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연재비록

21화

인혜가 소의 한씨의 처소 문 앞에 섰다. 뒤로 감찰 나인 넷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한 명은 봉인함을 들고 있었다.

문지기가 허리를 굽히며 길을 막았다.

“마마께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인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감찰 나인이 문을 열자 내실 깊은 곳에서 향낭 냄새가 흘러나왔다. 짙고 달콤한, 속을 가리는 향이었다.

“내명부 규례 제37조에 의거하여 감찰을 집행한다.”

인혜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한씨가 화장대 앞에서 몸을 돌렸다. 붓을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눈썹을 반만 그린 얼굴이 거울 너머로 비쳤다.

“주상궁이 이런 시각에 무슨 일이시오.”

한씨의 미소가 거울에 걸렸다. 입가만 올라갔다.

“소의 마마의 양손을 검사하고, 허리춤 향낭을 압수하겠습니다.”

한씨가 붓을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왼손으로 치맛자락을 쓸었다.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등 뒤로 접혔다.

“내 처소에서 내 물건을 압수라…… 근거가 있으시겠지요.”

“의금부 심문에서 새 증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인혜의 왼손 엄지가 백옥 가락지를 한 바퀴 돌렸다. 한씨의 눈이 그 움직임을 쫓았다.

“증언만으로 내명부 감찰을? 주상궁께서 참 조급해지셨소.”

“조급함을 말씀하시려면, 마마의 손부터 내보이심이 순서일 듯합니다.”

인혜가 손가락 하나로 감찰 나인에게 신호했다. 두 나인이 한씨의 좌우로 다가섰다.

한씨가 반 걸음 물러서며 오른손을 더 깊이 감췄다. 등 뒤로 쥔 손가락 사이에서 비단이 바스락거렸다.

“감히 소의의 몸에 손을 대려는 것이냐.”

“거부하시면, 그것 또한 감찰록에 기록됩니다.”

인혜의 말은 끝이 매끄러웠다. 칼날을 천으로 감싼 듯했다.

한씨가 잠시 인혜를 응시했다. 입술이 얇게 당겨졌다. 그 짧은 틈에 좌측 나인이 한씨의 왼쪽 팔목을 잡았다.

한씨가 팔을 뿌리치려 몸을 틀었지만, 우측 나인이 그 틈에 뒤로 감춘 오른손목을 낚아챘다. 이불 속 실을 뽑아내듯 손목이 밖으로 끌려 나왔다.

“놓아라!”

한씨의 목소리에서 애교가 벗겨졌다. 차갑고 짧은, 명령조에 가까운 어조였다. 오른손 약지가 손바닥 안으로 말려들었으나 나인이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약지손톱 안쪽에 검은빛이 실낱처럼 박혀 있었다.

햇살이 창호지 너머로 스며들어 그 선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인혜는 한 걸음 다가서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내려다보았다.

“기록하라. 소의 한씨의 오른손 약지손톱 안쪽에서 검은 변색이 확인되었다.”

서기 나인이 붓을 움직였다. 한씨의 손목을 잡은 나인은 손톱을 빛에 비추어 각도까지 확인한 뒤 기록을 덧붙였다.

“향낭.”

인혜가 손바닥을 펴자 다른 나인이 향낭의 매듭을 풀었다. 한씨가 몸을 비틀었으나 양쪽 나인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내 사적인 물건이오. 손톱 변색만으로 향낭까지 압수할 권한은 없다.”

“사적 물건에서 독초 가루가 검출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마마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인혜의 말투는 여전히 공손했다. 향낭이 벗겨져 나인의 품으로 들어가는 동안 한씨의 호흡이 짧아졌다.

“보호라…… 주상궁 말씀처럼, 누군가 이 향낭에 무언가 넣었을 수도 있겠지요.”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감별이 필요합니다.”

인혜는 직접 봉인함의 뚜껑을 열었다. 나인이 향낭을 안에 내려놓았다.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처소 안에 낮게 울렸다.

한씨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두 나인이 손목을 놓자 오른손이 허공에 짧게 떠 있었다. 약지손톱의 변색은 거두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상궁께서 감당하시겠지요.”

“감당은, 내명부를 세운 날부터 해온 일입니다.”

인혜가 손을 들어 나인들에게 물러남을 지시했다. 네 나인이 뒷걸음으로 내실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봉인함은 두 나인이 함께 들었다.

인혜는 마지막으로 몸을 돌리며 한씨를 향했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오늘 밤, 마마의 처소는 내명부 감찰 나인의 호위 아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 말만 남기고 문을 나섰다.

남겨진 내실에서 한씨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펴지 않은 오른손 약지가 가늘게 떨렸다. 돌아보지도 않고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보향이 구석에서 기어 나오듯 다가왔다.

“마마……”

“연락해. 북문 밖에.”

보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벌써 불이…… 약방도 남은 게 없사옵니다.”

한씨의 손이 멈췄다. 손톱 끝 검은빛이 화장대 촛불에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남은 것 하나는 있지.”

촛농이 놋쇠 접시에 떨어졌다. 한씨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붓을 다시 집었다. 끊긴 눈썹을 잇는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신시 초. 내명부 감찰실.

촛불이 세 갈래로 밝혀졌다. 방 한복판 탁자 위에 봉인함이 놓였다.

채연은 탁자 앞에서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양 손목에 남은 포승 자국은 붉은 기가 옅어져 갈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왼쪽 손목을 다시 쥐지도 않았다.

맞은편에 허 어의가 앉았다. 팔짱을 낀 채 좌대에 기대어 있었다. 시선은 봉인함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인혜가 뚜껑을 열었다. 한씨의 향낭이 붉은 비단 위에 얹혀 나왔다. 채연은 작은 백자 접시를 받쳐 들었다.

“봉인을 풀겠습니다.”

서기 나인이 붓을 들었다.

향낭의 매듭이 풀렸다. 채연은 안의 가루를 접시에 조금씩 떨어냈다. 향보다 먼저 냄새가 올라왔다. 생것 특유의 비릿함이 섞인 맵고 건조한 취였다.

“짙은 매운내. 습기를 머금은 천오두 분말 특유의 향입니다.”

서기의 붓이 움직였다. 채연은 접시에 물 두 방울을 떨어뜨리고 검지 끝으로 살짝 비볐다. 손끝 아래서 가루가 미끈거렸다.

“습식 촉감, 미끄러짐.”

좌대에서 팔짱이 약간 풀렸다. 허 어의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채연은 젖은 가루를 작은 은침으로 찍어 흰 종이 위에 얇게 펼쳤다. 빛을 비스듬히 대자 입자 사이로 검은빛이 실핏줄처럼 번졌다.

“현미경 없이 육안으로도 감별 가능한 법제되지 않은 천오두 분말입니다. 입자가 고르고 굵으며, 중간에 투명한 결정체가 섞여 있습니다.”

허 어의가 손을 내밀었다. 채연이 접시를 건넸다. 허 어의는 냄새를 맡지도 않고 엄지와 검지로 가루를 비볐다. 손끝에서 미끈함이 번지자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어디서 이 감별법을 익혔나.”

“모친의 수기에 적힌 방법입니다.”

허 어의가 접시를 내려놓는 손이 느려졌다.

“약지손톱 변색과 향낭 가루가 같은 종류의 독초임을 확인해 주십시오.”

채연이 다른 접시에 손톱 긁기용 면포를 얹었다. 인혜가 이미 받아 둔 한씨의 손톱 기록을 펼쳐 탁자 위에 올렸다. 손톱의 변색 위치가 붓으로 그려져 있었다.

허 어의가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이마에 얇은 주름이 잡혔다.

“……십 년 전에도.”

말을 채 잇지 못했다.

“경신년에도 같은 변색이 있었습니까.”

채연이 물었다. 허 어의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무릎 위에 두었던 손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번 하고 멈췄다.

“손톱 변색의 패턴, 분말의 습식 반응, 미끄러짐의 정도. 이 세 가지가 일치합니다. 향낭 속 가루는 천오두 분말이며, 소의 한씨의 손톱 변색은 이 분말을 반복해서 직접 다룬 결과입니다.”

채연의 말에 서기 나인의 붓이 멈추지 않았다.

인혜가 기록지를 집어 들어 어의원 입회 확인란에 눈을 내렸다.

“허 어의께서 입회 감별 결과의 타당성을 확인하십시오.”

허 어의는 채연을 보았다. 그녀의 손가락 끝은 이미 굳은살 위로 묽은 검은 염색이 배어 있었다. 그 손가락을 오래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감별 결과는 타당하다. 이 가루는 법제되지 않은 천오두다.”

말을 마친 뒤 다시 좌대에 기대었으나, 손은 팔짱을 다시 끼지 못했다.

인혜가 감별서에 내명부 직인을 찍었다. 먹물이 번지기 전에 서기가 붉은 실로 봉인했다.

“이 감별서와 함께 향낭은 내명부 감찰실에서 봉인 보관된다.”

채연은 접시를 하나씩 닦아 제자리에 놓았다. 왼쪽 손목의 포승 자국이 소매 밖으로 잠깐 드러났다가 다시 가려졌다.

허 어의는 그 자국을 보았다. 이내 시선을 촛불로 돌렸다.

불꽃이 탁자 위 감별서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먹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유시 초. 소의 한씨 처소 내실.

등롱이 세 개 켜져 있었다. 감별 결과가 내명부 공식 문서로 정리되어 주상궁에게 보고된 지 반 시진이 지났다. 한씨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오른손 약지손톱을 비단 헝겊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검은 기운은 닦이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보향이 무릎을 꿇었다. 손등에 핏줄이 섰고 어깨가 굳어 있었다. 한씨는 거울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내 향낭에 독초를 넣었구나.”

보향의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마마…… 소인은……”

“여기까지 와서 부정할 셈이냐.”

한씨가 몸을 돌렸다. 미소가 입가에 걸렸으나 목소리는 낮고 빨랐다. 오른손 약지가 보향의 이마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네 오라비, 장액 말이다. 내일부로 북쪽 수자리로 갈 테냐.”

보향의 손이 바닥을 긁었다. 손톱 밑에 흙도 독초 가루도 묻어 있지 않았다. 한씨가 보향의 턱을 손가락 하나로 들었다.

“자백해라. 모든 것은 네 소행이라고.”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주상궁 인혜가 들어섰다. 채연이 그 뒤를 따랐다. 한씨의 손이 보향의 턱에서 떨어졌다.

“주상궁 마마. 보향이 막 실토했습니다. 천오두를 제 향낭에 넣은 것이 자신의 소행이라 하였사옵니다.”

인혜가 보향을 내려다보았다. 보향은 바닥만 향한 채 숨만 몰아쉬었다.

“그리하였느냐.”

“……예. 모두 소인의 짓이옵니다.”

채연이 반 걸음 나섰다. 시선이 보향의 손에 닿았다. 손가락 사이, 손톱 밑, 손금. 어느 곳에도 검은 잔여물은 없었다. 독초를 맨손으로 다루었다면 반드시 남아야 할 변색 자국이었다.

“보향은 독초를 만지지 않았습니다.”

채연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한씨의 미소가 얇아졌다.

“네 주제에 무슨 발언이냐.”

“천오두 분말을 맨손으로 다루면 손톱 밑과 손금이 검게 변색됩니다.” 채연이 보향의 두 손을 가리켰다. “보향의 손에는 그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보향의 어깨가 떨렸다. 입을 열려다 한씨를 힐끗 보았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채연이 인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재감식을 요청합니다. 보향의 두 손을.”

인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씨의 오른손이 소매 안으로 말려들었다.

“내명부에서 수용하겠다. 보향을 감찰실로 이송하라.”

한씨가 일어섰다.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눈 아래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억울하옵니다, 주상궁 마마. 저는 독초를 다룬 적도……”

“이미 감별서가 나왔소.” 인혜의 목소리는 물처럼 고요했다. “소의께서도 감찰실로 가시지요.”

한씨의 손톱이 소맷자락을 긁는 소리가 실내에 작게 울렸다. 보향은 하급 궁녀 두 명에게 붙들려 일어났다. 한씨가 문 쪽으로 걸어가다 채연 옆에서 잠시 멈췄다.

“의녀. 네 어미처럼 될 것이다.”

속삭임이었다. 채연은 대꾸하지 않았다. 오른손 엄지가 왼쪽 손목 맥이 뛰는 곳을 눌렀다. 힘을 주지 않았다. 한씨가 문을 나섰다.

술시 초. 내명부 회랑.

회랑의 등롱이 절반만 켜져 있었다. 보향과 한씨가 각각 감찰실로 이송된 뒤, 인혜가 감찰 기록을 챙겨 먼저 자리를 떴다.

채연은 회랑 기둥 옆에 서 있었다. 품 안의 어머니 수기가 옷깃을 통해 체온을 받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이현이었다. 의금부 도사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독초의 궁중 반입 경로를 밝히기 전까지는, 누구도 최종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

이현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회랑 전체에 닿았다. 의금부 도사가 읍했다.

“한씨 외척의 약방 반입 기록을 조사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겠사옵니다.”

“착수하라.”

도사가 물러났다. 발소리가 회랑 저편으로 사라지자 이현이 채연 쪽으로 다가섰다. 옥관 아래 관자놀이가 촛불에 푸르스름하게 드러났다.

“손목은 어떠냐.”

“괜찮습니다.”

채연이 품에서 어머니 수기를 꺼냈다. 손끝이 표지의 닳은 모서리를 짚었다.

“이 수기 말미에, ‘청사의’라는 조직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기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어머니의 글씨는 획이 가늘고 길었다. ‘경신년 시월 초닷새.

청사에서 들여온 약재 중 백부자와 천오두 혼입 건. 북문 경비 교대 시 반입. 사방주 강 도사.’

이현이 수기 위로 몸을 기울였다. 손가락이 ‘강 도사’ 석 자 위를 짚었다.

“사방주라면 조직의 간부겠군.”

“한씨의 배후가 단순한 외척이 아닙니다. 약재 유통을 관장하는 조직이 따로 존재합니다.”

“이것을 내명부 공식 조사 범위에 포함시키겠다.”

이현이 수기를 채연에게 돌려주며 손을 거두지 않았다. 손가락이 채연의 손등에 짧게 닿았다. 차가웠다.

“네 어미의 수기가 아니었다면, 이 지점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채연이 수기를 접어 품에 넣었다. 가락지 낀 왼손이 오른손 위를 덮었다.

“어머니의 기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한씨가 반 걸음 물러서며 오른손을 더 깊이 감췄다. 등 뒤로 쥔 손가락 사이에서 비단이 바스락거렸다.

“감히 소의의 몸에 손을 대려는 것이냐.”

“거부하시면, 그것 또한 감찰록
“놓아라!”

한씨의 목소리에서 애교가 벗겨졌다. 차갑고 짧은, 명령조에 가까운 어조였다. 오른손 약지가 손바닥 안으로 말려들었으나 나인이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약지손톱 안쪽에
청연재비록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