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변경백의 계산서

6화

말발굽 소리가 멎은 지 한참이 지났다. 수첩을 덮고 소매를 내렸다. 팔뚝의 열기가 천천히 식었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이 가까운 시각. 사절단은 성안으로 들어갔을 터였다. 전령 한 마디에 영지 전체가 조용해졌다.

잠은 오지 않았다. 문신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문신을 기록하는 자신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게 문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수첩을 허리 주머니에 넣었다.

이튿날 아침, 영주성 집무실.

탁자 위에 낡은 양피지가 펼쳐져 있었다. 파스칼이 사흘 밤을 새워 완성한 보급 경로 지도였다. 마을 여섯 개가 붉은 선으로 이어졌다. 외곽으로 갈수록 기존 경로보다 구불구불했지만, 경사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었다.

“어젯밤 늦게 도착했습니다.”

영민 대표는 쉰 살쯤 된 사내였다. 손이 갈라지고 눈가가 깊게 팼다. 외곽 마을 넷을 대표한다고 했다.

“처음입니다. 곡물이 제때 온 건.”

에리히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실은.”

“집계 중입니다. 하지만 예년보다 확실히 적습니다. 수레가 진흙에 빠지지 않았고, 쥐에게 뜯긴 자루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한도영이 수첩을 꺼내 기록했다. 수레 한 대당 평균 소요 시간, 구간별 경사도, 분배 지점의 위치. 영민 대표의 말을 숫자로 옮겼다.

“파스칼이 경로를 조정한 구간만 여섯 곳입니다. 평균 이동 시간이 30퍼센트 단축됐습니다.”

에리히가 턱을 들며 말했다.

“기록으로 남기시오. 영지 공식 문서로.”

한도영은 수첩을 덮었다. 영민 대표가 허리를 굽혔다.

“영주님, 그리고 이방인 분께. 마을 사람들이 전해 달랐습니다. 굶주리던 아이가 오늘 아침 처음으로 울지 않았다고.”

방 안이 조용해졌다. 에리히의 눈이 잠시 감겼다 떠졌다.

“물러가도 좋소. 다음 수송은 닷새 뒤다.”

영민 대표가 물러났다. 문이 닫혔다.

의자에 앉은 에리히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하지만 입가의 미세한 긴장은 풀려 있었다.

“한 달. 이 속도면 한 달 내로 기근이 완화될 거요.”

한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첩을 허리춤에 넣고 창밖을 봤다. 성벽 너머로 먼지가 가라앉은 길이 보였다. 어젯밤 사절단이 지나간 길이었다.

에리히가 말을 이었다.

“어젯밤 크로이츠 변경백의 사절이—”

문이 열렸다. 경비병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영주님, 발렌 가문의 사신이 성문 앞입니다. 호위 기사 두 명과 함께. 사전 통보는 없었습니다.”

에리히의 얼굴에서 안도감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천천히 일어났다.

“알현실로 안내해라.”

한도영을 돌아봤다.

“자네도 오시오.”

알현실은 집무실보다 넓었지만 더 추웠다. 벽난로에 불이 붙어 있었지만 천장이 높아 열기가 머물지 않았다. 한도영은 에리히의 왼쪽 뒤편에 섰다.

문이 열리고 헤르만이 들어왔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제 회의실에서 로즈마리의 과거를 들춘 바로 그 원로였다. 하지만 오늘 옷차림은 달랐다. 낡은 회색 로브 대신 발렌 가문의 문장이 수놓아진 진청색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가슴에는 은색 사슬이 걸려 있었고, 그 끝에 인장이 달려 있었다.

뒤로 갑옷을 입은 기사 두 명이 따랐다. 검을 찬 채였다. 한 명은 문 옆에, 다른 한 명은 헤르만의 오른쪽 뒤에 멈춰 섰다.

헤르만이 허리춤에서 양피지 뭉치를 꺼냈다.

“발렌 가문의 공식 채권 증서입니다.”

에리히가 받아들었다. 양피지에는 발렌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붉은 밀랍이 두꺼웠다. 인장 아래로 빼곡한 글씨가 이어졌다.

“3년 전, 백작께서 왕실 지원금으로 기록한 자금. 실질적 채권자는 발렌 가문입니다.”

양피지를 쥔 손이 멈췄다. 한 구절을 읽고 다시 읽었다. 안색이 굳어졌다.

한도영은 그 손을 주시했다. 손가락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헤르만이 말을 이었다.

“채무 불이행 시 담보 조항이 있습니다.”

손가락이 한도영을 가리켰다.

“이방인 한도영의 신병을 인도하십시오.”

알현실 안 공기가 멈췄다. 벽난로의 장작 터지는 소리만 났다.

한도영은 자신의 이름이 낯선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들었다. 담보. 신병 인도. 단어들이 차례로 떨어졌다.

팔뚝을 만지지 않았다. 소매 아래 문신이 조용했다. 발진 부위에서 열이 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보다 더 급박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계약 문신의 기한.

외부 채권자에게 넘겨지기 전에 문신이 먼저 자신을 삼킬지도 모른다.

에리히가 고개를 들었다.

“서명이 백작 본인의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오.”

헤르만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계산된 동작이었다.

“서명은 부차적입니다. 인장이 증명합니다.”

반 발짝 앞으로 나왔다. 장화 굽이 돌바닥에 부딪혔다.

“영주님께서 선택하실 일입니다. 빚을 갚으시든지, 담보를 넘기시든지. 3일 내 답변을 듣겠습니다.”

헤르만이 뒤돌았다. 기사 두 명이 따라 움직였다. 문 앞에서 멈춰 서더니,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객실을 쓰겠습니다. 답변이 준비될 때까지 머물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에리히는 여전히 양피지를 들고 서 있었다. 종이가 바람에 떨렸다. 알현실 안에 아직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도영이 그 뒷모습을 보았다. 어깨가 평소보다 낮았다.

“문서 내용이 사실입니까.”

목소리는 평온했다. 질문은 구체적이었다. 에리히가 천천히 돌아섰다. 얼굴에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었다.

“3년 전… 왕실 지원금이 아니었소.”

목소리가 낮아졌다.

“개인 채권이었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권자. 나는 그게 왕실의 배려인 줄 알았소.”

에리히가 양피지를 내려다봤다.

“발렌 가문이 그 채권을 매입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샀는지는 모르오.”

바로 그때 알현실 문이 다시 열렸다.

로즈마리였다. 손에 작은 양피지 묶음을 들고 있었다. 구호 물품 배분 보고서였다.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췄다. 에리히의 얼굴을 보고, 양피지를 보고, 한도영을 봤다.

“무슨 일이야.”

그녀의 목소리에서 평소의 가벼움이 사라졌다. 에리히가 묵직하게 대답했다.

“발렌 가문의 사신이 왔소. 채무 변제를 요구합니다. 불이행 시 담보로… 한도영을 넘기라고.”

로즈마리의 손에서 양피지 묶음이 살짝 기울었다. 곧바로 바로잡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를 넘기면 관개 수로는 누가 설계하지. 보급 경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도영 씨는 영지의 자산이야. 그를 넘기는 건 기근 해결의 유일한 희망을 버리는 거라고.”

에리히가 대답하지 않았다. 로즈마리가 반 걸음 다가갔다.

“3년 전, 정말 왕실 지원금인 줄 알았어?”

턱 근육이 움직였다. 오래된 칼자국이 당겨졌다.

“아니오. 알고 있었소. 단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 뿐.”

목소리가 갈라졌다.

“지원금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돈을 썼소. 수로 공사에, 종자 구입에, 굶주린 영민들의 식량에. 돌이킬 수 없었소.”

로즈마리는 잠시 그를 응시했다. 눈이 흔들렸다. 분노인지 연민인지 구분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알고 있었으면서.”

숨을 들이쉬었다. 주근깨 낀 코끝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

로즈마리가 한도영을 돌아봤다.

“한도영 씨는 지금 여기서 쓸모를 증명했어. 수원 찾았고, 보급로 고쳤고, 아이도 살렸어. 그걸 아는 사람은 다 알아.”

다시 에리히를 향했다.

“과거를 후회하는 대신 지금 뭘 할지 결정해야 해.”

에리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로즈마리와 한도영 사이를 오갔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장작이 타들어가며 불꽃이 작아졌다. 창밖으로 오전의 햇빛이 기울기 시작했다.

에리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에 든 양피지만 반으로 접고, 다시 접었다. 채권 증서의 붉은 인장이 접힌 자국 사이로 갈라졌다.

탓할 수 없었다. 그도 같은 위치였다.

한도영은 두 사람이 나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황무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몫을 계산할 시간이었다.

알현실은 조용해졌다. 에리히의 발소리가 복도 너머로 사라지고, 로즈마리의 가죽 앞치마 스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도영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정오의 햇살이 황무지를 하얗게 태우고 있었다. 갈라진 땅, 말라비틀어진 관목, 먼지 쌓인 마차 바퀴 자국. 이곳이 내다보이는 전부였다.

왼팔에 둔한 열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통증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지식뿐이다.”

중얼거림이 창유리에 부딪혀 돌아왔다.

“계약 문신이 내 목숨을 앗아가기 전에, 이 영지가 나 없이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 순간, 열감이 바뀌었다. 둔탁하던 온기가 날카로운 경련으로 전환됐다. 왼팔을 움켜쥐었다. 소매를 걷자 문신 주변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문양이 움직였다.

손목 쪽으로 검은 선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 기어가는 감각. 길이는 약 1센티미터. 이전의 2밀리미터, 3밀리미터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한도영은 숨을 들이켰다.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탄필을 잡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새 페이지를 펼쳤다. 손목 안쪽, 새로 생긴 선을 그렸다. 기존 분기점에서 시작된 직선, 1센티미터. 끝부분에 작은 원이 형성돼 있었다. 이전까지는 없던 패턴이었다.

탄필이 종이를 긁었다.

'정오 무렵. 손목 내측 방향 1cm 확장. 말단에 원형 노드 생성. 이전 확장 대비 속도 3배 이상 증가.'

문양 일부를 확대 스케치했다. 원형 노드에서 갈라져 나온 미세한 곡선들. 기하학적 구조를 띠고 있었다.

'고대 측량 기호의 변형. 교차각 60도. 확장 속도가 빨라졌다.'

숯연필을 멈췄다. 원형 노드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어보았다. 손목 정맥이 지나는 지점이었다. 심장에서 가까워지는 방향.

기한이 예상보다 짧을 수 있다.

수첩을 접어 품에 넣었다. 표정을 지웠다. 알현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해가 졌다. 성 내부 복도에 기름 램프가 켜졌다. 불빛이 돌벽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급 집사 한 명이 한도영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

“영주님께서 서재로 모시라 하셨습니다.”

탄필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수첩을 품에 넣고 집사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에리히의 개인 서재는 알현실보다 한 층 위에 있었다. 좁은 나선 계단을 올라 무거운 참나무 문 앞에 섰다. 집사가 문을 열고 물러났다.

서재 안은 어두웠다. 탁자 위에 촛불 두 개만 켜져 있었다. 탁자 건너편에 에리히가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문서들이 펼쳐져 있었다.

가죽 장정의 두꺼운 장부. 그리고 낡은 양피지 한 장. 양피지 하단에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발렌 가문의 문장이었다.

“앉게.”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한도영은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촛불이 에리히의 얼굴을 아래에서 비추고 있었다. 뺨의 칼자국이 더 깊어 보였다.

에리히는 말없이 양피지를 한도영 쪽으로 밀었다. 채권 증서였다. 빌린 금액, 이자율, 상환 기한. 기한은 이미 두 달이 지나 있었다.

“발렌 가문이다. 3년 전, 내가 왕실 지원금을 유용했을 때 그 빚을 넘겨받은 곳이.”

장부를 펼쳤다. 잉크로 빼곡히 적힌 숫자들. 수입보다 지출이 컸다. 경작지 수확량, 세금 수입, 병사 급료, 곡물 구매 비용. 모든 숫자가 적자였다.

“헤르만은 오늘 답변을 요구했다. 3일 안에 너를 발렌 가문에 신병 인도하든지, 아니면 즉시 전액 상환하든지.”

에리히가 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를 넘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영지의 재정으로는 부채 상환을 감당할 길이 없다.”

촛불이 흔들렸다. 푸른 눈이 한도영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네가 방법을 알고 있다면, 지금 말해주게.”

압박감이 섞인 직선적인 요구였다. 기사 시절의 말투가 살짝 배어나왔다.

한도영은 3초간 침묵했다.

시선이 탁자 위의 장부를 훑었다. 세금 수입 항목에서 멈췄다. 은화로 표기된 수입, 그리고 하단에 작게 적힌 주석. 인접국 상인들과의 거래 시 환율 적용 중. 구체적인 환율은 적혀 있지 않았다.

3초가 지났다.

“3일 안에.” 입을 열었다. “환율 차익을 이용한 임시 상환 계획을 만들어오겠습니다.”

에리히의 눈썹이 올라갔다.

“환율?”

“변경백령은 은화를 씁니다. 인접국들은 각자 다른 주화를 쓰고 있고, 환율이 불안정하다고 들었습니다.”

장부의 한 줄을 가리켰다.

“이 거래 기록에서 환율 스프레드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거래 시점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그 차이를 역이용할 수 있습니다.”

에리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촛불에 비친 얼굴에서 피로가 스며나왔다. 어깨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천천히 일어난 에리히가 탁자를 돌아 한도영 곁으로 왔다. 굳은살 박인 손이 어깨에 얹혔다. 무거웠다.

“미안하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 과오 때문에 네가...”

말을 잇지 못했다. 손가락이 어깨를 짧게 움켜잡았다 놓았다. 기사가 갑주를 벗은 듯한 순간이었다.

한도영은 고개를 저었다.

“영주님,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채무 구조는 바꿀 수 있습니다.”

푸른 눈이 흔들렸다. 입술을 악물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침내 손을 거둔 에리히가 뒤돌아 창가로 걸어갔다. 어둠 속 황무지가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가보게. 쉬어야 할 거야.”

한도영은 일어나 목례를 하고 서재 문을 향했다.

복도는 어두웠다. 벽 걸이 램프 몇 개만이 성의 긴 통로를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자신의 숙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돌바닥에 낮게 울렸다.

왼팔이 욱신거렸다.

처음에는 서재에서 느꼈던 둔한 통증과 같았다. 두 걸음 더 걸었을 때 통증의 성질이 바뀌었다. 불이 붙은 듯한 감각이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한 번에 번졌다.

걸음을 멈췄다. 숨이 턱 막혔다.

소매를 걷어 올리기도 전에, 천 위로 빛이 새어나왔다. 문신 전체에서 푸르스름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피부 아래에서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빛났다. 원형 노드에서 광선이 갈라지고, 선들이 맥박에 맞춰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갔다.

벽에 손을 짚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릎이 돌바닥에 닿기 직전, 어깨를 벽에 기대고 주저앉았다.

섬광이 복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램프 불빛을 삼키고도 남을 밝기였다. 돌벽에 한도영의 실루엣이 검게 번졌다.

팔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 숨을 짧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섬광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저 멀리 복도 끝. 약제실 방향에서 발소리가 났다.

빠른 걸음이었다. 가죽 앞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 달려오는 소리.

로즈마리였다. 약제실 문간에 서서 복도 저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충격에 굳은 표정. 호박색 눈이 크게 뜨였다. 손에 든 약초 묶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시선은 한도영의 왼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에 고정돼 있었다. 마법을 억눌러 온 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 파장. 그 파장이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로즈마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어 올리기도 전에, 천 위로 빛이 새어나왔다. 문신 전체에서 푸르스름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피부 아래에서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빛났다. 원형 노드에서 광선이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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