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우편배달부: 단절된 세계를 잇는 자
4화
길드 사무소의 아침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어제의 균열 탈출과 에드거의 방문. 그 여파가 아직 복도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접수대 앞에 서서 배달 가방의 버클을 점검했다. 찰과상 난 오른팔은 붕대 대신 얇은 마법 테이프로 감았다. 움직임에 지장 없을 정도.
그리프가 책상 너머에서 마나 측정 장비 고글을 닦고 있었다. 보랏빛 눈동자가 고글 렌즈 너머로 깜빡였다.
“오늘 예정된 배달은 세 건입니다. 모두 기존 루트.”
“알겠습니다.”
“팔은 좀 어때요?”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프가 고글을 내려놓으며 나를 똑바로 봤다.
“무리하지 마세요. 어제 그 협곡에서... 아니, 됐습니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길드 정문이 열렸다.
여자였다.
새파란 스파이크 헤어. 몸에 딱 붙은 검은 가죽 슈트. 허리엔 여러 개의 배달용 파우치 벨트가 둘려 있었다. 왼쪽 눈 밑에 새겨진 고대 문자가 실내 조명 아래 반짝였다.
걸음걸이가 달랐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접수대까지 다가왔다.
“의뢰하러 왔어.”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가격표를 읽는 점원 같았다.
그리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이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했다.
“의뢰 접수는 이쪽입니다. 성함을...”
“루나 미드나잇.”
이름을 듣자 그리프의 손이 멈췄다.
“...암시장 배달부?”
“전직이지. 지금은 그냥 의뢰인이야.”
루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배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은 양피지 조각이었다.
탁자 위에 펼쳐졌다. 지도였다. 그런데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가장자리만 희미한 선으로 그려지고, 중심부는 그냥 공백.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지우기라도 한 듯했다.
숨이 멎었다.
“길 없는 지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루나의 눈이 나를 향했다. 짙은 보라색 눈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알아보는 눈은 있네. 맞아. 이게 그 유명한 지도의 조각이야.”
그리프가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딱딱했다.
“그 지도는 에드거 할로우만이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비즈니스 비밀이야.”
루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강한울. 맞지?”
“내가 유명한가?”
“소문 들었어. 균열에서 살아 돌아왔다며. 게다가 어제는 에드거 할로우도 만났고.”
파우치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묵직한 소리. 마나석이었다. 그것도 상당량.
“의뢰 내용은 단순해. 이 지도 조각의 나머지 부분을 찾아줘. 목적지는... 지도가 완성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리프가 내 앞으로 나섰다.
“잠시만요. 그런 불확실한 의뢰는 길드 규정상...”
“규정.”
루나가 코웃음을 쳤다.
시선이 사무소 벽면을 훑었다. 배달 절차 안내문. 마법 안전 수칙. 접수 양식 틀.
“그 규정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편지를 사장시켰는지 알아?”
그리프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대전쟁 직후야. 너희 길드가 시스템 정비한다고 배달 중단했을 때. 그 사이에 도착하지 못한 편지가 몇 통인지 세어는 봤어?”
루나의 손가락이 접수대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그때도 배달했어. 시스템 없이. 규정 없이. 효율과 자유만으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암시장 배달부. 그것도 꽤 유명한. 길드의 규칙을 정면으로 비판하다니.
나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아직 끼어들 때가 아니었다.
그리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
“당신이 말하는 효율과 자유는, 검증되지 않은 위험을 방치하는 것과 같아요. 균열에 휩쓸린 배달부가 몇 명인지 아세요?”
“알아. 그게 전쟁의 대가라면 어쩔 수 없지.”
“대가라고요?”
그리프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드문 일이었다.
“배달부는 소모품이 아니에요.”
“동의해.”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보호라는 명목으로 길을 막는 것도 답은 아니야. 사람들은 편지 한 통에 목숨을 걸어. 그걸 시스템이 거부하면...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지?”
그 말에 그리프의 입술이 닫혔다.
보랏빛 눈동자에 뭔가 스치는 게 보였다. 전쟁 고아 시절.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벽에서 등을 뗐다.
“재미있는 철학이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옮겨졌다.
루나가 입가를 비틀었다.
“철학이 아니야. 비즈니스지.”
“그 비즈니스에 감정은 없나?”
“감정은 배달을 느리게 할 뿐이야. 나는 빠르고 정확하게. 그게 내 방식.”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봤다.
“나는 좀 달라. 편지에 담긴 마음이 길을 만든다고 믿거든.”
그 순간이었다.
루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뭔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 회복했다.
“...그 마음이라는 게, 항상 사람을 구원하진 않아.”
혼잣말이었다. 건조한 말투가 한 꺼풀 벗겨진.
곧바로 그녀는 지도 조각을 내 앞으로 밀었다.
“어쨌든. 받을 거야, 말 거야?”
나는 지도를 내려다봤다.
공백 투성이의 양피지. 그 비어 있는 공간이 오히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치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받지.”
그리프가 황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강한울 씨. 아직 검증도 안 된...”
“검증은 내가 할게요.”
나는 그리프를 돌아봤다.
“어제 협곡에서 우리가 했던 것처럼. 직감과 계산. 둘 다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그녀의 손이 내 팔에서 떨어졌다.
“...위험할 거예요.”
“원래 배달이라는 게 그래요.”
루나가 가죽 주머니를 내 쪽으로 밀었다. 마나석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선금이야. 완료되면 두 배를 더 얹지.”
“돈은 필요 없어.”
내 대답에 루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지도 조각 복사본이면 충분해. 이건 내 호기심이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루나가 웃었다. 처음으로 진짜 웃음이었다. 비아냥이 아니고, 거래용 미소도 아니었다.
“너, 진짜 별종이구나.”
그녀가 지도를 들고 길드 복사 마법진으로 걸어갔다. 마법석에 손을 얹자 푸른 빛이 번졌다.
그리프가 내 옆에 섰다. 목소리가 낮았다.
“저 사람, 마음에 안 들어요.”
“알아요.”
“시스템을 우습게 봐요.”
“그리고 당신은 시스템이 전부라고 믿죠.”
그리프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전부는 아니에요. 어제부터는.”
작은 목소리였다.
루나가 복사본을 들고 돌아왔다. 지도 조각을 내 손에 건넸다. 원본은 자신의 파우치에 넣었다.
“계약 조건 하나 추가할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말해 봐.”
“길드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을 거야.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혼자 움직일 수도 있어. 협력은 어디까지나 임시.”
그리프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건 길드 규정상 불가...”
“좋아.”
내가 끊었다.
그리프가 나를 노려봤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루나의 눈빛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즐거운 비즈니스가 되길.”
등을 돌려 걸어갔다. 복도로 향하는 걸음걸이.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 진짜 프로였다.
나는 손에 든 지도 조각을 내려다봤다.
공백의 중심부. 손가락으로 그 가장자리를 따라가 봤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는 게 신경을 긁었다.
“이걸로 뭘 찾으려는 걸까.”
그리프가 대답했다.
“에드거 할로우입니다.”
“...뭐?”
“암시장 배달부 시절, 루나 미드나잇의 단골 의뢰인이 에드거 할로우였어요. 지금까지 기록을 추적해 봤는데... 확실해요.”
그리프의 손이 바빠졌다. 마나 측정 장비를 조작하며 서류를 넘기고.
“저 사람, 에드거의 흔적을 쫓고 있어요. 지도 조각도 에드거가 남긴 거고.”
나는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그럼 더 재미있어지네.”
“재미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에드거 할로우는...”
“위험한 인물?”
그리프가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그리고 저 여자도 마찬가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파트너. 우리가 안전한 일만 골라서 했나요?”
대답은 없었다.
복도로 나왔다.
루나는 복도 끝에서 멈춰 서 있었다. 손에 작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계약서에 사인 안 했는데.”
그녀가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이름만으로 충분해. 배달부의 말은 계약서보다 무거우니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게 보였다. 낡은 우편배달부 배지였다. 길드 인장이 아니라, 더 오래된 디자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에드거의 물건이었다.
루나는 배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인장의 문양을 천천히 쓸었다.
그 표정.
거래용 미소도, 비아냥도, 냉소도 없었다. 그저 조용한 그리움.
측면 복도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그녀의 새파란 머리칼이 빛났다. 손끝에 쥔 배지는 빛바랜 금속 특유의 둔탁한 광택을 냈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루나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배지를 파우치 깊숙이 밀어 넣었다.
“...볼 일은 끝났어.”
“그 배지.”
말을 꺼내자 루나가 손을 들었다.
“질문은 사양할게.”
건조한 말투였다. 그런데 그 건조함 속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실려 있었다.
돌아서서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지도 조각을 품은 가방이 어깨에서 묵직했다.
뭔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