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열두 번째 파동

6화

방송 개시 50분 전.

스튜디오 책상 위에 접수부 서류 봉투가 또 하나 얹혔다. 세 번째다. 서지오가 커터칼로 봉함선을 밀었다.

“또예요?”

최미경이 큐시트 출력본을 내려놓으며 상체를 기울였다.

“세 번째.”

편지를 꺼내 펼친 서지오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단정한 필적. 첫 두 줄은 평범했다. 세 번째 줄부터 숫자가 끼어들었다. 12, 7, 19, 3, 25.

“사연 사이에 숫자가 무작위로… 문장 끝마다 이니셜이.”

최미경이 편지 우측 하단을 짚었다. Y, O, U, R.

“의도된 패턴이야. 앞선 두 통엔 없었어요.”

서지오가 편지를 빛에 비췄다. 숫자 주변만 유독 필압이 눌려 있었다. 최미경은 돋보기를 꺼내 렌즈를 겹쳤다.

“숫자와 알파벳 교차 배치. 암호예요.”

서지오가 휴대폰으로 편지 전문을 촬영했다. 최미경도 각도를 달리해 사본을 찍었다.

“유재민 씨 불러야겠는데요.”

“벌써 왔어.”

문틀에 기댄 유재민의 검은 니트 소매가 팔꿈치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 다가오는 내내 시선은 편지에 꽂혀 있었다.

서지오가 편지를 넘겼다.

“사연 형식을 빌렸지만 본문은 암호입니다. 발신인이 의도적으로 꾸민 거예요.”

유재민은 종이를 수평으로 들어 비스듬히 기울였다.

“Y, O, U, R. 네 글자면 시작이군.”

“숫자는 12, 7, 19, 3, 25. 알파벳 순서일 공산이 커. L, G, S, C, Y.”

최미경이 메모지를 꺼내 숫자와 문자를 대응시켰다.

“A는 1, B는 2…… 그런 식이죠. 그런데 L G S C Y 자체는 아무 의미 없는 조합인데요.”

“그걸 오늘 방송에서 풀자.”

서지오가 고개를 들었다.

“방송 중에요?”

“청취자와 함께 풀겠다는 거야. 세 번째 편지다. 이번엔 암호로 우리를 시험하고 있어. 내가 어디까지 풀 수 있는지 보려는 거야. 발신인 말이야.”

“그걸 전국 생방송으로 퍼즐을 풀겠다는 거예요? 프로그램 색이 달라져요. 사연 읽고 위로하던 방송이, 범인 추적 공개 쇼가 된다고요.”

“응. 그래야 해.”

유재민이 허리를 숙여 서지오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췄다.

“저쪽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어. 우리가 가진 건 목소리뿐이고. 방송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제안이야.”

“방송국 윗선 반응은 각오한 거예요?”

“민형식이 이걸 핑계로 편성 취소를 들이밀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 네가 편지를 봉인하고 방송 끝난 뒤 조용히 조사하자고 하면, 저쪽이 예상한 대로 움직여 주는 꼴이야. 그들은 우리가 숨기리라 봤어. 공개만이 반격이야.”

최미경이 프린터 앞에서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PD님. 퍼즐 이벤트를 큐시트 2부 오프닝 직후에 배치하면 기존 코너 하나만 살짝 밀어도 돼요.”

“최미경 씨.”

서지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계산이 느린 것뿐이에요.”

모니터를 켜고 큐시트 파일을 열었다.

“퍼즐 코너는 2부 오프닝 직후. 7분입니다. 유재민 씨가 해독 룰을 정리해서 큐카드로 만들어 주세요.”

유재민은 이미 메모지 위에 펜을 댄 뒤였다. 숫자 라인을 다시 쓰고 옆에 알파벳을 대응시켰다. L에 동그라미, Y 밑에 줄을 긋는다.

“첫 네 글자 YOUR. 뒤에 추가 이니셜이 더 붙을 수도 있어. 문자로 들어오는 풀이를 실시간 검증해야 하니까, 해독 근거 변환표를 큐시트에 첨부해 줘.”

서지오가 마우스를 움직이며 레이아웃을 조정했다. 2부 시작 3분 15초 시점에 ‘청취자 참여 암호 해독’이라는 타이머가 생성됐다. 화면 구석엔 최미경 촬영 이미지가 JPEG 파일명으로 붙었다.

“생방송 중에 답이 안 오면.”

저장 버튼을 누르며 그녀가 덧붙였다.

“우리가 웃음거리가 되는 거죠.”

“아니.”

유재민이 메모지를 반으로 접어 코트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흉터 있는 쪽 눈가의 근육이 살짝 당겨졌다.

“침묵도 정보다. 암호를 아는 자가 이 방송을 듣고도 아무 반응을 안 보내는 것. 그 자체가 발신인의 정체를 좁히는 단서가 돼.”

서지오는 입을 다물었다. 프린터가 큐시트 최종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스튜디오의 정적을 박자로 끊었다.

최미경이 헤드폰을 목에 다시 걸며 알렸다.

“생방 30분 전입니다. 부스 세팅 확인할게요.”

믹싱 콘솔 쪽으로 걸음이 멀어지고, 스튜디오에는 둘만 남았다. 모니터 화면 속 큐시트가 반짝인다. 방송까지 27분.

온에어 표시등이 붉게 물들었다. 자정을 막 넘긴 스튜디오의 공기는 평소보다 무거웠다.

유재민이 마이크 앞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손에는 한 시간 전 서지오가 건넨 암호 해독 메모가 쥐여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의 추리력을 빌리고 싶습니다.”

생방송용 존대로 전환된 음성이었지만, 눈빛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약 5분간, 익명의 편지에 적힌 암호를 함께 풀어주십시오.”

최미경이 모니터를 응시하며 손가락을 세웠다. 유재민이 열세 개의 숫자와 뒤섞인 자음들을 읽었다.

“패턴은 단순합니다. 방송국 내부 구형 장비의 신호 체계를 떠올리면 됩니다.”

“문자 서버에 병목이 생길 정도예요.”

“첫 번째 정답이 나왔습니다. ‘도토리’. 열 분 넘게 맞히셨어요.”

그 단어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페이더 위 서지오의 손가락이 멈췄다. 언니의 편지에 적혀 있던 코드명이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두 번째 암호는 더 흥미롭습니다. 방금 나온 단어를 키로 위치 정보를 암호화했습니다.”

“어떤 분이 지도 좌표 패턴을 대입했어요. 3분 만에 반쯤 풀었대요.”

권태호가 낮게 내뱉었다. “간섭.”

오실로스코프 화면을 가리키는 손끝이 굳어 있었다. “송출 주파수 옆 미세한 노이즈. 일정한 간격으로 진폭이 변한다. 방송 중에는 발생할 리 없는 패턴이야.” 권태호가 녹화 버튼을 눌렀다.

“세 번째 정답이 도출됐습니다. 여러분이 찾아낸 단어는 ‘한강 북단’입니다.”

스튜디오가 조용해졌다. 최미경이 입을 가렸다. 서지오와 권태호의 시선이 마주쳤다. 권태호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유재민이 마이크를 다시 열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이 단어와 관련된 추가 정보가 있으시면, 지금부터 오픈하는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프로그램 전용 내부 연결선 번호를 불렀다. 콘솔 아래 핫라인 버튼 위로 서지오의 손이 내려갔다.

부스 안에서 짧은 점멸 세 번. 내부 통화 신호였다. 서지오는 핫라인을 유재민의 헤드폰에만 연결되도록 채널을 분리했다.

“누구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이내 기계적으로 평탄화된 변조 음성이 들려왔다.

“호기심이 과하면 다친다.”

딸깍. 통화 차단.

유재민이 즉시 마이크를 음소거했다.

“내부 계통 확인.”

권태호가 콘솔을 두드렸다. “발신 경로 지워졌어. 교환기 로그에도 안 남아 있어.”

외부 전화 패치가 끊겼다. 스튜디오 천장의 비상등이 한 번 깜빡이고 다시 켜졌다. 최미경이 흠칫 물러섰다.

“송출은.” 서지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유재민이 답했다. “광고 삽입까지 4분 남았어.”

권태호가 벌써 패치 패널을 열고 있었다. “임시 회선으로 돌리겠습니다.”

유재민이 마이크를 다시 열었다. 완벽한 생방송 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잠시 기술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곧 정상 진행하겠습니다.”

청취율이 급등했다는 최미경의 보고. 짧은 광고가 끝나고 엔딩 멘트까지, 유재민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서지오의 손은 시계 위에 가 있었다. 십 년째 멈춰 선 유리판이 손끝을 차갑게 밀어냈다.

“오늘의 ‘밤을 건너는 파동’,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진행자 유재민이었습니다.”

온에어 표시등이 꺼졌다. 스튜디오에 남은 건 넷.

유재민이 믹싱 콘솔 아래로 몸을 숙였다.

“배선 확인할 게 있어.”

권태호가 옆에 쪼그려 앉았다. “간섭 패턴이 외부 해킹이 아니야. 내부 설비를 물리적으로 건드렸어.”

“여기.” 유재민의 손이 콘솔 하단 패널을 짚었다. 두 가닥 배선이 빠져 있었다. 절단면이 깔끔했다.

“의도적이군.”

몸을 더 깊이 밀어 넣는 순간, 날카로운 금속음이 튕겼다. 패널을 고정하던 브래킷이 떨어져 나와 있었다.

서지오가 반사적으로 유재민의 상체를 뒤로 확 잡아당겼다. 조명 바로 아래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눈가의 흉터가 선명했다.

얕고도 정확한 선 하나. 눈꼬리에서 관자놀이 방향으로 번진 옅은 흔적이었다. 스튜디오 형광등이 그 위를 지나갔다.

유재민이 흠칫 고개를 틀었다. 왼손이 올라가 눈가를 가렸지만, 이미 늦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지오도 묻지 않았다.

최미경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없어.” 유재민이 일어섰다. 등이 서지오를 향했다. 그 실루엣이 믹싱 콘솔의 녹색 모니터 불빛에 닿아 있었다.

권태호가 빠진 배선을 테이프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내일 정비팀 부르는 게 낫겠군.”

스튜디오 내부 전화가 다시 울렸다.

짧게 세 번 점멸. 서지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유재민이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서지오가 수화기를 들었다.

똑같은 변조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음 편지가 마지막 경고다. 한강 북단 폐공원, 제21번 벤치에 꽂아둔 걸 읽어봐.”

딸깍.

수화기가 천천히 내려갔다. 유재민의 시선이 그녀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최미경의 떨리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PD님… 발신인이 일부러 우리를….”

서지오와 유재민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발신인은 그들이 그 단어를 해독할 줄 알았다. 방송의 흐름을 예측했고, 내부 회선으로 실시간 위협을 송출할 수 있는 자였다. 폐공원이라는 장소까지 지정해, 노골적으로 그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내부 계통 확인.”

권태호가 콘솔을 두드렸다. “발신 경로 지워졌어. 교환기 로그에도 안 남아 있어.”

외부 전화 패치가 끊겼다. 스튜디오 천장의 비상등이 한 번 깜빡이고 다
열두 번째 파동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