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급식의 신

10화

서늘한 공기. 냉동기 저음이 벽을 타고 울렸다.

서준혁은 폐냉동 창고 후문 쪽 녹슨 철망 아래로 몸을 밀어 넣었다. 등이 철망에 긁혔다. 소리 없이 착지.

비상구 철문 전자식 키패드. 한주원이 알려준 마스터 코드를 누르자 녹색 불이 들어왔다.

지하 1층. 잉크 냄새와 용제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삼십 평 남짓한 공간에 산업용 프린터 두 대.

스티커 인쇄 라인.

조리복 안주머니에서 강시은의 펜던트형 녹음기를 꺼내 전원을 눌렀다. 붉은 LED가 점멸했다. 녹음 중. 다시 주머니에 밀어 넣고 스마트폰으로 작업대 위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소고기(국내산) 2025-05-17'— 한성고에서 본 규격 그대로였다.

책상 위 바인더. '출하 관리 대장'. 학교명, 품목, 기존 유통기한, 조작 유통기한, 작업자, 출하 일시가 빽빽했다.

한 페이지씩 사진에 담았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손이 멈췄다. '한성고 닭볶음탕용 닭고기(냉동) — 원기한 2023-04-02 / 조작기한 2023-04-18'.

딸의 급식 메뉴표 날짜와 일치했다. 턱 근육이 굳었다. 서랍을 열어 납품 확인증과 학교별 위조 스티커 샘플까지 전부 촬영했다.

그때 위층에서 둔탁한 발소리. 구두 굽 소리와 웃음소리. 차만식이었다.

서준혁은 즉시 프린터 뒤편 부품 박스 구석으로 숨었다. 녹음기를 옷깃 사이에 감췄다.

차만식이 작업복 차림의 부하 둘을 대동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박종태 그 양반. 교육청 감사 통과되니까 요즘 입금이 늦어.”

차만식이 작업대에 걸터앉았다.

“그래도 오래 갈 라인이야. 교육청 쪽은 2년마다 갱신되니까 계속 관리해.”

“한성고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조리사.”

“서준혁? 오늘로 끝이다. 해고 처리했고 내일 아침이면 짐 싸서 나갈 거야.” 차만식이 목을 꺾었다. “은성초 때도 그랬고 이 바닥이 다 그렇지. 누군 하나 죽기라도 했나?”

서준혁의 손등 흉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부하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번 달 대안초등학교 물량, 로트 번호 3번 라인으로 찍었습니다.”

“1번 은성초, 2번 한성고, 3번 대안초. 5년째 세 라인 돌리니까 교육청도 못 잡더라.”

“지난주에 은성초 쪽 장부 정리했습니까.”

“2년 전 사고 기록은 확실히 빼놔. 닭볶음탕 건은 특히. 유통기한 사흘 지난 걸 풀었더니 애들 병원 실려 가는 꼴 하고는.” 차만식이 작업대를 탁 쳤다. “그때 영양사가 유통기한 지났다고 빼자더라. 그래서 내가 네가 책임질 거냐고 했더니 입 다물더군. 위생 점검표도 우리가 써줬잖아. 사고 나도 조리실 과실로 덮으면 그만이고.”

서준혁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 조리사 서준혁, 딸이 죽었다며.” 부하가 스티커 롤을 정리하며 말했다.

“죽었지. 은성초 그 닭볶음탕 먹고. 아비는 지금껏 몰랐더라고. 그래서 내가 알려줄 생각이었어. 네 딸 뒈진 게 우리 스티커 때문이라고.” 차만식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근데 그 양반 증거를 너무 많이 봤어. 물류창고까지 쫓아왔더라고. 좀 더 귀찮아지면……” 라이터를 켜며 말꼬리를 흐렸다. “사고 하나 더 나도 모르는 거다. 조리실 청소 시간에 CCTV 꺼지는 시간 말이야. 알지?”

서늘한 침묵 속에서 서준혁은 바인더 표지, 페이지 번호, 계좌 번호 메모지까지 총 47장의 사진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녹음기엔 12분 38초가 찍혀 있었다.

차만식이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섰다. “내일까지 3번 라인 출력 끝내놔. 쓸데없는 장부는 태워버리고.”

구두 소리가 계단으로 향했다. 철문 닫히는 소리. 엔진 시동음.

30분 후 서른세 번째 심호흡에서야 서준혁은 박스 뒤에서 나왔다. 녹음기를 중지했다. 저장 파일명 — '4월증거07'.

스마트폰으로 사진 47장과 녹음을 확인했다. 음량을 낮춘 채 재생했다. “……네 딸 뒈진 게 우리 스티커 때문이라고.” 손등 흉터가 욱신거렸다.

유다희와의 공유 폴더로 사진 원본을 전송하고 녹음 파일 사본도 보냈다. 보조 폰을 확인하니 오후 11시 47분. 유다희의 문자에 짧게 답장했다. “증거 확보 완료. 내일 아침 연락.”

보조 폰을 끄고 장부 바인더를 원래 위치에 정리했다. 침입 흔적이 남지 않도록 스티커 롤 각도까지 맞췄다.

비상구 철문 너머로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냉동탑차 뒤편으로 몸을 붙였다. 차만식의 구두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후문 쪽으로 다가왔다. 서준혁은 숨을 죽였다. 왼쪽 주머니에 녹음기, 오른쪽 주머니에 휴대폰. 장부 사진 스물세 장이 저장돼 있었다.

차만식이 후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내일 아침까지 여기 물건 전부 빼내. 기록은 태워. 박 실장? 급식실 냉동고 기록 전면 교체야. CCTV 꺼지는 시간에 맞춰 들어가.”

서준혁의 손끝이 멈췄다. 검은 세단의 문이 열리고 닫히고 엔진 소리가 멀어졌다. 복도 끝에서 운동화 밑창 소리가 났다. 순찰용 손전등 불빛이 복도 모서리를 훑었다.

“거기 누구야?”

서준혁은 몸을 낮추고 적재된 파렛트 뒤로 숨었다. 오른손으로 바닥의 쇠파이프를 집었다. 불빛이 파렛트를 비추는 순간, 일어나 왼손으로 손전등을 쳐내고 오른발로 상대의 무릎을 찼다. 부하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쇠파이프로 목덜미를 내리찍자 바닥에 쓰러졌다.

숨은 붙어 있었다. 무전기 배터리를 분리해 버리고 휴대폰 전원을 껐다. 후문을 열자 바깥 공기가 밀려들었다.

뛰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공단 정문을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검은 제네시스가 공장 쪽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차만식의 고함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퍼졌다.

“뭐? 침입?”

서준혁은 골목을 빠져나와 반대편 도로로 건넜다.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지금 간다.’

새벽 2시. 강시은의 원룸. 노트북 화면이 켜져 있었다. 서준혁이 USB 케이블을 꽂자 장부 사진 스물세 장이 복사되기 시작했다. 강시은이 식탁 건너편에 앉아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다.

“녹음 파일도 복사하겠습니다.”

서준혁이 녹음기를 건넸다. 강시은이 microSD 카드를 분리해 노트북에 연결했다. 파일명 ‘250415_2352’.

녹음 시간 17분 43초. USB 복사가 완료되자 서준혁은 USB를 조리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강시은이 클라우드 업로드 창을 열고 파일 두 개를 드래그했다. 진행 바가 차올라 100퍼센트에 도달했다.

서준혁이 녹음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차만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그 초등학교 사건? 걔네 엄마가 그렇게 쫓아다녔는데… 그냥 닭고기 한 박스였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사고였어. 하지만 현장에서 빼낼 건 빼냈어. 기록도 정리했고. 그땐 돈 좀 들었지만, 감사는 무사히 넘어갔지.”

강시은이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이게… 4년 전 그 은성초 건 말하는 겁니다.”

녹음 파일을 끝까지 재생했다. 리베이트 구조, 납품업체 구분법, 위조 라인 교체 주기까지 전부 나왔다. 재생이 끝났다. 강시은이 벽 쪽으로 두 걸음 갔다가 돌아섰다. 안경 너머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제가 4년 전에 들었어야 할 소리네요. 그땐 그냥 못 들은 척했습니다. 제가 침묵하는 동안 냉동고에 그 기록표만 조작해도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준혁이 microSD를 다시 꽂으며 복사본을 노트북 폴더에 저장했다.

“그건 4년 전이다. 지금부터 하는 짓은 다르다.”

강시은이 고개를 들었다.

“내일 아침, 급식실에 먼저 들어간다. CCTV 켜지기 전에. 박종태가 그 전에 냉동고 기록을 건드릴 거다.”

“어떻게… 아, 폐냉동 창고에서 들으셨군요.”

“녹음했다. 차만식이 직접 지시했다.”

강시은이 노트북 화면을 확인했다. 클라우드 업로드 폴더에 파일 두 개가 저장돼 있었다.

“교육청에는 제가 직접 제출하겠습니다. 4년 전 은성초 위생 점검표 사본도 같이 붙일게요. 그리고 경찰서는…”

“따로 간다. 증거는 분산 제출이 원칙이다.”

강시은이 가방에서 4년 전 은성초 위생 점검표 사본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도 클라우드에 올릴까요.”

“올려라.”

서준혁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어디 가시게요.”

“급식실. 해 뜨기 전에 막아야 한다.”

강시은이 스캔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더는 떨리지 않았다.

서준혁이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유다희였다.

“서 선생님! 차만식 메시지 감청했어요. 박종태가 지금 학교 급식실 냉동고 안에 있어요! 기록 전면 위조 중이래요. 해 뜨기 전까지 막아야 한대요!”

“몇 분 전이냐.”

“방금이요! 지금 출발하면—”

“안다.”

전화를 끊고 강시은을 돌아봤다.

“속도가 빨라졌다. 너는 예정대로 교육청으로 가라.”

강시은이 봉투를 가방에 넣으며 일어섰다. 눈이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심하세요.”

존댓말이었지만 끝이 떨리지 않았다. 서준혁은 문을 열고 나갔다. 새벽 2시 34분.

해 뜨기까지 세 시간 반. 계단을 내려가며 왼쪽 어깨의 통증을 무시했다. 학교까지 달렸다.

급식의 신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