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혈사문의 마지막 밤

10화

깊은 밤이었다.

안개가 계곡 바닥을 하얗게 덮었다. 발목까지 차는 습기 속에서 진사현이 먼저 걸음을 멈췄다. 왼쪽 어깨에서 피가 옷감을 따라 손끝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철면노괴가 쓰러지며 날린 바위 파편에 베인 자리였다.

오두막은 반쯤 무너진 지붕 아래 검은 입구를 열고 있었다. 약초꾼이 버린 지 오래였다. 문틀에 거미줄이 두껍게 쌓였고, 바닥은 젖은 낙엽과 곰팡이로 덮여 있었다.

진사현이 먼저 들어갔다. 왼발로 바닥을 두 번 찍어 썩은 판자를 확인한 뒤, 벽 쪽으로 몸을 기울여 앉았다. 어둠 속에서 손가락이 허리춤 천 조각을 찾아내 찢었다.

“불은 안 된다.”

진사현이 말했다.

위소월이 입구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대가 계곡을 수색 중일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연기와 불빛은 위치를 알리는 신호와 같았다.

“어깨…….”

위소월이 한 걸음 다가섰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진사현의 왼쪽 어깨에 번진 검은 얼룩을 구분했다. 그녀가 자신의 소매를 찢어 옷감을 건넸다.

“이걸로 압박하세요.”

진사현이 받았다. 말없이 왼손으로 옷감을 어깨에 대고 오른손으로 끝을 잡아당겼다. 양팔 관절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굳어 있었지만 손가락은 움직였다. 비급의 마지막 장을 열었을 때 뒤틀린 관절이었다. 힘을 줄 때마다 인대가 나무뿌리처럼 딱딱하게 긴장했다.

지혈을 마치자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위소월이 진사현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을 세우고 등을 벽에 기댔다. 허리춤의 단도를 풀어 옆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 사이로 바닥의 낙엽이 미세하게 바스락거렸다.

어둠은 짙었다.

안개가 오두막 틈새로 밀려 들어와 발목을 감쌌다. 위소월이 손가락으로 바닥 판자의 결을 쓸었다. 진사현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들지 않았다.

비급의 마지막 장이 떠올랐다. 양팔 관절이 뒤틀리던 순간, 단전에서 폭발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 머리끝을 찔렀다. 육체를 제물로 바치는 문. 철면노괴가 그랬고, 스승이 그랬다.

그리고 스승의 유언.

‘사형의 그릇된 꿈을 부순 대가.’

진사현이 눈을 떴다.

천장 구멍 사이로 별빛 한 줄기가 얇게 내려와 그의 왼손 검지에 닿았다. 그 빛 줄기를 보며 진사현의 입술이 움직였다.

“비급의 마지막 장은 독이다.”

위소월이 고개를 들었다.

“익히는 자를 파멸시키는 독. 수련을 계속할수록 살점이 굳고 관절이 녹아내린다. 철면노괴의 팔이 그랬듯이. 내 팔도 그러할 것이다.”

“그걸…… 알면서.”

위소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알았다.”

진사현의 말투는 평온했다. 감정을 배제한 건조한 음성. 마치 먼 옛날 이야기를 하듯이.

“서율이 탐한 것도 그 힘이었다. 스승님은 서율에게서 그 꿈을 빼않음으로써 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 집착 때문에 문파가 멸문당했다.”

잠시 숨을 멈추었다.

“‘사형의 그릇된 꿈을 부순 대가’라는 말씀의 이중적 의미다. 비급의 힘은 꿈을 부술 만큼 강하지만, 그 꿈을 쫓는 자를 죽음으로 끌고 간다는 뜻. 스승님은 마지막 시험 자리에서 그걸 깨달으셨다.”

위소월의 손가락이 바닥 판자에서 멈췄다.

“……마지막 시험?”

진사현이 오른손을 무릎에서 들어 올렸다. 굳은살이 박인 검지와 중지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떨렸다.

“스승님께서 마지막 수법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사형제들이 다 같이 지켜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으셨다. 그 자리에서 바로 시험을 중단하고 서율을 부르셨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그리고 서율에게 등을 내주셨다.”

위소월이 숨을 삼켰다.

“그날 밤, 나는 벽장 틈새에 숨어 있었다. 스승님이 명령하셨다. ‘숨어 있으라’고. 하지만……”

진사현의 손가락이 멈췄다. 오른손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내가 그 명령을 어겼다.”

침묵이 길었다. 위소월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릎이 낙엽을 눌러 가볍게 바스락거렸다.

“사형제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명,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 스승님의 기합. 나는…… 나가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어떻게…….”

위소월이 겨우 말을 꺼냈다.

“몸이 굳었다. 아홉 살이었다. 검도 쥔 적 없는 아이가 공포로 굳어버렸다. 문틈으로 마지막 광경만 보았다. 사형제들이 다 쓰러지고, 스승님의 목이……”

말이 끊겼다.

진사현이 왼쪽 손목을 만졌다. 위소월의 손이 아직 닿아 있던 그 자리. 굳은 관절 끝으로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내가 나갔다면. 스승님이 빈틈을 보이지 않으셨다면.”

한 호흡.

“하지만 나가지 않았다.”

위소월이 천천히 일어섰다. 무릎에서 낙엽이 떨어졌다. 그녀가 진사현 앞으로 걸어왔다.

쪼그려 앉아 그의 왼쪽 손목을 잡았다. 아까와 같은 자리. 굳은 관절과 굳은살 위로 손가락이 포개졌다.

“그러니까.”

위소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존댓말을 유지하려 애쓰며 천천히 말을 고르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무기로 만드는 거예요? 명령을 어긴 죄값으로, 자신의 몸을 부수는 게?”

진사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복수가 아니에요.”

위소월이 손목을 더 세게 쥐었다. 손가락이 진사현의 맥박과 겹쳐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자신을 벌하는 거잖아요.”

“복수다.”

진사현이 짧게 잘랐다.

“서율을 죽인다. 그게 전부다.”

“그리고 나서 사라질 생각이면서?”

위소월의 말이 빨라졌다. 존댓말 끝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복수가 끝나면 강호에서 사라지겠다고. 모든 기억을 놓아버리겠다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잖아요.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어요.”

진사현이 손목을 빼려 하지 않았다. 위소월의 손가락이 그의 살갗에 닿아 있었다. 체온이 전해졌다.

“스승님께서는 왜 당신에게 ‘숨어 있으라’ 말씀하셨을까요.”

위소월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아홉 살짜리 제자에게 검을 쥐라고 하지 않고, 숨으라고 하셨잖아요. 살아남으라고. 살아서 기억하라고.”

진사현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상처를 안고 사는 게 진정한 복수예요.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을 지고 가는 것. 그게…….”

위소월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다. 자신의 죄책감.

혈성단이 혈사문과 맺은 의뢰. 추적대가 동굴에 접근한 원인. 하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몫이에요.”

진사현이 위소월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이 젖어 있는 게 보였다. 호박색 눈동자 가장자리에 물기가 번져 별빛을 받고 있었다.

“당신은 아직 젊다.”

진사현이 말했다.

“내가 걷는 길을 모른다.”

“그렇다면 가르쳐주세요.”

위소월이 바로 받았다. 말이 점점 더 빨라졌다.

“혼자 모든 걸 지고 무너지지 말고, 함께 지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거예요. 저는…… 저도 죄가 있어요. 말할 수 없지만. 아직 말할 수 없지만.”

그녀의 손이 진사현의 손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스승님의 명령을 어긴 게 아니라, 스승님의 진짜 명령을 이제야 이해한 거예요. 살아서 기억하는 것. 그걸 선택할 수 있어요. 철면노괴 어른께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셨듯이.”

진사현의 왼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손가락이 위소월의 손등 위로 올라갔다. 떨리지도, 거칠지도 않은 동작이었다.

한 호흡.

손가락이 거두어졌다.

“혈사문 본거지는 북쪽 산악성 안에 있다.”

진사현이 말을 돌렸다. 낮고 건조한 음성이었다.

“외곽 순찰은 세 겹. 초소 간격은 반 리. 서율이 직접 설계한 방어 체계다. 지금쯤 서율은 중상을 입고 후송 중일 테지만 본거지 경비는 오히려 강화됐을 것이다.”

위소월이 손을 거두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손목을 잡은 채 듣고 있었다.

“사흘.”

진사현이 말했다.

“사흘 뒤, 내가 본거지로 간다.”

“혼자서요?”

“혼자다.”

진사현이 위소월의 손을 바라봤다.

“너는 별도 은신처에서 대기한다.”

위소월이 천천히 손을 풀었다. 손가락이 진사현의 손목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입술이 다시 열리려 했다.

하지만 닫혔다.

진사현의 고개가 미세하게 기울었다. 끄덕임이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재회의 가능성만 남긴 채.

위소월이 그 끄덕임을 보았다. 눈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사흘이군요.”

바닥을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사현이 벽에 머리를 다시 기댔다. 두 사람 사이로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어둠 속에서 각자의 체온이 미세하게 공간을 데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체온이 어둠을 녹이는 침묵이 한참 이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밤, 별이 창틀 너머로 각도를 바꾸기 전이었다.

별이 각도를 바꾸기 전이었다.

오두막 밖에서 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바싹 마른 풀을 밟는 인기척. 한 사람이 아니었다. 둘, 아니 셋. 발걸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흩어지며 오두막을 향해 다가왔다.

진사현이 눈을 떴다. 손이 검자루에 닿기까지 반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왼손은 여전히 위소월이 붙잡고 있었다. 그는 손목을 천천히 빼내며 일어났다. 위소월도 잠에서 깨어나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누구……?”

위소월의 입술이 움직이자 진사현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그는 문틈으로 바깥을 살폈다. 달빛이 희미하게 계곡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세 개의 그림자가 오두막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진 바위 옆에 멈춰 섰다.

“이 근방은 아닌 것 같은데.”

바깥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무인 특유의 날카로운 울림이 없었다. 진사현은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뺐다. 대신 손바닥으로 검집의 끝을 밀어 빼기 좋게 각도를 조정했다.

“어쨌든 불은 피우지 마. 혈사문 놈들이 개울 건너편까지 수색했댄다.”

두 번째 목소리. 역시 평범했다. 등불이 잠시 흔들리더니 그림자들이 방향을 돌렸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계곡 서쪽으로 사라졌다.

진사현이 검집을 내렸다.

“야경꾼들이다.”

위소월이 문틈으로 바깥을 확인했다. 사라지는 등불을 보며 그녀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추적대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진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두막 구석으로 돌아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바닥에 내려놓고, 품에서 혈사문 본거지의 내부 구조 약도를 꺼내 펼쳤다. 동굴에서 확보한 문서를 바탕으로 직접 그린 지도였다.

위소월이 그 옆에 앉았다. 거리는 여전히 두 뼘. 하지만 어깨가 마주칠 만큼 가까이 붙지는 않았다.

“내일 밤이군요.”

진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으로 약도의 중앙 전각을 짚었다.

“서율은 여기다. 부상으로 전열에서 물러났으니 깊은 곳에 있을 거다.”

“들어가는 길은요?”

“외곽 초소 셋을 지나면 담장이 낮아진다. 거기서부터는 내가 안다.”

스승이 살아 계실 때, 혈사문은 같은 문파였다. 진사현은 본거지 내부 구조를 소년 시절 훈련으로 외우고 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은 침투 경로가 되어 있었다.

위소월이 무릎을 세워 팔을 감싸 안았다. 손가락이 새끼손가락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제가 밖에서 기다릴까요.”

“필요 없다. 여기서 기다려라.”

위소월의 눈썹이 움직였다.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복수의 현장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누출해 추적을 불렀던 죄책감이 그녀의 발을 묶었다.

진사현은 일어나 검을 뽑았다.

좁은 오두막 안에서 허리를 낮추고 발을 반 뼘 앞으로 내디뎠다. 왼손은 허리춤에 붙인 채 오른손만으로 검을 정면으로 내뻗었다. 착수식. 혈사문 기본 검술의 첫 동작이었다. 스승이 가장 먼저 가르친 자세.

천천히 검을 거둬들였다. 다시 내뻗었다.

위소월이 지켜보고 있었다. 진사현이 검을 내뻗을 때마다 어깨에서 뼈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비급 마지막 장을 연 대가로 근골이 뒤틀린 양팔은 기본 동작조차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착수식. 이번에는 검끝이 조금 더 앞으로 나갔다.

위소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없이 자신의 단도를 칼집째 허리에서 풀어 오두막 한쪽 구석에 내려놓았다. 품에서 피로 얼룩진 천을 꺼냈다. 자신의 어깨 상처를 지혈했던 천이었다. 그녀는 물을 조금 적셔 천의 깨끗한 모서리를 펼쳤다.

진사현이 검을 거둬들이는 순간, 위소월이 다가가 검날을 잡았다. 진사현의 손이 멈췄다.

“그냥…… 닦아드리겠습니다.”

위소월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검날에 묻은 먼지와 피를 천으로 훑어냈다. 칼등에서 칼끝까지, 한 번에 닦아내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진사현은 검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위소월의 손이 검날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검을 내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자신의 검을 만지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위소월의 손끝이 칼자루 가까이 왔을 때 진사현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을 뿐, 뿌리치지 않았다.

위소월이 천을 내렸다. 검날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그녀가 물러서며 천을 접었다.

“이 검으로…… 돌아오실 거죠.”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진사현은 대답하지 않고 검집에 검을 꽂았다. 품에서 비급과 약도를 꺼내 작은 보툇자루에 함께 넣었다. 준비는 끝났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두막 밖으로 안개가 계곡 바닥을 따라 밀려들었다. 공기가 차가웠다. 겨울 새벽의 습기가 상처 난 어깨를 찔렀다.

진사현이 문을 열었다.

위소월이 일어나 문턱까지 따라왔다.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혈사문에 가더라도, 그 후 강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소?”

진사현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두 걸음쯤 가다가 돌아섰다. 위소월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위소월이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진사현의 손이 그녀의 허리춤에 닿았다. 구석에 내려놓았던 그녀의 단도를 집어 검집에 밀어 넣고, 손잡이를 위소월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아주 짧았다. 하지만 분명했다.

위소월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단도를 두 손으로 받아쥐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진사현은 이미 몸을 돌렸다. 안개가 그를 삼켰다. 발소리만 한동안 남았다가, 그것도 사라졌다.

위소월은 문턱에 서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방금 그 고개 끄덕임은 그가 처음으로 내일을 약속한 순간이었다.

혈사문의 마지막 밤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