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급식의 신

5화

아침 여섯 시 사십 분 전. 조리실 뒤편 복도.

서준혁은 컨테이너 밖으로 나서기 전 휴대폰을 켰다. 차만식의 음성 메시지는 삭제하지 않았다. 저장 폴더로 옮기고 조리복을 여몄다. 손등 흉터가 셔츠 소매에 스쳤다.

급식실은 어두웠다. 형광등 스위치를 올리지 않고 복도 끝으로 걸었다. 배식구 쪽 중앙문 옆, 학생들이 다니지 않는 뒷복도였다. 벽에 붙은 소화전 옆에 서서 휴대폰을 꺼냈다.

교육청 익명 신고 핫라인. 전날 밤 인터넷에서 찾은 번호였다. 발신자 표시 제한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다섯 번째 울림에 연결됐다.

『교육청 위생 민원실입니다.』

여성 상담원의 목소리. 서준혁은 벽을 등지고 섰다.

“한성고 급식실이다. 유통기한 변조 스티커와 HACCP 온도 기록 조작을 제보한다.”

『구체적인 증거물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진 파일과 스티커 원본이 있다. 납품업체는 신선유통이다.”

상담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말씀하신 내용은 접수되었습니다. 다만 현장 조사는 구체적 물증이 확보된 후에 진행되며, 현재로서는 서면 진정서와 증빙 자료를 방문 제출하시는 절차를 안내해 드립니다.』

“사진 파일은 이메일로 보낼 수 있다.”

『음성 접수만으로는 증거 능력이 제한됩니다. 서면 제출을 권고하며, 필요시 담당자가 별도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서준혁은 복도 천장을 올려다봤다. 배관을 따라 이어진 소방 스프링클러 배선이 보였다.

“신고 접수 번호는.”

『네, 접수 번호는…』

여섯 자리 숫자를 불러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봤다. 운동장 쪽 가로등이 막 꺼지고 있었다.

『…이며, 보완 서류 제출 전까지는 별도 진행이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서준혁은 통화 녹음 파일을 확인했다. 4분 12초. 저장 폴더에 옮겼다.

접수 번호는 메모장에 입력했다. 실효성 없는 번호라는 걸 알았다. 데이터는 기록으로 남겼다.

조리실로 돌아가는 발걸음 소리가 빈 복도에 울렸다.

지하 사무실은 창문이 없었다. 환풍기가 낮은 소리로 돌았다.

차만식은 책상 위 서류를 넘기다 휴대폰을 집었다. 진동 세 번. 발신자는 교육청 내부 번호였다.

“김 계장님.”

『사장님, 아침 일찍 죄송합니다. 방금 신선유통 관련 익명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차만식의 손가락이 멈췄다. 만년필 뚜껑을 천천히 닫았다.

“내용이 뭡니까.”

『유통기한 변조랑 온도 기록 얘긴데… 녹취록 아직 안 올라왔습니다. 한성고 쪽에서 걸려왔다고 하네요.』

“누군지는 모르고.”

『네, 발신자 표시 제한이었습니다. 다만 음성만으로는 증거 능력이 없어서 현장 조사는 안 넘어갈 겁니다. 접수 번호만 발급했어요.』

차만식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재떨이를 끌어당겼다.

“김 계장님, 수고 많으십니다. 이쪽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그쪽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네, 조치하실 거면 빨리… 아, 사장님, 곧 감사실 순환 점검 기간이거든요. 파일은 일단 보류해 놓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전화를 끊었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볐다. 차만식은 휴대폰을 들고 주소록을 내렸다. 박종태.

신호음 두 번 만에 연결됐다.

“여보쇼, 박 주임.”

『어, 예, 사장님. 아침부터 웬일이십니까.』

차만식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아까 교육청에서 연락 왔어. 니네 급식실에서 익명 제보 들어갔대.”

『…뭐라구요?』

수화기 너머로 숨이 멎는 소리가 들렸다. 차만식은 낮고 느리게 말을 이었다.

“뭐 등신같이 핫라인 같은 데다 전화했나 본데, 구체적 증거물 없이 지껄였대. 지금 당장 냉동고 기록지 싹 갈아치워. 위조 스티커도 수거하고.”

『사, 사장님. 그게… 서준혁이 스티커를 가져갔습니다.』

“뭐?”

차만식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걸 왜 진작 얘기 안 했어, 이 병신아.”

『어제 일이었고… 내일 보고드리려고…』

“지금 당장 급식실 가. 그 새끼 출근하기 전에 기록지랑 혹시라도 남은 스티커 조각 싹 치워. CCTV도 확인해.”

『…알겠습니다. 당장 가겠습니다.』

차만식은 전화를 끊고 재떨이를 밀쳤다. 벽에 걸린 납품 일정표를 바라봤다. 한성고 물량은 빨간색 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손가락으로 원을 한 번 짚었다.

점심 배식 후 폐기물 처리장.

서준혁은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닫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스테인리스 선반 너머로 배식구가 보였다. 식판 닦는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조리복 안주머니에서 낡은 명함을 꺼냈다. 가장자리가 닳은 흰 종이. 김 팀장, 품질관리본부. 4년 전 번호였다.

휴대폰을 열었다. 번호를 직접 눌렀다.

신호음이 네 번 울렸다.

“여보세요.”

남자 목소리였다. 배경에 사무실 소음이 깔려 있었다.

“김 팀장님. 서준혁입니다.”

한 박자 정적.

“서 팀장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목소리가 밝아졌다가 곧 가라앉았다.

“그쪽 소식은 들었습니다. 따님...”

“오늘은 그 일로 전화한 게 아닙니다.”

서준혁은 손등의 흉터를 엄지로 쓸었다. 흰색으로 솟은 자국이 손바닥에 닿았다.

“4년 전, 한성고 신선유통 건.”

김 팀장의 숨소리가 멈췄다.

“그 비리 보고서. 행방을 알고 싶습니다.”

“그건...”

김 팀장이 말을 고르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

“그 보고서, 본사 감사팀에 접수됐습니다. 그런데 2년 뒤에 폐기된 걸로 알고 있어요. 문서 보존 기간 끝났다고.”

서준혁은 눈을 감았다.

“사본은.”

“거기까지 알고 계셨군요.”

김 팀장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시 보고서 사본을 개인 보관하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퇴사한 뒤 연락이 끊겼어요.”

“연락처라도.”

“없습니다. 옛날 번호도 지금은 안 통해요. 가족도 모르더군요.”

서준혁은 명함을 다시 바라봤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 팀장, 품질관리본부.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 팀장님.”

김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 보고서 건, 조심하십시오. 당시에도...”

말끝을 흐렸다.

“이미 늦었습니다.”

서준혁은 통화를 끊었다.

손등의 흉터를 다시 보았다. 냉동고 파편에 긁혔던 밤. 4년 전 은성초 급식실 지하 창고. 누군가 급히 증거물을 치우고 있었고, 서른 살 QC 팀장이었던 그는 파이프에 걸려 넘어지며 날카로운 철판에 손등을 그었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 냉동고 문을 열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빈 공간이 지금 이 손등 위에 남아 있었다.

서준혁은 명함을 접어 조리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영양사실.

강시은은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밥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목에 걸린 펜던트형 녹음기를 더듬었다.

작은 빨간 불. 녹음 중.

문이 잠겼는지 다시 확인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휴대폰 앱을 열었다. 최근 녹음 파일 목록. 오늘 오전 열 시 십칠 분.

재생.

처음에는 발소리. 철제 문 여닫는 소리.

그다음 박종태의 숨소리. 거칠고 빨랐다.

“다... 다 바꿨어요. 냉동고 세 번째 선반 것도.”

차만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낮고 느렸다.

“기록지 온도 맞췄나.”

“네. 영하 십팔 도로 맞췄습니다. 그런데...” 박종태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약 누군가 의심하면...”

“의심하는 놈은 없어.”

차만식이 말을 끊었다.

“감사 전에 위장 작업만 끝내면 끝이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지.”

짧은 침묵.

“이 바닥이 다 그렇지.”

박종태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발소리만 멀어졌다.

파일이 끝났다.

강시은은 녹음기를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메마른 입술 위로 올라갔다. 손톱 아래 살갗이 빨갛게 패일 때까지 깨물었다.

4년 전과 똑같은 패턴.

그때도 침묵했다. 유통기한 지난 닭고기를 냉동고에 쌓아두고, 학생들이 구토할 때도 입을 다물었다. 영양사 2년 차였던 그녀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숨을 들이쉬었다. 들숨과 날숨을 의식적으로 세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녹음 앱을 열었다. 파일 이름을 길게 터치했다.

폴더 이동.

새 폴더 이름을 입력했다. '4월_증거'.

저장 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뽑았다. 녹음기를 다시 목에 걸었다. 펜던트 안 작은 빨간 불이 깜빡였다.

오후 청소 시간.

서준혁은 조리실 천장의 CCTV를 올려다봤다. 렌즈 아래 작은 LED. 꺼져 있었다.

청소 용역이 걸레질을 시작하자 그의 발은 이미 냉동고 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철제 문을 열었다. 냉기가 얼굴을 때렸다. 문이 닫히자 압축된 정적이 내려앉았다.

네 번째 선반 앞에서 멈췄다.

기록지가 걸려 있었다. 아침에 본 것과 종이 색이 달랐다. 새 종이 냄새가 찬 공기 속에서 얇게 풍겼다.

서준혁은 휴대폰 사진첩을 열었다. 어제 오후 네 시에 촬영한 기록지 사진. 화면을 확대했다.

빨간 선. 온도 그래프. 오전 열 시, 영하 열두 도. 오전 열한 시, 영하 열한 도.

화면을 들고 현재 기록지와 나란히 놓았다.

새 기록지는 깨끗했다. 모든 시간대가 영하 십팔 도로 찍혀 있었다. 잉크 색마저 동일했다.

서준혁은 기록지를 떼어내 뒷면을 확인했다. 출력물 표시. 프린터 모델명과 인쇄 시간. 오늘 새벽 다섯 시 이십삼 분.

그는 휴대폰을 들었다. 이전 사진과 새 기록지를 같은 프레임에 담았다. 프린터 출력 시간을 확대 촬영했다. 온도 그래프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도록 이전 사진을 다시 확대해 한 장 더 찍었다.

휴대폰을 내렸다.

CCTV 작동 규정. 조리 시간에만 작동한다.

조리 시간은 점심 기준 오전 여섯 시부터 오후 두 시. 청소 시간은 비조리 구간. 녹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오후 두 시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여섯 시까지. 이 열여섯 시간 동안 냉동고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 기록도 남지 않는다. 냉동고 문을 열고 기록지를 뜯어내고 온도 그래프를 새로 출력해 걸어도.

차만식의 증거 인멸 루트는 시스템 자체에 뚫려 있었다.

서준혁은 기록지를 원래 위치에 다시 걸었다. 조리복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넣고 단추를 잠갔다.

냉동고 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오는 순간 발소리가 멈췄다.

박종태였다.

손에 서류 한 장. 흰 종이 위에 굵은 글씨. '조리사 개인 신상 확인 요청'.

시선이 충돌했다. 냉동고 문이 천천히 닫혔다. 정적.

급식의 신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