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급식의 신

7화

지하 사무실. 환풍기가 멈춰 담배 연기가 두껍게 내려앉았다. 차만식은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박종태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장님. 서준혁 겁니다.”

차만식이 봉투를 찢었다. 서류를 훑던 손이 점점 느려졌다.

“QC 팀장…… 대기업에서 짤린 건가 했더니.” 고개를 들었다. “딸이 죽었네.”

“예. 2년 전 은성초 그 식중독 사고…… 사망자가 서준혁 딸이었습니다.”

차만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니까, 그놈이 여기 들어온 건.” 서류를 책상에 던졌다. “복수하겠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QC 경력이 있다는 것도, 지난주 감사 때도……”

“알아.” 차만식이 일어서며 재킷을 집어 들었다.

“좋아. 복수라는 프레임을 씌워주면 오히려 쉽지. 오늘 아침 조리실. 전 직원 집합.”

“전 직원이요?”

“그 새끼 과거 다 까발려. 딸 얘기도 해. 식중독으로 죽은 아이 아빠가 미친 척 잠입해서 사사건건 트집 잡은 거다. 개인적 원한 말곤 아무것도 아니라고.”

박종태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사장님, 그런데 그게…… 녹음이나 증거 같은 게……”

“증거? 무슨 증거. 저 새끼가 제 딸 죽은 학교랑 똑같은 업체에서 일한다는 우연의 증거?” 재킷을 걸치며 코웃음쳤다. “서류 챙겨. 해고 통보서도 준비하고.”

“벌써…… 만들어뒀습니다.”

차만식이 잠시 멈춰 서서 박종태를 돌아봤다.

“똑바로 해. 이번에 삐끗하면 너도 끝이야.”

오전 9시 55분. 한성고 급식실.

아침 배식이 끝난 조리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물기 없이 닦여 있었고, 대형 솥은 뚜껑을 덮은 채 식어가고 있었다. 조리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구석에서 한 하급 조제사가 “왜 부른대?” 하고 물었다. 옆에 선 다른 이가 고개를 저었다.

박종태가 먼저 도착해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강시은은 배식대 옆에서 바인더를 가슴에 안고 서 있었다. 손가락이 바인더 모서리를 반복해서 쥐었다 폈다 했다.

서준혁은 냉동고 쪽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조리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눈은 정면 출입구를 향해 있었다.

차만식이 들어왔다. 뒤로 두 명의 입회 진행관이 따라붙었다.

구두 소리가 멈췄다. 조리실 전체가 숨을 죽였다.

“야.” 차만식이 턱짓했다. “중앙으로 와.”

서준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차만식이 느릿하게 다가갔다. 금시계가 형광등 빛을 반사했다.

“다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돌아서서 조리사들을 훑었다. “이 인간. 서준혁. 전직 대기업 QC 팀장이다.”

조리사들 사이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왜 대기업 때려치우고 여기 왔을까. 궁금하지?” 차만식이 서준혁 앞에 섰다. “2년 전. 은성초등학교. 식중독 사고로 초등학생 하나가 죽었다. 그게 이 인간 딸이다.”

강시은의 손이 바인더에서 떨어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딸 뒷조사 하던 중에, 사고 당시 납품업체가 우리 회사였던 걸 알았겠지.” 차만식의 목소리가 조리실에 울렸다. “그래서 잠입한 거다. 자기 딸 죽인 놈 찾겠다고. 증거? 그딴 거 없다. 이 인간이 가진 건 개인적 원한과 망상뿐이야.”

박종태가 해고 통보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서류 위로 ‘계약 해지 사유: 업무 방해 및 허위 사실 유포’라는 문구가 보였다.

“서명해.” 차만식이 볼펜을 서류 옆에 던졌다.

서준혁은 볼펜을 집지 않았다. 대신 차만식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 걸음 다가섰다.

차만식이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 거리가 팔 하나 정도로 좁혀졌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이젠 알겠지?” 서준혁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물론이지.”

“그럼 이것도 알아둬.”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네 위조 시스템. 4년 전 은성초에서도 똑같은 폰트, 똑같은 스티커 규격이었다. 한성고 거랑은 활자 간격과 테두리만 다르더라. 다른 인쇄 라인인데 출력 원본은 같아. 같은 마스터 파일.” 잠시 숨을 골랐다. “작년에 인수한 대안초등학교 납품 스티커도 똑같은 활자 간격이었다. 은성초랑 똑같아. 이미 5년째 똑같은 공장, 같은 마스터 파일이다.”

차만식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서준혁이 해고 통보서를 집어 들었다. 서명하지 않고 조리복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내가 찾은 건 네가 한 짓이 2년 전만이 아니라는 증거야.” 차만식의 어깨 너머로 걸어가며 말을 흘렸다. “시스템은 내가 다 기록해뒀다. 사본도 있고, 물리적 실물도 있어. 5년 치.”

차만식이 돌아서며 소리쳤다. “그딴 증거가 어딨어! 네가 조작한 거 아냐?!”

서준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조리실 문을 밀며 한 마디 덧붙였다.

“판본이 세 개야. 네 인쇄 라인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어.”

문이 닫혔다.

조리실에 정적이 흘렀다.

강시은은 배식대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바인더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줍지 않았다.

조리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5년이라니……” “대안초까지?” “그럼 우리가 매일 돌린 게……”

박종태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 사장님. 저게 무슨……”

“닥쳐.” 차만식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세 번째 라인…… 그건 말이 안 돼.”

하지만 그의 목소리엔 이미 확신이 없었다. 차만식은 찢어진 해고 통보서 조각을 바닥에 흩뿌리고 입회 진행관들을 데리고 조리실을 나갔다. 구두 소리가 복도로 멀어졌다.

박종태는 잠시 망설이다, 차만식의 뒤를 쫓아 허둥지둥 조리실을 빠져나갔다.

복도에 발소리가 울렸다. 차만식 일행이 복도 반대쪽 출구로 사라지자, 조리실의 웅성거림이 희미하게 밀려왔다. 사물함 앞에 선 서준혁은 철제 문을 반쯤 닫으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물함 구역은 비어 있었다.

사물함 손잡이를 당겼다. 조리복을 벗어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손등의 흉터가 형광등 아래 드러났다. 왼손으로 상의 단추를 풀다 멈췄다.

발소리였다.

강시은이 복도 모퉁이에서 걸어나왔다. 평소와 달리 바인더를 들지 않았다. 손이 허공에서 멈칫거렸다. 뿔테 안경 너머 눈이 붉었다.

서준혁은 사물함 문을 반쯤 걸친 채 그녀를 똑바로 봤다.

강시은이 가슴 높이로 서류 봉투를 들어 올렸다. 손끝이 떨렸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이게…… 제 잘못이에요.”

서준혁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뭐가.”

“4년 전 거예요. 은성초 그때…… 제가 묵인했어요.” 강시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차만식 사장이 위생 점검표 조작한 거 알고 있었는데,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냥…… 자리 지키려고.”

서준혁이 손을 내밀었다.

봉투를 받아 열었다.

사본이었다. QC 보고서 원본의 스캔 복사본. 하단에 ‘QC-2022-0451’이 찍혀 있었다.

은성초 위생 점검표. 냉동고 온도 기록지. 유통기한 변조 스티커가 부착된 닭고기 납품 목록. 날짜는 4년 전 4월.

한 장 한 장 넘겼다.

“왜 지금.”

강시은이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차만식 사장이 절 불렀을 때 알았어요. 그 사람, 끝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또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고, 전 또……”

말을 삼켰다.

서준혁은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이제야 온 거냐.”

낮은 목소리였다. 강시은의 어깨가 굳었다. 그녀가 뭐라 더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서준혁은 이미 돌아서 있었다.

가방 안쪽 주머니에 봉투를 밀어 넣었다. 지퍼를 잠갔다.

“돌아가. 여기 너 오래 있으면 안 된다.”

강시은이 한 걸음 물러섰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복도 저편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서준혁은 사물함 안을 들여다봤다.

상단 선반 구석. 비닐 봉투가 테이프로 벽면에 고정돼 있었다. 손을 뻗어 떼어냈다. 봉투를 열자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2년 전 4월. 은성초 급식 메뉴표.

딸의 학교.

A4 용지 상단에 ‘주간 식단표’가 인쇄돼 있었다. 수요일. 닭볶음탕.

하단 납품업체 스탬프. ‘(주)신선유통’. 스탬프 옆에 부착된 유통기한 스티커.

메뉴표를 사물함 문짝 안쪽에 펼쳐 붙였다.

이어서 가방에서 방금 받은 보고서 사본을 꺼냈다. 4년 전 은성초 납품 목록을 펼쳤다. 같은 ‘(주)신선유통’ 스탬프. 스티커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4년 전 스티커와 2년 전 스티커의 활자 간격과 테두리 두께가 육안으로 일치했다. 같은 판본이었다. 현재 한성고 스티커는 폰트가 달랐다. 다른 라인에서 찍은 것이다.

서준혁의 손가락이 2년 전 스티커 상단의 로트 번호를 짚었다.

‘LOT-0422-08’.

4년 전 스티커의 로트 번호. ‘LOT-0418-05’.

생산 일자 코드 앞 4자리. 0422와 0418. 4월 22일, 4월 18일.

같은 달. 같은 공장. 같은 활자 폭.

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찾았다.”

목소리가 사물함 철판에 부딪혀 울렸다.

2년 전 메뉴표의 스티커와 4년 전 보고서의 스티커는 같은 위조 라인에서 찍혔다. 동일한 판본. 동일한 폰트 설정. 그리고 한성고는 지금 다른 라인을 돌리고 있다.

최소 5년. 두 개 라인 교차 운영.

딸의 사고 당시 급식과 지금의 한성고가 같은 시스템 안에 있었다. 종이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메뉴표와 보고서를 포개어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HACCP 기록지 사본도 그 위에 얹었다. 가방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

휴대폰을 집었다.

빈 사물함 문을 닫았다. 철제 소리가 울렸다.

정문까지 오 분.

서준혁은 중앙 현관을 지나 운동장 쪽으로 걸었다. 가방은 왼손에 쥐었다. 해고 통보서의 무게감이 가방 안에 가라앉아 있었다.

정문 기둥 옆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문자였다.

발신인: 유다희.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열었다.

‘선생님, 저도 할 말 있어요. 오늘 저녁에 만나요. 제 채널 제보자 중에 선생님 옛날 직장 동료라는 분이 있어요.’

옛날 직장 동료.

화면을 응시했다. QC 팀 시절 인물이 스쳤다. 누군지 특정할 정보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유다희가 연결한 사람이라면 이쪽 편일 가능성이 높았다.

답장을 열었다.

‘알겠다. 장소는.’

몇 초 후 진동.

‘학교 앞 카페 이디엄. 오후 7시. 2층 구석 자리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정문을 나섰다.

가을 아침 햇살이 인도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가방을 고쳐 쥐자 손등의 흉터가 당겨졌다. 손바닥엔 아까 쥔 주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멈춰 서서 학교 건물을 한 번 돌아봤다.

급식실 쪽 창문은 닫혀 있었다. 2층 영양사실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강시은이었을까. 아니면 차만식이었을까.

고개를 돌렸다.

가방 안에는 메뉴표와 보고서 사본이 들어 있었다. 딸의 마지막 식단표. 차만식의 위조 라인을 입증할 시계열 증거. 그리고 몇 시간 후 유다희가 전달할 제보자의 정체.

복수의 다음 단계가 잡혀 있었다.

인도를 따라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손에 쥔 가방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급식의 신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