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급식의 신

2화

조리실 불은 이미 켜져 있었다.

서준혁은 검수 구역으로 걸어가며 조리복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접힌 종이가 그대로였다. 냉동 창고에서 나온 지 십 분. 손끝은 아직 차가웠다.

강시은이 검수대 앞에 서 있었다. 바인더를 펼쳐 납품서를 정렬하고 있었다. 형광등 아래 손가락이 종이를 짚는 소리가 났다.

“오늘 검수 목록입니다. 냉장 닭고기, 냉동 돈육, 채소류 세 가지.”

서준혁은 검수대 옆으로 다가가 온도계를 꺼냈다. 디지털 온도계 액정이 켜졌다.

“닭고기 먼저.”

강시은이 납품서를 한 장 건넸다.

“신선유통에서 왔습니다. 오늘 오전 다섯 시 반에 도착했고요.”

서준혁은 납품서를 받아들지 않고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다. 비닐 포장된 닭고기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맨 위 팩을 집어 들었다.

유통기한이 이틀 남아 있었다.

두 번째 팩도 같았다. 세 번째 팩은 내일이 유통기한이었다. 네 번째 팩은 오늘 자정.

“이거.”

닭고기 팩을 검수대 위에 올렸다. 유통기한이 검은 잉크로 찍혀 있었다.

강시은이 고개를 기울였다. 뿔테 안경이 형광등 빛을 반사했다.

“확인했습니다. 냉장 닭고기…”

“48시간 안에 쓸 수 있는 양이 아니다.”

강시은의 손이 바인더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이런 적 없었습니다. 원래는 최소 닷새는 남은 제품이 들어와요.”

“원래.”

서준혁은 납품서를 집어 들었다. '납품업체: (주)신선유통'. 날짜는 오늘, 수량은 40kg. 스티로폼 박스 안에는 10kg들이 네 상자.

“원래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 이건 유통기한 임박 제품이다.”

휴대폰을 꺼내 닭고기 팩을 찍었다. 유통기한이 확대되도록 초점을 맞췄다. 납품서 상단의 업체명도 한 장 더 찍었다. 스티로폼 박스 옆면에 붙은 납품 스티커도 찍었다.

강시은이 반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사진은… 검수 과정에서 기록용으로 남기시는 건가요.”

“데이터다.”

서준혁은 두 번째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다. 이쪽은 상태가 더 안 좋았다. 포장지 안쪽에 육즙이 고여 있었다. 비닐을 뒤집어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모레였다.

“이 상자는 전량 반품.”

“잠깐만요.”

강시은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반품 처리는 영양사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급식 메뉴에 닭볶음탕이 잡혀 있어서-”

“닭볶음탕.”

서준혁의 손이 멈췄다.

일주일 전 이 조리실에서 쏟아져 나온 구토와 식판. 식중독의 원인도 닭볶음탕이었다.

“지금 이 닭으로?”

“아직 유통기한 안입니다.”

강시은이 납품서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규정상 유통기한 이내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절차에는 문제가-”

“절차를 지키려면 더 그래.”

서준혁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제 냉장 창고 온도도 확인했다.”

강시은의 눈동자가 안경 너머로 흔들렸다.

“온도 기록은 매일 작성하고 있습니다. HACCP 일지에 전부 기재돼 있고요.”

“보자.”

서준혁은 냉장 창고로 걸어갔다. 강시은이 바인더를 가슴에 안고 뒤따랐다. 굽 낮은 구두가 타일 바닥을 짧게 두드렸다.

냉장 창고 철제 문 앞에 섰다. 벽면에 부착된 온도계를 확인했다. 액정 화면에 영하 12도.

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쏟아졌다. 안쪽 선반에는 채소 박스가 정렬돼 있었다. 벽면에 걸린 기록지 클립보드를 떼어냈다.

어제 날짜. 오후 두 시 측정값.

영하 18도.

서준혁은 기록지를 강시은에게 내밀었다.

“기록은 영하 18도. 실제는 영하 12도. 온도 편차가 말이 안 된다.”

“그건…”

강시은이 바인더를 만지작거렸다. 녹음기가 목에 걸려 있었다. 작은 빨간 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기록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센서 점검도 같이 하고요.”

“기록 수정해야 한다.”

서준혁은 냉장고 안쪽에 부착된 실제 온도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영상으로 올라가면 식중독균 증식 조건이 된다. 특히 닭고기는.”

강시은이 한 걸음 물러섰다. 바인더를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정은… 제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행정실장님과 상의를-”

“데이터가 있는데 무슨 상의야.”

“절차가 있습니다.”

강시은의 목소리가 굳었다. 말끝의 떨림이 멎었다.

“HACCP 기록은 수정 이력이 전부 교육청에 보고됩니다. 수정 사유를 적어야 하고, 그러면…”

말을 삼켰다.

서른 초쯤 침묵이 흘렀다.

“책임 소재.”

서준혁이 조용히 말했다.

강시은의 어깨가 올라갔다.

“지금은 일단 검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닭고기는… 두 상자만 유통기한 내 사용하고, 나머지는 반품 처리하도록 행정실에 건의할게요.”

기록지를 클립보드에 다시 걸었다. 금속 클립이 철제 문에 부딪혀 짧게 울렸다.

강시은이 검수대 쪽으로 발을 돌렸다가 멈췄다.

“서 선생님.”

목에 걸린 녹음기 쪽으로 손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처음 보여드렸을 때 그… 냉동 창고 서류 말입니다. 그건 오래된 거고, 지금 한성고 급식과는 무관한 문서예요.”

서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리하다 보관된 거라, 원래는 폐기됐어야 하는 건데…”

“폐기하겠다는 거냐.”

강시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닙니다. 그냥… 그냥 그렇다고요. 오래된 문서라는 것만 알아주시면.”

강시은이 검수대 쪽으로 걸어갔다. 검수일지에 서명하는 소리가 났다. 볼펜을 내려놓고 바인더를 닫았다.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오전 아홉 시에 행정실장님과 공문 관련 미팅이 있습니다. 저는 먼저 사무실로 가볼게요.”

구두 소리가 복도 쪽으로 멀어졌다.

서준혁은 냉장 창고 문 앞에 서서 온도계 액정을 다시 봤다. 영하 12도. 휴대폰을 꺼내 기록지와 실제 온도계를 나란히 찍었다.

조리실은 조용했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깔렸다.

주머니 속 접힌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서너 시간이 흘렀다. 서준혁은 영양사 사무실과 행정실을 오가며 냉장고 온도 기록을 대조했고, 유다희는 오전 내내 조리와 배식을 치르느라 뒷문 쪽에는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 사이 점심 배식이 끝나고 잔반 처리가 시작되면서 그녀가 뒷문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오후 1시 20분. 배식이 끝난 급식실은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유다희는 잔반 통을 밀며 뒷문으로 향했다. 문틈 사이로 바깥 공기가 밀려들었다.

담배 냄새였다.

그녀는 잠시 멈추고 문을 살짝 밀었다. 틈새로 보이는 풍경에 숨을 멈췄다. 박종태가 누군가와 마주 서 있었다. 상대는 작업복 차림에 어깨가 두꺼운 남자였다.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건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교육청 쪽은 제가.”

박종태였다. 그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작업복 남자는 짧게 웃었다. “감사로 끝나면 내가 이 고생 안 하지.” 그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세는 시늉을 했다. 박종태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넸다. 두께가 제법 있는 봉투였다.

남자는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닭고기 건은 접어. 대신 이번 주 금요일 납품부터는 내가 보내는 대로 받아.”

“알겠습니다.”

유다희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손목의 액션캠은 이미 전원이 켜져 있었다. 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뒤에서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서준혁이었다.

고개를 저었다. 유다희가 무언가 말하려 하자 그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둘은 소리 없이 문에서 물러났다. 잔반 통을 밀며 세척 구역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소리가 요란하게 흘렀다.

세척기 앞에서 유다희가 숨을 몰아쉬었다. “선배님, 방금 그거...”

서준혁이 고무장갑을 낀 채 그녀의 말을 끊었다. “봤어.”

“봉투에 돈이었죠? 분명히.” 유다희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고무호스를 내려놓은 그녀의 손이 떨렸다. “박종태 교감이 납품업체한테 직접 줬어요. 저 영상으로 찍으려고-”

“찍었냐.”

“아니. 선배님이 잡아서...”

“잘했다.”

유다희가 눈을 깜빡였다. “네?”

서준혁은 호스를 비틀어 물줄기를 멈추고 벽에 걸었다. “여기서 찍히면 너부터 위험하다. CCTV 조리 시간 끝나면 꺼지지만, 복도는 달라.”

“그럼 그냥 넘어가요? 저게 분명한 증거인데.”

“목격으로 충분하다.”

그가 세척 바구니를 선반에 올리며 덧붙였다. “업체 쪽 목소리, 확인했어?”

유다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어요. 각이 진 말투.”

“차만식이다. 신선유통 사장.”

유다희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확신을...”

“이 학교에 닭고기 납품하는 업체가 신선유통 한 곳뿐이다. 그자가 박종태한테 봉투 받는 거 봤으면 됐다.”

서준혁은 앞치마를 풀며 몸을 돌렸다. 그의 손이 조리복 주머니를 짚었다. 안쪽에서 접힌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4년 전 위생 점검표였다.

“이건 우리끼리만.”

“당연하죠.” 유다희가 다가서며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선배님, 그럼 우리 이 증거로 뭘 할 수 있어요?”

“지금은 모은다. 나중에 한 번에 쓴다.”

“나중이 언제...”

“때 되면.”

유다희가 잠시 입술을 깨물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일단 저는 세척 마무리할게요.”

서준혁은 끄덕이고 조리실을 가로질렀다. 그의 발걸음은 곧장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향했다. 시계는 오후 3시. 주방장이 냉동 창고 청소를 지시한 시간이었다.

냉동 창고의 형광등이 깜빡이며 켜졌다. 서준혁은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선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냉기가 조리복을 뚫고 살갗에 닿았다.

먼저 바닥의 성에를 밀대로 긁어냈다. 그 다음 선반 아래쪽에 쌓인 포장 박스를 정리했다. 손이 닿는 대로 하나씩 빼내며 점검했다.

세 번째 선반에서 손이 멈췄다.

벽과 선반 사이 틈새에 뭔가 끼어 있었다. 투명 비닐에 싸인 작은 종이 조각. 집게손가락과 중지로 집어 들었다.

비닐 안쪽은 유통기한 스티커였다.

미사용 상태. 풀림 방지 코팅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날짜 인쇄부는 공란이었다. 형광등 아래서 스티커를 기울이자 은은한 무늬가 떠올랐다. 특수 형광 마크.

서준혁의 손등 흉터가 냉기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스티커 가장자리를 엄지로 눌러 보았다. 절취선 패턴, 점자 방식의 위조 방지 마크, 하단의 인쇄 번호 배열. 2년 전 자신이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스티커와 모든 요소가 같았다. 눈을 감았다 떴다. 다시 스티커를 응시했다.

똑같다.

비닐을 접어 조리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점검표와 겹쳐져 단단한 사각형이 만들어졌다.

청소 도구를 정리하고 창고 문을 닫았다. 계단을 올라가며 휴대폰을 꺼냈다. 유다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2년 전 은성초 급식 사고 기사 영상. 유튜브 링크 보내줘.'

답장은 바로 왔다. '알겠어요. 근데 왜 그걸...'

서준혁은 대답 대신 휴대폰 화면을 껐다.

급식실 복도를 지나 휴게실 문 앞에 섰다. 문을 열려던 손이 멈췄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유다희가 보낸 유튜브 링크. 제목이 보였다. '은성초등학교 집단 식중독 사고... 당시 급식실 내부 최초 공개.'

영상을 눌렀다. 기자의 긴박한 목소리가 헤드폰 너머로 흘러나왔다. 화면 속 카메라는 급식실 조리대를 클로즈업했다. 냉장고 손잡이, 배식대, 그리고 조리대 모서리에 붙은 스티커.

서준혁은 주머니에서 비닐을 꺼냈다.

봉투 속 스티커를 화면 옆에 댔다. 형광 마크의 위치. 점자 패턴의 간격. 하단 인쇄 번호의 폰트 굵기.

완전히 일치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휴게실 문 밖. 발소리가 멈추는 소리. 망설이는 듯한 간격.

서준혁은 휴대폰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문틈 사이로 단정한 올림머리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강시은이었다.

그는 스티커를 주머니에 밀어 넣고 휴대폰 화면을 껐다.

급식의 신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