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우편배달부: 단절된 세계를 잇는 자
5화
루나의 뒷모습이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고 한참.
나는 가방을 열어 지도 조각 복사본을 꺼냈다. 낡은 양피지 질감까지 그대로 옮긴 복사본. 가장자리의 희미한 선들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볼 일이 끝났다”고?
입가가 비틀렸다.
이쪽은 이제 시작인데.
그리프가 조용히 다가왔다. 손에는 루나가 남긴 의뢰 서류.
“따라가실 거죠.”
물음이 아니었다.
“당연하지.”
서류를 받아들었다. 첫 장에 적힌 루나의 글씨는 놀랄 만큼 반듯했다. 의뢰 내용은 간단했다.
‘길 없는 지도’ 조각의 나머지 수색. 배달이 아니라 수색이었다. 찾아서 배달하라는 건지, 찾는 과정 자체가 배달인 건지. 루나다운 애매모호함이었다.
“바스코와 올리비아는?”
“대기 중입니다. 부르면 바로...”
“부르지.”
한 시간 뒤, 우리는 크랙 마켓 입구에 서 있었다.
균열 지대와 정상 공간의 경계에 자연 발생한 암시장. 무허가 상점들이 공중에 닻줄처럼 매달린 채 떠 있고, 좁은 골목마다 마나 램프가 지글거렸다. 합법과 불법이 뒤섞인 공기. 전생의 새벽 도매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였다.
“여기야.”
시장 중앙의 낡은 천막 앞.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이미 와 있었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지도 한 장과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의뢰 내용을 변경할게.”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단순 수색은 재미없잖아. 둘 다 배달부니까.”
테이블 위의 편지를 집어 들었다.
“균열 지대 변방에 고립된 노부부의 구호 요청 편지. 배달 경쟁이야. 목적지는 같고, 방식은 자유.”
그리프가 끼어들었다.
“경쟁 배달은 길드 규정에...”
“규정?”
루나가 피식 웃었다.
“전쟁 때 길드가 배달을 멈췄을 때도 나는 규정 없이 배달했어. 네가 지키는 그 시스템이 사람을 구한 적 있어?”
그리프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바스코가 불편한 듯 발을 옮겼다. 그때였다. 바스코의 눈빛이 루나의 가슴께에 멈췄다.
그녀의 검은 가죽 슈트 위로 낡은 훈장 하나가 걸려 있었다. 길드 인장보다 오래된 문양. 바스코의 턱 근육이 살짝 움직였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나는 편지를 펼쳤다.
“방식은 자유라고 했지.”
“응.”
“나는 대면 배달을 포기하지 않아.”
루나의 보라색 눈이 가늘어졌다.
“낭만적이네. 편지 놓고 오면 그만인데.”
“그게 내 방식이야.”
“비효율의 표본이군.”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편지 하나를 자신의 파우치에 쓸어 넣었다. 복사본이었다.
“좋아. 그 낭만이 통하는지 두고 보자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나는 가방을 열었다. 편지 원본을 조심스럽게 수납했다.
“강한울.”
그리프의 목소리가 낮았다.
“룰도 없이 경쟁이라니...”
“괜찮아.”
가방 끈을 조이며 말했다.
“어차피 이쪽이 더 잘할 거니까.”
균열 지대 변방.
공기가 달랐다. 중력이 수시로 뒤틀리는 구역. 땅은 색이 바랜 유리처럼 깨져 있었고, 저 멀리 검은 균열선이 하늘을 향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루나는 이미 시작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마나가 뻗어나왔다. 주소 마법의 공식이 펼쳐지는데... 빠르다.
놀랄 만큼 간결했다. 수취인의 좌표, 이름 두 글자, 목적지 거리. 그것뿐이었다.
“개인사는 잡음일 뿐이야.”
중얼거리듯 말했다.
“주소 마법의 연료는 송신자의 진심. 하지만 수취인 정보는 최소한으로 충분해. 나이는? 취미는? 다 쓸데없는 데이터.”
그녀 앞 공간이 찢어졌다. 검푸른 균열이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 개미굴처럼 좁고 빠른 길. 마치 경주용 차선 같았다.
루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길로 뛰어들었다.
나는 천천히 편지를 꺼냈다.
종이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손이 아니라 마음의 떨림이었다. 연로한 부부가 쓴 글씨. 한 글자 한 글자, 마나가 서툴러 손이 떨렸을 것이다.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 할멈이 아직 살아 있어요. 약이 떨어졌는데, 여기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길이 갈라진 뒤로 아무도 오지 않아요. 젊은 배달부 양반, 당신이 마지막 희망이오.’
목소리가 낮아졌다.
“수취인 이름은 마르타. 나이 일흔둘. 남편의 이름은...”
편지의 글씨가 빛나기 시작했다.
마나가 아니다. 편지에 담긴 마음이었다. 노부부의 떨리는 진심이 잉크 속에서 깨어나 주변 공기를 데웠다.
내 손목에서 미세한 진동.
디지털 시계가 울렸다. 전생에서 가져온 유일한 물건. 지금까지 이런 반응은 없었다.
화면이 푸르게 깜빡였다. 공명. 마치 이곳의 무언가에 호응하듯.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무시했다. 지금은 배달이 먼저다.
“주소 마법을 전개한다.”
내 앞의 공간이 열렸다. 하지만 루나와 달랐다. 폭이 넓었다. 마차 한 대가 지나갈 만큼 넓은 길. 균열 가장자리가 은은한 금빛으로 반짝이며 안정화되었다.
수취인의 개인사, 송신자의 진심. 그 정보들이 마나와 만나 안전한 통로를 짰다.
느리지만 확실한 길.
그리프가 숨을 들이켰다.
“안정성이... 제가 계산한 최적 경로보다 높아요. 편지의 감정 정보가 이렇게까지 증폭될 줄은...”
“마음이 만든 길이니까.”
나는 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로 그때,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렸다.
루나의 통로 쪽이었다.
좁은 균열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스며들고 있었다. 마물. 두 마리. 그녀가 개척한 길은 너무 빨라서 안전 마진이 부족했다.
루나의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 개조된 배달 도구들이 번쩍였다.
“일하러 왔나 보네.”
담담한 중얼거림.
나는 내 길을 따라 걸었다. 길이 나를 보호했다. 노부부의 마음이 방패가 되고, 개인사가 이정표가 되었다. 마물들은 내 통로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시계가 다시 한 번 진동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무슨 의미일까.
지금은 몰랐다. 하지만 분명했다. 이곳 균열 지대 어딘가에, 내 시계가 반응하는 무언가가 있다.
루나는 마물 두 마리를 제압하고 통로를 재정비했다.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그녀의 길은 여전히 좁고, 불안정했다. 마물들이 세 번째, 네 번째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빠른 길이 항상 먼저 도착하는 건 아니다.
내 가슴팍의 편지가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오의 균열 지대 변방은 고요했다.
반파된 돌집 앞. 지붕의 서까래가 반쯤 드러나고 벽 한쪽이 무너져 내렸지만, 굴뚝에서는 연기가 가늘게 올랐다. 마당의 우물은 말라 있었고, 빨랫줄에는 낡은 천 몇 장이 바람에 펄럭였다.
루나가 편지를 꺼내 문 앞 돌계단에 올리려는 걸 내가 손을 내밀어 막았다.
“뭐 하는 거지.”
“배달.”
루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문 앞에 두고 가도 수취인의 소유가 되는 건 마찬가지야. 효율적으로.”
“아니지.”
편지를 그녀의 손에서 낚아챘다.
“수취인 확인 없이 던져놓는 건 배달이 아니야. 투기지.”
루나의 눈썹이 올라갔다.
“규정에 그런 조항이라도 있어?”
“내 규정이야.”
그녀가 한숨을 쉬듯 숨을 내뱉었다. 반박하려다 관두는 눈치였다.
돌계단 앞에 섰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손을 들려는 순간, 귓가에 바람 소리가 아닌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문 앞에 두고 가세요.
짧은 환청이었다.
숨이 멎었다. 전생의 마지막 배송.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빌라 4층. 인터폰 너머로 들리던 그 말.
시야가 살짝 흔들렸다. 다리에 힘을 줬다.
“왜 그래.”
루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백발의 노파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깊게 패인 주름. 손은 마디가 굵고 거칠었다.
“우편배달부... 님이신가요.”
노파의 목소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렸다.
나는 편지를 두 손으로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아드님의 편지입니다.”
노파의 손이 편지를 받았다. 봉투를 열지도 못하고, 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를 감싸듯 가슴에 품었다.
눈물이 주름을 타고 흘렀다.
“이걸... 이걸 기다렸어요.”
노파가 내 손을 붙잡았다.
“저희 부부가 여기서 버티는 이유예요. 저 애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입술을 떨며 편지를 내려다봤다.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꼭 편지 쓴다고.”
나는 노파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전해졌습니다. 아드님의 마지막 말. 확실히.”
잠시 침묵.
굴뚝 연기가 바람에 흩어졌다.
루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표정이었다. 복도에서 에드거의 배지를 만지작거리던 그 무심함. 그리고 그 아래 숨은 무언가.
어깨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방어적인 긴장.
입을 열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돌아섰다.
“끝났으면 가지.”
크랙 마켓 입구에 도착한 건 오후 무렵이었다.
시장의 소음이 들려왔다. 마물 가죽을 흥정하는 상인들, 균열 지대 채집꾼들의 무전이 뒤섞였다. 임시 천막 너머로 마나 등불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루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비효율적이었어.”
내 어깨에 배달 가방이 묵직했다.
“그래도?”
루나가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나쁘지 않았어. 길드 배달부도 만만치 않군.”
인정이었다. 비아냥이 섞였지만, 거기에 실린 무게는 달랐다.
바스코와 올리비아가 시장 쪽에서 걸어왔다.
“한울아!”
바스코의 큰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힘이 들어갔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리프가 그 뒤에서 태블릿을 든 채 다가왔다.
“배달 결과는-”
그 순간, 돌풍이 불었다.
루나의 외투가 뒤집혔다. 안쪽에 채워진 작은 금속 장식이 햇빛에 반짝였다.
훈장이었다.
중앙 우편배달부 길드의 인장. 내가 그리프에게서 본 것과는 다른, 더 오래된 디자인.
그리프의 숨이 들렸다.
“그 훈장...”
태블릿을 든 손이 굳었다. 그리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바스코도 훈장을 봤다. 금빛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귀가 움직였다. 입을 열지 않았다.
루나는 재빨리 외투를 여몄다.
“볼일은 끝났어.”
그때, 내 왼쪽 손목이 울렸다.
디지털 시계가 진동했다. 협곡에서 느꼈던 미세한 떨림과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길었다.
손목을 들어 올렸다.
액정이 미세한 푸른 빛을 발했다. 1초도 채 안 됐다. 숫자 판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사라졌다.
루나의 눈빛이 내 손목에 멎었다.
무언가를 알아챈 듯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하지만 말을 삼켰다.
대신 그녀는 그리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과거를 묻으려면 더 깊이 파묻어야 할 거요.”
그리프의 어깨가 굳었다.
루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돌아서서 시장의 좁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파가 그녀의 뒤를 덮었다.
올리비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훈장인데요...?”
대답은 없었다.
그리프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바스코는 내 손목을 힐끗 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나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들여다봤다.
빛은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액정 구석에 없던 무언가가 있었다.
희미한 점. 좌표.
깜박이고 있었다.
숫자도, 문자도 아닌 무언가가 규칙적으로 명멸했다. 길 없는 지도의 가장자리에서 본 표기와 닮았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루나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리프는 훈장의 의미를 묻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나는 시계를 팔 아래로 감추며 숨을 들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