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연재비록

3화

약방 문턱을 넘자마자 약초 가루 냄새가 아니라 긴장된 침묵이 먼저 밀려왔다.

허 어의가 좌경 의관 둘을 대동하고 약재 선반 앞에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채연을 향해 돌아섰다. 단영이 약방 구석에서 약사발을 든 채 굳어 있었다.

“들어오게.”

허 어의의 목소리는 진료소에서보다 낮았다. 채연이 예를 갖추고 안으로 들어서자, 좌경 의관 중 한 명이 약방 문을 닫았다.

“자네, 어젯밤 동궁에서 무슨 짓을 했나.”

“세자 전하의 탕약에서 천오두 독성을 의심하여 침을 놓고 해독제를 투여했습니다.”

“누구 허락을 받고.”

채연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주상궁 마마께서 내의원에 대기하라 하셨고, 전하의 용태가 급박하여 먼저 시침했습니다.”

좌경 의관 둘이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허 어의의 수염이 가볍게 떨렸다. 그가 손등으로 약탕기를 한 번 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녀가 동궁 침전에 무단 진입하고, 어의원의 진단도 없이 독초 해독 처방을 행했다. 이것이 의녀의 본분인가.”

“세자 전하께서 경련과 호흡 곤란을 보이셨습니다.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지체할 수 없었다.”

허 어의가 채연의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 그의 손끝이 약탕기 가장자리를 한 번 더 쓸었다.

“자네는 어의원의 규율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동궁 침술은 어의의 고유 권한이다. 의녀는 진단도, 침술도, 해독 처방도 단독으로 시행할 수 없다.”

채연이 왼쪽 손목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쥐었다. 손끝 아래로 맥이 뛰었다.

“그럼에도 세자 전하께서 회복되셨습니다. 독성이 신경에 도달하기 전 해독제가 투여된 결과입니다.”

“결과가 좋았다 해서 절차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허 어의가 약탕기 뚜껑을 들어 올렸다 닫았다. 금속이 부딪히는 짧은 소리가 약방 안에 울렸다.

“오늘부터 자네의 모든 조제와 진단은 상급 의관 입회 하에만 시행한다. 감찰을 위해 내명부에 통보할 것이다.”

좌경 의관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마른 체구에 눈썹이 옅은 의관이었다.

“채연 의녀, 지금부터 약방 출입 시 검사를 받게 될 거요. 약재 보관함 열쇠도 별도 관리로 전환합니다.”

채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허 어의의 좌측 관자놀이에 닿았다. 별 모양의 오래된 화상 흉터가 등불 아래 희미하게 드러났다.

“어의원의 품격을 더럽힌 책임은 별도로 물을 것이다.”

허 어의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등을 돌렸다. 두 좌경 의관이 그 뒤를 따랐다. 약방 문이 열리고 닫혔다.

단영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언니…….”

“약사발 내려놔.”

채연의 말투는 평소보다 짧았다. 단영이 서둘러 약사발을 선반에 올렸다.

약방 문 앞에 발소리가 멎었다. 내명부에서 파견된 나인이 문 옆에 서는 그림자가 문틈으로 비쳤다. 채연은 그 그림자를 잠시 바라보다 약재 기록부를 꺼내 폈다.

단영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언니, 세자 전하께서 정말 의식을 되찾으셨대요?” 채연이 기록부를 넘기며 답했다. “주상궁 전갈이 그랬다.”

오전이 반쯤 지났을 무렵, 복도 저편에서 여러 겹의 발소리가 밀려왔다.

채연이 약방 문 앞에 서서 약포지를 접고 있었다. 나인이 그 곁을 굳은 얼굴로 지키고 서 있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향낭 냄새가 짙게 배어 왔다. 오향과 사향, 그 사이로 감별하기 어려운 쓴내가 섞여 있었다.

소의 한씨가 복도 모퉁이를 돌아섰다. 분홍빛 당의에 진주 자수가 촘촘히 박힌 옷자락이 바닥을 스쳤다. 두 명의 수하 나인이 뒤를 따랐고, 그 뒤로 입회 진행관 한 명이 약간 떨어져 걸었다.

한씨가 약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이 내의원 약방이로군.”

수하 나인 하나가 재빨리 허리를 굽혔다.

“마마, 길이 좁사오니 조심하시옵소서.”

한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약방 문 앞에 선 채연에게 닿았다.

“네가 세자 저하를 살린 의녀냐.”

채연이 예를 갖추었다.

“의녀 채연입니다.”

한씨가 천천히 다가왔다. 향낭에서 풍기는 쓴내가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졌다. 그녀가 채연의 앞에 멈추고 손을 내밀었다.

“손을 보자.”

채연이 오른손을 내밀자, 한씨가 손목을 잡아 가볍게 뒤집었다. 손가락 마디의 굳은살과 손톱 아래 염색 자국이 드러났다. 한씨의 엄지가 채연의 검지 옆 굳은살을 느리게 쓸었다.

“이 손으로 세자 저하의 목에 침을 꽂았느냐.”

채연이 손목을 빼지 않았다.

“경혈을 따라 시술했습니다.”

한씨의 입술이 얇게 벌어졌다. 웃음 같기도 하고 감탄 같기도 한 표정이 스쳤다. 그녀가 상체를 살짝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수하 나인들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였다.

“세자 저하를 건드린 대가는 네가 짐작하는 것보다 비싸다. 내의원의 규율쯤으로 끝날 일이 아니야.”

채연이 손목을 곧게 세우며 한씨의 손아귀에서 천천히 빼냈다. 한씨의 손이 허공에 잠시 멈췄다.

그때 채연의 시선이 한씨의 오른손 약지에 고정되었다. 손톱 안쪽으로 얕은 검은빛 변색이 길게 번져 있었다. 약초 가루가 손톱 밑에 오래 눌어붙은 것과는 다른 색이었다. 금속성에 가까운 어두운 빛깔.

채연의 시선이 한씨의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오향이 섞인 향낭 매듭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매듭 사이로 미세한 가루가 묻어 있었고, 그 가루에서 풍기는 냄새는 오향의 단내에 감춰져 있었다.

한씨가 물러서며 매듭을 손끝으로 툭 쳤다.

“보향, 이 아이 기록은 남겨두어라.”

그녀가 등을 돌리며 채연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네 이름, 기억해두마.”

수하 나인들이 일제히 뒤를 따랐다. 입회 진행관이 벽 쪽으로 비켜서며 허리를 꺾었다. 복도에 향낭 냄새만 남았다.

채연은 약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단영이 약탕기 앞에서 입을 반쯤 벌린 채 서 있었다.

“무슨 일이셨어요?”

채연이 약재 기록부를 펼쳤다. 붓에 먹을 찍어 손톱 변색의 색조와 향낭 매듭 사이 가루의 외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붓이 종이 위를 빠르게 지나갔다.

단영이 기록부를 힐끗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언니, 저 분 손톱…….”

“신경 쓰지 마.”

채연이 붓을 내려놓고 약보관함을 열었다. 백부자 통이 선반 맨 안쪽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녀가 통을 집어 들고 빛에 비춰 절편의 단면을 다시 살폈다. 방사형 유관속 배열이 선명했다. 멀쩡한 백부자뿐이었다.

채연이 통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기록부의 빈 여백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향낭 가루, 추후 감별 요.’

약방 문이 닫힌 뒤 복도를 메우던 향낭 내음이 채연의 소매 깃에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약보관함을 정리하고 기록부를 덮자 조제실로 발길이 옮겨졌다.

조제실 안은 약재 찌꺼기 냄새와 식은 재의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채연은 구석 작업대 앞에 앉아 품에서 어머니의 수기를 꺼냈다. 표지 귀퉁이가 닳아 실밥이 풀린 자리가 손끝에 걸렸다.

그녀는 수기를 펼쳐 몇 장을 넘겼다. '흑지현상'이라 적힌 항목에서 손이 멈췄다.

독초를 상습적으로 취급하는 자는 기혈이 손상되어 조갑하 울혈이 생긴다. 손톱 밑바닥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서서히 번지며, 특히 약지와 소지에서 먼저 발현된다.

채연의 시선이 글자 위를 느리게 훑었다. 오른손 약지손톱 안쪽. 얕은 검은빛 변색. 오늘 오후, 한씨가 향낭을 비빌 때 분명히 보았다.

수기를 한 장 더 넘겼다. '오향약재'에 관한 기록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사향, 용뇌, 정향, 백단향, 그리고 다섯 번째 향료의 이름은 먹물이 번져 읽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 다섯 번째 향이 독초의 비린 맛을 감추는 데 쓰인다고 적었다. 너무 강한 향은 오히려 의심을 사니, 숙련된 자는 향낭에 섞어 은폐한다고.

채연은 조제대 서랍에서 새 감별 일지를 꺼냈다. 표지는 푸른 삼베였고, 속지는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였다. 그녀는 붓에 먹을 묻혀 천천히 첫 줄을 썼다.

소의 한씨 손톱 변색 및 의문의 향낭.

아래 이어지는 글씨는 작고 정갈했다. 우측 약지손톱 내측 흑색 변색 확인. 수기 소견과 부합. 향낭에서 오향약재 추정 향 감지. 세자 저하 탕약 사건과의 연관성 미상.

붓을 내려놓았다. 먹물이 종이에 스며드는 동안, 채연은 자신의 기록이 내의원 정식 의안도 아니며 어디에도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녀도 쓰기로 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저녁 무렵이 되자 약방 바깥 공기가 한결 차가워졌다. 채연이 약방 정문 앞에 서서 소매를 여미는 순간, 회랑 저편에서 나인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의녀 채연이시오.”

나인의 숨이 약간 가빴다.

“주상궁 마마 전갈이 있습니다. 세자 전하 복음을 가지고 왔소.”

채연은 고개를 약간 숙였다. 나인이 목소리를 낮췄다.

“세자 저하께서 오늘 처음으로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회복 중에 당신 이름을 언급하셨다 합니다.”

채연의 손이 저도 모르게 소맷자락 안으로 들어가 손목을 쥐었다. 맥박이 손끝을 눌렀다.

“주상궁께서 덧붙이셨습니다. 곧 몸소 오실지 모르니 대비하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나인은 전할 말을 마쳤다는 듯 한 걸음 물러섰다. 채연이 입을 열었다.

“세자 저하의 현재 상태는.”

의료인의 어조였다. 차분하고 맥을 짚는 듯한 물음.

나인이 잠시 망설였다.

“……탕약을 조금 드셨고, 침 치료 부위의 부종이 가라앉았다 합니다. 주상궁께서 당신에게 그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채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 냄새만으로 백부자 이상을 감지하던 사람. 그 사람이 혼미 속에서도 의녀의 이름을 기억했다는 건 회복의 신호인 동시에 위험의 신호였다. 인혜가 몸소 오실지 모른다는 전갈은, 그 연결을 확인하기 전까지 채연을 감시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주상궁 마마께 전하겠습니다.”

채연은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명을 받들어 대기하겠다고.”

나인이 돌아서서 회랑 저편으로 사라졌다. 채연은 약방 문턱에 선 채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 깊어 조제실에 다시 불을 켰다. 촛농이 밀려 떨어지고 심지가 짧아져 불빛이 가물거렸다. 채연은 감별 일지를 덮어 서랍에 넣으려던 손을 멈췄다.

문틈 아래로 종이 한 장이 밀려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몸을 굽혀 종이를 집었다. 접힌 면에서 희미한 가루가 떨어져 손가락에 묻었다. 냄새를 맡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독초 가루였다.

종이를 펼쳤다. 붉은 먹의 필체가 촛불 아래 드러났다.

네 놈의 혀를 조심하라.

교태로운 듯 휘어진 획들이었으나, 붓끝에 실린 힘은 종이 뒷면까지 먹물을 배어들게 할 만큼 강했다. 한씨의 글씨였다.

채연은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도록 엄지에 힘을 주며 접힌 선을 눌렀다. 그리고 감별 일지를 다시 꺼내, 접은 편지를 속지 사이에 끼워 넣었다.

일지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고, 그녀는 정면을 응시했다. 촛불이 마지막으로 한 번 흔들리더니 이내 고요해졌다.

한씨가 천천히 다가왔다. 향낭에서 풍기는 쓴내가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졌다. 그녀가 채연의 앞에 멈추고 손을 내밀었다.

“손을 보자.”

채연이 오른손을 내밀자, 한씨가 손목을 잡아
한씨가 천천히 다가왔다. 향낭에서 풍기는 쓴내가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졌다. 그녀가 채연의 앞에 멈추고 손을 내밀었다.

“손을 보자.”

채연이 오른손을 내밀자, 한씨가 손목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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