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백의 계산서
23화
파스칼이 문을 열고 뛰어들어왔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성공했, 성공했습니다! 조문의 협곡…… 적 보급 마차 열두 대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한도영이 수첩에서 고개를 들었다. 왼팔 문신이 미세하게 깜박였다.
“열두 대 전부?”
“예. 마름쇠에 앞바퀴가 걸린 선두 마차가 길을 막았고요. 두 번째 지점에서 뒤따르던 네 대가 방향을 바꾸다가 바위에 부딪혔습니다. 세 번째 지점에서는……”
파스칼이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얼어붙은 도랑에 빠졌습니다.”
에리히가 의자 등받이를 움켜쥐었다.
“사상자는.”
“마부 한 명이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 외엔 전원 생포하거나 도주했습니다. 크세니아 님의 부하들이 현장을 장악하고 있어요.”
파스칼이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크세니아의 전령이 전달한 첩보였다. 잿빛 종이에 짧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한도영이 받아 펼쳤다.
“환율 폭등으로 상인 길드 내부에서 지급 불능이 발생했다. 식량 선급금을 받지 못한 용병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올리비에 후작의 진영에서는 어젯밤부터 탈영병이 속출 중이다.”
에리히가 종이를 가져갔다. 천천히 읽었다. 두 번째 줄에 이르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인 길드가 먼저 무너졌다.”
“네.”
한도영이 왼팔을 한 번 움켜쥐었다. 문신이 다시 타올랐다. 통증은 짧고 예리했다. 그는 숨을 내쉬며 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수치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파스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지점. 마차 열두 대 중 여섯 대에 식량과 사료가 실려 있었어요. 나머지 여섯 대에는……”
“은화.”
한도영이 말을 이었다.
“맞아요. 환율 조작에 쓸 은화였습니다. 그걸 보급로로 옮기고 있었어요.”
파스칼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긴장 탓에 귀가 붉어졌지만, 더듬지 않았다.
에리히가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쳤다. 조문의 협곡이 표시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보급 차단으로 연합군의 식량은 사흘 치가 사라진 거나 다름없군.”
“이틀 치면 더 정확합니다.”
한도영이 수첩을 집었다. 숯연필을 들어 새 페이지에 숫자를 적었다.
“적 보급 마차 12대 차단. 식량 6대, 은화 6대. 환율 혼란으로 상인 길드 지급 불능. 탈영병 발생. 올리비에 후작의 진군 시한 이미 지남.”
에리히가 그 글씨를 내려다봤다. 눈가가 약간 풀렸다. 기사 시절의 피로와 다른 안도감이 스몄다.
“한도영. 이걸로 일단 멈췄군.”
“멈춘 게 아닙니다.” 한도영이 수첩을 덮지 않고 탁자 위에 펼친 채 놔뒀다. “지금부터가 협상입니다.”
“협상안이 있나.”
“만듭니다. 지금.”
한도영이 의자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지도를 가리켰다.
“조문의 협곡은 이 영지의 서부 관문입니다. 서부 교역로의 유일한 병목이죠. 연합군이 이 길을 지나치기 전까지, 변경백령을 우회할 수 있는 보급로는 경사 23도의 능선뿐입니다.”
“능선은 보병조차 버겁지.”
에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 협곡을 누가 통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도영이 지도 옆으로 걸어갔다. 손가락으로 협곡에서부터 동부 변경까지 선을 그었다.
“변경백령이 이 길의 중개권을 쥐면, 서부 세 개령의 무역 흐름 전체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환율 폭락은 상인 길드가 망가졌다는 증거지, 이 영지의 은화 신뢰도가 아직 살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에리히가 생각에 잠겼다.
“무슨 말인지 안다. 이 길을 지나는 상단들에게 은화로 결제하게 하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은화로 연합군의 잔여 부채를 흡수합니다.”
파스칼이 눈을 깜박였다.
“부채를…… 산다니, 무슨 뜻이죠?”
한도영이 수첩을 한 페이지 더 넘겼다.
“연합군을 움직인 건 군사력이 아니라 채권입니다. 올리비에 후작은 상인 길드에 빚을 져서 군자금을 댔고, 그 상인 길드는 환율 조작으로 은화를 폭락시켜 부채를 가볍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도가 실패했으니, 지금 적 진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채권이 아니라 식량입니다.”
에리히가 의자에 앉아 지도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올리비에에게 협상 조건을 내밀겠다는 거군. 식량은 우리가 잡고 있으니, 네 군대의 생사는 변경백령에 달렸다고.”
“철수하는 모든 부대에게 하루 치 식량을 지급합니다. 대신 연합군이 보유한 변경백령 대상 채권을 무효화합니다. 그리고 서부 교역로의 중개 무역을 변경백령이 주관하는 조약에 서명하는 겁니다.”
에리히의 푸른 눈이 빛났다. 종이를 한 장 집어 탁자 위에 펼쳤다.
“받아 적겠다. 초안을 불러라.”
한도영이 수첩을 보지 않고 말했다.
“‘변경백령은 조문의 협곡에 억류된 적 보급 물자 중 식량을 철수 부대에 분배한다. 그 대가로 올리비에 후작 연합군은 변경백령 대상 채무 전부를 무효화한다. 필수 조항 두 개. 선택 조항 하나.’”
에리히가 펜을 움직였다.
“선택 조항은.”
“‘서부 교역로의 중개 무역권을 변경백령에 양도하며, 향후 10년간 은화 기준 결제를 보장한다.’ 이건 거절할 수 있습니다.”
“거절하면?”
“그 협곡의 식량은 우리가 영민들에게 배급합니다. 굶는 건 연합군 병사들입니다.”
파스칼이 조용히 말했다.
“그럼…… 적장이 선택할 여지가 없는 제안이네요.”
“선택은 있습니다. 죽는 방식만 다를 뿐.”
한도영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왼팔 문신이 다시 파르르 떨렸다. 그는 팔을 탁자 아래로 내렸다.
에리히가 초안을 다 받아 적었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펜을 내려놓았다.
“서명한다.”
에리히가 초안 하단에 이름을 적었다. 독수리 문장 브로치를 눌러 인장을 찍었다.
한도영이 문서를 들어 확인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리히가 말했다.
“이것이 변경백령 최초의 중개 무역 협상 문서다.”
파스칼이 초안을 작은 가죽 통에 담았다. 전령이 지금쯤 성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덧붙였다.
한도영이 수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계약 분석 노트 바로 옆이다. 그는 숯연필로 한 줄을 추가했다.
‘협상안 전달——해가 지기 전 도착. 기한: 내일 해 지기 전.’
왼팔 문신이 한 번 더 깜박였다. 통증이 목까지 타고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숨을 내쉬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지 않았다.
수첩을 덮었다.
한도영이 협상안 사본을 에리히에게 건넸다. 서명이 마르기도 전에 의자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가슴 중앙에서 푸른 빛이 터져 나왔다. 직전까지 미약하게 깜박이던 문신이 눈부시게 타올랐다. 목 오른쪽 쇄골을 따라 선이 뻗어나갔다. 옷깃 위로 푸른 격자 무늬가 솟아오르듯 번졌다.
한도영이 숨을 들이켰다. 책상 모서리에 왼손이 닿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한도영 씨!”
파스칼이 먼저 움직였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한도영의 오른쪽 팔을 잡았다. 에리히가 책상 맞은편에서 허리를 굽혀 어깨에 손을 뻗었다.
한도영이 오른손을 들어 둘을 막았다. 숨을 두 번 들이쉬었다. 세 번째 들숨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24시간 이내입니다.”
푸른 빛이 사그라들었다. 문신은 여전히 목 오른쪽 쇄골까지 뻗어 있었다. 선명한 격자 선. 한도영은 책상 모서리에서 손을 떼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 분석을 마무리할 시간을 주십시오.”
에리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백작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하지만 입술은 굳게 다물렸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하지 않았다. 답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파스칼이 한도영의 팔을 놓았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정말…… 24시간이에요?”
“이제 24시간보다 짧을 가능성도 있다.”
한도영이 천천히 의자에 다시 앉았다. 왼팔 소매를 내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지금 끝내야 한다.”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로즈마리였다.
광장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녀의 오른손 손바닥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도영의 문신이 반응했다. 푸른 빛이 한 차례 깜박였다.
로즈마리는 문간에 선 채로 숨을 멈췄다. 그녀가 본 것은 한도영의 목까지 번진 문신이었다. 그리고 책상 옆에 굳은 채 서 있는 파스칼과 에리히의 표정이었다.
“……시간이 없어졌군.”
말이 짧았다. 감정을 삼킨 목소리였다. 로즈마리는 문을 닫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벽 쪽으로 걸음을 옮겨 조용히 섰다. 손바닥의 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한도영은 이미 수첩을 펼치고 있었다. 숯연필을 집었다.
첫 페이지를 넘겼다. 빈 면을 펼쳤다.
왼손으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팔 전체에 퍼진 문신이 촛불 아래 드러났다. 목까지 이어진 격자 구조. 그는 문신을 한 번 훑어보고 연필을 움직였다. 중심선에서 60도로 갈라지는 교차점들을 정확히 스케치했다.
다음 장을 넘겼다. 역병 지도를 그렸다. 토벤 마을과 오염된 식수원 세 곳. 정삼각형의 발병 좌표들.
그 위에 문신 패턴을 겹쳐 그렸다. 두 구조가 일치했다.
세 번째 페이지. 로즈마리의 마법 발현 데이터. 조문의 협곡에서 보호막이 생긴 지점.
반경 1미터 구형. 섭씨 영하 온도 저하. 격자 패턴의 각도——60도.
세 개의 도면을 나란히 펼쳐 놓았다. 한도영의 연필이 빠르게 움직였다.
파스칼이 조용히 다가왔다. 한도영의 어깨 너머로 수첩을 들여다봤다.
“세 개가…… 똑같은 구조예요.”
“같은 원점을 공유한다.”
한도영이 수첩 구석에 점 하나를 찍었다. 그 점에서 세 방향으로 선을 그었다. 문신 좌표.
역병 지도. 마법 발현 위치. 세 선은 모두 같은 지점을 향했다.
“원점은 계약자가 아니다.”
연필이 멈췄다. 한도영이 점 주변에 원을 그렸다.
“영민 2만 명의 집합적 생활 반경의 중심이다.”
로즈마리가 벽에서 등을 떼었다. 두 걸음 다가와 탁자 위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시선이 수첩의 도면을 훑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소환 계약은 나를 이 세계 좌표계에 편입하는 장치다. 개인을 좌표로 삼는다.”
한도영이 연필을 뒤집어 지우개 쪽으로 원점을 가리켰다.
“하지만 계약의 근원 좌표는 따로 있다. 이 세계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격자망이다. 역병 살포도, 마법 발현도, 소환 계약도 모두 이 격자망의 노드에서 파생됐다.”
“그럼…… 이 원점 자체를 바꾸면.”
“노드 하나가 아니라, 노드에 연결된 주체를 교체한다.”
한도영이 수첩 맨 뒷장으로 넘겼다. 빈 페이지에 숯연필로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계약 주체 전환——개인(한도영) → 집단(영민 2만 명).'
'격자망의 계약 노드는 개인 소멸 조건을 포함하나, 집단적 합의 노드로 재편되면 소멸이 아닌 분산 유지로 전환.'
'매개자 조건: 동일 격자망에서 파생된 마법 계승자. 로즈마리의 마법 발현이 계약 문신과 공명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비용 조건: 전(全) 영민이 하나의 의사로 합의할 것. 개인 서명이 아닌 집합적 행동으로 계약을 재정의해야 한다.'
연필이 멈췄다.
한도영이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수첩을 책상 위로 밀었다. 파스칼 쪽으로, 로즈마리 쪽으로.
파스칼이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받아 들었다.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그의 연한 회색 눈이 도면을 따라 움직였다. 측량 원부의 좌표와 수첩의 격자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영민들이 다 광장에 모여서.”
“한 명의 합의가 아니라, 모두의 합의를 보여야 한다.”
한도영이 말했다.
“서명은 아니다. 발걸음이다.”
로즈마리가 수첩에서 시선을 떼고 한도영을 바라봤다. 그녀의 호박색 눈이 촛불을 반사했다.
“매개자가 나라면.”
“당신의 마법은 이 계약 격자와 동일한 주파수로 진동한다. 전환식이 시작되면 계약 노드가 재편될 때까지 격자망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위험한 거겠지.”
“그렇다.”
“그래도 할 거야.”
로즈마리가 손바닥을 폈다. 푸른 빛이 실핏줄처럼 올라왔다. 이제는 의지하지 않아도 빛이 반응했다. 그녀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어차피 숨기고 살 마법이 아니었어.”
에리히가 책상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수첩을 집어 들지 않았다. 대신 항복 협상안 사본을 내려다봤다. 올리비에 후작의 서한이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전 영민을 광장에 모으는 것은…… 영주로서 내 할 일이군.”
“백작께서 해주셔야 합니다. 영민들이 응할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협상안은.”
“가져가십시오.”
한도영이 항복 협상안 사본을 집어 에리히에게 건넸다.
“올리비에 후작 진영에 직접 가셔야 합니다.”
에리히가 사본을 받았다. 두 손으로 접어 품 안에 넣었다. 그가 책상 위 민의 헌장 사본을 한 번 쓰다듬었다.
“협상장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한도영이 숯연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변경백령은 무력으로 점령할 수 없는 땅이 아니라, 돈을 벌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땅이다.”
에리히가 그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한 번. 두 번.
“돈을 벌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땅…….”
그가 고개를 들었다. 푸른 눈이 촛불 빛을 반사하며 짧게 번뜩였다. 얼굴에서 피곤이 걷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선은 달랐다. 항복 사절로 가는 자의 시선이 아니었다. 계산서를 들고 흥정하러 가는 상인의 눈이었다.
“좋다. 그 말을 전하지.”
에리히가 집무실 문 쪽으로 돌아섰다. 가죽 장화 바닥이 바닥 돌을 한 번 울렸다. 그는 멈춰 서서 어깨 너머로 한 번 더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끝내게. 나는 저쪽에서 끝내지.”
문이 열리고 닫혔다. 복도로 이어지는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창밖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집무실 안 촛불 그림자가 길어졌다.
파스칼이 수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손가락이 페이지 모서리를 한 번 더 더듬었다.
“저…… 광장으로 갈 준비를 할게요. 측량 원부를 챙겨서 좌표를 표시해야 하니까……”
“가라. 해가 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파스칼이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문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이 복도로 이어졌다.
집무실에 두 사람만 남았다.
로즈마리가 책상 옆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오른손이 책상 위에 놓인 수첩 옆에 닿았다. 손바닥의 푸른 빛이 수첩 표지 위로 희미하게 번졌다. 한도영의 왼팔 문신이 반응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깜박인 뒤, 완전히 가라앉았다.
“무서워.”
로즈마리가 조용히 말했다. 솔직한 어투였다. 감상적이지 않았다.
“매개자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우리 어머니가 마지막에 뭘 느꼈을지.”
“그건 알 수 없다.”
한도영이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손가락이 표지를 닫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당신은 어머니와 다른 조건에서 이 마법을 개방한다. 혼자가 아니다.”
로즈마리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이 한도영의 얼굴에 머물렀다. 두려움이 여전히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로 다른 것이 있었다. 오래 억눌렀던 것이 마침내 허락을 받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한도영이 수첩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영민 2만 명과 당신이 저와 같은 계약을 공유하게 될 겁니다. 그것이 이 계산서의 마지막 답입니다.”
창밖으로 해가 한 뼘 더 기울었다. 집무실 안 촛불 세 개가 나란히 타고 있었다. 수첩 위로 로즈마리의 푸른 빛과 한도영의 문신 잔영이 마지막으로 한 번 교차했다. 빛은 곧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