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가면의 소리꾼

8화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소취가 무릎을 꺾었다. 주저앉기 직전, 유여연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소취야.”

소취의 얼굴이 유여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 죽인 흐느낌이 어깨를 떨었다.

유여연은 등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자신의 목덮개를 한 번 짚었다. 손끝에 맥박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내일 내가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소취의 몸이 굳었다. 고개가 격하게 가로저어졌다.

“아가씨! 그런 말——”

“듣거라.”

유여연이 손목에서 붉은 팔찌를 풀었다. 매듭을 조심스럽게 풀어 소취의 두 손을 감쌌다.

“이것만은 반드시 하태의님께 전하거라.”

“이게…….”

“이 팔찌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것이다.”

소취가 팔찌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였다.

“싫어요. 전 싫습니다. 전하러 갈 거면…… 아가씨가 직접…….”

“그럼 나는 반드시 돌아오겠다.”

유여연이 짧게 말했다. 숨을 한 번 들이켰다. 품 안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아버지의 비망록, 그중 남은 쪽을 꺼내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접는 동작은 정확했다. 비단 주머니에 넣고 속옷 깊숙이 밀어 넣었다.

“태후마마께서 가져가신 것은 호흡법 쪽뿐이다. 안혼곡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어.”

“하지만…….”

“증명할 수 없으면 협박일 뿐이야. 협박에는 무릎 꿇지 않는다.”

창밖에서 바람에 스치는 나뭇가지 소리. 두 사람의 숨이 동시에 멎었다. 그림자가 창호지 너머로 기울었다가 사라졌다.

유여연이 소취의 손을 꼭 쥐었다.

“내가 만약 대전에서 체포되면…….”

“아가씨!”

“그땐 곧바로 하태의님을 찾아가라.”

유여연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그분은 의원이다. 대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혐의가 어떤 방식으로 적용됐는지 네게 물을 것이다.”

소취의 눈물이 팔찌 위로 떨어졌다. 붉은 매듭이 더 진해졌다.

“그걸 전하는 것만으로도……?”

“그분은 알게 될 거야. 이 팔찌가 어떤 실을 연결하는지.”

소취가 팔찌를 두 손으로 모아 품에 안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을 감싸듯.

유여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소취의 옆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어깨를 기대었다. 가면을 벗은 얼굴이 촛불도 없이 창백했다.

“무서워.”

소취가 작게 중얼거렸다. 반말이었다. 유여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나 정말 무서워.”

“……나도 그래.”

유여연이 똑같은 반말로 답했다. 손이 소취의 손등을 덮었다.

밤이 깊도록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팔찌는 소취의 품 안에서 천천히 체온을 빨아들였다.

새벽, 침전.

이휘가 눈을 떴다. 숙면의 잔향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눈을 감으면 어젯밤 그 선율이 다시 흐를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승지를 불렀다.

“어젯밤 몽희의 면방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승지 엄내관이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혔다.

“전하…… 이상궁이 밤중에 면방으로 들어갔사옵니다.”

“이상궁?”

“내명부 소속이옵니다. 태후마마의 명으로…….”

“무슨 명이더냐.”

이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엄내관의 허리가 더 깊게 굽혔다.

“오늘 아침, 대전에서…… 안혼곡 필사본 소지 혐의 조사가 있을 것이라 하옵니다.”

침전 안의 공기가 잠시 굳었다. 촛불이 가늘게 흔들렸다.

“짐이 직접 대전으로 가겠다.”

“전하!”

엄내관의 눈이 커졌다.

“누구도 함부로 다루지 말라.”

이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포를 걸치는 손이 평소보다 빨랐다.

“전하께서는 아직 그녀의 이름조차…….”

“이름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이휘가 짧게 잘라 말했다. 엄내관은 더 묻지 못했다.

왕이 침전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잠시 멈추었다. 어젯밤 자신이 잠들기 직전까지 듣고 있던 선율이, 문득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그 곡은 왜 이토록 낯익은가.

이휘는 고개를 저었다. 발걸음이 다시 이어졌다.

아침, 면방 앞.

이상궁이 면방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회랑 끝에서 하얀 머리가 보였다.

하태의였다. 손에는 언제나처럼 수첩과 붓이 들려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른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태의의 나지막한 인사에 이상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의원께서 이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약초실로 가는 길이었사온데…….”

면방 문이 열렸다.

유여연이 가면을 쓴 채로 나섰다. 옥색 도포 자락이 아침 찬 공기에 살짝 흔들렸다. 가면 아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덮개를 고쳐 매는 손끝이 평소보다 창백했다.

하태의가 그 손을 보았다. 의원의 눈이었다.

“혐의 조사라면 의원의 입회가 필수입니다.”

“무슨 말씀을…….”

“이 몽희는 전하의 침전에서 직접 노래하는 자입니다. 만약 조사 과정에서 신체에 무리가 간다면, 전하의 불면 치유에 지장이 있사옵니다.”

이상궁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태의가 한 걸음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의원으로서 입회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만.”

“태후마마의 명입니다. 외부인의 출입은——.”

“외부인이라 하시옵니까.”

하태의의 눈빛이 평소처럼 온화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전하의 어의요. 내 환자를 보호하는 일에 외부인은 없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유여연이 몸을 돌려 회랑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아침 햇살이 회랑 기둥 사이로 비껴들었다. 동시에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목덮개의 한쪽 자락이 어깨 위로 살짝 밀려 올라갔다.

순간이었다.

하태의의 눈이 번쩍였다. 목덮개 아래, 왼쪽 목덜미 쪽에 작은 별 모양의 흉터가 드러났다. 살갗에 새겨진 흔적은 오래된 것이었다.

그가 숨을 멈추었다.

유여연은 재빨리 목덮개를 당겨 올렸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가면 속 얼굴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

하태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붓을 쥔 손가락이 수첩 위를 한 번 쓸었다. 글자는 쓰지 않았다. 그저 손끝의 감각으로 기억을 더듬는 듯한 동작이었다.

“좋습니다.”

이상궁이 짧게 뱉었다. 하태의의 입회를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눈이 잠시 하태의에게 머물렀다가 떨어졌다.

“다만 대전 안에서는 태후마마의 심문 절차에 일체 간섭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알고 있사옵니다.”

세 사람이 회랑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여연이 가장 앞장서지도, 가장 뒤처지지도 않은 위치에서 걸었다. 은제 가면의 97번이 아침 빛 속에서 차갑게 반사되었다.

그녀의 품 안에서 아버지의 비망록 쪽이 걸을 때마다 옆구리에 닿았다. 유여연은 한 번도 뒷주머니를 확인하지 않았다. 손은 소매 안에서 조용히 포개어져 있었다.

하태의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별 모양 흉터. 열 살 적, 자신이 봉합했던 그 상처. 우물가에서 아이를 구한 계집아이의 목덜미에 남아 있던 흔적.

그가 수첩을 접어 품에 넣었다.

이제 분명해졌다. 몽희 97번은 그날 밤 우물가의 아이였다. 전하를 구한 소리꾼이, 전하의 침전에 돌아와 지금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하태의가 고개를 약간 들었다. 대전이 저 앞에 보였다. 지붕의 기왓장이 아침 해를 받아 반짝였다.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본 악보를 꺼내야 할 때가 왔군.”

아무도 듣지 못할 소리였다.

대전.

문지방을 넘는 순간, 높은 곳에서 목소리가 떨어졌다.

“바로 그 계집이다.”

모든 시선이 대전 입구로 쏠렸다. 좌우로 늘어선 내명부 궁녀들, 중앙의 승지들, 기둥 뒤의 근위대까지 전부.

태후 민씨가 대전 상좌에서 일어서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이 더 차가웠다.

“안혼곡 필사본을 품에 지닌 자가 어찌 감히 대전에 발을 들이느냐.”

유여연의 발이 멈추었다. 품 안의 비망록 쪽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그녀는 가면 뒤에서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손이 떨리지 않도록 소매 안에서 주먹을 쥐었다. 한 번, 두 번. 손톱이 손바닥을 눌렀다.

하태의가 반걸음 앞으로 나서려던 찰나.

뒷문이 열렸다.

“그 손을 놓아라.”

모든 머리가 일제히 뒤편으로 돌아갔다.

“짐이 직접 묻겠다.”

이휘가 뒷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용포의 자락이 바닥에 닿지 않을 듯 빠른 걸음이었다. 아침 햇살이 그의 실루엣을 등 뒤에서 받추었다.

태후의 눈이 한순간 가늘어졌다.

유여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품 속 비망록을 움켜쥔 채로 굳어 있었다.

왕이 다가왔다.

대전의 공기가 갈라졌다.

가면의 소리꾼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