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재비록
16화
의금부 심문실의 촛불이 두 번째 심지로 옮겨 붙을 무렵이었다.
채연은 여전히 중앙에 무릎 꿇고 있었다. 손목의 포승 자국은 검붉게 굳어 있었고, 입술에는 얇은 각질이 일었다. 허 어의는 도사 좌측에 앉아 팔짱을 낀 채였다. 방청석 구석에는 주상궁 인혜가 배석해 있었다. 그녀는 차를 마시지도, 부채를 쥐지도 않고 두 손을 소매 안에 모은 채였다.
의금부 도사가 목침을 한 번 두드렸다.
“의녀 채연. 사약에 쓰인 천오두에 대해 진술을 계속하라.”
채연은 잠시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옥사 복도에서 주운 약재 조각의 단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매끄러운 절단면. 민간 독초 감별법에서만 보던 유관속의 불규칙 분지형 배열. 그리고 포제를 거치지 않은 생약 특유의 희미한 비린내.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으나 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약에 사용된 천오두는 내의원 정식 법제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허 어의의 팔짱이 풀렸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생약입니다.”
채연이 허 어의의 말을 잘랐다. 의학적 사실을 앞에 두고 직함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의원 법제에서는 천오두를 반드시 염수에 침지한 후 초제하여 독성을 감쇠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비린내가 사라지고 단면의 유관속 배열도 변형됩니다.”
도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사약 찌꺼기의 냄새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가 붓을 멈추고 도사를 쳐다봤다. 채연은 계속했다.
“보관된 약봉지가 아닙니다. 심문 전 의금부 하급 서리가 증거물을 확인하던 중 탕약 찌꺼기에서 천오두 특유의 생약 비린내가 난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법제된 천오두라면 그런 냄새가 날 수 없습니다.”
허 어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 다리가 돌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증거 없는 망발이다!”
그는 도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이 의녀는 사약 오투의 중죄를 피하고자 어의원의 법제까지 부정하고 있사옵니다. 내의원의 공식 법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오.”
채연이 입을 열었다.
“법제를 말하는 것이지 어의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천오두는 내의원이 아닌 외부에서 반입되었을 가능성이—”
“닥치거라!”
허 어의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촛불이 일제히 흔들렸다.
“네가 감히 관의 법제를 논하느냐. 어의원의 모든 약재는 엄격한 검수를 거친다. 외부 반입이라니, 그런 발언 자체가 궁중 약재 관리 체계에 대한 모독이다.”
방청석에서 인혜의 손가락 하나가 소매 밖으로 빠져나왔다. 백옥 가락지가 촛불을 받아 한 번 반짝이고는 다시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으나, 눈꼬리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도사는 잠시 인혜 쪽을 힐끗 보았다가 다시 허 어의를 향했다.
“허 원장. 진정하시고—”
“아니 되오.”
허 어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의녀의 발언은 내의원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오. 독초 감별 따위를 의녀가 어떻게 안다는 말이오.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자가.”
채연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움켜쥐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허 어의의 반응이 지나치다는 사실을 이 방 안에서 눈치챈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닐 터였다.
도사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본 심문은 여기까지. 피의자의 금일 발언은 참고로만 기록하고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
목침이 세 번 울렸다.
“퇴정.”
의금부 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 어의는 채연에게 등을 보이고 먼저 심문실을 나갔다. 가죽신이 돌계단에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렸다. 인혜는 천천히 일어서며 허 어의가 사라진 문을 바라봤다. 그녀의 입술이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움직였다 사라졌다.
채연은 두 명의 하급 관원에게 부축되어 일어섰다. 발걸음이 옥사 방향으로 향하자, 그녀의 오른손이 무의식적으로 왼쪽 손목을 감쌌다.
동궁 편전. 저녁 빛이 창호지를 붉게 물들였다.
이현은 탁자 위의 백자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접시 안에는 검은 찌꺼기가 얇게 말라붙어 있었다. 사약 탕약의 잔여물이었다. 그 옆에는 의금부 하급 서리가 남기고 간 작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증거 보관소에서 이체하여 보관 중이던 잔량 일부”라는 글씨가 그의 필체로 적혀 있었다.
이현은 찌꺼기를 집어 코 가까이 가져갔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비린내였다.
생천오두 특유의 퀴퀴하면서도 날카로운 비린내. 법제된 천오두라면 이미 사라졌을 냄새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여기에 더해, 그가 여태껏 내의원에서 맡아본 적 없는 이질적인 향이 한 겹 더 얹혀 있었다. 쓴맛을 감싸는 듯한 미세한 매운 향. 약재가 아니라 가공된 독초에서나 날 법한 자극이었다.
이현이 눈을 떴다. 동공이 촛불 아래서 가늘게 수축했다.
“초오두다.”
그는 접시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내관을 불렀다.
“내관.”
“예, 전하.”
내관이 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의안고에서 십 년 전 후궁 급사 사건의 진료 의안을 가져오너라. 해당 연도의 모든 기록이다. 빠뜨리지 말고.”
내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전하. 그 기록은…… 오래되어 의안고 깊숙이 보관되어 있사옵니다. 열람에 시간이—”
“그렇다면 지금 시작하면 되겠구나.”
이현의 목소리에는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조용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내관은 더 묻지 않고 물러났다.
한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내관이 돌아와 상자 세 개를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 옛 종이 특유의 신 냄새가 방 안에 번졌다.
이현은 직접 상자를 열었다. 가장 오래된 의안부터 한 권씩 펼쳤다. 손가락이 기록의 행간을 따라 움직였다.
십 년 전 봄. 한 후궁이 원인 미상의 발열과 경련으로 사망했다. 진료 의안에는 초기 증상이 “태양병으로 인한 오한 발열”로 기록되어 있었고, 처방 또한 일반적인 해표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의안의 중간쯤, 붓의 굵기가 달라지는 지점에서 이현의 손가락이 멈췄다.
“……발작 중 구토물에서 천오두로 추정되는 약편 확인.”
이현은 숨을 들이켰다. 다음 줄로 눈을 옮겼다.
“초오두와의 감별 요.”
그다음 줄이 시작되어야 할 자리에, 한 행이 통째로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 물을 묻혀 문지른 흔적이 촛불 아래서 반들거렸다.
이현은 천천히 의안을 덮었다. 손등의 핏줄이 얇게 솟아 있었다.
“동일 계열이다.”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바닥이 얼어 있었다.
“십 년 전 후궁을 죽인 독초와, 지금 채연을 죽이려 한 사약의 독초가. 가공 흔적까지 같다.”
내관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현은 의안을 다시 펼쳐 지워진 행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내일 아침 의안고에 가라. 이 의안의 원본을 봉인 해제하여 내명부 감찰관과 합동 검증을 준비하도록. 절차는 네가 익히 알고 있겠지.”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내관이 상자를 정리하자 이현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창밖은 이미 온통 어둠이었다.
오른손 검지가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두 번. 멈춤. 다시 한 번.
채연이 옥사에서 발견한 약재 조각. 심문장에서 그녀가 입 밖에 내지 못한 말. 그리고 이 의안. 모든 것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현은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를 떠난 손가락이 탁자 위의 사약 찌꺼기 접시로 가 닿았다.
“증거는 모였다. 이제 네 차례다…… 주상궁.”
마지막 말은 바람 소리에 묻힐 듯 작았다. 촛불이 한 번 꺼질 듯 흔들렸다 다시 살아났다.
같은 시각, 이현이 지시한 내관은 동궁이 아닌 내명부 문서고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의안고로 향하고 있었다.
심문장의 촛불이 마지막으로 심지를 태울 무렵, 인혜는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허 어의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지난 경신년에도 그런 식으로 문제를 키우다 의녀 하나가 내쳐진 것. 그 말을 꺼낼 때의 손끝 떨림. 평소의 권위적인 어조와 달리, 한 박자 빠르게 내뱉은 뒷말.
인혜는 복도를 걸으며 왼손 엄지의 가락지를 천천히 돌렸다.
십 년 전 그 의녀는 쫓겨난 게 아니었다. 죽었다. 후궁의 급사와 함께.
내명부 문서고의 문을 직접 열었다. 직무상 내명부 소속 의녀 관련 의안 열람은 주상궁의 권한이었다. 평소에는 행사하지 않을 뿐.
등불을 든 하급 상궁 하나가 인혜보다 먼저 들어가 선반을 비췄다.
“경신년 시월, 후궁의 진료 의안입니다.”
인혜는 손을 내밀었다. 상궁이 건넨 것은 얇은 황지로 엮은 의안 한 권이었다. 겉장에는 어의원의 원장 인장과 함께, '경신년 시월 초아흐레 종결'이라는 묵서가 선명했다.
인혜는 책상을 향해 걸어가 앉았다. 등불을 가까이 당겼다.
첫 장을 넘기자 허 어의의 필체가 드러났다.
약재명 세 개가 처방전에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줄의 글자 둘이 먹으로 두껍게 덧칠되어 있었다. 종이를 비스듬히 기울여 불빛에 비춰 보았다. 먹칠 아래로 '천오' 두 획이 미세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세 번째 글자는 완전히 뭉개져 식별할 수 없었다.
인혜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다음 장. 사인은 딱 여섯 자였다. 체기로 인한 급사.
몸에 열이 나고 구토를 반복하다 숨이 멎었다는 경과 기록이 이어졌다. 처방은 보중익기탕. 체증에 쓰는 평범한 약이었다.
그러나 먹칠로 지워진 약재명은 보중익기탕에 들어가지 않았다.
인혜가 손가락으로 먹칠 부위를 짚었다. 종이 뒷면으로 먹물이 스며들어 굳은 자국이, 지워진 글자의 획을 역으로 드러냈다. '오' 자의 마지막 삐침. 천오두의 오.
현재 사약에 쓰인 것과 동일한 약재였다.
의안 마지막 장에는 결재란이 있었다. 어의원 원장 허, 그리고 그 옆에 내명부 상궁의 인장. 인혜는 그 인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전임 주상궁의 도장이었다. 자신이 아니라.
십 년 전 그 자리에는 다른 이가 앉아 있었다. 침묵하기로 선택한 이가.
인혜는 의안을 덮지 않았다. 왼손 엄지의 가락지가 불빛에 반사되어 차갑게 빛났다. 그녀는 오른손 검지를 가락지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백옥 안쪽 면에 음각된 한 글자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의녀의 이름이었다. 십 년 전 숨진 후궁을 마지막으로 진찰하고, 그날 밤 행방불명된 자. 기록상으로는 내쳐졌으나,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자.
인혜는 눈을 감지 않았다. 손가락이 가락지 안쪽 이름 위에 머물렀다.
“이걸로 둘째다.”
중얼거림은 등불 심지가 타는 소리에 묻혔다. 첫째는 채연의 어머니. 이번에 가만히 있으면 셋째는 채연이 될 것이었다.
인혜는 의안을 접어 품에 넣었다. 내명부 인장이 찍힌 주머니 옆, 옷감 사이로 단단한 묶음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일어났고, 가락지는 더 이상 돌지 않았다.
밤이 깊어 어의원 처소의 불도 하나둘 꺼질 무렵, 허 어의는 집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자리로 돌아왔다.
심문 내내 굳어 있던 어깨가 풀리지 않았다. 이현이 심문장 밖에서 의안고로 사람을 보냈다는 보고를 받은 순간부터, 왼쪽 관자놀이의 오래된 화상 흉터가 가렵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장 뒤 벽으로 다가갔다. 쌓아둔 의서 더미 사이에서 칡넝쿨로 엮은 낡은 별책 한 권을 꺼냈다. 겉장도 없는, 오래된 기록이었다.
책상 위에 펼쳤다. 첫 장은 을축년, 한 후궁의 처방전이었다. 천오두와 초오두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씨 가문 외청 약방에서 입수한 약재 사용 금지 건의'라는 첨지가 실에 묶여 있었다.
허 어의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첨지를 만지자 바스락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장은 그 후궁의 사망 보고서였다. 사인은 체기로 인한 급사. 공식 의안과 같았다.
그러나 이 별책에는 먹칠이 없었다. 천오두 세 글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옆으로 자신의 글씨가 빽빽하게 메모되어 있었다.
독성 발현 시간. 해독제 병행 투여 여부. 그리고 마지막 줄.
이미 중독이 진행되어 손쓸 수 없었음.
허 어의는 첨지를 뒤집었다.
“그때도 이 약재였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외청 약방에서 처음 천오두를 들여온 것은 한씨 가문의 청이었다. 후궁의 미용과 기력 회복을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그 후궁은 약을 복용한 지 사흘 만에 구토를 시작했고,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약이었다. 채연의 약연에서 나온 가루도 천오두였고, 송 상궁을 죽인 탕약도 천오두였다.
“다 알고 있었는데……”
허 어의가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그는 별책을 덮지 못하고, 첨지를 든 손을 그대로 멈췄다. 떨림이 종이를 타고 전해져 첨지 모서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동궁 편전.
이현은 내관이 가져온 의안 등본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서 있었다. 모후의 보태음 의안 외에, 오늘 확보한 십 년 전 후궁의 급사 의안까지. 두 권의 기록에는 같은 약재명이 적혀 있었다. 하나는 절취되고, 하나는 먹칠로 지워진 채.
“한씨 가문의 후궁이라 했지.”
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 전하.”
“이 후궁의 가계를 모두 추적해라. 오라비들의 관직, 혼인으로 이어진 가문 어디에도 약방과의 연관이 없는지 확인한다.”
내관이 허리를 굽혔다. “명을 받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