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사문의 마지막 밤
1화
달빛도 흐린 깊은 밤이었다. 폐가 담장을 넘자마자 진사현은 함정임을 직감했다. 인기척은 없되 공기가 달랐다. 먼지 쌓인 마룻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보이지 않는 실이 끊어지는 진동이 발끝에서 목덜미까지 올라왔다.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사방에서 표창이 쏟아졌다.
진사현은 몸을 낮추며 장검을 뽑았다. 검광이 부챗살처럼 번지며 세 점의 표창을 튕겨냈다. 셋이 아니다, 다섯. 왼쪽 기둥 뒤에서 날아든 비도 두 개를 허리를 틀어 피하는 순간, 어둠 속 복면을 쓴 혈성단원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퇴로 막아라!”
외침과 함께 대청마루 양쪽에서 횃불이 타올랐다. 열 명을 조금 넘었다. 도, 검, 단봉으로 무장도 제각각이었으나 포위망은 정연했다.
정보가 샜다. 사흘 전 폐가 은신처라는 제보를 입수하고 오늘 밤 단독으로 잠입했다. 제보 자체가 미끼이거나, 진입 동선이 읽히고 있었다.
좌측의 도수가 어깨를 향해 대각선으로 베어 올렸다. 반보 물러서며 손목을 검등으로 쳐내고, 반동으로 검을 오른쪽으로 돌려 협격을 흘렸다. 쇳소리가 마당에 길게 울렸다.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다섯 걸음. 낡은 탁자를 밟고 도약해 머리 위 서까래를 잡아당겼다. 발이 향한 곳은 안마당 퇴창. 어깨로 밀어 부수고 몸을 날렸다.
바깥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동시에 우측 견갑 뒤로 날카로운 통증이 박혔다. 표창 한 점이 견정혈 옆에 얕게 꽂혀 있었다. 왼손으로 뽑아내고 지체 없이 담장을 밟아 지붕으로 올랐다.
기왓장이 발밑에서 삐걱댔다. 허리를 낮추고 숨을 고르며 어깨를 확인했다. 피가 천천히 번질 뿐, 근육이나 경맥은 관통하지 않았다. 검을 쥔 오른손에 기를 밀어넣자 손끝이 잠시 저렸다. 검을 휘두르는 데 지장은 없었다.
아래 안마당에서 단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붕 위다! 좌측 익랑과 우측 협문을 동시에 조여라!”
“놓치면 안 돼! 반드시 생포하라는 명령이다!”
기와에 바짝 엎드린 채 안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지시에 따라 포위망을 재편성하는 중이었다. 그 중심에서 한 사람이 복면을 벗고 단원들에게 손짓했다.
여자였다. 당고를 틀어 올린 검푸른 머리카락에 은비녀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가죽 호완을 찬 작은 체구의 소녀가 지휘조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쪽 담장 틈새를 확인해. 표창을 맞고도 움직임이 빠르니 부상이 얕을 거야. 포위를 천천히 좁혀서 지치게 만들어.”
목소리가 또렷했다. 소녀의 손에는 대나무 패 하나가 들려 있었고, 단원들은 그 지시대로 재배치되었다. 진사현은 숨을 멈추고 거리를 쟀다. 수직으로 다섯 길쯤. 중간에 대청마루 차양 지붕이 돌출되어 있었다.
소리 없이 기왓장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왼손으로 반대편 지붕으로 던졌다. 낯선 소리에 단원 셋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 틈에 낙하했다. 차양 지붕을 스치듯 밟고, 한 번 더 방향을 꺾어 안마당 중앙으로 내려섰다. 소녀와 석 자 거리.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반쯤 돌렸을 때, 진사현의 검이 이미 목 앞을 막고 있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소녀의 몸이 경직되었다. 전령죽간이 떨리며 대나무 마디끼리 부딪혔다. 단원들도 허리를 낮추며 병장기를 겨누었지만, 먼저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진사현은 왼팔로 어깨를 감싸 쥐고 바짝 끌어당겼다. 검날이 목젖 아래 옴폭한 곳에 닿자, 숨소리가 짧게 멎었다. 호박색 눈동자가 가까이서 커졌다.
“물러나.”
혈성단원들이 망설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붕에서 뛰어내린 둘도 인질의 목에 걸린 검날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명령이다. 검을 거두고 물러서라.”
두 번째 말은 더 낮고 느렸다. 붙잡힌 소녀가 침을 삼켰다. 전령죽간을 움켜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단원 하나가 욕지거리를 삼키며 검을 내렸다. 다른 이들도 한 걸음씩 물러서며 길을 텄다.
진사현은 대나무 패를 힐끗 보았다. 혈성단의 긴급 전령용 죽간이었다. 발 디딘 정보의 출처가 이 손을 거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팔 안에서 소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저항하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단원들을 향해 작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포위망 뒷편, 폐가 정문 쪽에서 발걸음이 더 몰려왔다. 소녀를 앞세운 채 뒷걸음질 쳤다. 검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산길은 바위와 잡목뿐이었다. 진사현은 뒷덜미를 쥔 채 위소월의 걸음을 재촉했다. 검끝은 이미 접었으나, 손에서 풍기는 내공의 기운이 목덜미를 짓누르고 있었다.
위소월이 비틀거릴 때마다 손아귀의 힘이 더 세졌다. 말은 없었다.
동틀 무렵, 숲 너머로 기왓장이 삐죽 솟은 암자를 발견했다. 법당은 반쯤 무너져 서까래가 드러났고, 마당 잡초는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진사현은 위소월을 법당 앞 기둥으로 밀어붙였다. 허리춤에서 꺼낸 가죽끈으로 두 손목을 뒤로 돌려 묶었다. 매듭은 세 번이었다.
“여기가 어디죠?”
목소리가 쉰 듯 갈라졌다. 진사현은 대답하지 않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촛불 하나 없는 어둠이었다. 헌 향내와 썩은 목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불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 자리에는 흰 수의에 싸인 시신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수의 위로 얼굴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고, 가슴께에는 두 손이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그 손 사이에 푸른 비단으로 감싼 책 한 권이 끼워져 있었다.
진사현은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맨바닥의 충격이 무릎뼈를 울렸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손을 이마에 붙였다가 바닥에 짚었다. 이마가 흙바닥에 닿자 돌조각이 살을 찔렀다.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 절. 숨소리가 한 번 끊겼다.
세 번째 절. 왼쪽 손목을 감싼 오른손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스승이 생전에 내공을 점검하던 그 부위를 엄지로 짚었다.
법당 밖 기둥에 묶인 위소월은 숨을 죽였다. 진사현의 등이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어두웠지만, 그 실루엣만으로도 다가서지 못할 어떤 의식이 진행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진사현이 상체를 일으켰다. 스승의 손에 끼워진 푸른 비단 책을 들어 올렸다. 비급은 낡았으나 습기 하나 배지 않고 단단했다. 표지를 확인한 뒤 품에 넣었다. 책장은 넘기지 않았다.
“사형의 그릇된 꿈을 부순 대가.”
스승의 유언이었다. 입술을 움직였으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무너진 법당 뒤편에는 바위를 파서 만든 작은 석굴이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시신을 들어 옮겼다. 마른 장작처럼 가벼웠다. 굴 안쪽에 뉘고, 밖으로 나와 바위 몇 개를 굴려 입구를 막았다.
돌이 서로 맞물리는 굵은 소리가 폐사 마당까지 울렸다.
위소월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인질이 느껴야 할 공포보다, 스승을 묻는 그 뒷모습이 남긴 침묵이 더 무거웠다.
진사현이 돌아왔다. 해가 떠오르며 망가진 법당 사이로 창백한 빛이 쏟아졌다. 얼굴은 핏기 없이 희었고, 눈동자만 유난히 깊고 어두웠다.
위소월의 손목 결박을 풀었다. 한쪽만. 오른손은 여전히 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 과정에서 소매가 팔꿈치까지 밀려 올라갔다. 손목 안쪽, 엄지손가락 아래에서 팔뚝으로 번진 오래된 화상 흉터가 드러났다.
진사현의 시선이 거기에 멎었다. 말없이 왼쪽 손목을 만졌다. 소매 안쪽 깊숙이 감춰진, 같은 종류의 흉터가 있는 자리였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가 쫓아온 건 누구 의뢰냐.”
위소월은 당황한 기색으로 소매를 내렸다.
“혈성단의 공식 임무였습니다. 강호를 어지럽히는 복수귀를——”
“의뢰 배후.”
“그건…… 단주님께서 직접——”
“혈사문이다.”
위소월의 입술이 벌어졌다. 부정하려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혈성단은 그런 사문과 거래하지 않아요. 질서를 바로잡는——”
“네가 모르는 것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손가락 하나가 바닥 먼지 위에 느리게 선을 그었다.
“너를 미끼로 썼다. 혈성단 내부에서 네 임무를 누가 알았지.”
위소월의 손가락이 접혔다. 새끼손가락을 말아 쥐는 버릇이 튀어나왔다. 숨을 들이켜며 대답을 찾으려 했지만, 떠오르는 건 단 하나.
지난 보름 동안 단주가 그녀에게만 따로 전령을 내렸다는 사실. 동료 하나가 “위소월이만 모르는 일”이라고 농담하던 기억.
“그런데 왜…… 저를…… 살려두시는 거죠?”
진사현이 일어섰다.
“부문주의 은신처를 모른다.”
허리에 찬 검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찾는 데 사흘. 네 정보가 필요하다.”
“제가 안다고 생각하세요?”
“혈성단이 혈사문과 접촉했다면, 그 경로를 너도 모르게 지나왔을 거다.”
허리춤에서 전령죽간을 꺼내 품에 넣었다. 위소월이 혈성단에서 받은 물건이었다.
“기억해라. 네 기억이 네 목숨값이다.”
위소월은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질서를 바로잡는 조직’이라는 믿음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눈빛엔 금이 가 있었다. 손목의 화상 흉터가 묵직하게 욱신거리는 듯했다.
법당 구석으로 가 앉았다. 검을 무릎 위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호흡이 느리고 고르게 가라앉았다.
위소월은 남은 한쪽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무너진 주불 자리의 빈 공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폐사 본당의 찬 바닥. 결박이 풀린 손목으로 바닥을 짚으며 위소월이 진사현을 올려다봤다.
진사현은 죽간 세 개를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어젯밤 포위망에서 압수한 전령죽간이었다.
“읽어.”
위소월이 죽간을 집었다. 대나무 조각에 새겨진 작은 글자들을 좇던 눈동자가 서서히 느려졌다.
“이건…….”
“혈사문의 암호 체계다. 피를 먹인 목간에 독즙을 발라 암호를 새기고, 받는 쪽에서 초즙으로 씻어내야 글자가 드러난다.”
진사현은 별다른 동요 없이 말을 이었다. 왼손이 오른쪽 소맷자락 안으로 들어가 손목을 감싸쥐었다.
“혈성단이 단독으로 추적한 게 아니다.”
위소월의 손에서 죽간이 와르르 흩어졌다. 대나무가 바닥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말도 안 돼요. 혈성단은 그런 문파가 아니에요.”
“암호를 풀었다. 포위 좌표와 시각, 내 신원 특징까지. 혈성단 자체 기록과 일치하더군.”
죽간 하나를 집어 위소월의 무릎 앞으로 밀었다. 열 명의 포위 병력 이름 옆에 혈사문 특유의 붉은 인주가 묻어 있었다.
숨소리가 얕아졌다. 위소월은 죽간을 다시 들지 못한 채 글자들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새끼손가락이 안으로 접혔다.
“누군지…… 지금 알 수 있나요, 그 연락책을.”
“이 죽간만으로는 특정 못 한다. 네 상관 중 하나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위소월의 시선이 죽간과 진사현 사이를 오갔다.
“이건 누군가 조작했을 수도…….”
“조작이면 왜 진짜 좌표를 알아.”
말을 자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 어깨 붕대 사이로 핏기가 번졌다.
“선택해라. 복수에 협력하든가, 여기서 끝내든가.”
검은 눈동자가 위소월을 굽어보았다. 분노도 조바심도 아닌, 무게를 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왼손은 여전히 오른쪽 손목을 감싸쥐고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얼굴에 배신감과 두려움이 번졌다.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죽간 위로 긴 침묵이 떨어졌다.
한낮의 빛줄기가 부서진 지붕 틈으로 길게 뻗었다. 진사현은 위소월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품에서 약초 꾸러미를 꺼내 품질을 확인했다.
위소월이 그 뒷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어딜…….”
뒤돌아보지 않고 폐사 안쪽 복도로 향했다. 발걸음이 복도 끝 바위굴 쪽으로 이어졌다.
바위굴 입구를 막은 너른 바위 앞에 멈춰 섰다. 장력으로 밀어내자 돌과 돌이 마찰하는 굵은 소리가 울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약초와 흙, 미세한 부패취가 뒤섞였다. 차가운 공기가 땅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발목을 감쌌다.
빛이 닿는 경계 너머, 평상 위에 스승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허리에 찬 검을 풀어 입구 옆에 세웠다. 무릎 꿇는 소리가 바위굴 안에 울렸다. 품속에서 약초 꾸러미를 펼쳐 한 다발을 쥐었다.
제일 먼저 오른손을 닦았다. 검은 굳은살 사이에 마른 핏자국이 끼어 있었다.
스승의 오른손에는 비급이 쥐어져 있었다. 검푸른 표지가 시신과 함께 굳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등을 살짝 밀어 제본이 그대로임을 확인했다. 찢긴 곳 없고 뒤편도 붙어 있었다. 비급을 빼내 품에 넣지 않고, 스승의 손이 제자리를 유지하도록 그 둘레에 약초를 발랐다.
손등, 손목, 팔뚝. 약초 즙이 스며들 때마다 방부의 쓴 향이 피어올랐다. 호흡은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왼손 손목을 감싸쥐는 버릇도 나오지 않았다.
턱까지 올라와 관자놀이에 닿았을 때 손끝이 멈췄다.
오른쪽 관자놀이 살 속에 무언가 박혀 있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길이 반 촌 남짓한 파편이었다.
손끝으로 살을 눌러 파편의 방향을 확인했다. 비스듬히 상방에서 박혀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가 있었다. 핀셋으로 집자 옥빛 조각이 빠져나왔다. 얇고 날카로운 단면에 핏물이 오래전에 말라붙어 검게 굳어 있었다.
옥잔 파편이었다. 여인들의 머리 장식으로 위장한 암기. 혈사문 자객들이 근접 독살에 쓰는 물건이었다.
손바닥 안에서 작은 옥 조각이 희미하게 빛났다. 물기를 제거한 천으로 파편을 닦아 품속 작은 주머니에 따로 넣었다.
남은 약초를 발라 시신 전체를 마무리했다.
평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한 번도 보지 않은 표정으로 스승을 올려다보았다. 관자놀이 구멍은 약초로 메워져 이제 보이지 않았다. 갈라진 입술, 내려다보고 있는 감긴 눈.
한참 뒤 일어났다. 검을 다시 차고 바위굴을 빠져나왔다. 바위를 밀어 입구를 막았다. 돌과 돌이 맞닿아 무거운 침묵을 되돌려놓았다.
폐사 본당으로 돌아오자 빛줄기의 각도가 꽤 기울어 있었다. 위소월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고, 흩어진 죽간은 제자리였다.
검을 손질하려 허리를 굽히던 순간, 손끝이 멈췄다.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네 명. 걸음걸이가 고르고 가볍다.
검을 쥐고 일어섰다. 위소월도 소리를 들었는지 목을 곧추세웠다. 눈에 긴장이 스쳤다.
발소리가 폐사 정문 방향으로 접근했다.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검집을 왼손으로 밀어 손잡이가 반 촌쯤 드러나게 했다.
위소월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혈성단인가요……. 아니면…….”
대답하지 않았다. 어둑해진 폐사 안, 두 사람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