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들리지 않는 진심

13화

작업장 정문 앞에는 아직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었다. 철제 셔터가 반쯤 내려져 있고, 출입구 옆 벽면에는 ‘안전 관리 책임자: 우상일’이라 적힌 명판이 붙어 있었다. 글씨는 기름때에 약간 번져 있었다.

유재현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셔터 앞에서 서류 가방을 든 채 왼손 검지로 오른쪽 커프스 단추를 만지고 있었다. 내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넥타이 핀이 아침 햇살에 짧게 반짝였다.

“일찍 왔군요.”

“원래 약속 시간 십 분 전에는 도착합니다.”

내 대답에 유재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가 서류 가방에서 사고 보고서 사본을 꺼냈다. 종이 모서리가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오늘 확인할 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사고 지점의 기계 배치, 보호구 보관함 위치, 그리고 작업 동선.”

나는 가방에서 수첩과 소형 녹음기를 꺼냈다. 녹음기의 빨간 불이 켜졌다.

“이걸 찍으시는 겁니까.”

“사실 확인용입니다. 통역 내용이 아니라 현장 음성 기록이에요.”

유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셔터 옆 출입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철가루 냄새와 굳은 윤활유 냄새가 섞여 나왔다.

“들어가시죠.”

작업장 내부는 예상보다 어두웠다. 천장의 형광등 몇 개가 깜빡이고 있었고, 벽면의 환풍기는 멈춰 있었다. 바닥에는 노란 테이프로 구획선이 그어져 있었고, A구역과 B구역을 나누는 표지판이 기둥에 걸려 있었다.

사고 보고서를 펼친 유재현이 A구역 쪽으로 걸어갔다.

“사고 당일 우상일 씨는 이 지점에서 CNC 선반을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동료 증언에 따르면 작업 중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켰고, 우상일 씨가 긴급 정지 버튼을 누르려다 오른손이 끼였다고 합니다.”

나는 CNC 선반 앞에 섰다. 기계 앞면에는 작업 일지가 걸려 있었고, 마지막 기재일은 작년 10월 14일이었다. 사고 당일.

“소음 측정 기록은 어디에서 확인합니까.”

유재현이 벽면을 가리켰다. 작업장 네 귀퉁이에 소음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A구역 측정기로 걸어가 액정 화면을 확인했다.

“이게 사고 한 달 전 측정치를 기록한 기계입니다. 당시 89데시벨로 나왔죠. 사측에서는 이 수치를 근거로 안전 기준을 준수했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측정기와 CNC 선반 사이의 거리를 눈으로 쟀다. 약 스무 걸음. 측정기는 벽에 붙어 있고, 선반은 구역 중앙에 서 있었다.

“측정 지점과 실제 작업 위치가 다릅니다.”

“예리하군요.”

유재현이 보고서의 도면을 펼쳐 보였다. 사고 보고서에 첨부된 소음 측정 도면에는 측정기 네 대의 위치만 표시되어 있었다. 작업 기계별 소음 수치는 따로 기재되지 않았다.

“측정기 데이터로는 작업자가 선반 바로 앞에서 노출되는 소음 수준을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CNC 선반은 명판에 95데시벨 이상 작동 소음이 표기된 기종이에요.”

나는 수첩에 기록했다. 측정 지점과 작업 위치 불일치. 선반 자체 소음 미반영.

“우상일 씨 작업 동선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나는 사고 보고서에 기재된 동선대로 움직였다. 선반 조작대 앞에 서서 자재 보관소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의 노란 구획선을 넘어 B구역으로 향하는 길목.

그때였다.

발끝이 바닥의 기름때에 미끄러졌다. 순간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유재현의 손이 내 팔꿈치를 잡았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가슴 높이에서 움직였다. 손바닥을 아래로, 손가락을 가볍게 굽혔다 폈다.

조심해.

수어였다.

호흡이 멎었다. CN C선반의 윤활유 냄새가 아닌 다른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오래된 실습실의 포름알데히드 냄새.

스물셋, 대학 실습실이었다. 실험용 시약병을 옮기던 내 발이 스툴에 걸렸고, 유재현이 똑같은 손을 올렸다.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그때도 조심해였다.

그날 그는 이제 막 수어를 배우기 시작한 참이었다. ‘안녕’, ‘고마워’, ‘조심해’. 내가 가르친 세 단어 중 하나였다.

“서 통역사.”

유재현의 목소리가 현재로 돌아왔다. 그의 손은 이미 내 팔꿈치에서 떨어져 있었다. 나는 몸을 바로 세우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0시 24분.

“괜찮습니까.”

“예.”

나는 수첩을 꺼내 바닥의 기름때 위치를 기록했다. 펜 끝이 약간 떨렸지만, 글씨는 평소와 같았다. B구역 진입로 기름때. 사고 당시 동선에도 영향 가능성.

유재현이 보호구 보관함 쪽으로 걸어갔다. 유리문에는 아직 금이 가 있었고, 내부 선반에는 방음 귀마개 두 개만 남아 있었다.

“교체 일자 스티커가 없어졌군요. 지난번 왔을 때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사측에서 가져갔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보관함 앞에 서서 메모를 덧붙였다. 보호구 교체 스티커 소실. 보관함 유리 파손 상태 동일.

유재현이 작업장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가 사고 보고서 마지막 장을 펼쳤다.

“여기까지 보신 소견은.”

“소음 측정 기록과 실제 작업 환경 사이에 간극이 있습니다. 측정 지점이 기계와 멀고, 선반 자체 소음은 측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상일 씨의 동선에는 미끄러짐 같은 이차적 위험 요소가 존재했습니다. 사고 원인이 단순히 기계 오작동인지, 작업 환경 전체의 문제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재현이 나를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 눈이 형광등 아래서 움직이지 않았다.

“법정에서 이걸 증명하려면 현장 측정 전문가가 추가로 필요하겠군요.”

“그 부분은 변호사님의 판단입니다.”

내 대답에 그의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십 년 전, 대학 복도에서도 똑같은 입 모양이었다. 묻지 못한 질문을 삼키는 방식.

나는 가방에 녹음기와 수첩을 넣었다. 손끝이 아직 약간 저렸다. 수첩 마지막 줄에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실습실. 포름알데히드.

유재현이 서류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내일 재판 전까지 오늘 발견한 내용을 증거 보전 신청서에 반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작업장 출입문을 향해 걸었다. 철제 셔터 너머로 오전의 햇살이 얇게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유재현이 내 뒤에서 가볍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추가로 무언가를 말하려다 그만둔 호흡이었다.

출입문을 열자 바깥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손목시계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손끝의 저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작업장 밖으로 나오자 오전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철제 계단 아래 벤치에는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녹이 올라와 있었다.

서이언은 벤치 한쪽에 앉아 생수병 뚜껑을 돌렸다. 작업장 안에서 기록한 메모를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소음 측정치와 기계 배치도를 번갈아 짚었다.

유재현이 벤치 반대편에 사고 보고서를 내려놓고 앉았다. 넥타이를 살짝 풀고 첫 단추를 열었다. 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잠시 멈췄다가 올라왔다.

그동안 통역 일 하면서, 힘들지 않았나.

수어였다. 정확하고, 느렸다. 서이언은 물컵을 든 채로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검지가 공중에서 멈추고, 손목이 꺾이며 문장을 맺는 각도까지 십 년 전에는 없던 움직임이었다.

시선을 거두고 생수병 뚜껑을 다시 돌렸다. 플라스틱이 딱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일 이야기만 합시다.”

유재현의 손이 허공에 반쯤 떠 있었다. 무언가 더 말하려던 동작이었는지, 손가락 끝이 살짝 굽어졌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보고서의 모서리를 한 번 만지고는 파일 속으로 손을 넣었다.

서이언은 기계 배치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A구역 표시 옆에 적은 메모 위로 볼펜 끝이 멈춰 있었다. 바람이 불어 보고서의 끝장이 들썩였다. 유재현이 손바닥으로 눌렀다.

오전 작업장의 기계 소음은 이 벤치까지는 닿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지게차가 후진하는 경고음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서이언은 메모지 아래 귀퉁이를 접었다.

“다음 주 초에 속기록 검토 요청하겠습니다.”

유재현은 이미 정리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서류 가방을 열어 보고서를 집어넣고 잠금 장치를 눌렀다. 딸깍 소리가 났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작업장 쪽을 한 번 돌아보고는, 먼저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서이언은 생수병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었다. 손가락 끝에 물기가 남아 메모지 가장자리를 약간 적셨다. 손수건을 꺼내 닦으며, 수첩을 가방 안쪽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현관문을 열자 볶은 참기름 냄새가 났다. 거실 탁자 위에는 식탁보가 반쯤 덮인 채로 있었다. 서이언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며 가방을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탁자 위에는 목공소에서 쓰는 연한 갈색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입구는 열리지 않았고, 모서리 하나가 약간 접혀 있었다. 서이언은 봉투를 집어 탁자 구석으로 옮겨 놓고 그 자리에 수첩을 펼쳤다.

작업장 메모를 한 장씩 넘기며 소음 측정치와 보호구 교체 주기를 비교했다. 볼펜으로 숫자 두 개에 밑줄을 긋고, 그 옆에 물음표를 적었다.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명근이었다. 작업복 바지를 입은 채였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쥐고 있었다. 손등에는 나무 톱밥이 몇 점 붙어 있었고, 손가락 마디가 붉게 부어 있었다.

서이언이 수첩에서 고개를 들었다. 서명근은 그 시선을 받지 않고, 감싸쥔 손을 가슴 높이로 올린 채 안방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거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부엌에서는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저음만 들렸다. 서이언은 볼펜을 내려놓고, 수첩을 천천히 접었다.

안방 문 앞까지 걸어갔다. 손을 들었다가, 문고리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명근의 그림자가 문틈 아래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수어를 할 때 생기는 미세한 공기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발걸음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에서 메모 수첩을 다시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작업장 소음 수치를 적은 페이지였다. 숫자와 화살표 사이사이, 종이 귀퉁이에 볼펜으로 그려진 작은 그림이 있었다.

손바닥을 편 손.

그 위로 엄지를 살짝 얹은 동작이었다.

조심해.

자신이 언제 그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필기할 때 무의식적으로 손이 움직인 모양이었다. 볼펜 선은 가늘고, 마지막 엄지 끝에서 살짝 밀려 있었다.

서이언은 수첩을 덮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그림 위를 조용히 덮었다. 종이 위에서 손가락이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지게차 경고음이 아직 귀에 남아 있는 듯했지만, 방 안은 고요했다.

들리지 않는 진심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