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금검쟁명 (琴劍爭鳴)

6화

동굴 입구로 번지는 아침 볕이 돌바닥에 길게 드리웠다. 명원진은 왼손으로 옆구리를 감싼 채, 오른손 검지로 바닥의 먼지를 긁어 선을 그었다.

“선풍객잔. 이렇게 생겼다.”

손가락이 사각형을 그리고 한쪽 모서리에 점을 찍었다.

“앞마당은 일반 객잔과 같다. 뒤편에 별채가 셋이다.”

하진혁이 눈을 들어 명원진을 응시했다.

“가운데 별채 아래로 지하 통로가 있다. 경비는 주로 별채 쪽. 교대는 진시와 술시 두 번.”

공손려가 긴장한 얼굴로 그 손가락을 좇았다.

“교대 시간 삼십 호흡이 유일한 틈이다.”

하진혁은 동굴 벽에 기대앉아 지도를 내려다봤다. 검은 무릎 위에 가로놓였고, 왼손 약지의 옥 가락지가 새벽 빛에 반짝였다.

“지하 통로의 끝은.”

“모른다. 내가 알던 때보다 깊이 팠다면 더 길어졌겠지.”

공손려가 붕대를 감은 손바닥을 바닥에 조심스레 짚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때가 언제예요.”

명원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청회색 눈동자가 잠시 공손려의 손을 훑고 다시 바닥으로 돌아갔다.

“사 년 전이다.”

공손려가 숨을 들이켰다. 위조 비급의 흔적을 처음 좇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입술을 열려다 하진혁이 먼저 말했다.

“지금 구조는.”

“바뀌었을 거다. 하지만 뼈대는 그대로일 테지. 선풍객잔은 산자락을 깎아 지었다. 지형 탓에 큰 공사는 못 한다.”

명원진이 별채 뒤편에 작은 원을 그렸다.

“이 자리가 후문이다. 나는 여기서 대기한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너희 둘이 손님으로 위장해 객잔 안으로 들어가.”

하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혼자 뒤에서 무얼 할 셈이지.”

“뒤통수 치지 않는다. 이미 네 검을 받았어.”

명원진이 옆구리의 붕대를 톡 쳤다. 천 아래서 진물이 살짝 번졌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공손려가 얼굴을 찡그렸다.

“상처 터지겠어요. 그만 움직여요.”

“이 정도로 죽을 몸이면 진작 죽었다.”

명원진은 앞마당에서 별채로 이어지는 동선을 마지막으로 그리며 덧붙였다.

“안에서는 검을 쓸 수 없다. 소리 나면 바로 발각이다. 음공도 마찬가지야. 식사 주문하고, 차 마시고, 방을 잡아라. 평범한 나그네처럼.”

하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공손려가 철선을 꺼내 부채처럼 폈다. 나비 문양이 햇빛에 반사되며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악사와 수행원. 등에 멘 거문고가 위장에 딱 맞네요.”

“거문고를 메고 있으니 의심은 덜 사겠군.”

하진혁이 짧게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허리춤에 꽂자 옥 가락지가 검 손잡이에 닿아 작은 소리를 냈다.

“출발은 오시 이후. 객잔이 가장 붐빌 때다.”

명원진이 발로 먼지 지도를 지웠다. 선들이 긁혀 나가자 바닥은 이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돌로 돌아갔다.

“한 가지 더. 진서방 전서구가 다시 올 수 있다. 길에서 보면 잡아라.”

명원진이 사모도를 등에 메며 덧붙였다. 하진혁은 대꾸하지 않고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다.

오후의 선풍객잔은 북적였다. 산자락을 깎아 지은 이층 목조 건물은 앞마당까지 테이블을 늘어놓았고, 마구간에는 서른 필이 넘는 말들이 꼬리를 치고 있었다.

하진혁은 거문고를 멘 채 객잔 문을 밀었다. 공손려가 수수한 회색 겉옷 차림으로 반 보 옆에서 따라붙었다. 점소이가 달려와 허리를 굽혔다.

“손님 두 분이십니까.”

“방 하나. 차 한 주전자.”

하진혁이 동전 몇 닢을 점소이 손바닥에 올렸다. 점소이는 동전을 세어 품에 넣고 구석 테이블로 안내했다.

공손려가 앉으며 객잔 내부를 둘러봤다. 이층 계단 입구에 덩치 큰 사내 하나가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별채로 통하는 복도 쪽으로도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계단 쪽에 한 명, 복도 문 앞에 한 명. 손님인 척하는 경비가 둘이네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차 주전자가 올려지자 잔을 따랐다. 차를 입으로 가져가는 척하며 시선을 돌리던 그때였다.

손이 멈췄다. 찻물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객잔 맞은편 구석 테이블에 앉은 사내, 낡은 검은 무복에 어깨까지 풀어내린 머리칼 사이로 이마의 작은 칼자국이 드러났다.

길고 마른 손가락이 젓가락을 반대 방향으로 쥐고 박자를 세듯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음공을 수련할 때 음률을 가르치던 그 버릇. 같은 스승에게 배운 동문, 마석준이었다.

마석준의 눈동자가 천천히 공손려를 향했다. 두꺼운 눈꺼풀 아래서 번뜩이는 시선이 정면을 노렸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차 잔이 탁자 위로 내려졌다. 공손려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며 굳은살이 박인 손끝이 나무 탁자를 긁었다. 하진혁은 그 떨림과 굳은 표정을 단번에 읽고 말없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석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밟는 소리 하나 없이 구석을 돌아 그들의 테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왼손이 허리춤에 찬 작은 철적 위에 가볍게 얹혔다. 하진혁은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며 무릎 위 검자루에 엄지손가락을 닿게 했다.

마석준이 탁자 앞에 멈춰 서서 공손려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매. 살아 있었구나. 그런데 왜 다른 이의 옷을 걸치고 여기 있지. 대답해. 지금 무슨 일이냐.”

공손려의 어깨가 굳었다. 탁자 밑으로 내려간 손이 허리께를 더듬었고, 마석준의 손이 철적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하진혁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이 낮고 짧은 금속음과 함께 마석준의 손목을 눌렀다. 날이 아닌 검날의 옆면, 살을 베지 않고 관절을 제압하는 정확한 각도였다. 손목 위로 검의 무게가 실리자 마석준의 손가락이 철적을 놓쳤다.

“물러나.”

하진혁의 목소리는 탁자 높이를 넘지 않았다. 주변 테이블의 손님들은 여전히 국물을 마시고 있었고, 점소이는 주방에서 국그릇을 받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공손려가 탁자를 밀며 일어서자 하진혁은 왼손으로 어깨를 부드럽게 밀어 자신의 뒤로 보냈다. 한 동작이었다. 검을 쥔 손은 미동이 없었다.

마석준이 웃었다. 눈자위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너는 누구냐.”

“묻지 마.”

마석준의 입술이 뒤틀렸다. 목젖이 떨리며 입을 다문 채 목 안에서 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탁자 위 찻잔의 수면에 잔물결이 일고 차가 출렁이며 잔 밖으로 튀었다.

하진혁의 손목이 회전했다. 검이 마석준의 턱 아래를 향해 비스듬히 올라가는 동시에 왼손이 등에 멘 현금을 감싼 천 위를 스쳤다. 거문고 현 하나가 짧고 예리한 단음으로 울렸다. 같은 음역대에서 더 높은 진동으로 교란한 소리가 마석준의 목 안에서 맺히던 음파를 찢었다. 두 음파가 공중에서 상쇄되며 찻잔의 떨림이 멈췄다.

마석준이 눈을 크게 떴다. 음공이 중간에 깨진 것이다. 하진혁의 검 끝이 턱 밑 피부에 닿기 직전 멈췄다.

“움직이면 베겠다.”

찻물이 식는 것보다 더 빠르고 차갑게 객잔의 소음 속에 묻혔다. 마석준은 턱을 들고 숨을 멈췄다. 충혈된 눈이 하진혁과 공손려를 번갈아 쳐다봤고, 손가락이 허공에서 경련하듯 떨렸다.

공손려는 하진혁의 등 뒤에서 붕대 감긴 손바닥으로 무기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어깨 위로 살기가 조금씩 가라앉으며 호흡이 평정을 찾았다.

“지하로 간다. 먼저 가라.”

하진혁이 뒤에 선 공손려에게 낮게 말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곧 복도 쪽 문을 향해 등을 보이며 걸었다. 검은 여전히 마석준의 턱을 겨누고 있었다.

객잔 안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행상들이 가격을 흥정하고 부엌에서는 기름 튀는 소리가 났다. 누구도 탁자 하나에서 벌어진 이 짧은 대치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진혁의 낮은 명령에 따라 공손려는 복도를 빠져나갔다. 하진혁은 마석준의 혈도를 눌러 제압한 뒤, 재빨리 객잔 뒤편 계단으로 그를 밀고 내려갔다.

객잔 지하 창고는 먼지와 곰팡내가 뒤섞인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진혁은 마석준의 뒷덜미를 잡아 밀가루 포대 위로 밀쳐냈다. 포박된 몸뚱이가 푸석한 천 위로 처박히며 먼지가 일었다.

공손려가 등롱을 들어 올리자 불빛이 마석준의 얼굴을 핥았다. 손이 멈칫했다.

“마… 사형?”

말을 뱉은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오랜만이군, 공손 사매.” 마석준이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목의 포승 자국이 붉게 부풀어 있었다. “가문에서 쫓겨난 지 십 년. 아직도 그걸 갖고 다니는 걸 보면 정을 못 버린 모양이지.”

“어째서 사형이 여기 있는 겁니까.” 입술이 바싹 말랐다.

“귀곡자 님께서 나를 거둬주셨다. 가문이 버린 재능을 알아봐 주신 분이지.”

손에 든 무기의 끝이 덜컹, 바닥에 닿을 뻔했다.

하진혁이 한 걸음 다가서며 그림자로 마석준의 얼굴을 덮었다. “은실 위치를 대라.”

“거짓말을 하면 네 기문을 찌른다. 진서방의 위조 비급 유통자는 일곱 호흡 안에 담혈을 토하지.” 하진혁이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추었다.

마석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일곱 호흡이 아니라… 사흘이다. 귀곡자 님의 방식은 좀 더 예술적이지.”

“석 달째입니다. 위조 비급 유통 경로를 추적한 지.” 공손려의 목소리가 바닥에 깔린 낙엽처럼 바스락거렸다. 손 마디가 하얘졌다. “같은 가문의 사형이 그 비급을 만들고 있었다니.”

“만든 게 아니다. 중개했을 뿐.” 마석준이 턱을 치켜들며 포박된 어깨를 비틀었다. “이 객잔이 거점이었다. 지하에 은실이 있다. 귀곡자 님께서 직접 설계한 공간이야.”

하진혁이 허리를 폈다. 왼손 약지의 옥 가락지가 등롱 불빛에 반짝였다. 마석준의 시선이 그 가락지에 꽂혔다. “그거… 청음검향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하진혁이 이마를 짚어 의식을 끊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았다.

“죄송합니다.” 공손려가 양손으로 무기를 감싸 쥐었다. “가문의 수치를 보여드려서.”

하진혁이 손목을 잡아 든 손을 제 가슴께로 밀어 올렸다. “네 탓이 아니오.” 눈은 이미 저쪽 통로를 향하고 있었다. “은실로 간다.”

지하 통로는 객잔 곡물 창고 뒤편 썩은 판자벽 뒤에 숨어 있었다. 하진혁이 판자를 밀어내자 좁은 돌계단이 드러났다. 벽걸이 등롱들이 줄지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고, 습기가 거친 화강암 벽의 돌 틈을 따라 땀처럼 흘러내렸다. 발소리가 계단에 부딪힐 때마다 먼 데서 누군가 거문고 줄을 약하게 퉁기는 듯한 잔향이 울렸다.

통로 끝은 막혀 있었다. 벽돌로 쌓아 올린 면에 낡은 나무문이 하나 박혀, 문틀 주위로 검푸른 기름 같은 것이 발라져 빛을 삼키고 있었다. 문 표면에는 축축한 부적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붉은 묵으로 그려진 문양은 파도처럼 구불거리는 상하가 뒤집힌 악보 문양. 귀곡자의 인장과 똑같았다.

바람도 없는 통로에서 종이 귀퉁이가 파르르 진동하며 뼛속으로 스며드는 금속성 소리를 냈다.

하진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왼손을 들어 약지의 옥 가락지를 등롱 빛에 비춰 보았다.

'금기에 손을 댔다.'

스승의 일기 속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불에 그을린 책장 끝부분, '금기' 두 글자 옆에 눌린 '곡(哭)' 자의 마지막 획. 그리고 이 부적의 악보 문양.

구불거리는 선의 궤적이 금검술 운기법의 초식과 닮아 있었다. 검기 경로를 역방향으로 뒤집은 듯한 흐름. 눈꼬리가 미세하게 실룩였다.

손가락 마디를 감싼 옥이 갑자기 체온을 품었다. 은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고, 푸른 기운이 가락지 테두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부적의 진동이 한 박자 빨라졌다. 종이 표면의 악보 문양이 뒤틀리며 불길한 공명을 토해냈다. 선풍객잔의 기초석이 낮게 울었고, 막다른 통로가 공명통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서늘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옥 가락지의 빛이 부적과 같은 박자로 깜박였다. 빛이 스며드는 대로 부적의 떨림이 거세졌다. 문 틈새로 바람 한 점 없었으나 부적 위로 검푸른 기름이 물결치듯 일렁였다. 통로 벽의 등롱 불빛이 일제히 한 번 꺼졌다 살아났다.

공명이 멎었다. 부적은 여전히 희미하게 진동하고 있었고, 옥 가락지의 빛은 잦아들지 않았다. 빛과 진동이 서로의 맥박을 맞춘 채 은실 입구 앞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하진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왼손을 들어 약지의 옥 가락지를 등롱 빛에 비춰 보았다.

'금기에 손을 댔다.'

스승의 일기 속 구절이 뇌리를 스쳤다. 불에 그을린 책장 끝부
금검쟁명 (琴劍爭鳴)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