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들리지 않는 진심

1화

법정의 공기는 늘 마른 종이 냄새였다.

서이언은 통역사석에서 손목시계를 한 번 만졌다. 진동 알람은 꺼둔 지 오래. 법복의 판사가 자리 잡고, 속기사가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통역인 선서를 진행하겠습니다.”

서이언이 일어나 오른손을 들었다. 손끝이 약간 저릿했다—오늘 첫 통역 전에는 늘 이랬다.

“본인은 양심에 따라 성실히 통역할 것을 선서합니다.”

낮고 평평한 목소리. 십 년 동안 수천 번 반복한 선서였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이언은 다시 앉았다.

증인석에는 우상일이 있었다. 낡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어깨를 잔뜩 움츠렸고, 귀에는 이명 차폐 장치가 꽂혀 있었다.

서이언이 그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천천히, 명확하게. 이름.

우상일의 눈이 그 손끝을 따라갔다. 떨리는 손이 올라왔다. 네.

긴장하지 마십시오. 제가 통역하겠습니다.

서이언의 손이 공기 중에 선을 그렸다. 우상일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끄덕임.

“증인,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판사의 말을 수어로 옮겼다. 우상일의 손이 더듬거리며 답했다. 우상일입니다.

“생년월일은요.”

1983년 11월 6일입니다.

서이언의 목소리는 우상일의 손짓과 정확히 같은 속도로 흘렀다. 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판사가 서류를 넘겼다.

“사고 당시 상황을 진술해 주십시오.”

우상일의 손이 멈칫했다. 귀를 만지자 이명 차폐 장치가 삐— 소리를 냈다. 서이언은 그 손이 다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작년 10월 14일. 공장 용접 작업 중이었습니다.

수첩 위를 스치던 손가락이 펜을 잡았다. 우상일의 수어는 문법이 불완전했다. ‘용접’을 두 번 반복했고, ‘작업 중’의 방향이 어색했다. 하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작년 10월 14일, 공장에서 용접 작업 중이었습니다.”

우상일이 잠시 멈추고 숨을 들이켰다. 손이 허공에 머뭇거렸다. 이명 때문이었다. 서이언은 그가 다시 집중할 때까지 손을 내리지 않고 기다렸다.

“계속하십시오.”

갑자기 귀에서 큰 소리가…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손이 멎었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서이언은 그 침묵을 통역했다.

“갑자기 귀에서 큰 소리가 났고, 그 이후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고 당시 청각 보호구는 착용하고 있었습니까.”

판사의 말을 수어로 옮겼다. 우상일의 손이 올라왔다가 허공에 멈췄다. 엄지손가락이 주먹 안으로 말려들었다. 서이언은 그 엄지를 바라보았다.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시선이 소리 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문틈으로 오전의 빛이 길게 깔렸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유재현이었다.

구두 소리가 법정 바닥을 짧게 울렸다. 서이언의 손끝이 수첩 위에서 미세하게 굳었다. 유재현은 변호인석으로 걸어가면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걸음이 멈칫했다. 아주 짧은 정적이 그를 관통했다. 왼손 검지가 오른쪽 커프스 단추를 찾아갔다. 한 번, 눌렀다 놓았다.

서이언은 그 버릇을 기억하고 있었다. 십 년 전에도 똑같았다.

유재현이 시선을 거두고 변호인석에 앉았다. 서류 가방을 열고 서류를 꺼내는 손길이 평소보다 느렸다.

수첩을 한 장 넘겼다. 종이가 손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프지 않았다. 아픈 것은 다른 곳이었다.

“피해자 측 변호인, 늦어서 죄송합니다.”

낮고 평평한 목소리.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변호인, 반대신문 준비되었습니까.”

“네, 재판장님.”

유재현이 일어나 정장의 앞섶을 한 번 여미고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눈이 우상일을 향했다. 서이언은 다음 질문이 나오기 전에 손을 올렸다. 통역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였다.

“사고 당일 작업장의 소음 측정 기록이 있습니다. 사측에서 제출한 자료인데요—”

말이 손을 통해 우상일에게 전달되었다. 우상일의 눈이 유재현을 바라보다 서이언의 손으로 내려갔다.

“사고 발생 한 달 전 측정치가 89데시벨이었습니다. 사업장 안전 기준인 90데시벨 이하였죠.”

서이언의 손이 전문 용어를 정확히 옮겼다. ‘데시벨’은 왼손 검지로 오른손 손바닥을 두드리는 방식. ‘안전 기준’은 두 손으로 벽을 그린 후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는 동작이었다.

수어는 말보다 때로 더 정확했다.

우상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손이 빠르게 올라왔다. 아닙니다. 그건 순간 측정치입니다. 작업할 때는 더 컸습니다.

서이언이 통역했다. 유재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순간 측정치와 작업 중 실제 소음은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용접할 때는 100데시벨 넘었습니다. 귀마개 써도…

손이 다시 머뭇거렸다. 엄지가 주먹 안으로 들어갔다. 서이언은 그 움직임을 시선으로 좇았다.

“네, 용접할 때는 100데시벨을 넘었습니다. 귀마개를 써도… 이후 진술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법정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유재현이 서류를 한 장 더 집어 들었다.

“사측이 보호구 지급 이력을 제출했습니다.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이 끊김 없이 움직였다. 지면의 숫자와 날짜가 수어의 선으로 바뀌었다. 우상일이 고개를 저었다.

기록은 그런데…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기록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어떤 점이 달랐죠.”

손이 떨렸다. 이명 차폐 장치를 다시 만졌다. 삐— 소리가 작게 울렸다. 서이언은 그 손이 안정될 때까지 3초를 기다렸다.

귀마개가 자주 떨어졌습니다. 오래된 거라서.

“귀마개가 자주 빠졌습니다. 오래된 것이어서 그랬습니다.”

유재현이 잠시 멈추고 다른 서류를 집었다. 서류의 모서리가 공기에 스쳤다.

“보호구 교체 요청을 하신 적 있습니까.”

두 번 했습니다. 구두로.

“두 번 했습니다. 구두로.”

“기록은 없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서이언은 알 수 있었다—그 어조 끝에 숨은 계산을. 유재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확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상일의 손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기록이 없으면… 없는 게 됩니까.

서이언은 1초를 멈추었다. 그 진술의 무게가 손끝에 남아 있었다. 우상일의 손짓 그대로, 억양을 더하지 않고 통역했다.

“기록이 없으면 없는 것이 됩니까.”

시선이 서류에서 떨어져 우상일에게로 향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법정의 침묵이 길어졌다.

판사가 시계를 보았다. “오늘 심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속기록은 양측에 배부될 예정입니다.”

서이언이 손을 내렸다. 우상일이 증인석에서 일어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슴 높이에서 손이 움직였다. 고맙습니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은 대답하지 않았다. 통역사는 말을 옮기는 사람이지, 마음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십 년을 버텼다.

휴정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서이언은 수첩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볼펜이 수첩 옆 주머니로 들어갔다. 손끝에 펜 굳은살이 스쳤다.

복도로 나왔다. 법정보다 한결 가벼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이언 씨.”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낮고, 계산된 듯한 속도.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서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구두 소리가 다가왔다. 둘, 셋. 넷에서 멈추었다. 적정 거리.

“오랜만입니다, 서이언 씨.”

유재현이었다. 서류 가방을 든 손, 왼손 검지가 가방 손잡이를 두 번 쳤다.

돌아섰다. 그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 눈동자는 어두운 조명 아래 검은색에 가까웠다. 표정은 담담했다. 십 년 전과 같았다.

“사건에 집중하겠습니다.”

짧고 건조한 목소리. 유재현의 눈이 0.1초 정도 커졌다가 이내 가늘어졌다. 손을 주머니에 넣자 만년필이 나왔다. 손끝에서 천천히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망설이는 동작이었다.

“그렇겠죠.”

만년필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구두 뒤꿈치가 방향을 틀었다. 그가 돌아섰다.

서이언은 그 뒷모습을 향해 입을 열지 않았다. 유재현이 복도 저편으로 걸어갔다. 왼손이 다시 오른쪽 커프스 단추를 찾았다. 한 번, 눌렀다 놓았다.

그 손짓을 마지막까지 시선으로 따라갔다.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복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벽에 기대어 숨을 내쉬었다.

손끝이 저렸다. 통역 피로 때문이 아니었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의뢰인 배석 절차 목록을 펼쳤다. 첫 장 상단, 담당 변호인명에 시선이 멈추었다.

‘유재현’.

이미 알고 있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볼펜을 꺼내 수첩 빈 칸에 짧게 적었다.

배정 경위 확인 필요.

글씨는 작고 반듯했다. 손끝의 떨림은 글씨에 묻어나지 않았다.

수첩을 덮었다. 복도 창문으로 오전의 햇살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빛은 유재현이 서 있던 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진동 없이 돌고 있었다.

복도로 나왔다. 법정보다 한결 가벼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이언 씨.”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낮고, 계산된 듯한 속도. 걸음을 멈추었다. 돌
들리지 않는 진심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