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진심
9화
법원 로비에서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을 뿐, 음성 메시지는 집에 돌아와서야 재생했다.
작업실 책상 위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에서 우상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내는, 그런 숨소리.
“통역사님…… 내일 재판에서 제가…… 할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가 묻어나는 억양이었지만, 문장의 끝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근데 그게……”
거기서 끊겼다. 몇 초의 공백. 그리고 통화 종료.
나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우상일은 단 한 번도 내게 직접 연락한 적이 없었다. 통역석 밖에서 개인적 대화를 나눈 일조차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재판 전날 밤,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수첩을 펼쳤다. 볼펜을 들고 이전 기록 아래에 적었다.
우상일—신규 진술 가능성. 회피 패턴과 연결될 가능성 있음. 보호구 관련인지, 47분 공백 관련인지 불명확.
볼펜을 내려놓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7시 52분. 법정 도착까지 1시간 남짓.
가방에 수첩을 넣고 휴대폰을 집었다. 음성 메시지는 저장된 상태로 남았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며, 문득 우상일이 현장 조사 때 보호구 보관함을 응시하던 시선을 떠올렸다. A구역이라는 단어 앞에서 오른손 엄지를 왼손으로 감싸쥐던 손동작.
무언가가 그 시간 속에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우상일은 그 무언가를 입 밖에 내려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413호 법정의 공기는 여전히 마른 종이 냄새가 났다. 통역석에 앉아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했다. 오전 10시 14분.
증인석에는 우상일이 앉아 있었다. 이명 차폐 장치를 귀에 꽂은 채,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손가락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유재현이 변호인석에서 일어났다. 왼손 검지가 소매 끝 단추를 스치듯 한 번 누르고 떨어졌다. 서류를 한 번 내려다본 뒤 증인석을 향했다.
“증인. 사고 당일, 작업장 A구역의 기계 점검이 완료된 시각이 언제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우상일의 손이 올라왔다. 평소보다 느렸다. 손가락이 ‘4시’를 가리키는 수어를 만들다가, 중간에 멈칫했다.
……4시 10분쯤……입니다.
“오후 4시 10분쯤입니다.”
내가 통역했다.
유재현이 증거 테이블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맹주원이 제출한 근무 일지 원본과 디지털 기록 출력본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회사 측이 제출한 근무 일지에는 기계 점검 완료 시각이 16시 10분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전산 기록상 작업 종료 시각은 17시 12분으로 되어 있고, 일지에는 작업자 퇴근 시각이 17시 37분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 사이 47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상일의 손이 내려갔다. 오른손 검지가 증인석 책상 가장자리를 반복적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톡, 톡, 톡. 규칙적이었지만 점점 빨라졌다.
시선이 피고 측을 향했다가, 재빨리 증거 테이블 쪽으로 돌아갔다. 변호인도, 재판장도 아닌, 근무 일지가 놓인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간에…… 저는……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수어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오른손 엄지가 왼손 주먹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증인. 47분 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톡, 톡, 톡톡. 손가락 두드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나는 우상일의 손을 바라보았다. 수어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축소되어 있었다. 평소 통역할 때는 몸 앞에 공간을 넓게 잡고 손을 움직이던 사람이, 지금은 가슴 앞 좁은 범위 안에서만 손가락을 움직였다.
기억이…… 잘……
손이 또 멈추었다. 이번에는 손목까지 굳어 있었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 목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우상일은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책상 가장자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톡, 톡.
유재현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통역석에서 그의 옆얼굴이 보였다. 입술이 약간 굳어 있었다. 서류를 잡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신문을 이어가려던 그가 잠시 멈추었다.
“……증인. 잠시 심호흡을 하시겠습니까.”
우상일이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 두드리기가 멈추었다. 대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바닥을 꼭 쥐었다. 관절이 하얘질 정도로.
유재현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질문을 바꾸는 대신 잠시 기다리기로 한 듯했다. 왼손이 올라와 소매 끝 단추를 한 번 눌렀다 놓았다.
수첩을 열었다. 볼펜을 들고 여백에 짧게 적었다.
수어 축소. 시선—증거 테이블 고정. 책상 두드리기 반복.
이때 유재현의 시선과 서명근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휴정 선언이 울리고, 나는 통역석에서 물러났다.
로비로 나오는 길, 복도 벽에 손끝을 살짝 대며 걸었다. 우상일의 증언은 끝나지 않았다. A구역이라는 말 앞에서 다시 손이 굳었고, 보호구 착용 시점을 묻는 질문에선 호흡이 먼저 빨라졌다.
정수기 앞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시고 로비 벤치로 걸음을 옮겼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펼쳤다. 볼펜을 쥐었다. 우상일의 증인석에서 보인 행동을 기록하려는 순간이었다.
증인 응시 방향 변화——질문자를 보지 않고 왼쪽 아래, 혹은 출입구 쪽으로 세 번.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후 손가락 관절을 쥐는 힘이 증가——
볼펜이 멈췄다. 로비 반대편, 출입문 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손에 서류 봉투를 든 채였다. 목공소에서 쓰는 연한 갈색 봉투. 법원에 제출할 서류인 듯했다. 볼펜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로비 중앙에서 유재현이 걸음을 멈췄다.
서명근은 출입문에서 세 걸음쯤 안쪽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명근의 표정이 굳었다. 입술이 닫히고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등을 돌렸다. 동작은 빠르고 단호했지만, 왼손은 서류 봉투를 움켜쥔 채 떨고 있었다.
유재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발을 떼지도, 손을 올리지도 못한 채 서명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바지 옆주머니 근처에서 오른손이 살짝 떨렸다. 왼손 검지가 셔츠 소매 단추 쪽으로 향하다 멈추는 것도 보였다.
서명근이 다시 걸었다. 출입문 쪽이 아니라 로비 유리창 앞으로 방향을 틀었다. 순간, 유리창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거기서 서명근의 손이 보였다. 서류 봉투를 쥐지 않은 오른손이었다.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 법원 정문의 은행나무가 흔들렸다. 서명근은 자신의 비친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수첩을 집었다.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겼지만, 볼펜은 쥐지 못했다.
유재현이 한 걸음을 뗐다. 서명근 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그러나 서명근이 먼저 몸을 돌렸다. 등을 보인 채 빠른 걸음으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손에 쥔 서류 봉투가 바지 주머니 안으로 접혀 들어갔다.
유재현은 거기서 멈춰 섰다. 서명근이 유리문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리석 벽에 옆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수첩을 덮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손끝이 차가웠다. 정수기 물소리가 멀리서 주기적으로 들렸다.
벤치에 앉았다. 페이지를 다시 폈다. 방금 본 것을 기록해야 했다. 볼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세 번째 만에야 글씨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유재현을 보고 도망쳤다.
그 떨림은 분노가 아니었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손끝이 떨리는 걸 유리 너머로 바라봤다.
유재현은 쫓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볼펜을 잠시 멈추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버지의 동요는 단순 적개심이 아니다——유재현과 아버지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수첩을 덮으려는 순간, 발소리가 다가왔다.
“서이언 씨.”
유재현이었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방금 전의 동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눈꺼풀이 약간 내려앉았을 뿐.
“우상일 씨 증언 중 보인 패턴에 대해 짧게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A구역 관련.”
수첩을 덮었다. 동작은 느렸다.
“증인의 진술 패턴에 대한 분석은 통역사 직무 범위가 아닙니다.”
유재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직무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통역사로서 관찰한 바를——”
“변호사님이 판단하십시오.”
내 목소리는 내 생각보다 차분했다.
“통역사는 증인의 언어를 전달할 뿐, 신체 반응의 해석이나 진술 신빙성 판단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유재현이 나를 바라봤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이 열렸다. 그러나 닫혔다. 서류 파일을 약간 더 세게 쥐었다.
“알겠습니다.”
그가 몸을 돌렸다. 걸음은 일정했지만, 왼쪽 어깨가 평소보다 살짝 내려가 있었다. 그 뒷모습은 방금 전 서명근이 등을 돌리던 것과 겹쳐 보였다.
수첩을 가방에 넣었다. 손이 수첩 표지에 잠시 머물렀다. 가방 지퍼를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비 출입문 쪽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기서 서성이는 인물이 있었다.
서명근이었다.
출입문 밖 거리와 로비 안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아까 그 서류 봉투가 접힌 채 들려 있었다. 고개를 숙여 봉투를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봉투를 펴려는 듯 움직이다 멈추었다.
몸을 돌렸다.
봉투를 접어 바지 뒷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다시 오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법원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은행나무 그림자가 그의 등을 스쳤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법정 재개 5분 전. 통역석으로 돌아가야 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시선은 로비 유리창 밖을 향했다. 서명근은 이미 법원 담장을 지나 거리로 사라지고 있었다.
주머니 속 봉투의 무게가 그의 걸음걸이를 평소보다 무겁게 보이게 했다. 제출하러 온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돌아간 아버지. 유재현을 보자마자 도망친 아버지.
법정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한 번 더 걸음을 멈췄다. 손끝으로 가방 안 수첩의 모서리를 확인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413호 법정 문을 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