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가면의 소리꾼

3화

촛불이 꺼지고 한 식경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유여연은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은제 가면이 침상 머리맡 보관함 위에 놓여 있었고, 방 안에는 소취의 고른 숨소리만 남아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없었다. 바람도, 발걸음도, 옷깃 스치는 소리도.

다만 목을 감아오는 손길이 있었다.

유여연은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검은 복면을 한 자객의 눈동자가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그녀의 목에 감겨 조여들었다. 숨이 막혔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바람이 갈라졌다.

자객의 어깨 너머로 무언가가 번쩍였다. 이내 자객의 상반신이 뒤로 젖혀졌다. 목을 조르던 손의 힘이 풀렸다.

“······!”

유여연은 사레에 걸려 기침을 토해냈다. 시야가 흐려진 채로, 자객이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낯선 궁녀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손에는 놋쇠 촛대가 쥐어져 있었다.

“아가씨!”

소취가 달려들어 유여연의 어깨를 붙잡았다. 소취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이게······.”

유여연이 목을 감싸쥐며 간신히 말을 뗐다.

소취는 대답 대신 재빨리 자객의 복면을 벗겼다. 얼굴은 낯설었다. 소취는 낯선 궁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묶어둘 끈을 가져오너라.”

“예.”

궁녀가 옆방으로 달려갔다. 유여연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취의 입술이 바짝 다가왔다.

“태후전에 심어둔 아이예요. 지난달부터 눈여겨봤는데······ 오늘 밤까지 필요 없길 바랐어요.”

“네가······.”

유여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소취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더 일찍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유여연은 소취의 팔을 잡았다.

“고맙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목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궁녀가 끈을 가져와 자객을 묶었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듯 자객은 축 늘어져 있었다.

“이 자는 근위대에 넘겨야 합니다. 다만······.”

소취가 잠시 말을 멈추고 유여연을 보았다.

“태후전에서 보낸 자라는 증거가 없어요. 저 아이가 증언해도, 태후 마마께서 부인하시면 끝입니다.”

“알아.”

유여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침상 가장자리에 손을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

“하지만 살아서 넘기는 게 우선이다. 죽으면 아무 증거도 되지 않는다.”

소취와 궁녀가 자객을 끌고 방을 나서는 동안, 유여연은 품속에 손을 넣었다. 아버지의 비망록이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손끝이 떨리는 탓에 두 번 만에 꺼냈다.

촛불을 다시 켰다. 심지가 타는 소리가 방 안에 가늘게 울렸다.

낡은 종이를 펼쳤다. 여러 구절 중에서도 언제나 눈길이 머무는 곳이 있었다.

‘바람이 잠든 곳에 소리도 잠들었으니, 깨우려는 자는 홀로 남은 줄을 더듬으라.’

그녀는 깨물었던 입술을 살며시 놓았다.

혼잣말이었다.

“아버지, 이것은 호흡의 이치로군요.”

바람이 곧 숨이라는 것. 숨이 멈춘 자리에서 소리가 잠든다는 것. 그리고 그 줄이란, 곡의 맨 마지막 줄일 수도 있고······ 전해지는 악보의 단 하나 남은 가닥일 수도 있었다.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밤 누군가가 이 목을 노렸다는 사실은, 자신이 이미 가닥에 닿아 있다는 증거였다.

더듬으라는 것은 찾으라는 말이 아니었다.

이미 네 앞에 있다.

그렇게 읽혔다.

유여연은 비망록을 접어 다시 품속 깊숙이 넣었다. 손가락이 옷깃을 여미는 사이, 목의 붉은 자국이 옷깃 너머로 사라졌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소취가 돌아온 것이었다.

문이 열리기 전, 유여연은 촛불을 바라보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물러설 길은 묻지 않겠습니다.”

새벽녘, 왕의 침전 밖에서 발소리가 급하게 다가왔다. 엄내관이 숨을 고른 뒤 문턱 너머로 엎드렸다.

“전하. 긴히 아뢰옵니다.”

이휘는 이미 깨어 있었다. 붓을 내려놓으며 눈을 들었다.

“들어라.”

엄내관이 들어와 무릎 꿇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지난밤 칙운당 후원 몽희 처소에 자객이 침입했사옵니다.”

이휘의 손이 붓을 쥔 채 멈추었다.

“근위대가 담장을 넘던 자를 현장에서 제압했사옵니다. 은 상궁이 내무부에서 사건 경위를 확인하여······.”

“가면 서른일곱 번은.”

이휘의 목소리가 엄내관의 말을 끊었다.

“무사하옵니다. 시녀가 먼저 비명을 질러 근위대가 즉시 출동했사옵고, 본인은 목에 약간의 손자국 외에는 다친 곳이 없사옵니다.”

이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룡포 자락이 탁자 위 서류를 쓸어 바닥에 흩어졌다.

“목에 손자국이라. 이유는.”

“자객이 제압 직전 손을 뻗어······.”

“자객은.”

“입에 독침을 품고 있어 신문 전에 숨졌사옵니다. 배후는 아직······.”

“배후는 뻔하지 않느냐.”

이휘의 목소리가 낮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전 궁에 상금을 걸고 그 몽희를 찾겠다고 한 지 하루. 바로 그날 밤 자객이 침입했다.”

엄내관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휘는 창가로 걸어갔다. 동틀 무렵의 푸르스름한 빛이 얼굴에 걸렸다.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오늘부터 그 몽희는 나의 직접 보호 아래 둔다. 근위대를 숙소에 배치하라. 경비하되 그녀의 안면을 직접 보지 않도록 하라. 가면을 벗는 순간이 있어도 모두 고개를 돌리게 하라.”

“전하, 태후 마마께서 아실 경우······.”

“알게 하라.”

이휘가 돌아섰다. 눈빛이 단단했다.

“다만 이 사실을 묻는 자가 있다면 전하라. 내가 직접 보호하는 것은 가면 서른일곱 번 몽희다. 그 목소리로 나를 잠들게 한 단 한 사람이다.”

엄내관이 물러간 뒤에도 이휘는 한동안 창가에 서 있었다.

아침 해가 칙운당 후원을 비출 무렵, 소취가 문틈으로 바깥을 살피다 돌아섰다.

“아가씨! 전하께서 친히 거둥하신대요!”

유여연은 침상 모서리에 앉아 가면을 닦고 있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목의 손자국을 가리려 높이 올린 옷깃 아래로 멍 자국이 선명했다. 소취는 그 옷깃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바깥에서 내시의 호명이 길게 뻗었다.

“전하 납시오———!”

유여연이 가면을 썼다. 문이 열리고 이휘가 들어섰다. 남색 도포 차림이었지만, 그가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유여연이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렸다.

“일어나라.”

이휘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엄내관은 알았다. 애써 누른 무엇인가가 그 밑에 깔려 있었다. 유여연이 일어나자 이휘의 시선이 그녀의 목 언저리에 머물렀다.

“옷깃을 걷어라.”

유여연의 어깨가 굳어졌다. 한 박자 뒤, 손을 들어 옷깃을 살며시 젖혔다. 목 왼편에 선명한 손자국이 드러났다. 붉게 부풀어 오른 자국이 왕의 눈 아래 다크서클보다 짙었다. 이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의원을 부르라.”

엄내관이 즉시 손짓했고, 내시 한 명이 뛰어나갔다. 이휘는 그대로 유여연 앞에 섰다.

“그대를 해하려 한 자는 내가 반드시 찾아내겠다. 그대는 이제 나의 보호 아래 있다. 오늘부터 근위대가 이 숙소를 에워싸고, 그대의 출입은 모두 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유여연이 다시 무릎을 꿇으려 하자 이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가만히 있으라.”

“황공하옵니다, 전하.”

“황공할 것 없다. 나는 잠들었다. 수년 만이었다. 그 어떤 약재도, 침도, 무당의 의식도 해내지 못한 것을 그대의 목소리가 해냈다.”

유여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가면 속 눈이 붉어질 뿐이었다. 이휘가 물러서며 말했다.

“의원이 도착하면 진료를 받아라. 상처가 아물 때까지 노래하지 마라.”

그가 문 쪽으로 걸어가다 멈추었다.

“내일 밤, 다시 침전으로 들라.”

유여연의 손끝이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이휘는 더 머물지 않고 문을 나섰다. 소취가 달려와 유여연의 팔을 부축했다.

“아가씨······.”

“괜찮다. 오히려 잘되었다. 전하의 보호 아래 있는 한, 최소한 또 다른 자객이 드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같은 날 오전, 태후전 암향각에는 침향 연기가 휘장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후 민씨가 창가에 서서 염주를 굴렸다. 문밖에서 내명부 상궁 최 씨가 읍한 채 대기했다.

“······들라.”

태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염주를 쥔 손가락이 희게 질려 있었다. 최 상궁이 무릎 꿇으며 들어왔다.

“전하께서 오늘 아침 몽희 숙소에 친히 거둥하시어 근위대를 배치하셨사옵니다. 이제 가면 서른일곱 번 몽희는 전하의 직접 보호 아래 들었사옵니다.”

탁—. 염주가 날카롭게 맞부딪혔다.

“직접. 그 몽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지난밤 자객이 침입했사옵니다만, 근위대가 현장에서 제압했사옵니다. 자객은 이미 죽었사옵고, 배후는······.”

“알고 있다. 내가 보낸 자다.”

최 상궁은 숨을 삼켰다. 태후 민씨가 천천히 돌아섰다. 반쪽 얼굴만 햇살이 비추고 나머지 반은 깊은 그늘에 묻혔다.

“가면 서른일곱 번. 왕을 잠들게 한 유일한 목소리. 그 목구멍을 베어내지도 못하고, 도리어 근위대가 감싸 도는 몸뚱이가 되었구나. 최 상궁. 그 몽희의 가면 뒤 얼굴과 출신을 밝혀내라. 내명부 전원을 동원하라. 내무부 몽희 등록청의 모든 서류를 뒤지고, 선발 과정을 재조사하고, 숙소에 드나드는 하인 하나하나의 신원을 샅샅이 추적하라.”

“마마, 등록청 서류는 전하의 하교로 이미 침전으로 옮겨졌사옵니다.”

태후가 미소 지었다.

“사본을 떠라. 전하께서 기록을 옮기셨다 해도 내명부는 궁녀의 신원을 조사할 권한이 있다. 인사권으로 보장된 정당한 권한이다. 한 가지 더. 조사 과정에서 그 몽희에게 무례한 일이 없도록 하라. 다만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에게 가장 먼저 아뢰어라. 절대 침전으로 올리지 말고.”

“명심하겠사옵니다, 마마.”

최 상궁이 물러간 뒤에도 태후는 암향각을 나서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어디서 배운 노래인지부터 밝혀내야겠구나.”

염주를 쥔 손이 서서히 조여들었다. 암향각 문이 닫혔다.

유여연은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검은 복면을 한 자객의 눈동자가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그녀의 목에 감겨 조여들었다. 숨이 막혔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면의 소리꾼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