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열두 번째 파동

3화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방송국 옥상.

철문을 밀치고 나가자 바람이 먼저 밀려들었다. 유재민은 난간에 등을 기댄 채 담배도 없이 서 있었다. 내 발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여기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너는 올 거라고 생각했다.”

서지오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메모를 꺼냈다. 최미경이 어젯밤 건넨 쪽지. 권태호의 녹음 파일 번호와 ‘옥상 철문 소리 확인 요망’이라는 짧은 문구.

“이게 뭔지 아는 눈치던데.”

유재민의 시선이 메모에 닿았다. 한 박자 늦게 시선을 거뒀다.

“권태호한테서 받은 녹음 테이프예요. 십 년 전 서지윤의 마지막 방송 백업.”

“들었나.”

“들었죠. 협박이 녹음돼 있었어요. 그리고 배경음으론 옥상 철문 닫히는 소리.”

유재민은 난간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걸음 거리를 둔 채 마주섰다. 그의 눈가 흉터가 아침 햇살에 가늘게 접혔다.

“언니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도 있었죠.”

침묵.

“그날 밤, 전화가 왔어.”

유재민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끝이 살짝 갈라져 있었다.

“방송 사고 직전이었다. 서지윤이 목소리가 들렸다. 숨을 몰아쉬면서… ‘재민아, 나 지금’까지만.”

“방송 사고?”

“오디오 라인이 꼬였다. 내 실수였어. 통화가 끊겼고, 그 페이더 올리는 순간 온에어 신호가 들어왔다.”

서지오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그게 끝이에요?”

“다시 연결했을 땐 신호가 없었다.”

유재민이 안주머니에서 접힌 출력물을 꺼냈다. 방송 사고 로그. 시간과 채널, 페이더 조작 기록이 빼곡히 찍혀 있었다. 그는 내 손에 그 종이를 눌러 쥐여주듯 건넸다.

“통화는 48초였어.”

“……”

서지오는 로그를 들여다봤다. 2016년 11월 21일 오후 11시 47분. 외부 회선 수신 기록. 통화 시간 48초. 페이더 오프 시점 48초.

마흔여덟 초.

언니의 마지막 목소리는 마흔여덟 초 만에 끊겼다.

“도망치고 있었어요.”

서지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언니는 누군가한테서 도망치고 있었던 거죠.”

“그래.”

“당신은 알았고요.”

“들었다.”

“듣고도 못 막았다는 거네.”

유재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서지오는 로그를 접어 주머니에 밀어넣으며 한 걸음 다가섰다.

“전화만 끊지 않았어도.”

“서지오.”

“마흔여덟 초나 있었고, 당신은 그걸 페이더 실수 하나로 날렸어요.”

유재민의 입술이 얇게 다물렸다.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바람보다 컸다.

“그게 네가 말하는 전부라면.”

“전부라니.”

서지오의 목청이 갈라졌다. 반말이었다.

“언닌 그 순간까지 당신한테 연락했어. 당신만 믿고. 근데 끊었어. 그리고 사라졌어.”

“서지윤이는 그날.”

유재민이 말을 끊었다. 두어 번 숨을 고르더니 난간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울대가 천천히 오르내렸다.

“전화 속에서. ‘이제 더는 못 도망치겠다’고 했어.”

서지오의 숨이 멎었다.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

“그게 무슨.”

“나는 십 년 동안 그 문장을 안고 살았어. 방송국을 떠돌고, 모든 계약을 석 달 안에 끊고,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않고.”

유재민이 돌아봤다.

“너한테 이걸 말하는 것도, 처음이야.”

서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목의 시계 유리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지만 리듬은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언니는.”

목소리가 바람에 날아갈 듯 작았다.

“언니는 스스로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어요.”

유재민은 고개를 숙였다. 대답은 없었다.

서지오는 등을 돌렸다. 손에는 여전히 로그가 쥐여 있었다. 철문 손잡이를 잡았을 때, 유재민의 목소리가 등을 때렸다.

“방송 전까지.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게 낫겠군.”

서지오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하죠.”

철문이 닫혔다. 무겁고 둔탁한 떨림.

옥상에는 유재민 혼자 남았다. 그는 난간에 기댄 채 접힌 로그 사본을 꺼내 들었다. 손가락이 마흔여덟 초라고 적힌 줄을 천천히 훑었다.

바람에 종이가 퍼덕였다.

서지오는 복도를 가로질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 방음 부스의 온에어 램프만 깜빡이고 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었다. 편지 봉투 옆에 방송 사고 로그를 펼쳐 가지런히 넣었다. 서랍을 닫으려다 멈췄다.

마흔여덟 초.

검지로 로그의 시간을 한 번 더 짚었다. 그리고 천천히 서랍을 밀어 닫았다.

온에어 표시등이 붉게 물들었다. 유재민의 손가락이 마이크 페이더를 올렸다.

“밤을 건너는 파동, 열두 번째 밤입니다. 오늘부터 함께할 게스트 유재민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안정적이었다. 나는 진행석 반대편에서 헤드폰을 조정했다. 오후 내내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었고, 스튜디오 복도에서도 그를 지나치지 않았다. 두 시간 전, 사무실 서랍에 방송 사고 로그를 넣으며 생각했다. 오늘 생방송만 무사히 넘기자.

“첫 사연 소개하겠습니다.”

유재민이 편지 봉투를 집어 들었다. 내가 개봉한 첫 번째 편지는 아니었다. 사전에 선별해둔 일반 사연이었다. 검은색 펜으로 쓴 깔끔한 글씨가 모니터에 띄워졌다.

“서울 성북구에 사시는 한 청취자분의 사연입니다. 제목은 ‘사월의 마지막 밤에’.”

나는 믹서의 출력 레벨을 확인했다. 권태호가 부스 너머에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다.

그때였다.

스튜디오 내부 핫라인이 깜빡였다. 붉은 불이 아니라, 짧게 세 번 점멸하는 내부 통화 신호였다. 외부 전화가 아니라 방송국 내선이었다.

유재민의 시선이 패널로 향했다. 사연 낭독을 멈추지 않았다.

“…꽃잎이 지기 전에 한 번만 더 그 길을 걷고 싶다고, 그렇게 적어주셨네요.”

핫라인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는 외부 수신 버튼을 올렸다. 유재민의 헤드폰으로만 음성이 전달되도록 회선을 분리했다. 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 목소리는 방송으로 나가지 않았다.

“들으세요.”

유재민은 사연 낭독을 이어가며 헤드폰 너머의 소리에 집중했다. 그의 손이 마이크 페이더를 살짝 내렸다.

수화기 너머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높낮이가 기계적으로 평탄해진,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불분명한 음색이었다.

“…서지오 PD.”

내 손이 믹서 위에서 멈췄다. 변조된 목소리는 모니터 스피커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스 안에 있는 권태호도 들었을 것이다.

“서지윤의 편지는 거기까지다. 더 파고들면… 방송이고 뭐고 없을 거야.”

유재민의 사연 낭독이 끊겼다. 마이크가 아직 열려 있었지만,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온에어 표시등 아래, 그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었다. 눈가의 얕은 흉터가 주름 속에서 사라질 듯 말 듯했다.

수화기에서 짧은 잡음이 흘렀다. 그리고 통화가 끊겼다.

나는 핫라인 버튼을 눌러 회선을 차단했다. 스튜디오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모니터 스피커에서는 아직 광고 전 배경 음악만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광고 송출합니다.”

믹서의 페이더를 올리며 외부 회선으로 전환했다. 상업 광고 시그널이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온에어 표시등은 여전히 붉었다.

부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최미경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지오야… 나, 나 들었어…”

권태호가 음향 부스에서 고개를 저었다. 짧게 두 마디.

“발신 추적 안 돼. 내부 교환기 경유한 외부 회선.”

유재민이 헤드폰을 벗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행석 반대편, 내 쪽으로 걸어왔다.

“지금 목소리.” 유재민의 말투는 예리했다. “내용이 첫 번째 편지를 정확히 겨냥했다. 저 사람은 편지의 존재를 안다.”

나는 광고 시간 표시등을 확인했다. 45초 남았다.

“방송국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핫라인 번호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니까.”

최미경이 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보안팀 부를까.”

권태호가 인터컴으로 짧게 한 마디 보탰다. “늦었네. 이미 발신지 잡아도 무의미할 걸. 변조에, 경유 회선 우회면 국제전화 수준이야.”

나는 광고가 끝나기 전에 결정해야 했다. 방송을 중단할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유재민이 내 앞에 섰다. 그의 손이 믹서 패널 옆에 놓였다. 직접 만지지는 않았다. 그건 나의 영역이었다.

“이 편지의 진실은 이제 너 혼자 추적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저쪽도 너와 나를 이미 하나로 보고 있다.”

나는 손목의 시계를 보지 않았다. 유리창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그냥, 패널 위의 버튼만 봤다.

“생방송은 계속 진행해요. 우리가 움츠러들었다는 걸 보여주면 안 돼요.”

유재민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좋아.”

“방송 종료 후에 첫 번째 편지와 녹음 파일을 교차 대조하죠. 내 사무실에 있어요.”

최미경이 부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복도에 사람 없어. 나 여기 서 있을게.”

권태호가 콘솔을 조작했다. “외부 발신 차단 걸었네. 광고 끝나기 15초 전.”

나는 마이크 페이더를 올렸다. 광고 시그널이 끝나가고 있었다. 유재민이 진행석으로 돌아가 헤드폰을 다시 썼다.

“고맙네, 권 선배.”

권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모니터 스피커의 출력을 한 번 더 확인했을 뿐이다.

광고가 종료되었다. 온에어 불빛이 깜빡였다.

“다음 사연 읽어주세요.”

내 목소리는 통제된 톤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유재민이 마이크를 켰다.

“청취자 여러분, 방송 사정상 잠시—”

핫라인이 다시 깜빡였다.

붉은 불이 아니라, 내부 통화 신호였다. 아까와 똑같은 점멸 패턴.

유재민의 손이 마이크 페이더 위에서 멈췄다. 패널 너머, 그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나도 모르게 버튼으로 손이 갔다. 이번에는 외부 수신으로 돌리지 않았다.

전화는 계속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높낮이가 기계적으로 평탄해진,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불분명한 음색이었다.

“…서지오 PD.”

내 손이 믹서 위에서 멈췄다. 변조된 목
열두 번째 파동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