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혈사문의 마지막 밤

9화

동굴 안으로 열 걸음쯤 들어섰을 때였다.

진사현이 걸음을 멈췄다. 위소월 손목을 쥔 채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도 동굴 입구 쪽은 희미하게 빛났다. 횃불이었다. 철면노괴가 병사 셋을 뚫고 지나간 자리에서 불길이 일고 있었다.

“저분은…….”

위소월 목소리가 떨렸다.

진사현은 대답 없이 손목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대로 동굴 깊은 곳을 향해 발을 옮겼다. 철면노괴가 말한 뒷길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분명 길이 있다고 했다.

발밑이 울퉁불퉁했다. 바위 조각과 박쥐 똥이 뒤섞인 바닥이었다.

“잠깐만요.”

위소월이 비틀거렸다. 앞서 입은 옆구리 부상이 아물지 않았다. 진사현이 걸음을 늦추자,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벽에 손을 짚었다.

“괜찮습니다. 갈 수 있어요.”

진사현이 어둠 속을 훑었다. 바위틈 사이로 희미한 바람이 새어 들었다. 공기 흐름이 느껴졌다. 왼쪽이었다.

“이쪽.”

동굴 벽면에 금이 가 있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너비였다. 진사현이 먼저 몸을 밀어 넣었다. 굳은 양팔 대신 어깨로 바위를 긁으며 지나갔다. 검은 무복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위소월이 뒤를 따랐다. 틈새 안쪽은 더 좁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바위에 눌렸다.

동굴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병사 하나가 아닌 여럿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어 무거운 것이 부서지는 소리. 바위인지 사람의 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철면노괴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진사현은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허리춤 단검 손잡이가 바위에 부딪혀 딸깍거렸다.

서율은 동굴 입구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바위 뒤에 서 있었다.

정예 셋이 좌우를 호위했다. 각각 장검과 쌍월도를 쥐었다. 횃불을 든 병사들이 동굴 입구를 반원형으로 둘러쌌다. 활을 든 자도 다섯이었다.

동굴 안에서 피비린내가 흘러나왔다. 쓰러진 병사 셋의 시체가 입구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는 가슴이 뚫렸고, 다른 하나는 목이 꺾였다. 마지막 하나는 허리가 반대 방향으로 접혀 있었다.

서율이 왼손 의수를 만지작거렸다. 금속 손가락이 딱딱 부딪혔다.

“문주님, 화공을 준비할까요.”

왼쪽 정예가 물었다.

“기다려라.”

서율 목소리는 차분했다. 존댓말 끝에 눌린 비아냥이 배어 있었다.

“노인이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거지요.”

“아니다.”

서율이 동굴 입구를 응시했다. 녹색 눈동자에 횃불이 반사되었다.

“저 늙은 것은 시간을 버는 게 아니다.”

병사 하나가 동굴 입구에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왼팔이 팔꿈치에서 반대로 꺾여 있었다. 그 병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 뒤로 철면노괴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노인 몸은 이미 인간 형상이 아니었다. 왼팔은 어깨에서 완전히 뒤틀려 등 뒤로 돌아갔다. 오른쪽 다리는 무릎이 반대 방향으로 꺾여 발등이 바닥을 긁었다. 하지만 직립해 있었다. 부서진 관절을 내공으로 억지로 붙잡고 선 자세였다.

얼굴 왼쪽 화상 자국이 검붉게 부풀어 올랐다. 회색 눈동자에 핏발이 가득 섰다.

서율이 입가를 올렸다.

“철면노괴. 그 이름을 들은 지도 이십 년이 넘었군요.”

철면노괴가 걸었다. 걸음마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발바닥이 땅에 닿을 때마다 지면이 얕게 파였다.

“네놈이…… 그 이름을 알다니.”

“알고말고요. 제 옛 스승께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무림에서 가장 쓸모없는 고수가 바로 당신이라고.”

철면노괴가 멈췄다. 동굴 입구에서 정확히 열 걸음 지점이었다. 노인의 몸 뒤로 동굴이 검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옛 스승이라.”

“혈사문 전대 문주. 제 사부이자 저쪽 동굴에 숨은 녀석의 스승이기도 한 분이시죠.”

서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진홍색 비단 예복에 수놓인 금사 독룡이 횃불에 번들거렸다. 오른손으로 왼손 의수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빨라졌다.

“그 스승께서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남기셨는지 아십니까.”

철면노괴가 대답하지 않았다. 핏발 선 눈이 서율 목을 응시했다.

“사형의 그릇된 꿈을 부순 대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꿈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서율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삼십 년 전 완성했다는 바로 그 비급 말입니다. 몸을 제물로 바쳐 얻는 힘. 그게 제 늙은 스승이 평생 두려워했던 것이고.”

철면노괴의 왼팔이 떨렸다. 어깨에서 등 뒤로 돌아간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구부러졌다.

“네놈이…… 운혁을 죽였군.”

“운혁?”

서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 젊은 검수 말이군요. 십 년 전쯤이었습니까. 당신의 마지막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철면노괴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내가 죽였지요. 쟁기혈을 찔러서. 비급의 비의를 불라고요. 그런데 말이 없더군요. 사흘을 물었는데도. 스승에게 배운 거라곤 침묵뿐이었는지.”

철면노괴가 움직였다.

한 걸음이 아니었다. 지면이 푹 꺼지며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 순간 온몸의 관절이 동시에 어긋났다.

서율 왼쪽 정예가 앞으로 뛰어들며 장검을 휘둘렀다. 검 끝이 철면노괴 어깨로 들어갔다.

노인은 멈추지 않았다.

근육이 수축하며 검날이 어깨뼈 사이에 끼었다. 정예가 검자루를 놓으려는 순간, 철면노괴의 오른손이 그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손가락이 두개골 안으로 파고들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정예가 즉사했다.

쌍월도를 든 정예가 측면에서 돌격했다. 칼날 두 개가 교차하며 노인의 허리를 노렸다.

철면노괴가 허리를 틀었다. 부러졌던 골반이 다시 한 번 뒤집혔다. 칼날이 허리를 스쳐 피만 튀었다. 이어 노인의 팔꿈치가 정예 가슴 한가운데를 찔렀다. 갈비뼈가 부서지며 심장에 닿았다.

정예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서율 표정이 굳었다. 비아냥이 사라지고 냉소만 남았다.

“확실히 쓸모없지 않군요. 적어도 개죽음은 아니니.”

세 번째 정예가 서율 앞에 섰다. 하지만 서율이 손을 올려 막았다.

“물러서라.”

서율이 왼손 의수를 풀었다. 천천히 끈을 풀고 금속 손을 땅에 내려놓자, 잘린 약지의 흉터가 드러났다.

“당신이 완성했다는 그 힘, 직접 보여주십시오.”

철면노괴의 입이 열렸다. 피가 흘러내렸다. 입술이 아니라 잇몸 전체에서 배어 나온 피였다.

“보여주마.”

노인의 단전이 빛났다. 내공 흐름이 맨살 너머로 보일 정도로 격렬하게 회전했다. 근육 하나하나가 부풀어 올랐다가 수축했다. 뼈 어긋나는 소리가 멈추더니, 살점이 굳기 시작했다.

양팔이 올라갔다. 부러진 관절들이 일직선으로 펴졌다. 손가락은 검지와 중지만 곧추서고 나머지는 안으로 굽혀졌다. 오래전 검을 쥐던 손 모양 그대로였다.

동굴 바위틈 뒤에서 진사현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위소월도 숨을 죽였다. 바위틈은 좁았지만 입구가 보이는 각도였다. 두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철면노괴의 몸이 허공으로 솟았다. 발이 지면에서 떠나자 몸체가 한 바퀴 회전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비급 마지막 장의 초식이었다.

진사현은 그 움직임을 알아봤다. 그가 펼쳤던 비급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져 있던 선과 각도. 노인의 몸은 그 그림과 정확히 일치했다. 다만 진사현의 팔보다 세월이 한층 더 깊이 새겨진 살점 위에서 움직일 뿐이었다.

철면노괴의 왼손이 서율 가슴으로 들어갔다.

검지와 중지가 갈비뼈 사이를 뚫고 폐에 닿았다. 피가 솟구쳤다. 손가락이 더 깊숙이 파고들어 심장을 간신히 비껴 등 뒤로 빠져나왔다.

서율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오른손을 휘둘러 반격하려 했지만, 철면노괴의 오른손이 그의 왼팔을 붙잡았다.

노인의 손가락이 서율 왼팔뚝을 관통했다. 팔뚝 안쪽 뼈들 틈새로 손가락이 정확히 파고들며 근육 다발이 끊어져 나갔다. 서율의 왼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이것이…….”

철면노괴 목소리가 갈라졌다. 성대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사형의 꿈을 부순 독이다.”

노인의 팔이 마지막으로 힘을 모았다. 서율 가슴에서 손을 빼내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가락이 빠지지 않고 가슴 안쪽에서 경련했다. 내공이 역류하며 노인의 전신 근육이 동시에 수축했다. 관절들이 모두 원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 반동으로 뼈 일곱 군데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철면노괴가 무너졌다.

서율 몸에서 손이 빠져나왔다. 노인의 등허리가 바닥에 닿았다.

마지막 숨을 들이쉬었다.

“됐다.”

철면노괴의 회색 눈이 동굴 쪽을 향했다. 바위틈에 숨은 진사현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입가가 비틀렸다. 마지막 웃음이었다.

눈이 감겼다.

서율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왼팔은 힘없이 늘어져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세 번째 정예가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문주님!”

“입구를…… 봉쇄해라…….”

서율이 처음 내뱉은 반말이었다. 녹색 눈동자에 처음으로 광기가 어렸다.

“동굴 전체를 불태워라. 비급이고 유령이고 다 태워라!”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동굴 입구로 몰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동굴 천장에서 진동이 울렸다.

철면노괴의 궁극기가 바위에 금을 냈다. 천장 균열이 빠르게 벌어지며 낙석이 떨어졌다. 병사 셋이 비명과 함께 바위에 깔렸다.

“물러서!”

서율을 부축한 정예가 소리쳤다.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동굴 입구가 무너졌다. 바위 더미가 쌓이며 철면노괴의 시체를 덮었다. 입구는 완전히 막혔다.

서율이 피를 토하며 바위에 주저앉았다.

진사현이 바위틈 사이로 지켜보는 가운데, 병사들이 달려와 서율을 부축했다. 셋이 양팔과 허리를 받쳐 들었다. 서율은 버둥거리지 않았다.

힘이 빠진 왼팔이 축 늘어졌다. 피가 계속 바닥에 떨어졌다. 정예가 손을 휘둘러 신호를 보냈다.

혈사문 병력이 하나둘 숲 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서율을 든 병사들이 먼저 걸음을 옮겨 숲길로 접어들었다. 나머지는 그 뒤를 따르며 급히 퇴각했다. 서율의 피가 숲 바닥에 점점이 떨어지며 혈사문 진영을 향하는 길을 표시했다.

진사현이 바위틈에서 몸을 뗐다.

위소월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진사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간다.”

“저분은…….”

“죽었다.”

진사현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건조했다.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말투였다. 하지만 왼쪽 손목을 만지는 버릇이 나타났다. 손가락이 굳어 제대로 만지지도 못하고 손목 언저리를 더듬었다.

“뒷길을 찾는다.”

위소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눈가가 붉어졌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대신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먼저 걸었다.

“이쪽에서 바람이 들어와요. 출구가 있을 거예요.”

진사현이 따랐다.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바위틈은 점점 좁아졌다가 갑자기 넓어졌다. 작은 방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바닥에 짚단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녹슨 촛대가 박혀 있었다. 철면노괴가 수련하던 공간이었다.

한쪽 벽에 손바닥만 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혈사문의 문양. 동굴 열쇠에 새겨져 있던 것과 같은 글씨체로 ‘비상(非常)’이라고 쓰여 있었다.

진사현이 문양에 어깨를 갖다 댔다.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위소월이 다가왔다.

“제가 밀어볼게요. 어깨가 안 좋으시잖아요.”

“아니다.”

진사현이 몸을 돌려 등을 문에 갖다 댔다. 허리와 다리 힘으로 밀었다. 굳은 양팔은 가슴 앞에 접은 채였다. 등 근육이 긴장하며 척추가 살짝 휘었다. 다리 근육이 떨렸다.

돌문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한 치, 두 치, 문이 열렸다. 바깥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밤하늘이 보였다. 달은 없었지만 별빛이 희미하게 바위를 비추고 있었다. 가파른 절벽 아래로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먼저.”

진사현이 밖으로 나갔다. 바닥이 불안정했다. 좁은 바위 선반이 절벽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위소월이 단도를 챙겨 따라나왔다. 문을 닫으려 했지만 진사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둬라.”

“추격대가 따라올지도…….”

“입구가 무너졌다. 올 길이 없다.”

진사현이 절벽 선반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팔을 쓰지 못하니 벽에 어깨를 기대고 다리로 중심을 잡으며 한 걸음씩 움직였다.

한식경쯤 내려갔을 때였다.

절벽 아래 계곡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 너머로 작은 공터가 있었다. 약초꾼이 사용하던 버려진 오두막이었다. 지붕은 반쯤 무너졌지만 벽은 온전했다.

“저기…….”

위소월이 숨을 몰아쉬며 오두막을 가리켰다.

진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몇 걸음은 경사가 급했다. 진사현이 낙엽 더미에 발을 디뎠다. 젖은 흙이 미끄러졌다. 온몸이 기울었다.

위소월이 손을 뻗었다.

왼손이 진사현의 왼쪽 손목을 붙잡았다. 굳은 살점 위로 그녀의 손가락이 닿았다. 맥박이 뛰는 곳이었다.

진사현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세요.”

위소월이 조용히 말했다. 손목을 감싼 손을 놓지 않은 채였다.

오두막 안은 어두웠다. 바닥에 먼지가 두껍게 깔려 있었고, 구석에 썩은 약초 꾸러미가 쌓여 있었다. 천장 구멍으로 별빛이 한 줄기 떨어져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위소월이 진사현의 손목을 여전히 붙잡은 채로 그를 벽 쪽으로 이끌었다. 진사현이 벽에 등을 기대자, 위소월도 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굳은 살갗에 닿은 채로 있었다.

진사현이 눈을 감았다.

스승의 유언이 떠올랐다.

‘사형의 그릇된 꿈을 부순 대가’

철면노괴 최후가 떠올랐다.

‘사형의 꿈을 부순 독이다’

두 문장이 머릿속에서 부딪혔다. 노인의 몸이 부서지며 서율 가슴을 뚫던 장면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피, 뼈, 살점. 그리고 마지막 웃음.

진사현이 눈을 떴다.

“위소월.”

“……예.”

“스승님 말씀은 이 힘을 경계하라는 뜻이었다.”

진사현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하지만 아까보다 느렸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씹어 삼키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써야 한다.”

위소월이 숨을 멈췄다. 단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힘을 쓰면…… 진사현 님도 저 노인처럼 될지도 모르잖아요. 팔이 망가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안다.”

진사현이 말을 끊었다. 눈빛이 별빛을 반사해 붉게 빛났다.

“서율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런 게 복수인가요!”

위소월 목소리가 올라갔다. 감정이 북받치면 말이 빨라지는 그녀의 버릇이 터져 나왔다.

“자기를 부수는 게 복수예요? 남은 사람도 스스로를 죽이는 게 원한을 푸는 길인가요?”

“내 원한은 나만이 안다.”

“저는…….”

위소월이 숨을 들이쉬었다.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하지만 참았다.

“저는 그게 싫습니다. 당신까지…… 잃는 게.”

진사현이 위소월을 바라봤다. 그녀가 ‘싫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존댓말 속에 섞인 단호함. 상대를 걱정하는 어투가 아니라 자기 감정을 선언하는 말투였다.

“쉴 시간이다.”

진사현이 시선을 거뒀다.

“내일 추적대가 계곡을 수색할 거다. 움직이기 전에 쉬어라.”

위소월이 잠시 망설였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결국 말을 삼켰다. 그녀의 손이 진사현 왼쪽 손목을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단도를 내려놓고 어둠을 응시했다.

시간이 흘렀다.

오두막 밖에서 바람 소리만 들렸다. 별빛이 조금씩 각도를 바꾸며 바닥을 가로질렀다.

위소월이 잠들었는지 호흡이 고르게 바뀌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여전히 진사현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체온이 굳은 살갗 아래 맥박에 스며들었다.

진사현은 잠들지 않았다. 눈을 뜬 채 천장 구멍 너머 별을 바라봤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비급 마지막 장은 무기였다.

몸을 제물로 바치는 무기.

서율은 반드시 죽는다. 그걸 위해 스스로 무기가 되는 길을 이미 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철면노괴의 최후를 목격했을 때 가슴 한복판을 찌른 감각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을 건드린 것이 있었다. 바로 그 노인처럼, 복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충격.

진사현이 왼쪽 손목을 내려다봤다.

위소월이 붙잡고 있는 그 자리였다. 손가락이 얹힌 곳에서 맥박이 뛰고 있었다. 체온이 미세하게 뜨거웠다. 복수라는 목표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그 온기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진사현은 그 감각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철면노괴가 움직였다.

한 걸음이 아니었다. 지면이 푹 꺼지며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 순간 온몸의 관절이 동시에 어긋났다.

서율 왼쪽 정예가 앞으로 뛰어들며 장검을 휘둘렀다.
혈사문의 마지막 밤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