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연재비록

18화

해질녘, 의금부 유치장 복도에 발소리가 울렸다. 차갑고 습한 돌바닥 위로 군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벽에 걸린 등잔불이 발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채연은 앉은 채로 손목의 압박 보호대를 만지고 있었다. 포승 자국은 옅어졌으나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가 뼛속까지 번지는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손목을 돌려 보았다. 핏줄이 푸르게 비치는 손등 위로 보호대의 천이 거칠게 감겨 있었다. 쇠창살 너머로 군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면회다.”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녹슨 경첩이 긴 신음을 토했다. 들어온 것은 이현이었다.

청색 곤룡포 대신 검소한 남색 도포 차림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느렸지만 무게가 실려 있었다. 도포 자락이 바닥에 살짝 끌리며 석양 빛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채연의 손목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잠시 머문 눈빛이 무언가를 삼키듯 가라앉았다.

“전하. 이곳은——”

“안다.”

이현이 면회실 중앙의 탁자 앞에 섰다. 탁자는 나무가 삭아 가장자리가 패인 낡은 것이었다. 촛불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서 타고 있었다. 불꽃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기울었다 바로 섰다. 밀랍 냄새가 좁은 방 안을 은은하게 채웠다.

“네 어머니께서 남기신 수기를 보았소.”

채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촛불이 작게 맺혔다.

“세 가지 징후. 손톱의 검은빛. 그건 나에게도 있었소.”

이현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톱을 가볍게 눌렀다. 왼손 엄지 손톱 아래, 이제는 거의 사라진 미세한 반달 모양의 흔적.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손길이었다.

“이제는 희미하지만, 어릴 적에는 선명했지. 내 손을 잡던 상궁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움켜쥐곤 했소.”

채연이 입술을 열었다. 목소리가 약간 갈라져 있었다.

“전하의 증상은——”

“확인했다.”

그가 탁자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 아래로 오래된 나무의 결이 느껴졌다. 탁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촛농 한 방울이 굳은 표면 위로 떨어졌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그대의 수기에 언급된 민간 약재 유통망.”

채연의 눈빛이 움직였다.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촛불을 비껴냈다.

“단영에게 더 상세한 기록이 있지 않소?”

채연이 손목을 쥐었다. 보호대 아래 멍든 살이 은은하게 욱신거렸다. 오른손 엄지가 보호대 위를 눌렀다. 천이 손목 뼈에 닿는 압박감이 오히려 정신을 붙들어주는 듯했다.

“있습니다. 민간 의술서에 ‘청사’라는 약방의 조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사.”

이현이 그 이름을 천천히 되뇌었다. 두 음절이 그의 입 안에서 무게를 달리하며 굴러다녔다. 푸를 청, 모래 사—이름부터가 덧없이 흩어질 모래 같았다.

“북문 외곽의 약재 시장과 연결된 곳이오. 할머니께서 그곳의 위장 수법까지 기록하셨다고——”

“단영을 부르겠소.”

이현이 몸을 돌렸다. 도포 자락이 허리께에서 짧게 휘돌았다. 문 밖에서 대기하던 내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녀 단영에게 민간 의술서 원본을 지참하고 이곳으로 오라 전하라. 호위 병사 둘을 붙여라.”

내관이 고개 숙여 답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멀어졌다. 복도에 잠시 발소리가 겹쳤다 사라졌다. 이현이 다시 채연을 향해 섰다. 그의 얼굴에 촛불 그림자가 길게 걸렸다.

“그대가 기억하는 청사의 구체적 경로는.”

“북문 경비 교대 시간을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인시와 묘시 사이. 소금가마에 약재를 숨겨 반입하는 방식이오.”

이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속눈썹 그림자가 눈동자 위로 드리웠다.

“소금가마라면 어의원이 아닌 사재감의 물품이다.”

“그래서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채연이 보호대를 한 번 더 만졌다. 손끝으로 천의 올을 따라가며 말을 이었다.

“어의원에서는 약재 봉인만 살피니, 사재감 소속 가마는 통과가 수월했을 터. 봉인지만 멀쩡하면 그 안이 소금인지 유해한 재료인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소의 한씨의 외척이 사재감에 있다.”

이현이 말을 마치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가 그의 폐 깊숙이 들어갔다가 길게 빠져나왔다. 관자놀이에 손가락이 닿았다 떨어졌다. 맥박이 뛰는 지점을 정확히 누르는 손길이었다.

“이제야 실마리가 잡히는군. 몇 년째 그림자만 쫓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오.”

촛불이 흔들렸다. 어디선가 바람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복도 저편에서 군관의 발소리가 규칙적인 간격으로 멀어졌다. 벽에 걸린 등잔들이 일제히 빛을 떨었다.

잠시 후, 복도에 빠른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급한 숨소리가 섞인 발걸음이었다. 단영이었다. 품에 푸른 보자기를 안고, 뒤에는 호위 병사 두 명이 따랐다. 병사들의 갑옷이 부딪히며 철컥거리는 소리를 냈다.

“언니!”

단영이 문턱을 넘으며 채연의 손목을 보자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채연의 보호대 아래로 번진 붉은 기운이 단영의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세자는——”

“괜찮다.”

채연이 일어나며 짧게 말했다. 일어서는 그녀의 그림자가 벽에 크게 흔들렸다. 단영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깨문 입술 사이로 숨소리가 날카롭게 샜다. 이현이 탁자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책을 놓을 자리를 정확히 가리켰다.

“책을 펼쳐라.”

단영이 보자기를 풀었다. 푸른 보자기가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짙게 번졌다. 곰팡이와 마른 풀, 먼지가 섞인 듯한 냄새였다.

표지는 때가 타고 가장자리가 해어져 있었다. 여러 손을 거친 흔적이었다. 그녀가 손끝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손이 약간 떨렸다. 종이 귀퉁이가 바스락거리며 떨림을 따라 울었다.

“여기. ‘청사’ 조항입니다.”

채연과 이현이 동시에 시선을 내렸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잠시 겹쳤다.

책에는 작은 글씨로 약방의 구조가 적혀 있었다. 붓끝이 빚어낸 한 자 한 자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청사라 함은 북문 밖 사설 약방이라 하나, 실제로는 독초의 집산처로……’ 글씨가 가로로 또 세로로 이어지며 비밀스러운 지도를 그려냈다.

단영이 페이지를 조심히 넘겼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지 않고, 종이 모서리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자초뿌리 우회 독초. 겉은 자초뿌리처럼 보이나 단면에 독성이 스며 있다고——”

“한씨가 그걸 동궁 약방에 심어두려 했소.”

채연이 말했다. 손가락이 책의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가다 멈췄다. 자초뿌리라는 글자 옆에 누군가 그려놓은 작은 그림이 있었다. 뿌리와 잎을 닮은 흑백의 스케치였다.

“송 상궁의 사약과 같은 수법입니다. 자초뿌리로 위장했으나 실제로는——”

“초오두.”

이현이 차갑게 말했다. 그 이름이 그의 입에서 떨어지자 촛불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단영이 다음 구절을 읽었다. 목소리가 점점 단단해졌다.

“소금가마 위장 수법. 약재를 소금 포대 가운데 끼워 넣고 가마 바닥에는——”

“진짜 소금.”

채연이 말을 이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계속했다.

“겉으로 보면 소금 더미지만 안쪽은 독초입니다. 사재감의 물품이니, 어의원 검수는 겉포장의 봉인만 확인할 뿐. 소금 한 알갱이까지 뒤집어보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현이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힘줄이 푸르게 솟아올랐다.

“북문 경비 교대. 인시와 묘시 사이.”

단영이 그 구절을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톱이 종이 위를 긋지 않도록 조심하며.

“여기. ‘경비 교대 시각은 인시 말, 묘시 초로 그 사이 반 시진 동안 북문은 하급 문지기만 남는다’——”

“반 시진이면 소금가마 한 수레가 충분히 지나갈 시간이오.”

이현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의 그림자가 벽에서 길게 자라났다.

“한씨의 외척 약방이 사재감 납품 계약을 틈타 독초를 반입했다. 경로는 북문. 위장 수법은 소금가마와 자초뿌리. 매달 초하루와 보름, 인시 말. 이렇게 정확한데 어의원은 왜 몰랐단 말이오.”

채연이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그녀의 눈빛이 책장 위를 빠르게 오갔다.

“자초뿌리는 궁중 약방에도 상비된 약재입니다. 하나를 반입하면 나머지와 섞이면 감별이 어렵지요. 게다가 초오두는 무미무취에 가까워, 달여서 탕약에 섞기 전까지는——”

“바로 그 점을 노렸을 터.”

이현이 채연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촛불 위에서 잠시 얽혔다.

“이 책. 의금부에 증거로——” 발소리. 느닷없이 복도 저편에서 복수의 발걸음이 겹쳤다. 단영의 숨소리가 멎었다. 그녀의 손이 책 위에서 얼어붙었다. 채연이 보호대를 쥐었다. 천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현이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의 옆얼굴에 긴장이 드리웠다. 복도에 낮은 부르짖음이 스쳤다. 목이 눌린 듯한 짧은 비명이었다. 병사의 칼 뽑는 소리——쇠와 쇠가 마찰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다음은 촛불이 꺼지는 소리였다. 심지가 탁자 위로 고꾸라지며 마지막 연기를 토해냈다.

어둠. 순식간에 방 안을 채운 칠흑 같은 어둠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연기 냄새가 밀려왔다.

나무 타는 냄새, 기름 타는 냄새, 천 타는 냄새가 뒤섞여 콧속을 찔렀다. 복도 저편에서 붉은 빛이 벽에 어른거렸다. 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가 벽을 타고 기어오는 듯한 빛이었다.

“불이야!”

군관의 외침이 철문 너머로 울렸다. 목청 터지는 듯한 고함이 복도를 길게 타고 번졌다.

채연이 몸을 날려 탁자 위의 책을 덮었다. 어둠 속에서 손이 책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냈다. 보자기로 싸서 단영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 단영의 가슴팍에 책이 닿는 순간, 그녀의 심장이 책 너머로 쿵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가라. 뒷문으로——”

철문이 벌컥 열렸다. 경첩이 찢어지듯 비명을 질렀다. 복면을 쓴 사내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들었다.

칼날이 복도의 불빛을 받아 짧게 번쩍였다. 병사 하나가 막아섰으나, 단도가 어깨를 스치자 밀려났다. 피가 병사의 갑옷 위로 검게 번지는 순간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두 번째 병사도 탁자에 부딪혀 쓰러졌다. 탁자가 밀리며 바닥에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자객의 눈이 채연을 포착했다. 복면 위로 드러난 두 눈이 연기 속에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현이 탁자를 밀치고 나섰다. 남색 도포가 공기를 가르며 펄럭였다. 자객의 손목을 잡으려 했으나 빗나갔다.

손가락이 소매 끝을 스치고 허공을 쥐었다. 자객의 다른 손이 이현의 어깨를 밀쳤다. 강한 충격에 이현이 벽에 부딪혔다.

등뼈가 석벽에 닿는 둔탁한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숨을 몰아쉬며 벽을 짚었으나 일어서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 보였다.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기울었다.

“전하!”

채연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연기 사이를 뚫고 쇳소리로 튀어나갔다. 자객이 채연의 목을 겨누었다.

단도는 없었다. 아까 병사와 부딪히며 놓친 모양이었다. 맨손으로 조르려는 움직임——굵은 손가락이 허공에서 갈퀴처럼 오그라들었다.

채연이 뒤로 물러섰다. 발뒤꿈치가 바닥의 틈새에 걸려 비틀거렸다. 등이 벽에 닿았다. 차가운 돌이 어깨뼈 사이로 파고들었다.

손이 그녀의 목에 감겼다.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이 기도를 정확히 눌렀다. 단영이 책을 안은 채 비명을 삼켰다.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이현이 손을 뻗었으나 닿지 않았다. 그의 손끝과 채연 사이, 한 뼘의 거리가 연기로 가득 찼다.

“청사의…… 물건에 손을 댔으니.”

자객이 낮게 읊조렸다. 술 냄새와 쇠 냄새가 섞인 입김이 채연의 얼굴에 닿았다. 손의 압력이 더해졌다. 목젖 위로 엄지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연기가 면회실 안으로 밀려들었다. 검은 숨결이 방 구석구석을 핥으며 스며들었다. 불길이 복도 천장을 핥는 소리——나무가 갈라지고 기름이 터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채연의 시야가 좁아졌다. 가장자리부터 검게 물들어가며 세상이 오므라들었다. 손을 들어 자객의 팔을 잡았으나 손끝에 힘이 없었다.

보호대가 흘러내렸다. 손목의 포승 자국이 붉게 드러났다. 목의 압박이 숨을 막았다. 아무것도 들이마실 수 없었다.

연기가 목구멍으로 밀려들어왔다. 뜨거운 재 냄새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눈앞이 붉어졌다. 불빛인지 충혈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시야 전체가 피로 물든 듯 붉게 맥동했다.

이현이 벽을 짚고 일어나려 했으나 무릎이 꺾였다. 그가 숨을 들이켜며 말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움직이다 멎었다. 그의 눈에 그녀의 모습이 담겼다 사라졌다.

복도 저편. 의금부 도사의 외침이 울렸다. 쇠북소리처럼 무겁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진압하라!”

발소리. 여러 겹의 군화가 복도를 박차고 달려왔다. 칼날 부딪치는 소리——쇳소리가 복도 곳곳에서 동시에 튀어올랐다.

채연의 손이 자객의 팔에서 미끄러졌다. 감각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하나씩 사라져갔다. 의식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똑똑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한 올의 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단영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젖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또렷했다.

“언니——”

그리고 연기뿐이었다. 눈앞을 가득 채운 것은 끝없이 번져가는 회색과 검정,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타오르는 붉은 빛의 잔영이었다.

이현이 탁자를 밀치고 나섰다. 남색 도포가 공기를 가르며 펄럭였다. 자객의 손목을 잡으려 했으나 빗나갔다. 손가락이 소매 끝을 스치고 허공을 쥐었다. 자객의 다른 손이 이현의 어깨
어둠. 순식간에 방 안을 채운 칠흑 같은 어둠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연기 냄새가 밀려왔다.

나무 타는 냄새, 기름 타는 냄새, 천 타는 냄새가 뒤섞여 콧속을 찔렀다. 복도 저편에
청연재비록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