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우편배달부: 단절된 세계를 잇는 자
1화
길드 사무소의 아침 공기는 언제나 퀴퀴한 양피지 냄새와 마나 잔류향이 뒤섞여 있다. 나는 접수대 앞에 놓인 소포 세 개를 훑어봤다. 하나는 작은 상자, 하나는 봉인된 편지, 하나는 두 손바닥만 한 의약품 꾸러미. 배달 경로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데, 뒤쪽 작업실 문이 열렸다.
바스코가 손바닥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다가왔다. 덥수룩한 갈색 털 사이로 황금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거.”
그가 내미는 건 엄지손가락만 한 금속 고리였다. 가죽 끈에 매달린 작은 원반 모양. 중앙에 희미한 청색 마나석이 박혀 있었다.
“뭐야?”
“마나 안정화 장비. 네 마력 흐름이 좀... 들쑥날쑥하더라.”
고리를 들어 올려 살폈다. 촉감은 예상보다 차가웠다. 원반 가장자리를 따라 바스코 특유의 정교한 세공 흔적이 보였다. 마치 금속 물결이 얼어붙은 듯한 무늬. 이 녀석, 대장장이 실력이 점점 예술이 되어간다.
“그냥 팔찌처럼 차면 돼. 마나가 요동치면 이 돌이 온도 변화를 일으킬 거다.”
“온도?”
“...뜨거워지면 위험하다는 뜻이야.”
간결한 설명이었다. 나는 왼쪽 손목의 낡은 디지털 시계 바로 위에 고리를 찼다. 금속이 피부에 닿자 미세하게 진동했다. 불편하진 않았다.
“고맙다.”
“...응.”
올리비아가 다가왔다. 그녀가 들고 있는 배달 가방에는 이미 물품 수납을 마친 상태였다. 가죽 가방 옆구리에 우편배달부 길드의 인장이 찍혀 있다. 단절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의 표식.
“우편 선배님! 진짜 첫 공식 배달이네요!”
“그래.”
“바르트 변경 마을이면... 평소에는 3일 걸리던데.”
나도 이미 들었다. 일반인이 가면 균열에 휩쓸려서 길을 잃고, 운 좋으면 일주일 만에 돌아온다고. 우편배달부만이 주소 마법으로 반나절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에겐 3시간이면 충분해.”
올리비아가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조심하세요. 요즘 변경 쪽 균열이 불안정하다는 제보가 있어요.”
바스코가 내 어깨에 거대한 손을 올렸다. 그의 장갑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저 고리... 과부하 걸리면 부서지도록 설계했어. 네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내 몸보다 배달 물품이 먼저다.”
“...알아서 해.”
가방을 둘러메자 어깨에 익숙한 무게감이 내려앉았다. 전생에 그 수많은 택배 상자를 실어 나르던 감각과 다르지 않았다. 배달의 무게는 어느 세상에서나 같다.
출발선에 섰다. 바스코는 작업실로 돌아가지 않고 문간에 서서 날 바라봤다 올리비아는 접수대 너머에서 손을 흔들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길드 문을 열었다.
길드 밖으로 나서자 바람이 먼지를 휘감았다. 포장도로는 금방 끊겼다. 거친 자갈길을 30여 분쯤 걸었을까. 평범한 황무지를 지나쳐 균열 지대의 경계에 접어들었다.
공기가 변한다. 수분이 급격히 줄어든 것처럼 피부가 당겼다. 주변 풍경이 살짝 일그러져 보였다.
마치 투명한 물결 사이로 세상을 보는 기분. 지도에 표시된 이 구간은 '얕은 균열' 구역이었다. 안정적인 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왼쪽 손목의 금속 고리가 미열을 띠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오른쪽 20미터 지점의 공기가 찢어졌다. 찢어졌다는 건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허공이 세로로 갈라지며 그 틈에서 검은 연기 같은 형체가 흘러나왔다.
그림자 늑대.
어깨 높이 1미터는 넘어 보였다. 윤곽은 늑대지만 실체는 반투명한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다. 발톱 자국만 선명하게 땅을 파고들었다.
황금빛 눈동자 두 개가 허공에 떠서 나를 응시했다. 동공이 없다. 그냥 빛 그 자체였다.
가방 끈을 다시 한 번 조였다. 그리고 정면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전생에 배운 교훈 하나. 위험에 등을 보이면 짐승은 반드시 쫓아온다.
두 걸음.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목구멍이 보이지 않는데도 소리는 선명했다. 낮고 긴 진동. 발톱이 돌바닥을 긁으며 불꽃을 튀겼다.
세 걸음. 이제 내 손이 닿을 거리였다.
나는 가방 뚜껑을 열었다. 가장 위에 놓인 의약품 꾸러미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진통제와 해열제, 그리고 소독약. 변경 마을엔 의사가 없다. 이 작은 꾸러미 하나에 그들이 보낸 사흘 치 임금이 들어 있다.
“이 물건에 깃든 마음을 느껴 봐.”
말을 걸었다. 그림자 늑대에게.
“보낸 사람은 제약사 직원이 아냐. 이걸 받는 사람은 마을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다. 지난달부터 앓아누워서 편지 한 장 못 쓴대. 이웃이 대신 주문한 거야.”
늑대의 귀가 움찔했다.
“네가 이걸 막으면... 그 노인은 이번 주 안에 죽을지도 몰라.”
거짓말이 아니었다. 접수대에 적힌 발송인의 메모가 기억났다. '늦으면 안 됩니다. 제발.'
그림자 늑대의 황금빛 눈이 깜빡였다. 처음이었다. 마물이 눈을 깜빡이는 걸 본 건. 발톱이 땅에서 떨어졌다. 뒷걸음질 한 번.
바로 그때, 내 몸 안쪽에서 뭔가가 터져 나왔다.
주소 마법.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다. 수취인의 정보와 보내는 이의 진심을 연료로 삼아 공간에 일시적인 통로를 개방하는 힘. 길드에서 등록할 때 각인받은 마법 각인이 반응했다.
내 오른손이 저절로 올라가 허공을 그었다. 손끝에서 청백색 빛이 번졌다. 그 빛이 공중에서 갈라지며 하나의 선을 만들었다. 선은 곧게 뻗어 균열 지대 너머로 이어졌다.
통로였다. 폭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 가장자리가 불안정하게 일렁였지만, 확실한 길이었다.
그림자 늑대를 똑바로 바라봤다.
“비켜 줘서 고맙다.”
늑대는 이미 물러나고 있었다. 허공의 찢어진 틈으로 그림자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마지막 순간 황금빛 눈이 한 번 더 깜빡였다.
통로 너머로 변경 마을의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나는 가방을 다시 둘러메고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첫 걸음을 내딛자 왼쪽 손목의 고리가 급격히 뜨거워졌다. 바스코가 말한 대로라면 마나 과부하 경고다. 다리는 후들거렸다.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통로가 일렁일 때마다 가슴 한복판이 죄어드는 느낌.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통로 끝까지 20보 남짓.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숨이 가빠졌다.
그래도 괜찮다. 배달은 계속된다.
통로의 청백색 빛이 완전히 꺼질 때쯤 마을 입구의 나무 기둥이 눈앞에 닿았다. 20보 거리를 걷는 데 정상의 세 배는 걸린 듯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아 기둥 옆에 잠시 몸을 기댔다. 내 심장은 여전히 귓가에서 쿵쾅거렸지만, 마을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자 후들거리던 손끝이 조금은 진정됐다. 그사이 수취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발돋움한 자세 그대로 나를 알아보고 시선을 고정했다.
안전 통로의 빛이 내 발걸음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코끝을 찌르는 흙냄새와 타는 듯한 장작 냄새. 바르트 변경 마을은 내가 상상했던 폐허보다 훨씬 정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을 입구 나무 기둥 옆에 할머니 한 분이 서 있었다. 손을 앞으로 모으고, 발끝으로 서서 도로 너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자세는 안다. 택배 기다리는 사람들 특유의 그 자세.
“릴리안 헤이워드 어르신이십니까.”
할머니의 입술이 떨렸다. 제 이름을 듣자마자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 나는 배달 가방에서 구호 물자 꾸러미와 편지를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
“아델라이드 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할머니는 봉투를 받아 가슴에 품었다. 고개를 숙이시더니 연신 '고맙습니다'를 반복했다. 내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보는 눈빛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좁은 골목에서 나와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누군가 내 손에 덥석 차가운 물주전자를 쥐여줬다. 어떤 남자는 내 배달 가방의 흙먼지를 손바닥으로 털어줬다.
“아델라이드가 살아 있군요.”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뜯었다. 편지를 읽는 얼굴이 점점 편안해졌다. 긴장이 풀린 주름이 입가로 번졌다.
“손녀입니다. 대전쟁 때 헤어졌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에서 마나가 아니라 사람 체온이 느껴졌다. 주소 마법의 잔향 사이로 배달부의 진짜 보수가 스며들었다.
건너편 하늘에서 첫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굵고 무거운 빗방울이 마을 지붕의 슬레이트를 두드렸다.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처마 밑으로 흩어졌지만, 할머니만은 편지를 호주머니 깊숙이 넣고 내 팔을 다정하게 두드렸다.
“비가 옵니다, 우편배달부 양반.”
내가 말했다. “이게 그 아가씨의 진심입니다. 비에 젖기 전에 들어가십시오.”
길드 사무소 문을 밀치니 접수대 너머로 올리비아 크로스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돌아오셨군요. 바스코 씨가 장비 상태 궁금해하실 거예요.”
나는 배달 완료 확인서를 접수대 위에 올려놓고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 소파에 앉자마자 두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마나 소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숨을 깊게 들이쉬는데,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빗소리.
순간 귀에 꽂히는 다른 소리. 경적. 도시의 야간 공기. “기사님, 빨리 도착해주셔야 합니다”라는 메마른 음성. 왼쪽 가슴께가 옥죄는 듯했다.
나는 손을 들어 얼굴 앞에 세웠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있었다. 이곳의 굳은살이다. 전생과는 다른 모양으로 박혀 있다. 심호흡을 두 번 하자 손가락이 가라앉았다.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빗소리는 여전했지만 더는 환청을 실어 나르지 않았다. 이쪽 세상 비는 차분하게 지붕만 두드릴 뿐이었다.
관측실의 마나 측정기가 배달 기록 데이터를 수신 완료했다는 신호를 띄웠다. 그리프 오닐은 고글 형태의 마법 측정 장비를 이마로 올리고, 수신된 파동 그래프를 하나씩 넘겼다.
표준적인 주소 마법 전개 곡선. 예상 범위 내의 균열 감쇠 패턴. 수취인의 마나 반응 수치도 안정적이었다.
그리프가 손가락으로 그래프를 당기다 동작을 멈췄다.
배달 중반, 정확히 마물이 퇴각하고 통로가 안정화되는 지점에서 예상 외의 스파이크가 찍혀 있었다. 주소 마법이 아니라 전달자의 마나 파동에서 발생한 미세한 진동이었다. 그리프는 퀼을 집어 공책에 수치를 옮겨 적었다. 파동 패턴이 반복되는 지점을 동그라미로 표시하며 미간을 좁혔다.
표준적인 마나 소모 패턴과 확실히 달랐다. 거의 생리적 리듬에 가까운 이질적 박동. 지진파의 스파이크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리프는 마지막 수치까지 공책에 옮겨 적고, 퀼을 내려놓았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그래프가 푸르게 떠 있었다. 손을 뻗어 전원을 끄지 않고, 등을 기대고 앉은 채 화면을 응시했다.
빗소리가 관측실 창문을 두드리고, 그래프의 잔광은 꺼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