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진심
5화
법률사무소가 입주한 빌딩은 통유리 외벽이었다. 햇빛이 건물 전체를 투과해 로비 바닥까지 희게 씻어내렸다. 냉방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고, 로비 구석 어딘가에서 공조기가 낮고 일정하게 웅웅거렸다.
서이언은 로비에서 신분증을 내밀었다. “잠시만요.” 안내 데스크 직원이 수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짧게 연결했다. 목소리는 낮아서 들리지 않았다.
직원이 서류를 넘기는 손끝만 보였다. 잠시 후 승인 램프가 켜졌다. 녹색 불빛이 데스크 대리석 표면에 희미하게 번졌다.
엘리베이터가 14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자 ‘법무법인 유현’이라는 황동 명판이 눈에 들어왔다. 광택이 도드라진 글자마다 형광등 불빛이 작게 맺혔다. 구두 굽 소리가 복도를 짧게 울렸다. 리놀륨에 닿는 소리가 지나치게 또렷해서, 서이언은 발소리가 예상보다 컸다는 걸 깨달았다.
접견실 문은 반쯤 열렸다. 문틈 사이로 블라인드를 통과한 오후의 빛이 가느다란 띠를 그리고 있었다.
서이언은 문틀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손가락 끝으로 문을 밀자 경첩이 조용히 돌아갔다. 공기가 움직이며 희미한 원두 향이 밀려왔다.
유재현은 책상 너머 창가에 서 있었다. 역광 탓에 실루엣이 짙었다. 커피 머신에서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낙수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증발하는 듯한, 짧은 리듬이었다.
“오셨군요.”
유재현이 돌아서지 않고 말했다. 유리 너머 도시의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방음 탓일 수도 있고, 단지 신경이 그쪽으로 향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었다.
“메일은 받으셨을 겁니다.”
“네.”
“확인할 사항이 있습니다.”
서이언은 답변을 기다리며 방 안의 공기를 가늠했다. 냉방이 과하게 틀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목 끝이 바싹 말라 있었다.
“커피 드릴까요.”
목소리에는 거리를 잡으려는 조심스러움이 얹혀 있었다.
“먼저 묻겠습니다.”
서이언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가방 손잡이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마디에 핏기가 약간 빠졌다.
“언제, 왜 수어를 배우셨습니까.”
유재현의 손이 커프스에서 떨어졌다. 왼손이 허공에 짧게 머물다 바지 주름 옆으로 내려갔다. 책상 쪽으로 걸어와 의자 뒤에 섰다. 의자 등받이를 짚은 손가락이 살짝 굽었다. 가죽이 손바닥의 압력을 받아 미세하게 밀리는 소리가 났다.
“십 년이면 많은 것이 변합니다, 서이언 씨.”
“그건 답이 아닙니다.”
서이언은 한 글자 한 글자를 박아넣듯 말했다. 문장의 끝이 올라가지 않았다. 묻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말투였다.
“커피부터 하시죠.”
유재현이 커피 머신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받침대에 올리고 추출 버튼을 눌렀다. 기계가 낮게 우는 소리를 냈다. 압력이 오르는 소리가 방 안의 적막을 살짝 밀어내고 그 자리에 미세한 진동을 끼워 넣었다.
“질문을 반복하겠습니다.”
서이언은 커피잔 쪽을 보지 않았다. 시선은 유재현의 뒷모습에 멈춰 있었다. 어깨선이 블라인드 그림자에 잘렸다가 이어졌다.
“언제, 왜.”
에스프레소가 잔에 떨어졌다. 갈색 액체가 내려앉으며 표면에 크레마가 작게 부풀었다. 유재현은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받침대 테두리를 가볍게 더듬고 있었다.
“업무상 필요했습니다.”
“어떤 업무였는지 묻는 게 아닙니다.”
유재현의 등이 미세하게 굳었다.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선이 일순 경직되었다. 창 밖 빛이 블라인드 사이로 길게 떨어져 어깨 라인을 잘랐다.
“통역이 필요하신 거라면 저는 이미 이 사건의 통역사입니다. 따로 수어를 쓰실 이유가 없습니다.”
유재현이 잔을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도자기가 대리석에 닿으며 짧은 소리를 냈다. 서이언 쪽으로 밀지 않았다.
“서이언 씨.”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렸다. 옆얼굴 절반이 빛에 잠겼다.
“그 질문에 답하는 건 지금 제 역할이 아닙니다.”
서이언의 손가락이 가방 손잡이를 한 번 더 쥐었다 놓았다. 가죽이 손금을 따라 눌렸다가 천천히 원래 모양을 되찾았다.
“그럼 묻겠습니다. 수어로 하신 말씀, '이 사건,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말씀. 통역사로서의 필요를 말씀하신 겁니까.”
공기가 얇아졌다. 커피 머신의 보일러가 작게 끓는 소리 너머로 유재현의 숨소리가 들렸다. 들이쉴 때와 내쉴 때의 간격이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아닙니다.”
예상보다 빨랐다. 거절도 변명도 아니었고, 순수하게 부정하기 위한 한 단어였다. 서이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유재현은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손가락 끝이 하얘졌다가 풀어졌다. 마호가니 책상 위에 핏기가 빠졌다 돌아온 자리가 선명하게 남았다.
“그럼.”
서이언은 한 걸음 다가서지 않았다. 낯선 공간에서 자리를 지키려는 듯 발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대신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내려놓는 소리였다.
“통역사가 아닌 저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거군요.”
유재현이 입을 열었다. 서이언은 입술이 움직이기 전의 공기를 보았다.
“…네.”
한 글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누구도 줍지 않았고, 줍지도 않을 것처럼 공간 한복판에 남았다.
서이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천천히 유재현의 뒤편으로 옮겨갔다. 책장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법전, 판례집, 소송 기록들이 빼곡했다. 수십 권의 등뼈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책장 유리에는 방 안의 흐릿한 풍경이 이중으로 겹쳐 비치고 있었다.
눈이 멈췄다.
한 칸 전체가 다른 색이었다.
유리 너머로 일정한 두께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법전들의 무채색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이었다. 푸른색과 회색 표지가 반복되는 시리즈물. 등에는 작은 글씨로 '한국수어'라는 제목이 찍혀 있었다. 본문용지의 미색이 책등 가장자리로 조금씩 배어나와, 법전들의 딱딱하고 균일한 흰색과는 다른 온도를 띠고 있었다.
열 권 정도가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책등의 주름과 모서리 닳은 정도가 균일했다. 한 번 이상 펼쳐진 흔적이었다. 3권과 7권의 등이 유독 더 갈라져 있었고, 페이지 사이에 무언가 끼워져 있는 책도 있었다. 읽다가 멈춘 자리에 그대로 꽂아둔 듯한, 가공되지 않은 흔적들.
서이언은 유재현을 보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가방을 둔 의자에서 책장 쪽으로 발이 옮겨졌다. 구두 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책장 유리 속 풍경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유재현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서이언의 손을 따라갔다.
서이언의 손가락이 유리문을 향해 올라갔다. 떨림 없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손이었다. 책장 안쪽, 교재 옆에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 세월이 바랜 종이 액자. 유리 표면에 미세한 먼지가 앉아 있었지만 사진 속 풍경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 건물 앞 잔디밭이었다.
봄인지 가을인지 구분되지 않는 햇살 아래 스무 명 남짓의 젊은 얼굴들이 서 있었다. 건물 석재 벽면에는 담쟁이덩굴이 반쯤 올라와 있었고, 누군가 들고 있던 책가방 끈이 잘린 채 구도에 걸려 있었다. 서이언은 두 명을 바로 찾았다. 눈이 곧장 그쪽으로 움직였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스물셋의 자신. 왼쪽에서 두 번째, 스물넷의 유재현. 둘 사이에는 일곱 명의 다른 학생들이 있었고, 바람이 불었는지 몇몇의 머리카락이 같은 방향으로 흩날려 있었다.
서이언의 손가락이 유리에 닿기 직전 멈췄다. 손톱 끝과 유리 표면 사이에 종이 한 장 두께의 틈이 남았다.
“열어도 되겠습니까.”
유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통제하고 있는 듯 정적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서이언은 책장 유리문을 열었다. 경첩이 가볍게 열렸다. 보관되어 있던 공기가 조금씩 흐트러지며 먼지 냄새가 은근하게 풍겨왔다.
손을 뻗어 액자를 집어 들었다. 유리 너머 손끝에 닿는 차가운 질감이 미세한 떨림을 눌렀다. 사진 속 햇살과 지금 손에 닿는 온도가 너무 달랐다.
유재현이 돌아섰다. 한 걸음 다가서려다 멈췄다. 구두 앞코가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멈추었고, 왼손 검지가 다시 커프스 단추를 찾았다가 허공에서 내려왔다. 손이 멈춘 자리가 책상 모서리 위였다.
서이언은 사진을 들고 그대로 서 있었다. 시간이 길어졌다.
“이 사진을 아직 가지고 계셨군요.”
목소리는 평평했다. 감정을 억누른 것인지 애초에 실을 감정이 없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음색이었다.
유재현은 말하지 않았다. 세 걸음 다가와 서이언의 손에서 액자를 집었다. 손끝이 스치지 않았다.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에 간격이 계산된 듯 정확했다. 서랍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서랍이 닫히는 소리만 남았다. 목재와 목재가 만나는 둔탁한 소리가, 그전까지의 모든 대화보다 길게 방 안에 남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선배님, 우상일 건 서류...”
정유진이었다.
말이 허공에서 멈췄다. 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시선이 책장 앞의 서이언에게서 창가의 유재현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다시 서이언에게로 돌아왔다. 눈동자의 초점이 각 대상을 비추며 움직이는 데 걸린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눈이 살짝 커졌다. 동공이 열렸다가 곧바로 수축했다.
아주 짧았다. 1초 정도. 표정이 무언가를 인지한 듯 움직였다가 곧바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닫혔고, 눈썹 사이의 미근이 살짝 좁혀졌다 펴졌다. 너무 빨라서 보지 못한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을 변화였다.
서이언은 봤다. 놓치지 않았다. 미세한 경련 같은 표정의 이동을, 그리고 사라진 후의 지나치게 완벽한 공백을.
“아, 통역사님...”
정유진이 서류를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A4 용지 뭉치가 블라우스 앞주름에 닿으며 종이 특유의 바스락거림이 들렸다. 문간에 걸친 채 안으로 들어오지도 물러서지도 못했다. 경첩 쪽으로 체중이 실렸다 빠지는 움직임이 구두 뒤축에서 감지되었다.
서이언은 손을 내려 책장 유리문을 닫았다. 딸깍, 자석이 붙는 소리가 났다. 유리 표면에 실내의 흐릿한 반사가 다시 자리 잡았다. 의자로 돌아와 가방을 집어 들었다. 어깨에 거는 동작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유재현이 입을 열려는 순간, 서이언이 한 걸음 먼저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선이 닿기 전에 등을 보였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정유진이 옆으로 비켜섰다. “아, 네...”
움직임이 예상보다 민첩했다. 서이언은 옆을 지나 복도로 나섰다.
구두 굽 소리가 리놀륨 바닥을 짧게 울렸다. 복도가 생각보다 좁았다. 양쪽 벽에 걸린 판결문 사본들의 유리 액자가 발소리를 따라 미세하게 반짝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서이언은 가방을 열었다. 지퍼가 열리는 소리가 복도에 퍼지지 않고 위아래로 흩어졌다. 수첩을 꺼냈다.
펜을 집어 들었다. 손끝은 떨리지 않았다. 펜촉이 종이에 닿을 때 묘한 저항감이 손가락에 전해졌다.
유재현 사무실-사진-수어 교재-정유진 변호사의 반응.
글씨는 평소보다 약간 빨랐고 글자 간격이 조금 더 좁았다. 마지막 글자를 쓰던 손끝이 잠시 멈췄다.
알고 있었다.
서이언은 펜을 멈춘 자리에서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펜촉과 수첩 사이에 몇 초가 침전되었다. 엘리베이터 도착음을 알리는 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화살표가 아래 방향으로 켜졌다. 녹색 불빛이 복도 카펫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사무실 안. 정유진은 여전히 문간에 서 있었다. 손에 든 서류 뭉치 모서리가 약간 구겨져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용지의 귀퉁이를 무의식적으로 접는 중이었다.
“선배님.”
유재현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서랍이 닫힌 자리를 손바닥으로 짚은 채였다. 마호가니 목재의 온기가 손바닥에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 온기가 무엇의 온기인지는 분간되지 않았다.
“저기... 방금 그분이.”
“서류.”
유재현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향해 있었고, 손가락은 곧게 펴져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정유진은 문간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았다. 서류를 쥐지 않은 손이 바지 주름을 한 번 잡았다 놓았다.
“정 변호사.”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이름을 호명하는 방식에, 후배 변호사라는 직함을 붙이는 방식에 더 이상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정유진이 입을 다물었다. 서류를 건네고도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내리는 동작이 두 번 반복됐다.
“그 사진, 혹시...”
“정 변호사.”
고개를 숙였다. 짧은 한숨이 들릴 듯 말 듯 새어나왔다. 앞머리가 이마를 살짝 가렸다.
“네, 알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손잡이가 걸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작았다. 문을 닫을 때 과도하게 힘을 뺐다. 바깥 복도로 물러난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유재현은 의자에 앉았다. 가죽 시트가 체중을 받아들이며 낮은 소리를 냈다. 서랍을 열었다.
아까 넣은 액자가 안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서랍 안 어둠에 반쯤 잠겨 희미하게 보였다. 손을 뻗어 액자를 바로 세우려다 멈췄다. 손끝이 유리 표면 위에 수 센티미터를 두고 정지했다.
대신 서랍을 닫았다. 목재가 맞닿는 소리가 아까보다 무겁게 났다.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창밖 도시의 빛이 희붉은 잔상으로 남아 맥박에 따라 명멸했다.
복도 저편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