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급식의 신

11화

차량 두 대가 학교 정문을 지나친 게 새벽 4시 10분이었다. 서준혁은 조리실 뒷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 있었다. 스마트키를 꺼내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섰다.

형광등 대신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빛이 조리대 모서리를 스쳤다.

냉동고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서류 넘기는 소리. 서준혁은 플래시를 끄고 벽을 따라 걸었다. 왼쪽 어깨가 벽에 닿을 때마다 통증이 왔다. 무시했다.

냉동고 문이 열려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바닥을 타고 흘러나왔다.

서준혁이 모서리에서 멈췄다.

박종태였다. 냉동고 앞에 쪼그려 앉아 기록지 파일을 교체하고 있었다. 헤드랜턴을 쓰고 있었고, 손이 떨리고 있었다.

서준혁이 미끄럼 방지 신발을 조용히 벗었다. 세 걸음.

박종태가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서준혁의 손이 헤드랜턴을 낚아채 조리실 바닥에 던졌다.

“뭐야—!”

박종태가 뒤로 넘어지며 파일을 가슴에 안았다. 서준혁이 조리실 등을 켰다.

“서… 서 선생님. 아직 조리 시간 아닙니다. 여기 어떻게…”

“뒤문.”

박종태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 그러니까 이것들은 제가 정기 점검 차—.”

“HACCP 기록지 새벽 점검이 규정에 있나.”

박종태가 입을 닫았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서준혁이 파일을 내려다봤다. 프린터 출력 시간이 찍혀 있었다. 새벽 4시 3분.

“지시한 사람 대라.”

“아… 아닙니다. 제가 임의로…”

“차만식이 몇 시에 오라고 했냐.”

박종태가 목을 움츠렸다. 서준혁이 휴대폰을 집어들어 문자를 보냈다. 강시은이었다.

‘박종태 확보. 냉동고 기록 위조 현행. 교육청과 경찰 출동 요청. 차만식은 아직 안 옴.’

답장이 15초 만에 왔다.

‘접수 완료. 교육청 김 팀장은 오늘 아침 7시 현장 점검 예정입니다. 일정 앞당겼어요. 경찰은 5시 도착 예정.’

서준혁이 박종태를 냉동고 문 옆 배관에 앉혔다. 케이블 타이로 손목을 배관에 묶었다.

“이건 감금죄—”

“증거 인멸 현행범이다.”

서준혁이 냉동고 문을 닫았다. 온도 기록지가 반쯤 교체된 상태로 매달려 있었다. 원본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었다.

아침 6시 40분. 영양사 사무실.

강시은이 노트북 화면을 세 사람 앞으로 돌렸다. 유다희가 소형 액션캠 두 대의 배터리 잔량을 확인했다. 서준혁이 USB에서 지하 공장 장부 사진을 열었다.

“차만식은 박종태가 연락 안 되자 조리실 점검하러 직접 올 거다. CCTV 안 켜지는 시간을 골랐으니까.”

강시은이 끄덕였다.

“조리실 CCTV는 6시부터 작동이지만… 네, 이미 오늘 아침 기록은 박종태가 건드렸을 테니까. 차만식 사장님은 안심하고 오실 겁니다.”

“그 틈을 찍는다.”

유다희가 액션캠 하나를 냉장고 위 전자레인지 옆에 붙였다. 촬영 각도를 핸드폰으로 확인했다.

“이쪽이 사각이 없네요. 냉동고 정면 완전 잡혀요. 두 번째 카메라는 어디에—”

“배식구 위.”

서준혁이 선반을 가리켰다. 유다희가 두 번째 캠을 설치했다. 강시은이 차만식의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멈췄다.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사장님. 강시은입니다. 냉동고에 문제가 생겼어요. HACCP 경고등이 아침부터 계속 깜빡이는데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출근하시는 길에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으세요?”

수화기 너머로 차만식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까 박 실장이 들렀을 텐데 못 봤나?』

“네? 박 실장님은 못 뵀어요. 냉동고만 계속 울리고…”

『알았어. 10분 뒤 도착한다.』

전화가 끊겼다. 강시은이 숨을 들이쉬었다.

“올 거래요.”

서준혁이 휴대폰으로 유다희의 유튜브 채널 스트리밍 화면을 확인했다. 아직 송출 전이었다. 유다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시청자들 유입은 예약 게시글로 유도해놨어요. 생중계 시작하면 제목은 ‘한성고 급식실 현장, 지금 무슨 일이’로 갑니다.”

강시은이 조리실 문을 열고 복도를 살폈다.

“차량 들어왔어요. 검은색 제네시스.”

“자리.”

서준혁이 조리실 안쪽 자재 창고 문 뒤로 들어갔다. 유다희가 배식구 아래 쪼그려 앉았다. 강시은이 냉동고 앞에 서서 조리복 주름을 폈다.

차만식의 구두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조리실 문이 열렸다. 차만식이 들어왔다. 올백머리, 명품 정장, 손목의 금시계.

“어디가 문제야. 온도가 몇 도길래—”

냉동고 문 앞에서 발이 멈췄다. 바닥에 흩어진 기록지 원본을 내려다봤다. 박종태가 없었다. 대신 냉동고 손잡이에 박종태의 헤드랜턴이 걸려 있었다.

차만식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뒤돌았다.

서준혁이 자재 창고 문에서 나왔다.

“찾는 거라면 이거다.”

손에 든 파일을 들어 보였다. 박종태가 교체하려던 위조 기록지였다. 차만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어떻게 여기.”

“박종태는 배관에 묶여 있다.”

“미친 새끼.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

서준혁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에 유다희의 채널이 떠 있었다. ‘LIVE’ 표시가 빨갛게 깜빡였다.

“지금부터 네가 하는 말은 전부 녹화된다. 시청자 200명.”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빠르게 올랐다. 200, 350, 500.

차만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수를… 강시은! 너—”

강시은이 냉동고 옆에서 걸어 나왔다. 목에는 녹음기가 걸려 있었다.

“사장님. 오늘은 전원 켜고 왔습니다.”

차만식이 냉동고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록지 원본을 없애려는 움직임이었다. 서준혁이 한 걸음 늦게 움직였지만 유다희가 카메라 각도를 틀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 남자가 냉동고 기록지 찢으려고 해요!”

차만식의 손이 멈췄다.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거… 생중계냐.”

“아까 말했지.”

서준혁이 위조 기록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박종태가 오늘 새벽 4시 3분에 출력한 HACCP 기록지다. 원본과 비교하면 냉동고 온도가 영하 18도로 조작돼 있다. 실제는 영하 12도.”

차만식이 침을 뱉었다.

“증거라고? 그게 뭘 증명해. 네놈이 꾸민 거지.”

강시은이 녹음기를 들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차만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4년 전 은성초 사고? 그건 조리실 과실로 덮으면 돼. 영양사 실수로 발표하고 넘겼잖아.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되고.』

차만식이 녹음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서준혁이 그 손목을 낚아챘다.

“손대지 마라.”

“이 새끼가—!”

차만식이 반대손으로 서준혁의 멱살을 잡았다. 서준혁이 손목을 틀어 아래로 꺾었다.

차만식이 바닥에 엎드려졌다. 명품 정장이 조리실 바닥에 깔렸다.

“비웃어라. 네 딸년도 이렇게 발버둥 쳤냐.”

서준혁의 손이 멈췄다. 눈동자가 정지했다.

2년 전. 은성초등학교 조리실.

서준혁은 딸의 담임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학교로 달려왔다. 급식실 앞 복도.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딸 수아가 식판 옆에서 토하고 있었다.

“아빠… 배가…”

서준혁이 딸을 안아 들었다. 119를 부르려는 순간, 조리실 쪽에서 비명이 났다.

“냉장고 문이 열렸는데— 온도가 너무 높아서—”

서준혁이 조리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냉동고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조리사가 냉동고 문을 닫으려다 미끄러졌다. 쏟아지는 냉동 닭고기 상자들.

딸을 안은 채 상자를 피하려다 왼손이 냉동고 날카로운 모서리에 스쳤다. 손등이 찢어졌다. 피가 났다. 딸은 울고 있었다.

“아빠 손… 피 나.”

“괜찮아. 아빠 괜찮아.”

구급차가 올 때까지 손등을 누르며 딸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39도를 넘고 있었다. 손등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서준혁의 왼손이 차만식의 뒷목을 바닥으로 눌렀다. 손등의 흉터가 붉게 부풀어 올랐다.

“그 말.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라.”

차만식의 얼굴이 바닥 타일에 비벼졌다.

“이봐… 이거 다 폭행이야. 생중계로 다 나가고 있어!”

유다희가 카메라를 앞으로 들이밀었다.

“네, 잘 나가고 있어요. 시청자 4,200명. 댓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고, 지금 누군가가 ‘위조 스티커 인쇄 라인이 과거 대기업 납품업체에서 쓰던 구형 모델’이라고 제보했어요.”

서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유다희가 댓글을 읽었다.

“‘한눈에 알겠다. 서준혁 팀장님 맞죠? 2019년 QC 팀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입니다. 이 인쇄 공법은 그때 적발했던 불법 유통업체랑 동일해요.’”

강시은이 가방에서 지하 공장 장부 사진과 은성초 위생 점검표를 꺼내 카메라 앞에 펼쳤다.

“4년 전부터 동일한 패턴입니다. 은성초등학교, 그리고 한성고. 모두 같은 위조 스티커, 같은 유통기한 연장 수법이에요.”

차만식이 고개를 들려다 서준혁의 손에 다시 눌렸다.

“증거 조작이야! 저건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조용히 해.”

서준혁이 휴대폰을 꺼내 파일 전송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교육청 감사팀 / 경찰서 증거 서버’ 주소가 입력돼 있었다.

전송 버튼을 누를 때마다 파일명이 떠올랐다.

‘지하공장장부47장.zip 전송 완료.’ ‘차만식자백녹음12분38초.mp3 전송 완료.’ ‘한성고HACCP위조기록지.pdf 전송 완료.’ ‘은성초위생점검표사본.pdf 전송 완료.’

생중계 화면에 전송 상태 바가 표시됐다. 댓글창이 폭발했다.

‘와 지금 저거 실시간 업로드냐’ ‘시청자 1.2만 ㄷㄷ’ ‘경찰 출동했대’ ‘차만식 저 새끼 평생 감옥 가야 한다’

서준혁이 마지막 파일을 선택했다. ‘4월증거07.mp3’ — 강시은이 차만식의 협박을 녹음한 파일이었다. 전송 버튼.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차만식의 몸이 굳어졌다.

“이 개새끼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랑 연결돼 있는지 알아? 교육청 김 팀장이 누구 편인지도 모르고—”

“김 팀장은 오늘 아침 감사 일정 앞당겨서 7시에 출발했다.”

강시은이 말했다. 떨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비리 퇴찰 시스템 발동됐고, 이번 감사는 실시간 보고 체계예요. 당신이 후원하는 시의원도 이번엔 손 못 뺄 거예요.”

조리실 문이 열렸다.

경찰 세 명이 들어왔다. 첫 번째 경찰이 차만식을 확인하고 수갑을 꺼냈다.

“차만식 씨. 증거 인멸 현행범 및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배임 혐의로 체포합니다.”

차만식이 입을 열었다.

“내 변호사…”

“불러요. 구치소에서.”

수갑이 채워졌다. 경찰이 차만식을 일으켜 세웠다. 올백머리가 흐트러졌다. 금시계가 형광등 아래서 반짝이다 조리실 문 밖으로 사라졌다.

유다희가 카메라로 그 장면을 끝까지 쫓았다.

“시청자 여러분, 방금 현장에서 차만식이 체포됐습니다. 지금 시청자 3만 2천 명 돌파했고요. 경찰 확인 결과 박종태도 학교 정문 앞에서 별도 체포됐습니다.”

서준혁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화면에 알림이 떠 있었다. ‘모든 데이터 전송 완료.’

강시은이 조용히 다가왔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녹음기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끝난 건가요.”

“아직 아니다.”

서준혁이 냉동고 문을 열었다. 안쪽에 붙어 있던 위조 스티커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세 번째 인쇄 라인이다. 은성초, 한성고, 그리고 대안초. 연결 고리는 아직 남아 있다.”

강시은이 스티커를 들여다봤다. 로트 번호 ‘LOT-0418-05’가 선명했다.

“이건 4년 전 그 사고 당시 로트와 같아요.”

“그래.”

서준혁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왼손 손등의 흉터가 붉게 가라앉고 있었다.

“끝까지 간다.”

유다희의 카메라가 멈추지 않았다. 생중계 화면에 서준혁과 강시은이 위조 스티커를 확인하는 모습이 계속 송출됐다. 시청자 수는 5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급식의 신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