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소리꾼
11화
약방 내실의 촛불이 반쯤 줄어들었다. 유여연은 악보를 펼친 채 손끝으로 이음줄을 더듬고 있었다. 하태의가 식은 탕약 그릇을 치우며 입을 열었다.
“그 곡이 금지된 까닭을 아시겠사옵니까.”
유여연이 고개를 들었다.
“선왕비 마마의 자장가였기에······ 막으신 게 아니옵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소.”
하태의가 탁자 모서리를 짚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선왕비 마마의 선율은 원래 치유의 호흡을 담은 곡이었소. 그런데 누군가 그 음계를 거꾸로 뒤집었소.”
“거꾸로······.”
“음을 올릴 자리에서 내리고, 숨을 들이쉴 박자에서 내쉬게. 뒤집힌 선율은 듣는 이의 맥박을 거꾸로 비틀었소.”
유여연의 손끝이 악보 위에서 멈추었다.
“그 뒤집힌 곡을 선왕비 마마께 들려드린 겁니까.”
하태의가 눈을 감았다. 떨리는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승하하시던 날 밤이었소. 침전에서 자장가가 흘렀는데, 갑자기 곡조가 어긋나더군. 그 순간 마마께서 각혈을 쏟으셨소.”
노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달려갔을 땐 이미 손톱이 파래져 있었사옵니다.”
“누가 그랬는지······ 아십니까.”
“태후 마마께서 그날 밤 친히 차를 들고 침전에 드셨소. 그리고 곡이 끝난 뒤에는······.”
하태의가 탁자 위를 손톱으로 긁었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붉은 손톱으로 탁자를 이렇게 긁으셨소. 분노에 가득 차서.”
유여연의 시선이 노인의 손톱 아래 생긴 얕은 홈에 멎었다. 태후가 손톱으로 긁던 모습을 떠올린 듯 숨을 삼켰다.
“그 뒤로 그 곡을 아는 자는 전부······.”
“입을 막으셨군요.”
“악사들은 그 자리에서 처형되고, 악보는 모두 불태워졌소. 선왕비 마마의 시의였던 나는······ 의원이라는 이유 하나로 살아남았사옵니다.”
유여연이 품에서 비망록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아버지의 필체가 깜빡이는 촛불 아래 또렷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것과······ 선왕비 마마의 악보가 같았던 것은.”
“그 곡의 진짜 모습을 남기려던 분은 유 대감뿐이 아니었소.”
하태의가 비망록 위로 떨어진 촛농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마마께서 승하하시기 사흘 전, 나를 불러 이 악보를 맡기셨소. ‘언젠가 이 노래가 필요할 때가 올 것’이라고.”
문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유여연이 악보를 접어 품에 넣었다. 하태의가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들어온 것은 소취였다.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소취의 손에 쥔 종이가 바람에 펄럭였다. 먹물이 번진 흔적과 손톱에 눌린 듯한 구김이 선명했다.
“찾았습니다. 선왕비 마마 승하 당일, 침전에 계셨던 분을.”
유여연이 소취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어떻게.”
“팔찌를 전해준 아가씨 덕분입니다. 그분은 이 년 전 궁을 떠나셨는데······ 빈민촌 초가에서 혼자 사실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소취의 눈이 붉어졌다. 종이를 유여연에게 밀어 넣었다.
“증언서입니다. 태후 마마께서 찻잔을 들고 침전에 들어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적혀 있어요.”
유여연이 종이를 펼쳤다. 첫 줄을 읽자마자 손이 떨렸다.
‘이제 그 노래는 영원히 잠들 것이다. 이것을 마시거라.’
그 아래 검붉은 얼룩이 찍혀 있었다. 잉크가 아닌, 바랜 핏자국이었다.
하태의가 증언서를 받아 읽더니 눈을 감았다. 입술이 떨렸다.
“이 찻잔 조각과 같사옵니까.”
“예. 그 노파분이 깨진 잔을 치우다 손을 베셨다고······ 조각 하나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거기에도 같은 얼룩이 있었어요.”
소취가 품에서 보자기를 꺼냈다. 찻잔 조각이 촛불 아래 드러났다. 가장자리에 번진 검붉은 흔적이 십 년의 세월을 견디고 남아 있었다.
유여연은 종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필체와 선왕비의 이음줄. 태후의 말과 찻잔 조각의 얼룩. 모든 것이 하나로 수렴되고 있었다.
“내일······.”
유여연이 증언서를 접어 악보와 함께 품에 넣었다.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종묘 제례에서 부르겠습니다. 이 노래를.”
“아가씨!”
소취가 팔을 붙잡았다.
“제례에는 태후 마마께서 직접 오십니다. 무사하지 못하실지도······.”
“그래야만 해.”
유여연이 소취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틀린 소리로 얼룩진 노래를 바로잡지 않으면, 모두가 헛되이 죽은 셈이 되니까.”
하태의가 일어나 유여연에게 고개 숙여 보였다.
“내일 아침, 예조 판서 윤공 대감께 연락을 넣겠소. 소수의 충성파 관료들이나마 대비할 시간을 벌어야 하오.”
촛불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다 스러졌다. 어둠 속에서 유여연의 숨소리만 고르게 이어졌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약방 앞마당에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하태의가 문을 열기도 전에 대문이 밀려 열렸다. 의금부 도사들의 검은 포열이 마당을 메웠다. 선두에 선 도사가 허리춤에서 패를 꺼내 들었다.
“태후 마마의 엄명이다. 약방을 수색하고 안에 있는 여인을 체포한다.”
하태의가 문 앞을 막아섰다.
“이 안에는 폐하의 몽희가 계시오.”
“늙은 의원이 무슨 권한으로······.”
“왕명 없는 체포는 불가하다!”
대문 밖에서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관복을 갖춘 예조 판서 윤공이 여섯 명의 관료들과 함께 마당으로 들어섰다. 도사들의 패가 허공에서 멈추었다.
윤공이 의금부 도사 앞에 섰다.
“몽희를 체포하려면 내명부와 대전의 허가가 필요하다. 자네들에겐 그게 있나.”
“태후 마마의 명이······.”
“태후 마마의 명도 왕명보다 앞설 수는 없네.”
선두 도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마당 밖에서 가마가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태후 민씨가 휘장을 걷고 내렸다. 붉은 손톱이 햇살을 받아 번들거렸다. 발걸음이 멈추자 도사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내가 친히 명하는 것이 왕명보다 가볍단 말이냐.”
태후의 눈이 윤공을 스쳤다.
“예조 판서가 언제부터 무장들을 거느렸더냐.”
“거느린 것이 아니라 이치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태후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손톱이 윤공의 관복 깃을 스칠 듯 멈추었다.
“네 이치가 역모를 감싸는 꼴이 되는구나. 그 계집을 내놓아라.”
문 안쪽에서 유여연이 손을 내밀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대문 밖에서 말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전령이 말에서 채 내리기도 전에 외쳤다.
“폐하의 어명이십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태후의 손톱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전령이 숨을 고르며 나아갔다. 두루마리를 풀어 들었다.
“몽희의 신변을 보호하라. 누구라도 그녀를 침해하는 자는 폐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간주한다.”
윤공이 무릎 꿇으며 소매를 모았다.
“어명을 받자옵니다.”
하태의와 충성파 관료들이 차례로 무릎 꿇었다. 의금부 도사들도 우물쭈물하다가 하나둘 무릎을 굽혔다.
태후만이 서 있었다. 손톱을 가마 난간에 대고 천천히 긁었다. 나무가 갈리는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물러가라.”
태후가 몸을 돌려 가마에 올랐다. 손톱이 난간에서 떨어지며 얕은 홈을 남겼다. 나무 가루가 발밑에 흩어졌다.
가마의 휘장이 내려지고 행렬이 물러나는 동안 윤공은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중얼거렸다.
“종묘 제례에서 모든 것을 가리게 될 것이오. 이 노릇, 여기서 끝이 아니오.”
종묘 정전의 향불이 일곱 갈래로 타올랐다.
제례악이 시작되기도 전, 신료들의 품계가 늘어선 자리에는 이미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유여연은 몽희 전용 옥색 도포 위로 은제 가면을 쓴 채, 충성파 관료들이 마련한 서쪽 가장자리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이휘가 어좌에서 신료들을 바라보았다. 예조 판서 윤공이 태후전 쪽을 의식하며 관복 소매를 여미는 모습이 보였다.
하태의는 관료석 맨 뒤편에서 품 속을 한 번 짚었다. 원본 악보가 닿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태후 민씨가 제례의 주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홍색 당의가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쓸었다.
“종묘에 고하옵니다.”
태후의 음성이 신료들의 머리 위로 번졌다.
“선왕의 위업을 이을 금지곡 단죄,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세우겠사옵니다.”
이휘의 손가락이 어좌 팔걸이를 한 번 꺾듯 눌렀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선율이 맴돌았다. 간밤 꿈속에서 들린 그 자장가. 물에 빠지는 감각과 함께 들려온, 실크를 찢는 듯한 목소리. 금지된 창이라 알려진 그 곡조가…… 무엇보다 포근했다.
이휘는 시선을 들었다.
서쪽 가장자리, 몽희 복장의 여인이 똑바로 서 있었다. 옥색 옷자락이 숨소리 하나에 살짝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이휘의 관자놀이가 울렸다. 저 호흡. 며칠 밤 자신을 잠들게 한 그 숨결과 똑같았다. 꿈속 선율이 현실의 이 공간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금지된 창. 선왕비의 죽음. 그리고 저 소리.
이휘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같은 선율이군.”
목소리가 작아 어좌 곁의 엄내관만이 고개를 들었다.
“전하?”
이휘가 손을 들어 대답을 막았다. 태후가 두 번째 축문을 펼치고 있었다.
“태조 이래 이 왕실을 배반한 역적 유씨 일가. 그들의 잔당이 이 제례의 자리까지 더럽혔사옵니다.”
신료들 사이로 옷깃 스치는 소리가 번졌다. 유여연의 가면은 움직이지 않았다. 은제 표면에 비친 촛불만 깜빡였다.
태후가 손에 쥔 염주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의금부!”
정전 양옆에서 갑옷 마찰음이 일제히 울렸다. 태후의 손가락이 유여연을 향했다.
“저 가면 뒤의 역적을 당장 체포하라. 금지된 곡조를 창송하고, 왕의 안위를 위협한 죄다.”
의금부 병사들이 움직이려는 순간, 윤공이 관료석에서 일어났다.
“대비마마.”
태후의 눈이 좁혀졌다. 윤공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종묘 제례에서 무기를 뽑는 선례는 없사옵니다. 신은 예조의 수장으로서 감히 간언하나이다.”
“예조 판서는 지금 역모를 묵인하겠다는 것이냐.”
“신은 전례를 말씀드릴 뿐이옵니다.”
태후의 손톱이 탁자를 긁었다. 나무가 갈리는 소리가 향연보다 날카로웠다. 촛불이 한 번 흔들렸다. 이휘는 그 손톱을 보았다. 붉게 물든 자국이 탁자 위를 스쳤다.
저 손톱.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침전의 차향 속. 선왕비가 쓰러진 밤, 문틈 너머로 스쳤던 붉은 조각. 이휘의 손등에 소름이 돋았다.
유여연이 그때 일어났다.
옥색 소매가 촛불 아래로 사선을 그었다. 은제 가면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이전보다 낮고 단단했다.
“대비마마께 여쭙겠나이다.”
태후의 호흡이 반 박자 멈추었다. 유여연이 한 걸음 내디뎠다. 의금부 병사들의 칼자루가 반쯤 빠졌다.
“……이 제례에서 단죄하시려는 곡은 대체 무엇이옵니까.”
태후가 치마폭을 휘감듯 돌아섰다.
“네가 그 곡을 알고 있기에 그리 묻는 것이냐.”
유여연의 손이 천천히 올랐다. 가느다란 손끝이 은제 가면의 끈에 닿았다.
“마마께서 금지하신 그 곡은…….”
이휘는 그 손끝을 볼 수 있었다. 밤마다 숨소리를 들려주던 가면의 주인이, 지금 낮의 제례 한복판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역모의 노래가 아니옵니다.”
유여연의 손가락이 끈을 한 번 감아쥐었다.
“이 노래는 원래, 선왕비 마마께서 지어 부르셨던…… 왕실의 치유곡이었사옵니다.”
신료들 사이로 억눌린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태의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윤공이 관복 안주머니에서 접힌 증언서를 반쯤 꺼냈다.
이휘는 어좌 손잡이를 붙잡았다. 가면이 조금 기울었다. 그 순간 무의식중에 그녀의 발치로 시선이 떨어졌다. 벗지 마라. 속으로 외친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직.
태후가 탁자를 내리쳤다. 염주가 바닥으로 굴러 관료석 앞까지 흘러갔다.
“당장 저 가면을 벗겨라!”
의금부 병사들이 움직였다.
유여연이 마지막 끈 하나를 천천히 당겼다. 촛불이 은제 가면의 이마를 한 번 번쩍 비추었다. 그녀가 숨을 들이쉬었다.
“이 노래는……”
가면이 천천히, 손가락 하나 두께만큼 얼굴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모가 아니라······ 치유였습니다, 대비마마.”
이휘가 어좌에서 반쯤 일어났다. 입회 진행관이 든 축문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하태의가 품에서 원본 악보를 완전히 꺼내 들었다.
모든 시선이 은제 가면과 그 아래 드러나려는 얼굴 사이의 틈새로 빨려 들어갔다. 유여연의 손목이 약간 떨렸다. 가면이 한 뼘 더, 허공에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