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들리지 않는 진심

3화

법정의 공기는 늘 마른 종이 냄새가 났다.

서이언은 통역사석에서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봤다. 진동 알람까지 17분 남았다. 왼쪽 테이블 위에 수첩과 펜을 나란히 정렬했다. 펜은 수첩 오른쪽, 수첩의 상단 모서리와 펜의 클립이 일직선이 되게.

재판장이 들어섰다.

모두 기립.

통역사 선서는 이미 끝난 뒤였다. 서이언은 오른손을 내리며 우상일을 향해 몸을 약간 틀었다. 우상일이 원고석에서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앉아 있었다.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는 습관 같았지만, 무릎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고 측 변호인, 반대신문 계속하십시오.”

유재현이 일어났다. 짙은 네이비 수트의 앞섬을 한 번 여미고, 왼손 검지로 오른쪽 커프스 단추를 눌렀다. 서이언은 그 손동작을 보았다. 수첩을 한 장 넘겼다.

“증인은 현장 안전 관리 책임자로서, 사고 발생 한 달 전 작업장 소음 측정을 직접 실시하셨습니까.”

증인석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회사 안전 관리자. 넥타이가 약간 비뚤어져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서이언의 손이 동시에 올라갔다. 증인의 말을 수어로 옮기는 손길은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우상일의 눈이 서이언의 손으로 쏠렸다.

유재현이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사측에서 제출한 소음 측정 기록표입니다. 측정 날짜를 확인해 주십시오.”

증인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손가락이 종이를 더듬다가, 오른쪽 하단에 적힌 날짜 위에 멈췄다.

“작년, 9월 13일입니다.”

“증인이 직접 서명하셨습니까.”

“네.”

“측정 당시 증인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증인의 눈이 한 번 깜빡였다. 아주 짧은 간격이었다. 서이언은 그 리듬을 놓치지 않았다.

“작업장 A구역입니다.”

“몇 시였습니까.”

“오전, 아, 오후 두 시쯤.”

유재현이 느릿느릿 서류를 한 장 더 들었다.

“증인이 제출한 일일 업무 일지에는 같은 날 오후 두 시에 증인이 본사에서 안전 교육 회의에 참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사는 여기서 차로 한 시간 거리입니다. 어떻게 같은 시각에 두 장소에 계셨습니까.”

법정 안이 조용해졌다.

증인의 입술이 벌어졌다. 말이 나오기까지 사 분의 일 초. 서이언의 손은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증인이 무슨 말을 하든, 그보다 조금 더 빨리 통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건…….”

증인이 뒷목을 만졌다.

“기록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실제 측정은 다른 날 했을 수도.”

“가능성입니까. 증인의 서명이 있는 공식 문서의 오류 가능성을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까.”

유재현의 목소리에는 파도가 없었다. 그저 차분하고 정확한 어조로, 사실과 사실 사이의 틈을 조이고 있었다.

“재판장님, 원고 측은 이 기록의 신빙성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피고 측 변호사가 즉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짧은 마찰음을 냈다.

“재판장님, 증인 보호를 요청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이 증인의 실수를 지나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기각합니다. 원고 측, 계속 진행하십시오.”

서이언은 수첩에 짧게 적었다. ‘증인-기록 불일치-뒷목 만짐’.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법정의 공기를 살짝 건드렸다.

유재현이 한 걸음 증인석 쪽으로 다가섰다.

“그렇다면 증인. 실제 소음 측정은 언제 하셨습니까.”

“기억이…….”

증인이 말을 멈췄다. 서이언의 손도 멈췄다. 망설임은 통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달해야 하는 것이었다. 서이언은 잠시 손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이번에는 수어 대신, 구두로 말했다.

“증인의 답변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기억이……’까지만 발언한 상태입니다.”

재판장이 고개를 들었다.

“증인은 질문에 답변해 주십시오.”

증인의 시선이 피고 측 변호사에게로 잠시 흘러갔다가 다시 유재현에게로 돌아왔다. 오른손 엄지가 검지 옆을 문질렀다.

“9월…… 말쯤이었을 겁니다.”

“9월 며칠입니까.”

“그건…… 정확히…….”

“기록에는 9월 13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증인은 방금 기록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측정은 9월 말에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업장 안전 기준은 90데시벨 이하입니다. 사측의 기록은 89데시벨이었죠. 단 1데시벨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렸습니다.”

유재현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마침 그 1데시벨 덕분에 회사는 과실을 면할 뻔했고요.”

“이의 있습니다! 추측성 발언입니다.”

피고 측 변호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인용합니다. 변호인, 추측은 자제해 주십시오.”

“재판장님, 그렇다면 질문을 정정하겠습니다.”

유재현이 서류를 한 장 더 꺼냈다.

“증인. 이 서류는 사고 발생 3일 전 작업장 근무 일지입니다. 여기 청각 보호구 점검란에 증인의 확인 서명이 있습니다. 맞습니까.”

증인이 서류를 오래 들여다봤다. 종이의 가장자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네.”

“점검 당시 보호구 상태는 어땠습니까.”

“정상이었습니다.”

“몇 개를 점검하셨습니까.”

“전체…… 스무 개 정도입니다.”

서이언의 손이 수어로 숫자를 옮겼다. 우상일의 얼굴이 약간 경직되었다.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다시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교체가 필요한 보호구는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이명 차폐 장치를 착용하고 계신 원고는 지난 면담에서, 사고 당시 착용한 귀마개가 낡아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귀마개는 사측에서 지급한 것입니다. 증인의 점검과 원고의 진술이 배치되는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증인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두 번.

“……모르겠습니다. 제가 점검할 때는 분명히 정상이었습니다.”

서이언은 증인의 마지막 문장을 통역하면서 우상일의 손을 보았다. 우상일은 더 이상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두 손이 무릎 위에서 정지해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유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정리했다.

“재판장님,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을 마치겠습니다. 다만, 안전 점검 일지의 서명 날짜와 실제 측정 시점 간 불일치, 그리고 원고 측 진술과의 정황적 배치를 기록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기록에 남깁니다. 잠시 후 휴정을 선언하겠습니다.”

재판장이 기록을 검토하는 동안 법정 안은 완전히 조용했다. 서이언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진동 알람까지 3분. 우상일이 원고석에서 몸을 약간 뒤로 젖혔다. 숨을 깊게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오전 심리를 마치겠습니다. 휴정합니다. 오후 1시 30분에 속개합니다.”

법정 경위가 일어서며 복도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방청석의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상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서이언은 수첩을 덮지 않았다.

우상일이 통역사석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이언의 탁자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올렸다. 수어였다.

잠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서이언이 의자에서 몸을 돌려 우상일을 마주했다. 손을 가슴 높이로 올렸다.

말씀하세요.

우상일의 손이 떨렸다. 오른손 검지가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그다음 동작이 나오기까지 오 초쯤 걸렸다.

저는…….

손이 멈췄다. 우상일의 눈이 서이언의 손을 바라보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올라왔다. 손이 다시 움직였다. 느리고, 문법이 조금 틀렸지만 명확하게 전달되는 수어였다.

말 못하는 게…… 있습니다.

서이언의 손이 올라가려는 순간이었다.

“재판장님 입장하십니다. 오후 심리 5분 전입니다. 모두 착석해 주십시오.”

법정 경위의 안내가 복도에 울렸다.

우상일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서이언의 손도 멈췄다.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 올라와 있던 문장들이 산산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우상일이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 어깨를 돌려 원고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걸음걸이가 전보다 작아져 있었다. 구두 굽이 바닥을 끌리는 소리가 났다.

서이언은 수첩의 새 페이지를 열었다. 볼펜을 들고 여백에 적었다.

우상일-미진술 사항 존재. 휴정 중 접근. ‘말 못하는 게 있습니다’까지 진술. 이후 법정 재개로 중단.

볼펜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플라스틱이 나무에 닿는 가벼운 소리.

재판이 재개되었다.

“속개합니다. 원고 측 변호인, 증인에 대한 신문을 이어가십시오.”

유재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좀 전과 달랐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손이 서류를 집는 속도가 약간 빨라져 있었다.

“증인. 사고 당일 오후 2시 30분경, 증인은 작업장 A구역에 계셨습니까.”

“네.”

“원고 우상일 씨를 보셨습니까.”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용접 작업 중이었습니다.”

“원고가 청각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까.”

서이언의 손이 질문을 옮기는 동안, 우상일의 시선이 약간 왼쪽 아래로 고정되었다. 손이 무릎 위에서 올라왔다. 보통 때보다 느리게.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서이언은 우상일의 손속도를 보았다. 평소 통역하던 속도보다 확연히 느렸다. 떨림도 없었지만, 리듬이 깨져 있었다. 기계적인 동작에 가까웠다.

서이언은 통역했다.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보호구를 벗은 것은 언제입니까.”

우상일의 손이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도 느렸다. 시선은 여전히 왼쪽 아래에 고정된 채였다. 손가락이 ‘벗다’라는 동작을 만들다가, 중간에 잠시 멈칫했다.

작업…… 끝나고.

“작업 종료 후입니다.”

유재현이 잠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다시 증인을 향했다.

“증인의 진술서에는 원고가 작업 중간에 보호구를 잠시 벗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원고의 진술과 차이가 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증인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아, 그건…… 잠깐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서이언은 이 대목을 통역하면서 수첩을 한 번 더 보았다. 조금 전 휴정 중에 적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말 못하는 게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상일의 손은, 같은 질문 계열에서 계속 느려지고 있었다.

통역사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증인의 말을 놓치지 않고 옮겼다. 우상일의 수어도 빠짐없이 구어로 전환했다. 두 언어 사이에서 서이언의 손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왼손 검지가 볼펜 뚜껑을 짧게 눌렀다 놓았다.

재판은 오후 1시 50분경 종료되었다.

피고 측 증인에 대한 신문이 마무리되고, 재판장이 다음 공판 기일을 고지했다. 2주 후.

사람들이 하나둘 법정을 떠났다. 서이언은 수첩을 펼쳤다. 통역 중에 짧게 적어둔 약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호구 질문 시 손속도 저하 (3회 관찰 — 반대신문 당시 2회, 속개 후 1회)

시선 고정 방향: 왼쪽 아래 (보호구 질문 계열에서 반복)

‘벗다’ 동작 수행 중 순간 정지 (작업 종료 후 착용 해제 진술 시)

볼펜이 멈췄다. 서이언은 세 가지 패턴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듯 다시 읽었다. 수첩을 덮었다. 표지가 탁자에 닿는 소리가 법정 안에 조용히 퍼졌다.

서이언은 짐을 챙겨 법정 문을 나섰다.

복도는 한산했다. 오전 중에 방청 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점심을 먹으러 갔고, 다른 법정도 휴정 시간이었다. 대리석 바닥에 구두 굽이 닿을 때마다 짧은 울림이 복도 끝까지 밀려갔다.

4층 복도 중간쯤, 벤치가 있었다.

서이언은 벤치에 앉았다. 가방을 옆자리에 두고, 허리를 곧게 폈다. 어깨가 약간 뻐근했다. 손목을 천천히 돌렸다.

복도 반대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우상일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다. 왼쪽 주머니가 약간 부풀어 있었다. 보청기. 착용하지 않고 그냥 넣어둔 모양이었다.

우상일은 서이언이 앉아 있는 벤치를 지나치지 않았다. 대신,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봤다. 서이언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우상일도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말은 없었다. 손도 올라오지 않았다.

우상일이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다시 걸어갔다. 발소리가 점점 작아지다 복도 끝에서 사라졌다.

서이언은 가방에서 수첩을 다시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펼칠까 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수첩 표지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모서리에 손때가 약간 올라 있었다.

복도 창문으로 가을 햇살이 길게 들어왔다. 먼지가 공중에서 천천히 떠다녔다.

서이언이 고개를 들었다.

복도 끝.

창가.

유재현이 서 있었다.

서류 가방을 한 손에 든 채, 다른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창밖의 햇살이 어깨 위로 비스듬히 얹혀 있었다. 표정은 거리 때문에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의 방향은 분명했다. 서이언을 향하고 있었다.

서이언의 손이 수첩 위에서 멈췄다.

유재현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가오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두 사람 사이로 복도의 공기가 길게 놓여 있었다. 열 걸음이 넘는 거리. 그 사이로 법정의 마른 종이 냄새가 바람을 타고 천천히 흘러왔다.

서이언이 수첩을 가방에 넣었다. 가방 지퍼를 닫는 소리만이 조용한 복도에 찰칵, 하고 울렸다.

복도 끝.

창가.

유재현이 서 있었다.

서류 가방을 한 손에 든 채, 다른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창밖의 햇살이 어깨 위로 비스듬히 얹혀 있었다. 표정은 거리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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