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온실의 독초, 성수의 맹세

1화

대온실의 유리 돔 너머로 오후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비비안은 중앙 화단 앞에 멈춰 섰다. 성수의 가지가 축 처져 있고 잎 가장자리가 안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 특유의 위엄은 흔적조차 없었다.

“보시다시피 자연 노화입니다.”

흰 가운을 입은 약제사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수령이 삼백 년을 넘겼으니 충분히 올 수 있는 현상이지요.”

비비안은 대답 대신 무릎을 꿇고 잎을 한 장 집어 들었다. 손끝으로 잎맥을 더듬으며 빛에 비춰 보았다. 짙은 녹색 눈이 가늘어졌다.

“이 변색 패턴은 노화가 아닙니다.”

목소리가 차분했다. 허리춤 파우치에서 작은 돋보기를 꺼내 잎 뒷면을 살피던 손길이 멈칫했다.

“말려 올라간 가장자리부터 은색으로 번지고 있어요. 잎맥을 따라 바깥쪽으로 퍼지는 양상이에요. 자연 고사라면 잎끝부터 마르면서 갈변했을 겁니다.”

약제사 둘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중 나이 든 쪽이 헛기침을 했다.

“로즈우드 영애께서 식물에 조예가 깊으시단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저희는 삼 대째 성수를 관리해온 왕실 약제사입니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비비안이 일어나며 돋보기를 접었다.

“잎이 시들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였습니까. 관수 주기는 어떻게 됩니까. 최근 토양 성분 검사 결과는 언제 받으셨습니까.”

약제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저희 소관이라……”

“소관이란 말씀은 즉, 꾸준히 관리해오셨는데도 원인을 모르신단 뜻이군요.”

상대의 말을 자르는 어조가 아니었다. 너무 정중해서 오히려 차가웠다.

발소리가 들렸다.

“설명은 여기까지로 하지.”

검은 제복 차림의 에단이 대온실 입구에서 걸어 들어왔다. 뒤로 근위 기사 두 명이 따랐다. 황금색 눈동자가 약제사들을 스치고 비비안에게 닿았다.

“짐작 가는 원인이 있나.”

비비안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서야 답했다.

“아직 단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전하. 다만 이 변색은 수령 때문이 아니라 외부 물질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흙을 확인해야 해요.”

에단이 손짓했다. 근위 기사들이 약제사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하라.”

비비안은 다시 화단 앞에 주저앉았다. 가지치기 가위로 뿌리 주변 얕은 곳의 흙을 조심스럽게 긁어냈다. 건조한 표토 아래로 축축한 입자가 드러났다.

돋보기를 대는 그녀의 숨이 멎었다.

흙 속에 은빛 가루가 미세하게 박혀 있었다. 알갱이는 커녕 분말도 아닌, 마치 금속을 갈아 뿌린 듯한 질감이었다. 손가락에 약간 묻혀 코 가까이 가져갔다. 씁쓸하면서도 날카로운 향이 올라왔다.

“……은루나 계열.”

비비안이 숨을 들이켰다. 다시 잎을 집어 변색 부위와 대조하더니 중얼거렸다.

“향이 확실히 메탈릭하고, 잎맥 실버링 패턴이 교과서적이야. 유관속까지 침투한 속도로 보면 적어도 수 주는 됐다.”

반말로 빠르게 읊조리는 소리에 약제사들이 움찔했다.

“로즈우드 영애, 지금 그게 무슨……”

한 명이 나서려 하자 비비안이 고개를 들었다.

“성수는 병들고 있습니다. 삼백 년 수령의 자연 노화로 설명하기엔 증상이 너무 급격해요.”

그녀가 일어나 손바닥을 펼쳤다. 은빛 가루가 손끝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 흙에서 발견된 입자는 식물체 내부로 흡수되면 관다발을 따라 잎맥까지 은색으로 착색시키며 광합성을 억제합니다. 명백한 중독 징후예요. 은루나 독초 계열로 추정할 수밖에 없어요.”

대온실 안이 조용해졌다.

약제사 우두머리가 입술을 달싹였지만, 에단이 손을 들어 막았다. 마른 흙먼지 사이로 비비안을 향한 시선이 좁혀졌다.

“확신하나.”

“증상과 시료가 이렇게 일치하는데 확신하지 못하면 그게 더 태만이겠지요, 전하.”

비비안이 파우치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가지치기 가위로 은빛 가루가 포함된 흙을 긁어 병에 담고 마개를 꼭 닫았다.

병을 치켜들어 빛에 비춰 보이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에단이 한 걸음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네가 꺼낸 이름은 수십 년 전 선친께서 금하신 독초 연구의 영역이다. 아무 근거 없이 그걸 입에 올리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을 터.”

“그럼 전하께서는 이게 아닐 거란 근거가 있으십니까.”

에단이 잠시 멈칫했다.

금빛 눈동자 속에서 냉소가 걷히고 무엇인가가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처음으로 그 시선이 흙과 잎을 거쳐 비비안의 손가락 끝에 맺힌 은빛 흔적 위에 집중됐다.

“근위 기사들에게 명한다. 지금부터 대온실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출입 기록과 관수 일지를 확보해 내게 제출하라.”

에단의 목소리가 이전과 달랐다. 건조하면서도 빠른 어조였다.

비비안은 유리병을 파우치 안쪽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손끝의 흙을 털며 입을 열었다.

“전하. 이것만으로는 은루나인지 유사 계열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습니다. 분석실로 가져가서 용매 분리 테스트를……”

“내가 마련하지.”

에단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황금색 눈이 여전히 유리병을 넣은 파우치 쪽에 머물러 있었다.

“네가 오늘 여기서 보여준 건 네 평판과 내 선택의 무게를 견딜 만한 것이었다. 분석실 사용을 허락한다.”

뒤돌아 나가던 발걸음이 멎었다. 어깨 너머로 짧게 덧붙였다.

“단, 함께 간다.”

파우치를 꼭 쥔 비비안의 손등에 엷은 힘줄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응접실의 문이 닫히자 에단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성수를 살려라.”

탁자 너머로 황금색 눈동자가 비비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대가로 로즈우드 백작가령을 반환한다.”

비비안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 파우치를 더듬었다. 유리병 안 은빛 가루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계약 형태는.”

“약혼이다. 성수 회복까지.”

“그리고 회복 뒤에는.”

에단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계약 해지. 영지는 그대로 네 것이다.”

비비안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영지 반환. 가문 재건. 그토록 바라던 것들이 한꺼번에 탁자 위에 놓였다.

그러나 조건이 이상했다. 단순한 치료 의뢰라면 계약 약혼까지 필요할 이유가 없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

“전하께서 왜 그토록 급하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에단의 시선이 잠시 유리병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성수는 왕권의 근간이다.”

짧은 대답이었다. 설명이 아니었다.

비비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계약서에 명문화를 요청합니다. 성수 완전 회복 시점에 계약 해지, 영지 반환 완료.”

“의심이 많군.”

“신중한 것뿐입니다.”

에단이 낮게 웃는 듯한 숨을 내뱉었다.

“좋다.”

비비안은 잠시 망설였다. 성수 아래에서 채취한 은빛 가루는 일반적인 병원균 포자가 아니었다. 희석된 중금속 냄새가 났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개입한 흔적.

그리고 에단은 이미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전하.”

“말해.”

“성수가 단순히 시드는 것이 아니라면.”

에단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계약 기간 중 제 독자적 조사 권한을 보장해 주십시오.”

“위험할 수 있다.”

“성수를 살리는 데 필요한 일입니다.”

에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왕실 대온실 부속 집무실. 로테로 백작부인이 양피지 두 장을 탁자 위에 펼쳤다.

“계약 약혼서입니다. 양측 서명 후 즉시 효력을 갖습니다.”

비비안은 천천히 조항을 훑어 내려갔다. 성수 회복까지 왕세자 별관 거주. 그 기간 중 로즈우드 백작가령은 왕실 관리하에 두되 완전 회복 시 반환. 계약 해지는 양측 합의 또는 성수 회복 확인 즉시.

“영지 반환 시기에 대한 예외 조항은 없습니까.”

로테로 백작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성수 완전 회복이 확인되면 지체 없이 반환됩니다.”

비비안이 펜을 들어 서명했다. 에단도 이어서 서명했다.

“별관 출입 허가증입니다.”

로테로 백작부인이 봉인된 문서를 비비안에게 건넸다. 왁스로 봉인된 두꺼운 종이. 왕세자 별관의 모든 공간에 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비비안이 문서를 받아 파우치에 넣자 로테로 백작부인이 퇴장했다. 집무실 안에 둘만 남았다.

에단이 창가로 걸어갔다.

“마커스에게 성분 분석을 의뢰해라.”

비비안이 고개를 들었다.

“왕실 약제사 말씀이십니까.”

“그는 중립적이다. 네가 가진 샘플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거다.”

“전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신 게 있으신 듯합니다.”

에단의 등이 잠시 긴장했다.

“확신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저를 믿지 못하신다는 뜻입니까.”

에단이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믿지 못하는 건 따로 있다.”

비비안은 대답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 대신 에단이 손가락으로 창틀을 한 번 두드렸다.

“내일부터 대온실로 가는 길을 익혀둬라. 수행원 한 명을 붙여줄 거다.”

“보호입니까, 감시입니까.”

에단이 마침내 시선을 돌렸다.

“둘 다다.”

한밤중, 비비안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계약서 사본과 별관 출입 허가증, 은빛 가루 샘플. 세 가지 모두 파우치 안에 있었다. 하지만 에단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확신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가. 누구를 향한 불신인가.

비비안은 결국 일어나 겉옷을 걸쳤다. 성수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낮과 다른 시간대의 상태 변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복도를 조용히 가로질러 대온실로 향했다. 별관 출입 허가증 덕분에 문은 무리 없이 열렸다.

대온실 유리문 앞에서 비비안의 걸음이 멈췄다.

바닥에 젖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누군가 최근 이곳을 지나간 흔적이었다. 발자국은 성수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심장이 천천히 빨라졌다.

비비안은 숨을 얕게 들이마시며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오늘 낮에 확인했던 위치와 다른 곳, 성수의 북쪽 뿌리 근처 바닥에서 다시 은빛 가루가 반짝였다.

낮에 채취한 것보다 더 신선한 상태였다.

누군가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그것도 성수에 다시 무언가를 추가할 목적으로.

비비안은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대온실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범인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

비비안은 다시 화단 앞에 주저앉았다. 가지치기 가위로 뿌리 주변 얕은 곳의 흙을 조심스럽게 긁어냈다. 건조한 표토 아래로 축축한 입자가 드러났다.

돋보기를 대는 그녀의 숨이 멎었
온실의 독초, 성수의 맹세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