어 책상 구석에 두었다.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으나 가락지를 만지는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실렸다.

“증거가 필요하다.”

혼잣말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인혜는 눈을 감았다 떴다.

채연을 공식적 후견인으로 보호하는 것은 내명부의 감찰권을 발동하는 행위와 같았다. 발동하는 순간, 지난 십 년간 쌓아 올린 중립의 벽에 금이 갈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 번 침묵한다면, 이번에는 벽 자체가 무너질지도 몰랐다.

인혜는 가락지를 멈췄다. 손가락을 감싼 백옥이 창으로 들어온 오후 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아직은…… 아니다.”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릎 위에 얹은 손을 그대로 두고, 허리춤의 비단 주머니 안쪽 인장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눌렀다. 내명부의 인장이었다.

깃발을 올릴 시점은 증거가 모인 뒤였다. 그때까지 채연은 혼자 견뎌야 했다. 인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가늠하며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의금부 옥사.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가는 곧 사라졌다.

채연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심문 후 탈진으로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흐릿했다. 그러나 바닥에 놓인 작은 조각 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무엇인가. 채연이 몸을 기울여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닿은 것은 약재 조각이었다. 콩알만 한 크기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잘라낸 듯 단면이 매끄러웠다.

집어 올려 코 가까이 가져갔다. 냄새는 익숙했다. 천오두 특유의 비린내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채연의 손이 멈춘 것은 그 냄새 때문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수기에 기술된 민간 독초 감별법에서 묘사된 흔적이, 단면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포제를 거치지 않은 생약의 독성을 의도적으로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내의원의 정식 법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 이 조각을 가져다 놓았다. 채연은 숨을 멈췄다. 옥사 밖 복도는 다시 적막했다.

채연이 급히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지정된 범위를 벗어난다면 기록하지 않겠다.”

“중전 마마의 사례와 관련된 사항이옵니다.”

심문실 안의 공기
의금부 옥사.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가는 곧 사라졌다.

채연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심문 후 탈진으로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흐릿했다. 그
청연재비록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