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급식의 신

3화

휴게실 문 밖. 강시은의 그림자가 망설이듯 움직이다가 멀어졌다.

서준혁은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주머니에서 스티커가 든 비닐을 꺼내 조리복 안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었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유다희의 영상 링크는 저장 완료. 대화창을 닫고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휴대폰을 껐다.

복도는 조용했다. 급식실은 오후 여섯 시에 폐쇄됐다. 청소 용역도 끝난 시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걸려 있었다.

서준혁은 손전등을 켰다.

계단을 내려갔다. 철제 문 손잡이에 손을 댔다.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문을 열자 압축된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냉동 창고 안. 형광등이 낮은 소리를 내며 깜빡였다.

선반은 모두 일곱 개. 앞선 사건에서 확인한 HACCP 기록상 온도 오차가 가장 컸던 구역은 네 번째 선반이었다. 입고량 대비 실제 사용량이 기록보다 적었다. 남은 재고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대신 다른 물건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손전등을 선반 아래로 비췄다.

먼지가 쌓인 바닥에 드래그 마크가 있었다. 박스를 끌어당긴 흔적. 끝이 네 번째 선반 아래에서 멈췄다.

서준혁은 선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냉동 닭고기가 담긴 박스 세 개를 옆으로 밀었다. 뒤쪽 공간이 드러났다.

선반과 벽면 사이 틈새.

검은 비닐봉투가 접힌 채 끼워져 있었다.

손을 뻗어 봉투를 빼냈다. 무게는 가벼웠지만 두께가 있었다. 겉면에 성에가 얇게 앉아 있었다. 봉투를 열지 않고 손바닥 위에 올렸다.

냉동고 안이 조용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비닐을 열었다.

안에는 스티커 묶음이었다. 고무줄로 열 장 정도가 묶여 있었다. 전부 미사용. 풀림 방지 코팅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날짜 인쇄부는 공란.

서준혁은 숨을 들이마셨다. 냉기가 폐를 찔렀다. 묶음에서 한 장을 떼어내 손전등 아래 펼쳤다.

이미 확인한 형광 마크. 점자 방식의 위조 방지 패턴. 하단 인쇄 번호의 폰트.

이제 지갑에서 확인할 차례였다.

조리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가죽이 냉기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카드 수납부 안쪽, 접힌 투명 비닐 한 장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2년간 접어 보관한 스티커. 딸의 학교 급식실 냉장고 문 옆면에서 직접 떼어낸 원본이었다.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왼쪽이 냉동고에서 찾은 새 스티커. 오른쪽이 2년 전 사고 현장의 것.

손전등을 가까이 댔다.

형광 마크의 위치 — 일치. 점자 패턴의 간격 — 일치. 하단 인쇄 번호의 폰트 굵기 — 일치.

손등 흉터가 냉기 속에서 시려왔다.

서준혁은 두 스티커를 겹쳐 보았다. 절취선이 정확히 포개졌다. 인쇄 도트의 밀도도 같았다. 같은 판본, 같은 인쇄소. 4년 전 은성초 점검표에 적힌 납품업체명 '신선유통'이 뇌리에 떠올랐다.

딸이 마지막으로 먹은 급식의 식자재를 납품한 업체. 지금 한성고에 같은 위조 스티커를 공급하는 업체.

똑같은 놈이었다.

서준혁은 지갑 속 스티커를 다시 접어 원래 자리에 넣었다. 새 스티커 묶음은 비닐봉투에 그대로 밀봉했다. 조리복 안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잠갔다.

냉동고를 나왔다. 문을 닫고 손전등을 껐다.

계단을 올라가며 휴대폰 전원을 켰다. 전화 앱을 열었다. 저장된 번호 하나를 눌렀다.

신호음. 세 번.

“여보세요.”

차만식의 목소리였다. 배경에서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접대 중인 모양이었다.

“서준혁이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급식실 알바가 밤에 출근하나?”

“스티커 찾았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배경 소음이 멀어졌다. 자리를 옮기는 듯한 발소리. 문 닫히는 소리.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네 번째 선반 뒤쪽. 검은 비닐봉투. 위조 유통기한 스티커 묶음.”

차만식의 호흡이 가늘어졌다. 잠시 침묵. 그가 말했다.

“지금 어디야.”

“학교다. 냉동고 앞.”

“거기 있어라. 지금 간다.”

통화가 끊겼다.

서준혁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급식실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가슴팍의 스티커 묶음이 단단하게 눌렸다.

<지문> 서른두 번째 계단을 밟을 때 무릎이 살짝 삐걱거렸다. 냉동고 앞에 등을 기대고 선 지 사십 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휴대폰 시계는 오후 열한 시 이십칠 분을 가리켰다.

강시은이 조리실을 나가는 인기척은 들었지만, 그게 언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귀가 멍해 있었다. 가슴팍 비닐봉투의 모서리가 갈비뼈를 찔렀다. 숨을 길게 들이쉬고 계단을 올랐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휴대폰 진동이 한 번 울렸지만 무시했다. 스테인리스 테이블 앞에 서서 앞치마 주머니에서 비닐봉투를 꺼냈다. 투명 테이프로 봉한 입구를 손톱으로 뜯어내는 동안 현관문이 열렸다.

발소리. 술 냄새와 함께 차만식이 들어왔다.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서준혁은 비닐봉투를 테이블에 밀어놓고 안주머니에서 아이보리색 봉투 한 장을 더 꺼내 나란히 펼쳤다. </지문>

급식실 형광등은 꺼져 있었다.

서준혁은 휴게실 문을 열지 않았다. 강시은의 그림자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발소리가 완전히 멈추고 30초를 더 세었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유다희의 메시지였다. '영상 보셨어요?'

서준혁은 답장을 입력하다가 지웠다. 대신 전화번호부를 열었다. 차만식. 두 달 전 면접 공고에서 본 납품업체 대표 번호. 저장한 적 없지만 외우고 있었다.

신호음이 세 번 갔다.

“여보세요?”

차만식의 목소리. 배경에는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흐릿한 음악이 섞여 있었다.

“냉동 창고에서 찾은 게 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음악 소리가 작아졌다. 자리를 옮기는 듯했다.

“누구요?”

“서준혁. 지금 당장 급식실로 와라.”

“지금이 몇 시인 줄 아나? 내일 아침에—”

“안 오면 교육청에 먼저 간다.”

서준혁은 전화를 끊었다.

급식실 중앙의 스테인리스 테이블로 걸어갔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투명 비닐을 꺼내 평평하게 폈다. 위조 스티커 한 장.

그 옆에 휴대폰 화면을 올려두었다. 유튜브 영상을 3분 12초 구간에 멈춰둔 상태였다. 2년 전 은성초 급식실 조리대 모서리. 확대된 스티커가 화면 가득했다.

두 개의 증거물 사이 거리는 15센티미터.

서준혁은 팔짱을 끼고 서서 기다렸다.

24분 만에 급식실 문이 열렸다. 차만식이었다. 번들거리는 올백머리에 땀이 배어 있었다. 명품 정장 상의는 입지 않았고,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상태였다. 왼손 약지의 금반지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차만식은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곧바로 반말로 내뱉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밤중에 사람을 부르는 거야.”

눈이 테이블 위의 스티커로 향했다. 발걸음이 멎었다.

서준혁은 스티커를 집어 들었다. 비닐 너머로 차만식의 시야 정면에 들이밀었다.

“이게 뭔지 아냐.”

차만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입가에 맺혔던 하얀 침이 말라붙은 채로 굳었다. 손이 셔츠 주머니로 올라갔다가 허공에서 멈췄다. 담배를 찾는 버릇이었다.

“그게 어디 있는진 몰랐다.”

목소리 톤이 반 가라앉았다. 변명을 섞은 존댓말로 바뀌었다.

“냉동고 선반 뒤에 끼어 있던 거라면, 이건 내가—”

“똑같다.”

서준혁이 휴대폰 화면을 가리켰다.

“2년 전 은성초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스티커. 형광 마크 위치, 점자 패턴 간격, 하단 인쇄 번호 폰트 굵기. 네 냉동고에서 나온 위조품이랑 완전히 일치한다.”

차만식이 한 걸음 물러섰다. 시선이 스티커와 휴대폰 화면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게 우연일 수도—”

“내 딸이 그 학교에 있었다.”

급식실이 조용해졌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저음만이 공기를 채웠다.

차만식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게 형광등 아래서 선명하게 보였다. 두꺼운 목의 힘줄이 경직됐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시선이 서준혁의 손등 흉터에 꽂혔다.

그리고 목소리가 바뀌었다. 낮고 날카로운 반말로.

“네 딸? 설마 그 사고…”

한 박자 쉬고 차만식이 어깨를 폈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올라붙었다. 땀에 젖은 올백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넘겼다.

“증거가 부족해, 조리사 주제에.”

손가락이 테이블 위의 스티커를 향했다.

“이게 법정에서 인정받으려면 공급망 전체를 입증해야 한다고. 네 딸 사건도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됐잖아.”

서준혁의 턱근육이 올라붙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들어갔다.

“이 바닥이 다 그렇지. 조리사 하나가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고.”

차만식이 한 걸음 다가왔다. 술 냄새와 포마드가 섞인 냄새가 끼쳐왔다.

“지금이라도 이걸 없던 일로 하면 내가 봐주겠다. 너도 먹고살기 힘들잖아. 계약직이 언제 짤릴지 모르는 처지에—”

“이걸 교육청과 경찰에 보내기 전에.”

서준혁이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평온했다. 차만식의 미소가 굳었다.

“네 입으로 듣고 싶었다.”

서준혁은 테이블 양쪽에 놓인 두 증거물을 차례로 가리켰다.

“2년 전, 같은 스티커. 같은 업체. 같은 냉동고.”

차만식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이번 주 화요일, 네가 박종태한테서 받은 봉투.”

거짓말이었다. 유다희가 목격했지만 서준혁은 직접 보지 못했다. 하지만 차만식의 동공이 열렸다. 셔츠 칼라 아래로 땀이 줄기를 그었다. 오른손이 테이블 모서리를 움켜잡았다.

“이건 내부고발이 아니다.”

서준혁이 스티커를 비닐째 접어 조리복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전면전이다.”

차만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반지 낀 손가락이 허공을 긁었다. 욕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삼켜지는 소리가 났다. 입가에 다시 하얀 침이 맺혔다.

“후회할 거다.”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구두 굽이 타일을 긁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너 같은 놈은 내가 몇 번이나 묻어봤는지 몰라. 이번에도 똑같을 거다.”

문이 닫혔다.

복도에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서준혁은 10초 동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완전히 멎은 뒤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증거물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의 2년 전 스티커 영상 캡처 화면.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위조 스티커. 나란히 배열하고 정면에서 한 장.

45도 각도로 형광 마크가 드러나게 한 장. 하단 인쇄 번호를 매크로 렌즈 모드로 한 장. 비닐을 벗기고 스티커 이면의 접착제 패턴까지 추가로 촬영했다.

총 열일곱 장.

갤러리에서 사진들을 확인하며 날짜와 위치 태그가 찍혔는지 검토했다. GPS 정보 활성화됨. 시간 오후 10시 41분. 한성고등학교 급식실.

조리복 안주머니에서 HACCP 기록지 사본과 유통기한 임박 납품서 사진이 든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 위조 스티커 원본을 함께 넣었다. 봉투를 접어 네 겹으로 만들었다.

이중 보관.

사물함 구역으로 걸어갔다. 벽면에 일렬로 붙은 철제 사물함. 강시은의 이름표가 붙은 문 앞에 섰다. 봉투를 조리복 앞치마 밑으로 감추고, 복도 양쪽을 확인했다.

사물함 문 위쪽에는 틈새가 있었다. 환기용 슬릿. 너비 3밀리미터 남짓.

봉투를 밀어 넣었다.

네 겹으로 접힌 종이 뭉치가 저항 없이 사물함 안으로 떨어졌다. 내부 바닥에 닿는 가벼운 소리.

서준혁은 휴대폰을 꺼내 마지막 한 장을 찍었다. 강시은의 사물함. 닫힌 문. 시간 태그 오후 10시 46분.

급식실로 돌아왔다. 휴대폰 화면에 앱 두 개를 나란히 띄웠다. 왼쪽은 교육청 위생과 제보 양식. 오른쪽은 뉴스브레이크 제보 페이지.

첨부 파일 선택 화면까지 진행했다. 17장의 사진이 썸네일로 표시됐다. 업로드 버튼은 아직 누르지 않았다.

조리대 위의 전기 포트가 보온 상태로 녹색 불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냉동고 압축기가 주기적으로 돌아가는 진동이 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서준혁은 두 앱의 제보창을 화면에 띄운 채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등의 흉터를 엄지로 한 번 문질렀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똑같다.”

서준혁이 휴대폰 화면을 가리켰다.

“2년 전 은성초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스티커. 형광 마크 위치, 점자 패턴 간격, 하단 인쇄 번호 폰트 굵기. 네 냉동고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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