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진심
14화
목공소 바닥에 톱밥 냄새가 내려앉아 있었다.
서명근은 CNC 선반 앞에 멈춰 섰다. 기계가 멎었는데도 손은 여전히 공구함 위에 얹힌 채였다. 왼손 검지가 톱날 가드 옆을 더듬었다.
오른손이 스위치를 내렸다. 선반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공작물을 밀어 넣는 손. 톱날과 손가락 사이가 좁았다.
순간, 왼손이 미끄러졌다.
입술이 벌어졌다. 소리는 없었다. 검지에서 검붉은 선이 번지며 톱밥 위로 떨어졌다.
오른손을 올렸다. 공작물에서 손을 떼는 동작이 느릿했다. 작업대 모서리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던 이순자가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장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문을 열자, 서명근이 왼손을 허리 높이로 든 채 서 있었다. 피가 손목까지 번져 있었다.
또야?
수어가 빨랐다. 손가락 끝에 힘이 실렸다. 작업대 서랍에서 구급함을 꺼내며 이순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명근이 오른손을 가볍게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거즈를 집어 든 이순자의 손이 잠시 멈췄다. 상대의 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소독약을 적신 솜이 검지를 닦아내자 손가락이 움찔, 뛰었다.
거즈를 감고, 붕대를 두 번 돌리다가 손이 멎었다.
왜 이러는 거야.
수어가 느려졌다. 질문이라기보다 관찰에 가까운 손짓이었다.
서명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바닥의 톱밥을 더듬었다. 붕대를 감은 왼손이 공중에서 떨렸다. 손끝의 진동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순자는 그 떨림을 잡았다. 두 손으로 감싸 쥔 손바닥이 따뜻했다.
괜찮아.
서명근의 손짓이 작았다. 틀렸다. 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순자는 말 없이 붕대를 한 번 더 감았다. 매듭을 단단히 묶고 손등을 가볍게 쳤다.
오늘은 여기까지.
휴게실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자, 서명근은 잠시 머뭇거리다 끄덕였다. 이순자가 먼저 걸어갔다. 휴게실 문 앞에서 그가 한 번 돌아보았다. CNC 선반의 스위치는 내려가 있었고, 전원 램프만 깜빡이고 있었다.
소파에 앉은 그의 왼손 붕대 위로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이순자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 옆에 앉았다. 시선이 서명근의 옆얼굴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알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창밖으로 목공소 셔터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이순자가 일어나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휴게실 문을 닫고 나왔다. 구급함을 쥔 채 작업장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향했다.
오후 다섯 시 무렵, 현관문이 열렸다.
서이언이었다. 신발을 벗다가 거실 탁자 위의 구급함을 보았다. 열린 뚜껑, 찢긴 거즈 포장, 소독약 뚜껑.
이순자가 부엌에서 나왔다. 찻잔을 들고 있었다.
“손을 다치셨어요?”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찻잔이 식탁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작업장에서. 괜찮아. 깊지 않아.
“아버지는요?”
아직 작업장에 계셔. 좀 피곤하셔.
수어가 평소보다 작았다. 서이언은 구급함 뚜껑을 닫았다.
“요즘 작업장 사고가 잦으시네요.”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이순자는 식탁 의자를 당겼다. 앉으라는 의미였다. 서이언은 앉지 않았다.
네 아버지 요즘 통증 때문에 그러셔. 관절염이 심해지셨어.
시선이 구급함에서 이순자의 얼굴로 이동했다.
“3일 전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누굴 피하셨더군요.”
이순자의 손이 멈췄다. 찻잔을 쥔 손가락이 살짝 굳었다.
누구?
질문으로 답하는 수어는 어머니답지 않았다. 서이언은 대답 대신 식탁 의자를 빼서 앉았다. 손가락으로 식탁 모서리를 한 번 쓸었다.
“유재현 변호사예요.”
또박또박 발음했다. 법정에서 원발언을 통역할 때처럼 정확했다. 이순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찻잔을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둘 사이에 침묵이 길게 놓였다. 거실은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채웠다.
찻잔이 식탁에 닿았다. 바닥이 두 번 울렸다. 손이 떨렸기 때문이다.
오래된 일이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수어가 아니라 입술을. 이순자가 수어를 멈추고 입술을 다무는 일은 드물었다. 서이언은 어머니의 손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오래된 일이 뭔데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식탁 위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일 때문에 아버지가 지금 작업장에서 손을 다치시는 거잖아요.”
이순자의 눈이 딸의 손을 따라갔다. 식탁 위에 가만히 놓인 손. 떨리지도 않았다. 그 고요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니다.
수어가 작았다. 손가락 하나만 올려 흔드는 작은 '아니'였다. 이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찻잔을 싱크대로 가져갔다. 물을 틀자 물소리가 커졌다.
서이언은 식탁에 앉은 채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설거지가 시작됐다. 젖은 손이 접시를 닦는 소리만 이어졌다. 수어를 할 수 없는 손이었다.
서이언은 식탁에서 손을 거두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한 번 짚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
이순자가 고개를 돌렸다. 젖은 손을 행주에 닦으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결국 고개만 끄덕였다.
현관으로 걸어가다 신발을 신으며 멈칫했다.
“아버지께 전해주세요. 목공소 셔터 내리실 때 손 조심하시라고.”
현관문이 닫혔다.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순자는 싱크대 앞에서 행주를 접었다 폈다 했다. 안방은 비어 있었다.
서명근은 아직 휴게실에 있었다. 농인이어서 이 대화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자는 그 경계를 잘 알고 있었다.
밤 8시. 목공소 앞 골목은 가로등 불빛만 남아 있었다.
유재현은 걷고 있었다. 퇴근길에 평소와 다른 골목을 지난 것은 의도적이지 않았다. 발걸음이 이쪽을 향했고, 멈추지 않았다.
목공소 셔터는 반쯤 내려져 있었다. 안쪽에서 불빛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셔터 앞 톱밥 부스러기가 바람에 모서리로 쓸려 쌓여 있었다.
걸음을 멈췄다.
셔터를 보았다. 반쯤 내려진 철제 주름 사이로 어둠이 더 짙게 고여 있었다. 손이 저절로 올라왔다. 왼손 검지가 오른쪽 커프스 단추를 두 번 눌렀다.
십 년 전이었다.
대학 3학년 가을, 학교 뒷골목. 서명근이 그를 불렀다. 연락도 없이 찾아온 자리였다. 그때 서명근의 손이 올라왔다.
이제 그만.
수어는 정확했다. 연습해온 듯한 손짓이 아니라, 오래 생각한 뒤에 꺼낸 몸짓이었다.
그녀를 놓아주게.
손가락이 떨렸다. 공중에서 '놓아주게'라는 동작이 완성되기 전에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유재현은 그 떨림을 똑바로 보았다.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러나 눈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부탁하는 사람의 눈. 아니면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의 눈.
유재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는 수어를 몰랐다. 손을 올리지도 못했다.
서명근은 그 침묵을 들었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가로등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이제 알았다.
셔터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서명근이 그날 보였던 떨림. 분노나 적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진동이었다. 그는 그 떨림을 지금껏 틀리게 기억해왔다. '놓아주게'는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 다시 걸었다. 발걸음이 골목을 벗어나 큰길로 접어들었다. 사무실 방향이 아니라 공원 쪽이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목공소 셔터는 그의 뒤에서 점점 작아졌다. 걷는 동안 손을 한 번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손가락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움직였다. 기억 속 서명근의 손짓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다가, 손을 내렸다.
공원 벤치가 보였다. 가로등 불빛이 텅 빈 벤치 위에 얇게 깔려 있었다.
벤치 앞에 섰다. 앉지 않았다. 열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서명근의 떨리던 오른손이 공기 중에 그려졌다.
이제 그만.
그녀를 놓아주게.
그리고 그 손끝의 진동.
어떤 얼굴이었는지 기억해냈다. 분노가 아니었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끝에 서 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서명근 자신이었다.
공원 벤치에 나뭇잎 하나가 떨어졌다. 소리에 눈을 들지 않았다. 손끝이 아직 기억 속 떨림을 더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