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우편배달부: 단절된 세계를 잇는 자
9화
길드 사무소의 마나 등불이 해질녘 빛을 밀어내고 있었다. 바스코가 정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오른손 붕대는 피가 번져 붉은 꽃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등에 업힌 채 얕은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프가 통제실에서 뛰쳐나왔다. 지팡이를 짚지도 않았다.
“강한울은 어디 있습니까.”
바스코가 올리비아를 의자에 눕히며 말했다.
“혼자 갔어. 최심부 쪽.”
“무슨 소리입니까.”
“균열 벽 앞에서 시계가 반응했어. 그 직후에 강한울이 표정이 바뀌었고, 우리한테 철수 명령을…”
그리프의 손이 바스코의 멱살을 잡았다. 작은 체구로 거구를 밀어 올리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웠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왜 말리지 않았습니까.”
“말릴 틈이 없었어.”
바스코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안.”
그리프가 손을 풀었다. 지팡이를 주워 쥐는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서랍을 열고 배달 기록 단말기를 꺼냈다.
강한울의 배달 경로 로그가 화면에 주르륵 떠올랐다. 마지막 좌표가 찍힌 시점은 철수 명령 이후. 방향은 최심부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무소 문이 다시 열렸다. 루나였다. 손에 낡은 가죽 지도 조각을 들고 있었다.
“길드 앞에서 들었어. 떠들썩하더라.”
평소와 다름없는 건조한 말투였지만, 걷는 속도가 평소보다 반 발짝 빨랐다.
그리프가 단말기를 내밀었다.
“최심부 좌표입니다. 길 없는 지도의 공백 구역이에요.”
루나가 단말기를 받아 자신의 지도 조각을 테이블에 펼쳐 겹쳐 보더니,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톡톡 쳤다.
“여기다. 나 저 동네 알아. 전에 암시장 배달 뛸 때 두 번쯤 스친 적 있어. 균열 밀도가 최고조인 구역이야.”
“갑니다.”
그리프가 지팡이를 쥐었다.
“좌표는 확보했고, 루나가 경로를 압니다. 바스코, 장비 챙기십시오. 당신의 정화 기술이 필요합니다. 루나도 오실 겁니까.”
루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개척 경로가 필요한 거지? 계산은 안 했지만, 대충 기억은 나. 요금은 나중에 청구할게.”
“청구하십시오.”
그리프가 등을 돌렸다. 바스코가 작업실에서 방어 장비를 꺼내는 금속 마찰음이 복도 너머로 들렸다.
루나는 지도 조각을 가방에 넣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망할 비즈니스.”
균열 지대의 밤은 소리 없는 비명 같았다. 왜곡된 공간 사이로 마나 잔광이 꼬리를 물고 흩어졌다.
루나가 앞장서서 지도 조각과 강한울의 배달 기록 단말기를 번갈아 확인하며 바위 틈을 비집었다.
“왼쪽 경사. 발 디딜 때 두 번 누르고 넘어가. 함몰 지형이야.”
그리프가 주소 마법 마커를 경로마다 설치했다. 바스코는 올리비아를 길드에 맡기고 합류한 상태였다. 오른손 붕대는 새로 감았지만, 장비를 드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여기다.”
루나가 걸음을 멈췄다. 균열 밀도가 짙어져 공기 자체가 찌르는 듯했다.
바스코가 탐지 장비를 가동했다. 정화 코어 탐지 모듈의 푸른 빛이 균열 지대를 훑었다.
“저기.”
열 걸음 앞. 바위 더미 아래 짙은 감색 튜닉이 보였다. 왼쪽 손목의 낡은 디지털 시계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한울아!”
바스코가 달려갔다. 그리프는 달리지 못했다. 지팡이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강한울은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왼쪽 옆구리가 찢어져 피가 배낭을 적시고 있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눈 초점이 풀린 상태였다.
바스코가 무릎을 꿇고 상처를 확인했다.
“깊진 않아. 그런데 이 손상 패턴…”
균열 지대의 공기가 갈라졌다. 무언가가 공기를 밀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열두 개의 다리가 바위를 짚는 소리가 지진처럼 깔렸다. 길이 3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형체가 균열의 어둠 속에서 윤곽을 드러냈다.
고대 마물 ‘비탄의 균열체’. 등껍질 표면에서 수백 개의 균열이 아가리처럼 벌어져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프가 지팡이를 세웠다.
“주소 마법 준비합니다. 시간은 40초. 그 안에 강한울을…”
마물의 다리 하나가 내려꽂혔다. 바스코가 몸을 날려 강한울을 감쌌다. 파편이 등판을 스치며 가죽 앞치마를 찢었다.
“방어 전개!”
바스코가 오른손 장갑을 땅에 꽂았다. 정화된 마물 핵이 박힌 방어 장비가 푸른 막을 펼쳤다. 마물의 두 번째 공격이 막에 부딪혀 퍼져나갔다. 장비의 코어 부분이 과부하로 붉게 달아올랐다.
“이걸로 1분. 그 이상은 못 버텨.”
그리프가 양손을 뻗었다. 마나가 지팡이 끝에 모여들며 공간을 긁었다. 강한울의 배달 가방에서 편지 한 통이 떠올랐다. 주소 마법의 연료가 되어 공간을 찢기 시작했다.
“탈출로 개방까지 20초!”
루나가 단검을 뽑았다. 마물의 다리가 허공을 가르자 뒤로 물러서며 바위를 디뎌 점프, 다리 관절을 노렸지만 단검은 등껍질에 맞고 튕겨 나갔다. 등껍질 균열 하나가 벌어지며 마나 포말을 내뿜었다. 루나가 옆으로 구르며 피했지만 왼쪽 팔뚝이 베였다.
“15초!”
주소 마법의 문이 반쯤 열렸다. 길드 사무소의 빛이 저편에서 깜빡였다.
그때, 마물의 다리가 열린 문을 향해 내리찍혔다. 그리프가 마나를 재촉했지만 문은 닫히기 시작했다.
“안정화 불가능! 균열 간섭이 너무 강해요!”
바스코의 방어막에 금이 갔다. 정화 코어의 빛이 깜빡이다 꺼져갔다.
모두의 뒤쪽 공간이 조용히 갈라졌다. 마치 오래된 문장이 종이에서 스스로 떠오르듯, 공간이 정확한 직선으로 분리됐다.
그 틈에서 에드거 할로우가 걸어나왔다. 오른손에는 빛바랜 훈장을 쥐고 있었다. 왼쪽 눈은 감겨 있었고, 감은 눈꺼풀 아래로 희미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늙은이 하나 왔다.”
“그깟 마물 하나 상대로 셋이서 쩔쩔매고 있냐.”
에드거가 왼쪽 눈을 떴다. 눈동자가 없었다. 그 자리에는 빛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돌고 있었다. 루나가 숨을 멈췄다. 그 문양은 자신이 목에 걸고 있는 낡은 배지의 문양과 똑같았다.
에드거가 훈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눈의 빛과 훈장의 문양이 겹쳐지며 새로운 통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주소 마법과도, 균열 개방과도 다른, 온전히 고대의 힘으로 짜인 길이었다.
“내 왼쪽 눈은 진작에 장님이었다. 30년 전, 이 길 없는 지도의 중심부와 거래한 대가로 들어낸 거지.”
바스코의 방어막이 완전히 무너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물이 마지막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 거래 덕분에 이 늙은이는 언제든 마지막 비상 통로 하나를 열 수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에드거가 그리프를 보았다.
“빨리 안 가고 뭐 하냐? 이 문은 30초면 닫힌다.”
그리프가 강한울을 부축하고 바스코가 반대쪽 어깨를 받쳤다. 루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이 에드거의 왼쪽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훈장. 그 문양… 내 배지랑 똑같아.”
에드거가 처음으로 루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른쪽 눈, 아직 빛이 남아 있는 눈이 살짝 좁혀졌다.
“나중이다. 지금은 가.”
마물의 다리가 떨어졌다. 에드거가 뒤돌지도 않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훈장의 빛이 방어벽을 쳤다. 다리가 그 빛에 부딪혀 옆으로 미끄러졌다.
“이 문은 내 눈으로 여는 마지막 통로다. 닫히면 다시는 열 수 없어.”
그리프가 먼저 통로를 넘었다. 바스코가 뒤를 따랐다. 루나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루나. 가라니까.”
에드거의 목소리에서 비꼼이 사라졌다.
“너는 이 늙은이가 한 번도 못 해준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살아서 들어.”
루나가 통로를 향해 달렸다. 발이 문지방을 넘는 순간, 뒤에서 에드거의 외마디가 들렸다.
“문 닫는다!”
빛이 폭발적으로 수축했다. 루나가 뒤돌아봤을 때, 통로 너머로 보인 것은 서서히 꺼져가는 에드거의 왼쪽 눈이었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눈꺼풀이 감겼다.
그리고 통로가 닫혔다.
길드 앞뜰의 돌바닥이었다. 밤하늘에 별이 떠 있었다. 그리프가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바스코가 강한울을 바닥에 눕히고 붕대를 풀었다.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루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손이 목에 걸린 낡은 배지를 더듬어, 손가락 끝으로 문양의 홈을 하나하나 따라갔다. 에드거의 왼쪽 눈에 새겨진 것과 완전히 같은 문양이었다.
“망할.”
루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늙은이. 끝까지 비즈니스야.”
길드 부속 임시 진료소의 마나 등불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침상 세 개가 나란히 놓인 좁은 방. 바스코가 왼팔에 붕대를 감은 채 벽에 기대 앉아 있었고, 올리비아는 구급 물품을 정리하며 손을 떨었다. 에드거는 창가 의자에 앉은 채 오드아이 안대 아래로 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 루나는 입구에서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프가 두 사람 사이로 들어섰다.
“두 분 모두 이쪽에 머물러 주세요. 정리할 게 있습니다.”
루나가 날카롭게 웃었다.
“정리? 길드 접수 담당이 내 사정까지 정리해 주나.”
“아직 길드의 공식 의뢰인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방치하는 건 업무상 부적절해요.”
루나의 손이 허리의 훈장으로 갔다. 손가락이 문양을 더듬었다. 같은 문양이 에드거의 가슴에도 박혀 있었다.
“이걸로 세 번째야.” 루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은 열 살. 둘째는 열여섯. 그리고 오늘. 당신은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없었어. 어머니가 죽던 날도.” 그녀가 한 걸음 다가갔다. “배달이 먼저였지. 항상 그래 왔잖아. 완벽한 배달, 완벽한 기록. 그게 다였어.”
“맞다.” 에드거의 대답은 담담했다. 루나의 숨이 멎었다. “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전해 주마.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아버지를 탓하지 말라고.’”
“웃기지 마.” 루나의 손이 에드거의 멱살을 잡았다. 올리비아가 숨을 삼켰다. 그리프가 손을 들었지만 바스코가 그 손목을 살짝 잡았다.
“그때 동료 다섯을 잃었다. 크랙 붕괴였어. 일곱 명을 태운 마차가 통째로 균열에 빨려 들어갔고, 나는 편지 한 통을 먼저 꺼냈다.” 에드거는 루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내 손에 쥐여준 편지다. 받는 사람은 너였고. 그 편지가 내 첫 배달 실패의 시작이었다. 완벽을 선택했고, 전부를 잃었다.” 에드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아졌다. “늦어서 미안하다. 루나.”
루나가 물러섰다. 두 걸음. 벽에 등이 닿았다.
손이 얼굴을 가렸다. 작고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리프가 눈을 감았다. 바스코가 고개를 숙였다.
침상에서 작은 신음이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강한울은 천장이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 속에서 마나 등불 냄새와 붕대 냄새를 맡았다. 목을 돌리자 루나가 벽에 기대 울고 있었고, 에드거가 그 앞에 앉아 있었다. 바스코의 왼팔이 붕대에 감겨 있고, 그리프는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입이 움직이기까지 한참 걸렸다.
“…다들, 살았나.”
바스코가 먼저 다가와 무릎을 침상 옆에 짚었다. 금빛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너만.”
짧은 한마디에 온몸이 무거워졌다. “내가 무리했어. 내 강박 때문에. 모두를 데려갔다면.”
그리프가 말을 끊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차가웠다. “또 시작이네.
당신은 항상 그래요.” 미간이 좁혀졌다. 측정기를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혼자 다 짊어지고, 혼자 결론 내리고. 우리가 당신 짐 덜어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바스코가 일어섰다. 거대한 손이 강한울의 어깨를 살짝 눌렀다. “약속해. 혼자 움직이지 않겠다고.”
“…바스코.”
“말해.”
루나가 눈물을 닦았다. 빨간 립스틱이 번져 있었다. “한심하네.
나보다 별수 없어.” 코웃음 같기도 하고 한숨 같기도 한 소리였다. “혼자 멋대로 죽지 마라. 그런 걸로 거래 성립 안 돼.”
말이 목에 걸렸다. 식도가 아니라 가슴 쪽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도와줘.” 바스코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 혼자서는 안 되겠다. 다음 배달은. 부탁한다.”
그리프가 한숨을 쉬며 측정기를 허리에 꽂았다. “당연한 소리. 이제 그걸 깨달은 데 대해서는…” 말끝이 작아졌다. “…평가를 보류하겠습니다.”
올리비아가 찻잔을 준비하다가 첫 미소를 지었다. 바스코가 붕대 감긴 팔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새 장비. 구상할게. 한 손으로도 충분히 작동하는 걸로.”
루나는 에드거를 한 번 바라봤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그녀는 문 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