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들리지 않는 진심

2화

유리문 너머로 접견실이 보였다. 우상일이 먼저 와 있었고, 탁자 앞에 앉은 뒷모습이 한결 작아 보였다. 건너편에는 유재현. 조용히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문을 열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올라왔다. 우상일의 얼굴에서 긴장이 살짝 풀렸다. 유재현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유재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일어나지 않았다. 서류 한 장을 탁자 위에 반듯하게 내려놓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면담 녹취는 하지 않겠습니다. 속기록은 남기고요.”

구석에서 속기사가 노트북을 펼쳤다. 서이언은 가볍게 목례하고 우상일의 오른쪽 의자에 앉았다.

우상일이 허리를 약간 굽혔다. 서이언이 손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상대의 손이 더듬더듬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서이언은 가방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 탁자 왼쪽에 두었다.

유재현의 시선이 서이언을 스쳤다. 반 박자쯤 머물다 서류로 돌아갔다.

“통역은 법정과 같은 방식으로. 문제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서이언은 짧게 닫았다. 유재현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질문 목록을 집었다. 펜을 든 손이 종이 위에서 잠시 멈추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첫 질문이 나왔다.

“사고 당일, 몇 시에 무슨 공정을 맡으셨는지 시간대별로 말씀해 주십시오.”

손이 수어로 옮겼다. 손끝이 정확하게 끊어졌다. ‘당일’, ‘작업’, ‘순서’, ‘시간’. 한 단어씩 또렷하게.

우상일이 목을 한 번 만졌다. 이명 차폐 장치를 귀에 밀어 넣는 손길이 짧게 멈추었다. 그리고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아침 7시 반……. 작업복 갈아입고, 8시부터 절단 작업……. “오전 7시 30분 착의. 8시부터 절단 작업이었습니다.”

서이언의 목소리는 높낮이 없이 평평했다. 유재현이 시계 대신 질문지 위로 펜을 움직였다.

“오후 공정은.”

1시부터 용접이었습니다. 4시쯤…… 사고가……. “오후 1시 용접 시작. 4시경 사고 발생.”

우상일의 손이 ‘사고’에서 약간 흔들렸다.

“보호구는 어느 시점에 착용하셨습니까.”

질문을 수어로 옮기자 우상일의 오른손이 허벅지 위에서 미세하게 움찔했다. 입술이 달싹였다. 손이 올라오기까지 호흡 하나만큼 느렸다.

보호구는……. 움직임이 멈추었다. 주먹이 쥐어졌다. 손목이 약간 떨렸다.

다시 손을 폈다.

착용…… 했습니다. 작업 시작할 때……. “착용했습니다. 작업 시작 시점에.”

서이언은 통역을 멈추지 않았다. 중립적인 톤. 속도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시선은 우상일이 쥔 주먹에 남아 있었다.

유재현이 펜을 내려놓았다.

“작업 시작 시점이 오전 8시입니까, 오후 1시입니까.”

질문을 옮기는 손을 우상일이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시선이 탁자 모서리로 내려갔고, 어깨가 앞으로 약간 말렸다.

둘 다…… 맞습니다. “둘 다 맞습니다.”

서이언의 음성은 고르게 전달됐다. 유재현은 잠시 우상일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그대로였다. 왼손이 내려가 소매 끝 단추를 찾았다. 한 번, 누르고 놓았다.

“알겠습니다.”

더 묻지 않았다. 펜을 집어 서류 여백에 한 줄을 적었다. 종이가 가볍게 긁히는 소리. 속기사의 키보드 소리만 접견실을 채웠다.

서이언은 수첩을 열었다. 볼펜을 들고 한 줄을 적었다.

보호구 착용 시점 — 모호. 주먹 쥐기 반복.

수첩을 접었다. 우상일의 오른손은 여전히 허벅지 위에 있었다. 손가락 끝이 바지 옷감을 작게 쥐고 있을 뿐, 엄지는 펴져 있었다.

유재현이 다음 장으로 서류를 넘겼다. 펜이 질문 목록 두 번째 항목에 닿았다. 시선은 종이에 고정된 채였다. 우상일은 귀의 이명 차폐 장치를 다시 한 번 만졌다.

면담이 끝났다. 우상일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손이 몇 번 머뭇거리다 가슴 높이에서 멈추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부탁드립니다.

서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상일의 손이 다시 한 번 떨리다가 내려갔다. 그가 접견실 문을 열고 나갔다. 닫히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서이언은 테이블 위 수첩을 집어 들었다. 속기록 사본 사이로 우상일의 진술 중 멈칫했던 지점에 표시한 별표가 보였다. 엄지가 주먹 안으로 접혀 들어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유재현의 목소리였다. 낮고, 계산된 속도. 구두 소리가 테이블을 돌아 다가왔다.

서이언은 수첩을 덮었다.

“오랜만입니다, 서이언 씨.”

법정 복도에서와 똑같은 억양이었다. 계획된 발언임이 분명했다.

“변호사님.”

수첩을 가방에 넣었다. 고개를 들어 유재현을 똑바로 보았다. 짙은 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업무 외 대화는 다음 기회에 부탁드립니다.”

유재현의 왼손이 움직였다. 소맷단을 매만지던 손끝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다음 기회가 있을까요.”

목소리 끝이 조금 갈라져 있었다. 서이언은 가방 끈을 어깨에 걸었다.

“법정에서 뵙겠습니다.”

접견실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세 걸음째에 등 뒤에서 유재현의 숨소리가 아주 짧게 끊어졌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킨 호흡이었다.

문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금속의 차가운 온도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서이언 씨.”

돌아보지 않았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접견실 문이 닫혔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관절이 뻣뻣하게 저항했다.

복도를 가로질러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짧게 울렸다. 리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유재현은 접견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서이언이 나간 문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 끝이 손목시계 밴드를 눌렀다 놓았다. 두 번.

숨을 들이쉬고 개인 사무실로 향했다. 창가 책상 위에 명함 뭉치가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손끝으로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한 장, 한 장. 모서리가 정확히 직각을 이룰 때까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책상 앞에 선 채로 오른손을 서랍 손잡이에 얹었다.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가을 햇살이 유리창을 가로질러 책상 위 서류 파일을 비추고 있었다.

서랍을 열었다. 안쪽 깊숙한 곳에 낡은 책 한 권이 있었다. 국립국어원 수어 사전. 표지 모서리가 닿아 희끗희끗했다.

책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엄지가 책등을 천천히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한 번. 다시 위에서 아래로. 두 번째 닿을 때 손끝이 책등 중간쯤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펼치지 않았다.

몇 초 동안 그 무게를 손바닥에 얹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창밖으로 흘러들던 햇살이 구름에 가려 방 안이 잠시 어두워졌다.

서랍 안쪽으로 팔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사전을 가장 구석에 밀착시켰다. 손가락이 책 표지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서류 파일 몇 권이 책 위로 살짝 기울어졌다.

서랍을 닫았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손을 뗐다. 아주 천천히. 엄지만이 가장 마지막까지 손잡이에 남아 있었다.

창가에 선 채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첫 번째 단추를 열자 조이던 감각이 조금 누그러졌다. 손목시계의 초침은 소리 없이 돌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진심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