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의 신
8화
경찰서 민원실은 오전부터 후덥지근했다.
서준혁은 접수 창구 앞에 서서 서류 봉투를 건넸다. 봉투 안에는 메뉴표 원본, 위조 스티커 사진 출력물, 강시은에게 받은 4년 전 비리 보고서 사본이 들어 있었다.
담당 경찰이 봉투를 열었다. 사진부터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유통기한 스티커 확대 사진이었다. 잉크 번짐과 테두리 두께 차이가 표시돼 있었다.
“이게 뭡니까.”
“한성고 급식 납품 스티커다. 유통기한 변조된 거다.”
경찰이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메뉴표 원본을 집어 들었다. 구겨진 자국이 있는 종이였다.
“2년 전 초등학교 급식 메뉴표요?”
“딸이 먹던 거다. 식중독으로 사망했다. 원인은 유통기한 지난 닭고기였고.”
경찰이 고개를 들었다. 사진과 메뉴표를 나란히 내려놓았다.
“아버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기 시작했다.
“참고인 진술서하고 메뉴표, 사진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안 됩니다. 유통기한 변조를 입증하려면 실제 스티커 원본이 필요해요. 이것만으론 수사 개시 요건이 안 돼요.”
서준혁은 봉투를 응시했다.
“스티커 원본이 있어야 한다.”
“네. 실물 증거 없이 사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서류 봉투를 도로 밀었다. 접수 번호조차 적히지 않은 반려였다.
서준혁은 봉투를 집었다. 손등의 흉터가 당겨졌다.
“실물 확보하면 다시 온다.”
돌아섰다. 경찰이 한 마디 덧붙였다.
“증거 확보 과정에서 무리하지 마십시오. 사적으로 수집한 증거는 법정에서 효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서준혁은 대답하지 않고 민원실 문을 밀었다.
복도로 나왔다. 손에 쥔 봉투가 무거웠다.
데이터와 사진만으로는 부족했다. 실제 스티커. 물리적 원본. 차만식의 위조 라인에서 찍어낸 그 종이 조각이 있어야만 했다.
현관을 빠져나왔다. 가을 아침 공기가 따뜻했다. 정문 계단을 내려가는데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봉투를 가방 안에 밀어 넣고 지퍼를 잠갔다.
절망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원본 스티커가 있는 곳. 차만식이 감춘 위조 라인. '2호 창고'라는 단어가 강시은의 보고서 어딘가에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모른다.
가방을 왼손으로 고쳐 쥐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정류장에 사람이 서 있었다.
강시은이었다.
회색 정장 차림이었고 평소처럼 검은 올림머리가 흐트러짐 없었다. 손에 작은 USB 메모리를 쥐고 있었다. 서준혁을 보자 한 걸음 다가왔다.
“고발하러 가셨죠.”
“반려됐다.”
강시은의 손가락이 USB를 더 꽉 쥐었다. 손톱으로 누르는 소리가 났다.
“예상했어요. 증거 부족일 거예요.”
한 박자 멈췄다. 안경 너머 눈이 붉었다. 잠을 못 잔 흔적이었다.
“이거요.”
USB를 내밀었다. 손이 떨렸다.
“4년 전부터 몰래 녹음해온 거예요.”
서준혁은 USB를 받아들었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내용은.”
“차만식이 지하 공장 얘기한 것도 있어요. 2호 창고에서 스티커 찍어내는 것. 신선유통 물량 일부 빼돌리는 대화도 들어 있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숨을 들이쉬었다.
“제가 은성초 때 묵인했던 위생 점검 녹음도 있어요.”
주변을 지나는 버스 소음이 대화를 덮었다.
서준혁은 휴대폰을 꺼내 USB를 연결했다. 파일 목록이 떴다. '4월증거01'부터 '4월증거07'까지. 날짜별로 정렬돼 있었다.
가장 최근 파일을 재생했다.
차만식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2호 창고에서 찍어내는 스티커 물량 맞춰놔. 이번 달 거래처 물량부터 신선유통 일부 라인을 2호 쪽으로 대체해.”
박종태 목소리가 뒤따랐다.
“교육청 쪽 감사는 어떻게 하고요.”
“김 팀장이 알아서 한다. 그쪽은 신경 끄고.”
재생을 멈췄다. 이어폰을 뽑았다.
서준혁은 USB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강시은을 봤다.
“이걸 왜.”
강시은이 안경을 벗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
“그날, 은성초에서 아이들 실려 가던 날. 저는 차만식이 시키는 대로 냉장고 기록지만 고치고 있었어요.”
안경을 다시 썼다. 시선이 바닥에 박혔다.
“더는 도망 안 갈래요.”
서준혁은 USB를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당신은 공범이 아니라 제보자다.”
강시은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인도 저편에서 발소리가 다급하게 가까워졌다.
유다희였다. 평소와 달리 얼굴이 굳어 있었다.
“선생님! 강시은 언니!”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다. 손목의 액션캠이 흔들렸다.
“제보자가 방금 연락 왔어요. 제보 철회한대요. 차만식 쪽에서 어제 밤에 직접 찾아왔대요.”
턱을 문질렀다.
“압박이 시작된 거예요. 우리 지금 힘을 합쳐야 해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돌렸다. 어두운 장면의 영상이었다.
“제가 어제 밤 신선유통 물류창고 취재한 거예요. 야간 출고 장면이 찍혔어요.”
영상이 재생됐다. 철제 셔터가 올라가고 지게차가 상자를 싣고 있었다. 시간 표시는 밤 11시 47분이었다. 상자 겉면에 '신선유통-2호'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서준혁이 화면을 가리켰다.
“멈춰.”
프레임이 정지됐다. 상자 스티커가 선명했다.
“'2호'.”
가방에서 USB를 꺼내 보였다.
“강시은 녹음 파일에 '2호 창고'라는 지시가 있다. 스티커 찍어내는 장소다.”
유다희가 화면과 USB를 번갈아 봤다.
“그럼 교차 검증 할 수 있잖아요! 음성 파일의 '2호 창고'랑 이 동영상의 출고 장소가 같은 곳인지.”
“지리 정보 확인이 먼저다. 신선유통 등록 창고 목록에서 '2호' 명칭과 이 영상의 지형지물을 대조해야 한다.”
강시은이 바인더를 열었다. 손끝이 아직 떨렸지만 동작은 빨랐다.
“집에 교육청 위탁 업체 명부 있어요. 거기 신선유통 창고 리스트 있습니다.”
유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노트북에 영상 원본 있어요. 확대해서 지형 분석 가능해요.”
서준혁은 USB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데이터 분석할 장소가 필요하다.”
강시은이 바인더를 닫았다. 안경을 바로 고쳐 썼다.
“우리 집으로 가요. 거실 테이블 크니까 자료 펼치기 괜찮을 거예요.”
결정이 빨랐다. 유다희가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도보로 십오 분인데 뛰는 게 더 빠를 거예요.”
서른 초 후 택시가 정류장에 섰다.
세 사람이 나란히 뒷좌석에 탔다. 서준혁은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렸다. 안에는 메뉴표와 보고서 사본, 그리고 USB가 있었다.
강시은이 기사에게 주소를 말했다. 유다희는 노트북 가방을 가슴에 안고 창밖을 봤다.
“이거 진짜 큰 거 터지겠는데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택시가 경찰서 정류장을 떠났다.
원룸은 좁았다. 싱크대 옆 접이식 테이블에 증거물들이 펼쳐졌다.
서준혁이 메뉴표와 스티커 사진을 포개어 놓았다. 강시은은 USB를 노트북에 꽂았다. 유다희는 휴대폰 화면을 가로로 돌리며 물류창고 동영상을 틀었다. 지게차가 야간에 박스를 싣는 화면이 반복 재생됐다.
강시은이 찻잔을 세 개 내려놓았다. 손끝이 떨렸다.
“냉장고 온도 기록은… 제가 2년 치를 확보했어요. 조작된 패턴이 계절별로 다른 것도 정리했고요.”
서준혁이 노트북 화면을 돌려보며 스크롤했다. 엑셀 시트마다 붉은색 음영이 칠해져 있었다.
“제상 주기 데이터는.”
“거기 탭에 있어요. 4월만 따로.”
유다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4월이 중요해요?”
서준혁은 대답 대신 메뉴표를 밀어 놓았다. 2년 전 4월 22일. 찍힌 스티커 로트 번호가 보였다.
“딸애가 그날 급식을 먹었다. 그리고 차만식의 위조 스티커는 매년 4월에 같은 공장, 같은 활자 폭으로 찍혀 나왔다.”
유다희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강시은은 시선을 테이블 모서리에 고정했다. 손톱이 나무 테두리를 긁었다. 한 박자 늦게 손을 내렸다.
“그리고 이거… 보셔야 할 게 있어요.”
유다희가 휴대폰을 테이블 중앙으로 밀었다. 은행 거래 내역 스크린샷이었다. 검은색 마스킹이 군데군데 칠해져 있었지만, 입금자 란의 실명은 그대로였다.
“여기 김 팀장이라고, 교육청 감사관실 소속이에요. 차만식과 정기적으로 돈이 오갔어요.”
서준혁이 화면을 집었다. 3월 15일, 4월 10일, 5월 2일. 입금액은 오백만 원, 삼백만 원, 오백만 원. 감사 직전마다 금액이 뛰었다.
“제보자는.”
“신선유통에서 회계 일했던 분이에요. 작년에 해고되고 나서 제 채널로 연락 왔어요.”
강시은의 어깨가 굳었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그러면… 교육청 감사가 무의미했던 건 단순한 은폐가 아니라…”
“위에서부터 구조적으로 덮은 거다.”
서준혁이 화면을 내려놓았다.
“김 팀장이라는 자가 감사관실에 있으면서 보고서를 무마하고, 차만식한테 돈을 받았다. 교육청 핫라인도 같은 구조로 샜을 거다.”
강시은이 숨을 들이쉬었다. 바인더를 집어 들 듯 손이 올라갔다 허공에서 멈췄다.
“제보자에게 이걸 받은 게 언제냐.”
“어제 밤이요. 제가 올린 폭로 영상 예고편 보고 연락 왔어요.”
강시은이 휴대폰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했다.
“이거… 사진으로 남겨도 될까요.”
“해요. 클라우드에 올릴게요.”
셔터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서준혁은 가방에서 4년 전 비리 보고서 사본을 꺼냈다. 은성초 위생 점검표가 종이 사이에서 삐죽 나왔다. 손가락이 로트 번호를 짚었다.
“LOT-0418-05. 2년 전 건은 LOT-0422-08.”
강시은이 고개를 들었다.
“같은 4월이네요.”
“같은 공장, 같은 활자 폭이다. 차만식은 매년 4월에 똑같은 위조 스티커를 찍어 냈다. 교육청 감사가 5월에 오니까 그 전에 물량을 미리 돌린 거다.”
유다희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쳤다.
“잠깐만요. 그럼 이 사람, 4년 동안이나? 아니, 5년?”
“최소 5년이다. 세 개 인쇄 라인을 돌려 가며.”
강시은의 눈이 커졌다. 안경 너머로 흔들리는 동공이 보였다.
“세 번째 라인… 그럼 지금까지 알려진 것 외에 또 다른 위조 루트가 있다는 거예요?”
“차만식이 오늘 아침에 실수했다. 처음 은성초 납품할 때 썼던 구형 프린터 얘길 꺼냈다.”
서준혁은 보고서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잉크 번짐 자국이 손등 흉터와 나란히 놓였다.
“그게 세 번째 라인이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다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걸로 법적 처벌이 가능할까요? 이미 교육청 감사도 무마됐는데.”
“이걸로는 부족해.”
서준혁이 증거물들을 한 번에 훑었다.
“실제 작업이 이루어지는 2호 창고를 특정해야 한다. 거기서 찍어낸 스티커의 실물을 확보해야 끝난다.”
“2호 창고요?”
“강시은 녹음 파일에 차만식이 직접 말했다. ‘2호 창고 정리해라.’”
강시은이 USB를 만지던 손을 멈췄다.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그 파일, 제가 녹음한 거예요. 제 녹음기로.”
유다희가 고개를 돌렸다.
“녹음기? 진짜 용도가 그거였어요?”
강시은은 대답 대신 USB를 유다희 쪽으로 밀었다.
“4월증거03이에요. 나머지는… 나중에 설명할게요.”
서준혁은 말을 이었다.
“2호 창고 위치는 물류창고 동영상의 지리 정보와 교차해야 한다. 그리고 위성 사진으로 건물 출입 패턴을 분석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처를 스크롤했다.
“QC 팀 시절 인맥이다. 물류 위성 사진 분석으로 특허 낸 사람.”
유다희가 눈을 반짝였다.
“위성 사진이요? 대박. 그분한테 연락하면 빨리 찾을 수 있어요?”
“조건이 있다.”
서준혁이 수첩을 꺼내 펼쳤다. 볼펜을 뽑았다.
“강시은은 복직 가능성을 고려해 익명으로 정보를 준다. 유다희는 채널로 여론전을 맡는다.”
강시은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떨림이 멈춘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여기서 더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냉동 창고 재고 목록. 발주서와 실제 입고량 비교 데이터. 할 수 있냐.”
“네.”
대답이 빨랐다. 본인도 놀란 듯 숨을 멈췄다.
유다희가 주먹을 쥐었다.
“저는 내일 오전 10시 영상 올라가는 거랑 별개로 실시간 중계도 준비할게요. 증거 확보되는 순간, 바로 내보내는 거예요.”
서준혁이 볼펜으로 수첩을 눌렀다. 연락처 한 줄을 적었다. 글씨는 작고 날카로웠다.
“2호 창고를 찾는다. 거기서 찍어낸 스티커 원본을 확보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볼펜을 내려놓았다.
유다희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게 올라가는 영상은 제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내보낼게요. 이번엔 진짜 끝을 보자고요.”
서로의 손이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메뉴표 위로, 보고서 사본 위로, USB와 휴대폰 화면 위로.
세 개의 그림자가 증거물들을 덮었다.