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연재비록

2화

탕약 그릇을 든 손이 잠시 멈췄다.

이현은 국자로 떠낸 탕약을 코끝으로 가져갔다. 평소 맡아온 쌉쌀한 약 냄새 사이로, 혀끝이 저릿해질 듯한 비릿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어릴 적부터 달여 마신 약이다. 오늘 냄새는 달랐다.

“전하.”

곁을 지키던 내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고 그릇을 입술 가까이 댔다.

비릿함이 목젖을 스쳤다.

처음 한 모금은 미지근할 뿐이었다. 둘째 모금을 삼키려는 순간, 혀뿌리가 갑자기 굳는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그릇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탕약이 비단 이불 위로 쏟아져 번졌다.

“전하!”

이현이 제 목을 움켜잡았다. 숨이 막혔다. 아니, 숨을 들이쉬고 있는데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이 얼얼했다. 손끝이 저릿하고 시야가 파르르 떨렸다.

내관이 달려들어 이현의 어깨를 받쳐 세웠다. 이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목젖 안쪽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이 경련하듯 오그라들었다가 펴졌다.

“어의원! 어의원에 사람을 보내라!”

내관의 외침이 침전을 울렸다. 또 다른 내관이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현은 의원이 오기 전까지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며 바닥에 떨어진 그릇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흰 백자 조각에 탕약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눈을 좁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도, 그의 시선은 약 찌꺼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의녀 처소의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단영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들었다.

“언니! 동궁에서…….”

채연이 수기를 접던 손을 멈췄다. 단영의 얼굴이 희었다.

“세자 전하께서 탕약을 드시고 쓰러지셨다 합니다. 지금 어의원에 급히 방문이…….”

채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기를 품에 넣고 소매를 끌어내렸다.

“증상은.”

“경련과 호흡 곤란이라…… 심히 위중하시다 합니다.”

채연은 이미 문을 나서고 있었다. 단영이 뒤를 쫓으며 다급히 속삭였다.

“언니 어디로…….”

“주상궁 마마께.”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동궁 쪽 복도를 지나는 하급 나인들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촛불이 급히 옮겨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주상궁의 처소 앞 복도에 다다르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채연이 무릎을 꿇었다.

“의녀 채연, 급히 아뢰올 일이 있어 왔습니다.”

침묵. 잠시 후 안쪽에서 인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시각에 무슨 일이냐.”

“동궁 전하의 탕약과 관련된 일입니다.”

긴 침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인혜가 평상복 차림으로 문지방에 서 있었다. 백옥 가락지를 천천히 돌리며 채연을 내려다보았다.

“말하라.”

채연이 고개를 들었다. 인혜의 눈빛이 촛불 아래서 날카롭게 빛났다.

“오늘 오후, 세자 전하의 탕약 재료인 백부자에서 천오두 의심 절편 네 점을 발견했습니다.”

인혜의 가락지가 멈췄다. 채연은 계속했다.

“허 어의께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탕약은 그대로 동궁에 올라갔고, 지금…….”

채연이 말을 끊었다. 인혜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자께서 드셨단 말이냐.”

“쓰러지셨다 합니다. 경련과 호흡 곤란. 천오두 중독 증상과 일치합니다.”

인혜가 입술을 다물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백옥 가락지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빨랐다.

“네가 지금 내게 바라는 것은.”

“동궁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의녀 혼자의 자격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허 어의는.”

“제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가락지가 딱 멈췄다. 인혜의 눈빛이 채연의 얼굴을 훑었다. 좌측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만약 네가 틀렸다면. 그저 상한 약재 하나에 과민했을 뿐이라면. 나까지 너를 데리고 동궁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문책을 감당해야 한다.”

채연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오른손 엄지가 왼쪽 손목 안쪽을 눌렀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탕약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그녀가 고개를 다시 들었다. 목소리는 한결 낮고 단단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세자 전하께서 위독하신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인혜가 채연을 바라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그녀가 문지방을 넘었다.

“일어나거라.”

채연이 일어나자 인혜가 소매를 털며 앞장섰다.

“내가 데리고 간다. 어의원보다 먼저 도착할 것이다. 다만 기억하라.”

인혜가 뒤돌아보았다. 표정은 온화했으나 눈빛은 움직이지 않았다.

“네 진단이 틀리면 내가 너를 감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채연이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복도를 재촉했다. 촛불이 잇달아 흔들리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짧아졌다.

동궁 침전의 문을 들어서자 약재 달인 냄새와 식은 땀내가 뒤섞였다.

허 어의가 침상 앞에서 두 명의 의관과 무언가 논쟁 중이었다. 손에는 침통을 쥔 채, 얼굴에는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망설임이 역력했다. 침상 위의 이현은 얼굴빛이 창백하고 호흡이 얕았다. 입술 가장자리에 미세한 경련이 일고 있었다.

인혜가 멈추지 않고 걸어 들어갔다. 당의 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모두 물러나십시오.”

허 어의가 고개를 돌렸다. 인혜를 확인하고도 침통을 내려놓지 않았다.

“주상궁. 지금 세자 저하께서 위중하십니다. 어의원의 진단이 먼저입니다.”

“허 어의께서는 저하께 무슨 처치를 하셨소.”

인혜의 말투는 공손했으나 끝이 살짝 올라갔다. 허 어의의 손이 침통 위에서 굳었다.

“아직 진단 중입니다. 증상이 기존의 허증과 달라......”

“진단 중이라면, 의견이 더 필요한 때로군요.”

인혜가 옆으로 반 걸음 물러서며 채연을 앞으로 드러냈다. 의관들 사이로 낮고 불쾌한 웅성거림이 번졌다.

“저 의녀는......”

“의녀가 어찌......”

채연은 침상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세자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손톱 밑이 희미하게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입 주변의 경련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됐다.

“허 어의.”

채연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저하께서 오늘 올려진 탕약을 드셨습니까.”

허 어의가 대답하기 전, 침상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시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침상으로 쏠렸다. 이현의 눈꺼풀이 가까스로 들렸다 떨어졌다. 호흡 한 번에 온 힘을 다하는 듯 가슴이 깊이 가라앉았다.

“냄새가......”

이현의 말이 끊어졌다. 인혜가 침상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저하.”

“백부자...... 냄새가...... 평소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이현의 손이 침상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손가락이 떨리며 비단 이불을 쥐었다. 채연의 눈이 순간 커졌다. 백부자. 탕약에서 의심한 바로 그 약재.

“백부자의 독성은 법제로 제거됩니다. 냄새만으로 다르다고 하시는 것은......”

허 어의의 반론에 인혜가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말을 막는 동작이었다.

“저하께선 약을 드시지도 않으셨다 하셨소. 그러니 지금 몸이 이 지경인 이유는 약이 아니오. 그런데 저하께선 백부자라 말씀하셨소.”

인혜의 백옥 가락지가 촛불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로 상체를 돌려 허 어의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허 어의께서 더 잘 아실 터.”

허 어의의 얼굴이 굳었다. 이마에 얇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가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 이현의 등이 활처럼 휘며 경련이 크게 일었다.

“저하!”

인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채연. 지금.”

명령이었다.

채연은 이미 침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허 어의가 황급히 손을 뻗어 막으려 했다.

“의녀가 세자 저하의 침을 놓는 것은 월권이다!”

“경련이 시작됐습니다. 한 시진 안에 호흡이 멎을 수 있습니다.”

채연이 허 어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의학적 사실을 말할 때 특유의, 지위를 신경 쓰지 않는 어조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세자의 손목을 짚었다. 맥이 빠르고 가늘었다. 부정맥에 가까운 불규칙한 박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하지 냉증. 손끝 청자색. 입술 경련. 불규칙한 호흡.”

채연이 빠르게 읊으며 다른 손으로 세자의 목을 옆으로 기울여 동공을 확인했다. 동공이 축소되어 있었다.

“부자 독성입니다. 독작약과 감초를 달인 해독제가 필요합니다.”

“부자 독성이라 단정할 근거는 무엇이냐!”

허 어의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채연이 세자의 소매를 걷어 올리며 대답했다.

“증상이 전형적입니다. 그리고 저하께서 백부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약 냄새를 구분하신 겁니다.”

침통을 열었다. 가늘고 긴 침 한 개를 꺼내 불에 소독했다. 인혜가 일어나 의관들 앞을 가로막았다.

“어느 누구도 이 의녀를 막지 마시오. 저하의 뜻이다.”

허 어의의 입술이 떨렸다. 관자놀이의 화상 흉터가 붉어졌다.

“주상궁...... 결과에 책임을 지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책임을 묻기 전에, 허 어의께서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 많을 터.”

인혜의 말에 허 어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채연은 대화에 신경 쓰지 않고 침을 세자의 합곡혈에 놓았다. 이현의 경련이 한 번 크게 일었다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족삼리와 백회에 추가 침을 놓겠습니다. 해독제 재료를 준비해주십시오. 독작약, 감초, 생강. 내의원 약방에 모두 있습니다.”

채연이 흐트러짐 없이 지시했다. 그녀의 손은 이미 두 번째 침을 집고 있었다.

의관 하나가 인혜를 쳐다보았다. 인혜가 턱짓으로 허락을 대신했다. 의관이 침전을 나서며 뛰기 시작했다.

허 어의는 침상 옆에서 물러서지도 개입하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손에 쥔 침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채연이 세 번째 침을 백회에 놓았다. 이현의 호흡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반 시진이 지났다.

해독제 그릇을 받쳐 든 하급 조제사 한 명이 침상 옆에서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채연이 직접 약 그릇을 받아 세자의 입술로 천천히 기울였다. 한 모금, 다시 한 모금. 이현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채연의 왼손은 여전히 세자의 손목을 짚고 맥을 세고 있었다.

맥이 점차 안정되고 있었다. 얕았던 호흡이 깊어졌다. 청자색이던 손톱 밑이 분홍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경련이 멈췄습니다.”

채연이 조용히 말하며 세자의 팔을 이불 안으로 넣어주었다. 침전 안의 긴장이 비로소 조금 풀렸다. 의관 하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허 어의가 그때야 침상을 벗어나 탁자 쪽으로 몇 걸음 물러섰다. 채연이 일어나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허 어의.”

허 어의가 대답하지 않았다. 채연이 한 걸음 다가갔다.

“오늘 올려진 탕약의 백부자에서 천오두 의심 절편을 발견했습니다. 아침에 보고드린 그 절편입니다.”

“......그 약재는 검사했다. 백부자가 맞았다.”

허 어의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지만,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하께서 의식이 혼미한 와중에도 약 냄새를 구분하셨습니다. 백부자가 아니라고. 만약 법제가 제대로 된 백부자였다면 이렇게 급성 중독 증상이 나타날 이유가 없습니다.”

“법제 불량일 수도 있다.”

“법제 불량 백부자라면 복통과 구토가 먼저입니다. 경련과 말초 청색증은 백부자 중독이 아닙니다. 천오두 중독 증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채연의 말투는 차분했으나 한 글자도 양보하지 않았다. 허 어의가 침묵했다. 손에 쥔 침통을 조제 탁자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딱, 하고 울렸다.

“......약방 관리가 소홀했군.”

허 어의의 말에 채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약방 관리가 아니라, 약재 감별의 문제입니다.”

“네 본분을 잊었느냐. 의녀가 어의원의 약재 감별을 운운하다니.”

허 어의의 목소리가 다시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채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더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세자의 안전이 먼저였다. 약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으로 남기면 된다.

인혜가 채연과 허 어의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허 어의. 어의원에서는 후속 처방을 조정하시고, 오늘 올려진 탕약의 잔여분을 즉시 봉인하여 내명부로 보내십시오. 이 건은 내명부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허 어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인혜의 시선이 채연에게로 옮겨갔다.

“너는 나와 함께 나가자.”

동궁 밖 복도는 적막했다. 인혜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복도 중간쯤까지 걸어가다가 기둥 옆에서 발을 멈췄다. 복도에 걸린 등롱 불빛이 인혜의 얼굴 절반을 어둡게, 절반을 붉게 물들였다.

“오늘 일은 잊어라.”

인혜가 입을 열었다. 손가락이 허리춤의 은장도 손잡이로 갔다. 천천히 만지작거렸다.

“네가 의녀 신분으로 어의원의 일에 직접 개입한 것은 중죄다. 의녀가 세자 저하의 몸에 침을 놓은 것은, 누군가 문제 삼으면 파직으로도 모자라 귀양이다.”

채연이 고개를 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라.”

인혜가 말을 잘랐다. 은장도를 만지는 손가락이 빨라졌다. 백옥 가락지가 그 움직임에 따라 깜빡였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오늘처럼 네 편에 설 수 없다. 나는 내명부의 상궁이다. 의녀 하나를 지키기 위해 어의원 전체와 싸울 수는 없어.”

말투는 여전히 공손했지만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인혜가 숨을 들이쉬었다.

“네 실력은 오늘 확인했다. 허나 그것이 오히려 너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을 명심해라. 궁중에서 뛰어남은 칭찬받는 미덕이 아니라, 표적이 될 이유일 뿐이다.”

인혜의 시선이 잠시 복도 끝으로 향했다. 저 멀리 동궁 침전 문이 닫혀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은장도에서 떨어졌다.

“......가 봐라. 약방으로 돌아가서 오늘 이후 네가 해야 할 일을 해.”

채연이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등을 돌리기 전, 그녀의 손이 저도 모르게 당의 안쪽을 짚었다. 어머니의 수기가 접혀 품속에 있었다.

약방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이 사건을 기록해야 한다. 백부자와 천오두의 혼동, 세자의 중독 증상, 해독 처방의 효과. 하나도 빠짐없이. 어머니가 그랬듯이.

채연이 복도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돌바닥에 낮게 깔렸다. 인혜는 채연의 뒷모습이 복도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은장도로 가져갔다. 이번에는 손잡이 끝을 엄지로 누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깊은 밤. 소의 한씨의 처소 안은 향낭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보향이 문을 조용히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향낭 매듭을 풀었다 묶었다 하고 있었다.

“마마. 동궁에서 보고가 왔습니다.”

한씨의 손이 멈췄다. 보향이 한 걸음 더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

“세자 저하께 쓰러지셨으나, 의녀 하나가 침을 놓아 살렸다고 합니다.”

“의녀라.”

한씨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향낭을 쥔 손가락이 매듭을 비비기 시작했다. 말투는 느리고 나른했다.

“어느 의녀지.”

“채연이라 합니다. 내의원 약방 소속입니다.”

한씨의 손가락이 향낭을 더 세게 비볐다. 오른손 약지손톱 안쪽이 촛불 아래 드러났다. 얕은 검은빛 변색이 손톱을 따라 길게 번져 있었다.

“......흥미롭군.”

한씨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향낭에서 약재 내음이 진하게 풍겨 올랐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연재비록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